소설리스트

A.I. 닥터-886화 (886/1,303)

886화 살아난 환자 (1)

수술은 금세 잡혔다.

아니, 금세라는 말을 쓰기에도 좀 뭐할 만큼이나 빨랐다.

“원래 미국은 다 이래요?”

신기한 마음에 물었더니, 리처드의 잡이 답했다.

“아, 아뇨. 환자가 VIP라. 매년 3억 원 이상 기부하시는 분이시거든요.”

“3억을 기부? 병원에요?”

“네.”

“와…… 그 정도면…….”

매년 3억.

요새 하도 사방에서 억억 해 대니 감이 좀 떨어졌지만, 사실 3억은 어마어마한 돈 아닌가.

일반 직장인까지 갈 것도 없이 센터장을 맡고 있는 이현종도 그 돈을 모으려면 대략 3년은 걸릴 터였다.

이런저런 로열티를 받고 있는 수혁도 2년은 걸릴 테고.

근데 그걸 그냥 기부를 해?

“태화에서도 순위권에 들 정도네.”

기업 병원이라 모기업인 태화에서 매년 수십억이라 해도 좋을 금액을 후원받고 있는 태화 의료원 입장에서도 큰돈이었다.

대개 후원금은 설비 투자에 쓰리고 환자 지원을 기부받아 쓴다는 걸 생각해 보면 진짜로 큰돈이었다.

3억이면 한국 기준에서, 정말 수십 명의 죽을 사람을 살릴 수도 있었으니.

“대체 뭐하시는 분이에요?”

수술이 급하다는 말이 나올 만큼이나 빨리 잡히긴 했지만, 그럼에도 수술이라는 게 워낙에 큰일이다 보니 절대적인 시간은 두어 시간가량 소요되고 있었다.

해서 딴 얘기를 나눌 시간이 생겼기에, 그 참에 수혁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원래 같으면 여기저기 갈 일이 있었을 텐데 이왕 손댄 환자가 있다 보니 자리를 지키고 있단 얘기였다.

“아…… 그 뭐 아이티 쪽 뭐 한다고 듣긴 들었는데, 사실 저도 잘 모릅니다. 대단한 사람이라는 것만 알아요.”

“아이티는 알 수가 없죠.”

“네네.”

리처드는 당연하게도 그런 수혁과 이현종을 존중할 수밖에 없었다.

‘클리펠-트라우네이 증후군(Klippel-Trenaunay Syndrome)…… 난 진짜 처음 들어 보는데…….’

이걸 생각해 냈다는 거 자체가 대단하지 않나?

역산을 해 보니, 과연 그 질환일 가능성이 가장 커 보였다.

그 과정에서 병원의 안일했던 대처가 일부 드러나긴 했지만, 그로 인해 환자의 불만을 오롯이 받아들여야 하는 입장이 되긴 했지만.

뭐가 되었건 환자를 잃는 것보다는 훨씬 나은 상황이었다.

의사로서 환자를 생각하는 마음도 있는데 과장이다 보니, 또 미국이다 보니 소송을 떠올리고 있었다.

‘지금까지 와서 진료받은 정황을 다 종합해서 보면…… 우리가 놓쳤다는 판결이 나올 수 있어. 그렇게 되면…… 아후…….’

이런 일에 대비하기 위해 미국에서는 병원 차원에서, 또 의사 개인 차원에서 보험도 들어놓긴 했다.

허나 액수가 너무 커지면 난리가 나는 건 보험이 있다 해도 마찬가지였다.

그 생각을 하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안도의 한숨이었다.

드르륵.

그 사이, 환자는 수술실로 들어가고 있었다.

레지던트는 이제 숙달된 카메라 감독처럼 나름 긴박하게 그 장면을 담아 내고 있었다.

그냥 보기만 하면 심심할 것 같았는지 내레이션도 넣었다.

“수술방 3번방으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환자분이 좀 긴장하셨는데…… 일단 충분히 설명은 해 뒀습니다.”

전문 내레이터는 아니지만, 의사다 보니 의사가 궁금해할 만한 내용을 계속 말했다.

“자, 마취합니다.”

“네, 네.”

그렇게 도달한 수술방에서 마취과 의사는 환자를 향해 친절한 미소를 보인 후, 이미 잡혀 있는 여러 라인을 통해 마취제를 주입했다.

하얀 마취제가 안으로 슥 들어가는가 싶더니 환자의 눈이 흐릿해졌다.

아픈 와중에도 총명해 보이던 눈동자에 졸음이 깃들었다.

“자, 환자 복강 탐색술 하고, 필요시 전 결장 절제술 예정입니다. 맞습니까?”

