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888화 (888/1,303)

멍멍이가 돌아오면 우리 개가 사람 물지 않는다고 해야겠군.888화 살아난 환자 (3)

외과 교수는 즉시 답을 하는 대신 우선 환자를 마주 보았다.

그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의사였다면 이 상황에서 오로지 환자 질환만 생각했을 텐데.

그의 바람과는 달리, 진짜 그냥 저절로 환자의 배경이 떠올랐다.

‘MIT 출신에…… 사일런스 딜리버리 창업주…….’

사일런스 딜리버리라고 하면 그게 뭔지 바로 떠올리긴 쉽지 않지만, 뭔가 배달하는 것이라고 보면 되었다.

그중에서도 조용하게 배달하는 사업인데, 대체 뭘 조용하게 배달하나 싶었더랬다.

‘난 뭐 야한 거라도 배달하는 건 줄 알았지.’

남들한테 들키면 안 되는, 그런 것들 있지 않나.

그 왜 야한 동영상이나 잡지나 이런 거?

허나 거기 창업주가 의사들에게 공을 들이고, 병원에 기부를 하는 건 좀 이상한 일이었다.

물론 그럴 수는 있다.

의사들을 잠재적 고객으로 판단했다면…….

‘그게 아니었지. 결과적으로 이 사람은 진짜 대박이 났는데…….’

알고 보니 그런 게 전혀 아니었다.

남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걸 배달하는 건 맞는데, 딱히 부끄러워할 만한 것은 아니었다.

‘남자는 탈모약, 여자는 피임약…….’

이 중에서 주력하고 있는 건 아무래도 전자였다.

후자야 뭐, 어지간히 보수적인 집안 아니고서야 딱히 부끄러워할 이유가 없지 않나?

꾸준히 먹어야 하는 약이니만큼 자꾸 사러 가는 게 귀찮은 것이 아마도 큰 동기가 될 터였다.

허나 탈모약은?

‘감사합니다…….’

의사도 남들한테 보이기 싫어서, 심지어 매사추세츠 종합 병원의 외과 교수인 사람조차 다른 병원 가서 처방받아서 먹고 있었다.

그러다 이 서비스가 나오고 나서는 모든 것이 편안해졌다.

딱 한 번 의료진에게 필요성을 검증받고 주문했더니, 그냥 때 되면 날아왔다.

“그, 네. 일단…… 경과는 이렇습니다.”

감사.

압도적 감사.

외과 의사는 그런 생각을 하며 환자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말끝마다 본인은 협진 수술을 했을 뿐이고, 더 자세한 사항은 내과 레지던트에게 들을 수 있다고 하긴 했지만.

말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나 싶었다.

아니, 환자가 나름 의료 쪽 사업을 하고 있어 그렇지, 다른 사람이었으면 절반도 알아듣지 못했을 터였다.

“근데…… 진단 자체는 전화로 했다고요?”

“네.”

“그럼 원격 진료를 했단 말씀이십니까?”

“아…… 네. 그렇죠. 음. 듣고 보니 원격 진료가 맞군요.”

허나 환자는 말을 다 알아들었을뿐더러, 이런 질문까지 던졌다.

눈여겨보았다면 이미 사업가의 눈이 되었다는 걸 눈치챌 수 있었겠지만, 외과 의사는 그 스스로도 지친 상황이었다.

노상 하는 수술이기는 했지만, 오늘은 뭔가 달라서 그랬다.

피로도가 아예 달랐다.

그 덕에 결과도 다르긴 했지만, 하여간 지쳐 있었다.

“여기가 종합 병원인데, 대체 누구에게 원격 진료를 한 거죠?”

“그…….”

시작은 순전히 우연이지 않았나.

레지던트야 작은 청탁을 받았지만, 그 외에 나머지는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으니 그저 우연이라 칭해도 될 터였다.

허나 그 과정부터 이후의 결과까지는 필연이었다.

그가 아니었으면 환자가 다시 눈을 뜰 수 있었을지 어땠을지조차 불투명했다.

“태화 의료원의 통합진료센터 부센터장 이수혁 교수입니다.”

“태화……? 그거 우리나라 병원은 아닐 거 같은데요? 태화 전자와 연관이 있나요?”

“아, 네. 한국에 있는 병원입니다. 태화 그룹이 운영하는 병원이죠.”

“아…… 근데 그게 어떻게……?”

그런 이유에서, 그리고 수술에 리듬 게임을 도입했다는 이유에서도 외과 교수는 열심히 나무위키를 탐독하고 있던 참이지 않나.

안 그래도 똑똑한 사람인 데다가 방금 전까지 관련 자료를 읽고 있었다 보니 줄줄이 나왔다.

“자세한 사항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만, 리처드 교수님 아시죠?”

“아, 네. 여기 과장님.”

“네. 그분이랑 같이 있다가 연락을 받은 것 같습니다. 우연히 도움을 주시게 된 거죠.”

“아…… 근데 리처드 교수님까지 도움을 받았다면 제 병이 꽤나 희귀한 것인가 보죠?”

“네, 엄청 희귀하죠. 당장 저는 처음 들어 봤습니다.”

“그렇습니까?”

“네.”

“허.”

환자는 자기 앞에서 이런 질환 처음 본다고 하는 외과 교수를 바라보았다.

이렇게 말할 수 있다는 거 자체가 유능한 사람의 특권 아니겠나.