불려 나온 외과 의사는 주말이라 피곤한 기색이 역력함에도 불구하고 필요한 절차를 잊지 않았다.

“네, 맞습니다.”

간호사들도 그랬다.

이게 무슨 쓸데없는 일인가 싶겠지만, 이렇게 함으로써 사고를 확 줄일 수 있었다.

실제로 이 제도가 도입된 이후, 잘못된 부위를 절제하거나 하는 사고가 거의 몇 퍼센트 내외로 줄었다는 보고도 있었다.

“처음부터 복강경으로 하지 않고…… 절개를 하고 들어가 달라 이거죠?”

“네. 지금 환자 상태가 마취를 오래 견디는 것도 어렵습니다.”

외과 의사는 화면을 보고 물었다.

이미 다 얘기가 되어 있어서 그랬다.

과장 리처드는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몇 번인가 학회 관련한 일 때문에 왔다 갔다 했기에 진짜 피곤했지만, 책임감이 그를 붙들어 주고 있었다.

“으음…… 알겠습니다. 근데 전 결장 절제술을 진행하게 되면…… 환자가 앞으로 관리하거나 하는 데 있어서 어려움이 생길 수 있습니다. 이 점도 양지하고 계시는 거죠?”

“네. 알고 있습니다.”

“으음.”

외과 의사는 불만이 있었다.

상대가 과장이기에 대놓고 터뜨리지는 못하고 있지만, 이 의견 대부분을 과장이 아니라 그 옆에 선 젊은 동양인 교수가 냈다는 걸 전해 들은 이후론 저도 모르게 신음이 흘러나왔다.

‘클리펠-트라우네이 증후군이라…… 아까 알아보니까 이런 식의 침범은 드물다던데. 진단이 맞기는 한 건가?’

아닌 거 같은데.

‘어차피…… 내 환자는 아니야. 철저히 컨설트 오피니까…… 주제넘은 짓은 하지 말자.’

허나 내과 과장 리처드는 만만한 인간이 아니었다.

과장이라는 자리를 그냥 돌아가면서 맡는 대한민국과는 달리, 미국에서 과장은 진짜 그 과의 수장을 말하는 것이라 그랬다.

실력도 실력이지만 원내 정치에 있어서 짬바가 장난이 아니라고 봐야 했다.

지이익.

그런 생각과 함께 배를 쨌다.

그러자 출혈 때문인지 뭐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잔뜩 부은 대장이 눈에 들어왔다.

주로는 좌측 대장과 그 밑에 직장이 부어 있었지만, 확실히 평행 대장 및 우측 대장도 완전 정상으로 보이진 않았다.

‘흐음…….’

전신 질환이 있어 보이긴 하단 생각이 들었다.

확실히 전반적으로 정상 해부학 구조를 보이고 있지 않다는 느낌도 받았다.

그렇다면 설마 정말 저 동양인 의사가 맞다는 건가?

‘전화 통화로 진단이 된다고……? 그것도 그리 희귀한 질환이?’

이런저런 생각을 이어 나가고 있으려니 전화기 너머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흐음…….”

방금 전까지 자신이 입으로 냈던 소리와 거의 같았다.

해서 돌아보니 동양인 의사, 즉 수혁이 수술 장면을 보며 신음을 흘리고 있었다.

인상도 쓰고 있었다.

뭔가 불만이라도 있는 듯했다.

‘뭐야, 이 새끼.’

남 수술하는데 방해를 해?

이런 생각만 들었다.

그렇게 절개를 마치려는데, 또 말이 들려왔다.

“호오.”

같은 목소리였지만 느낌은 전혀 달랐다.

이건 칭찬이었다.

‘뭐야…… 뭘…… 뭐…… 응?’

아마 외과 의사의 실력이 그저 그랬으면 기시감조차 느끼지 못했을 터였다.

하지만 외과 의사는 뭐가 되었건 간에 매사추세츠 종합 병원 외과에 취직할 수 있을 만큼의 실력을 갖추고 있었고, 또 꽤 많은 콜당직 외과 의사들 중 리처드가 꼭 집어 불러올 만큼의 경력도 있었다.

‘설마.’

그래서 방금 절개가 좀 잘되었다는 걸 알아차리고 있었다.

하필 저 동양인 의사가 그 타이밍에 칭찬기 다분한 소리를 냈다는 것도 알았고.

지이익.

하여간 외과 의사는 잘라 내야 할 부위를 탐색하기 시작했다.

우선 아까 내시경실에서 끊임없는 출혈 때문에 어렵사리 확인했던 직장 상태를 보다 면밀히 보기 위해 직장에 살짝 절개를 넣었다.

“흐음.”

그 절개가 살짝 깊었는데, 어김없이 불만 어린 소리가 들려왔다.

‘아…… 이거 우연이 아니야? 미친놈인가?’

기분 나쁜 소리긴 했는데, 이게 또 묘하게 맞아떨어지고 있다 보니 화를 낼 수가 없었다.

아니, 그 전에 대체 어떻게 저 멀리서 이걸 보면서 다 맞추는지가 궁금해서 화가 나지도 않았다.

게다가 저 의사는 내과 의사라고 하지 않았나.

외과의 일을 다 알기엔 현대 의학은 이미 오래전에 세분화되었고, 과별로 과하게 발달하고 있었다.

“아.”

“아…….”

“역시 살리긴 어렵겠군요.”

하여간에 절개창을 내고 본 직장의 소견은 끔찍할 지경이었다.

여전히 출혈이 지속되고 있는 것도 문제인데, 그보다도 직장 상태가 엉망진창으로 망가져 있었다.

“정맥류…… 맞군요.”

육안으로 보니 확실히 저 동양인 의사의 말대로였다.

외과 의사는 방금 전까지 느꼈던 꺼림칙함이 순간 경이로움으로 바뀌었다는 것도 인지하지 못한 채 말을 이었다.

“이렇게 되면 탐색술은 진짜 의미가 없었군요. 우선 직장 및 좌측 결장 절제술은 확정 짓겠습니다. 나머지 결장도…… 지금 육안으로 볼 때 안이 멀쩡할 것 같진 않은데…….”

동시에 수혁을 돌아보았다.

너는 대체 뭐 하는 사람이길래 이걸 다 예측했냐, 뭐 이런 눈을 하고서였다.

‘천재……? 아니, 나도 천재 소리 꽤나 듣는 사람인데.’

단순한 천재는 아니었다.

그냥 천재로 보이는 사람이 얼마나 많던가.

당장 저 너머에 있는 리처드도 그런 소리 꽤 들었을 터였다.

‘괴물……?’

뭐 하는 사람인지 확 궁금해졌다.

수술이 끝나면 검색이나 해 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러한 생각마저도 이어 나가기가 쉽지만은 않았다.

“흐으음…….”

“호오.”

수혁의 수술 리듬 게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어서 그랬다.

리처드는 물론이거니와, 이현종도 아직 이게 무슨 게임인지 몰랐다.

허나 수혁의 이름조차 제대로 모르는 외과 의사는 그 게임의 플레이를 강제받고 있었다.

실력이 있는 사람이다 보니 더더욱 그랬다.

‘망할…… 너무 빡세다고!’

쉬운 게임은 아니었다.

너무 어려웠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고양감이 일었다.

‘아…… 이렇게? 그래, 이게 맞구나. 아…… 이런 미친.’

순간순간 실력이 느는 느낌이었다.

내가 진짜 천재는 천재구나 싶기도 했다.

얼굴이 붉게 달아오를 지경이었다.

그렇게 벌건 얼굴이 된 외과 의사를 수혁은 심드렁한 얼굴로 보고 있었다.

‘장준혁 교수가 했으면 벌써 끝났겠네.’

[네. 백강혁한테 갈 것도 없이 장준혁 선에서 컷입니다.]

그는 이미 너무 대단한 의과의들을 많이 봐 와서 그랬다.

“오…… 닥터 마이클. 많이 빠른데, 오늘? 전 결장 절제술이 그렇게 쉬운 수술은 아닌데.”

“아, 오늘 손이 좋네. 컨디션이 좋아.”

허나 수술방 분위기는 점점 훈훈해져만 가고 있었다.

주말에 다급히 결성된 데다가 상대가 VIP고, 또 이름도 처음 들어 보는 병이라 잔뜩 긴장하고 있었는데 수술만은 잘되고 있어서 그랬다.

평소보다 어려웠을 텐데 더 걸리기는커녕 시간마저도 절반으로 푹 줄어들었다.

‘좋단다…… 저길 저렇게 해 놓고.’

[그래도 생사에는 연관 없을 겁니다.]

‘그렇긴 하지. 하지만 회복 시간에는 연관이 있어.’

[이렇게 하면 더 나을 것 같은데…… 확신은 없군요.]

‘그래, 외과에 조언까지 하는 건 좀 주제넘지?’

수혁은 그런 일행을 한심하다는 얼굴로 바라보았다.

지금까지 게임까지 진행했던 주제에 자중한다는 생각을 하면서였다.

“자, 수술 종료입니다. 밖으로 나가죠.”

여하간 수술은 잘 끝났다.

그 순간 모든 이가 하늘을 잠시 바라보거나, 적어도 떠올렸다.

이제 남은 일은 하늘에 달려서 그랬다.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어지간하면 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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