누가 봐도 개뿔도 아는 게 없어 보이는 사람은 함부로 모르겠단 말조차 할 수 없는 법이었다.

오히려 매사추세츠 종합 병원의 외과 교수라는, 의료계에서는 세계 어디를 가도 엘리트로 통하는 사람이라 할 수 있는 말이었다.

달리 말하면 이 질환이 진짜로 어려운 질환이란 얘기가 되었다.

‘그런 걸 전화로 확인했다, 이건가?’

환자는 흐음 소리를 내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

“보답을 해야 할 것 같은데…… 혹시 연락처가 있을까요?”

“아, 네. 리처드 교수님이 알고 계실 겁니다. 저는 잘 몰라요. 오늘 전화로 본 게 다입니다.”

“그렇군요.”

외과 교수는 환자의 의도를 온전히 읽어 내진 못했다.

진짜 그랬다면 바로 알아봐 줬을 텐데, 그러지 않았다.

‘보답보다는 얼굴이나 한번 보고 싶은데…….’

환자는 좀 아쉽긴 했지만, 그렇다고 한이 될 만큼 아쉬워하진 않았다.

어차피 그는 성장하는 사업을 하는 사람이었고, 나름 이리저리 연줄이 있었으니까.

게다가 리처드라면 절대로 자신을 우습게 볼 수 없는 사람이었다.

지금까지 기부한 액수도 액수지만 앞으로 약정되어 있는 액수도 컸기에 그러했다.

총 36억, 그러니까 미화 300만 달러에 달하는 돈을 약정해 둔 참이었다.

“아, 아. 네. 깨어나셨군요! 안 그래도 병동 연락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해서 리처드에게 전화를 걸었다.

리처드는 학회 짬 때린 죄로 지금 이리저리 바삐 움직이고 있던 참이었다.

어지간한 전화면 다 씹어야 할 타이밍이었다는 건데, 안타깝게도 이 전화는 어지간한 전화가 아니었다.

해서 리처드는 복도에 초조한 얼굴로 멈춰선 채 전화를 받았다.

목소리에는 전혀 초조함이 묻어나지 않았다.

이러지 저러니 해도 매사추세츠 병원의 내과 과장이란 자리를 그저 따낸 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는 대목이라 할 수 있었다.

“네네. 정말 감사합니다. 제 질환이 희귀하기도 하고 만만치 않은 거라고 들었습니다.”

“맞습니다. 진단해 낼 수 있던 게…….”

리처드는 잠시 고민했다.

이걸 다 매사추세츠 병원의 공이라고 꿀꺽할까, 이것을 고민했다.

당연하지는 않은데, 이현종의 얼굴이 떠올랐다.

-뒤질래?

어쩐지 직접 들어 본 적은 없는 말도 떠올랐다.

‘그전에…… 이 사람이 왜 전화를 했을까를 생각해 보면…….’

그렇게 머리가 차가워진 채 고민을 해 보니 좀 이상했다.

아무리 수술이 잘되었다곤 해도 개복 수술이지 않았나.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배를 갈랐다가 닫기만 해도 더럽게 아픈 것이 바로 개복 수술이었다.

배 안에 든 게 많다 보니 배에 작용하는 장력이 너무 커서 그랬다.

‘그냥 감사 인사만 전하려고……? 아니지. 아니야.’

단순히 좋은 사람이라면 그럴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 사람은 사업가.

모든 일에 이유가 붙을 만큼 노회한 사람은 아니어도, 하여간에 대개의 일에는 이유가 있을 터였다.

거기까지 생각을 마친 리처드는 이실직고했다.

덕분에, 환자는 아까 들었던 말이 사실이었음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럼 그분에게도 따로 인사를 드리고 싶은데…… 연락처 알 수 있을까요?”

“아. 네.”

게다가 리처드는 아까 이현종에게 연락처도 받았고, 뉴욕 센터 얘기도 들었다.

수혁의 명함도 받았고.

해서 알려줬다.

부우웅.

그 시각, 수혁 일행은 식당에 있었다.

수혁이 쏘기로 한 식당, 그러니까 미슐랭 스타를 받은 식당이었다.

당연히 맛있는 곳이었고, 그 와중에 온 전화가 반가울 리는 없었다.

[매너가 똥이네.]

‘야…… 우리가 뭐 하는지 전화하는 사람이 어떻게 알아. 게다가 우리한테 온 것도 아니잖아.’

[코스는 누구 하나가 느려지면 다 같이 느려지지 않습니까? 나는 다음 맛이 궁금합니다.]

‘그건…… 그거야 나도 그렇긴 해.’

적어도 수혁은 약간의 적대감도 가지고 있었다.

허나 이현종은 김다현을 통해 언질을 듣지 않았나.

게다가 리처드라는 놈이 별일 없이 전화 걸 놈은 아니란 것도 알고 있었다.

“응, 그래? 알았어.”

허나 환자에게 전화가 온다 해도, 그 환자가 VIP를 넘어 의료계 사업을 하는 사람이란 얘기가 나오리라고는 꿈에도 예상하지 못했다.

‘수혁이의 가장 큰 힘은…… 운……이 아닐까?’

여기서 일이 또 이렇게 풀린다고?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생각해 보면 수혁은 해외에 나갈 때마다 무언가 한 건씩은 하고 돌아온 사람이었다.

아니, 단순히 한 건이라고 하면 섭섭해질 정도로 거대한 일들을 가지고 왔었다.

두바이에 가서는 왕자를, 싱가포르에 가서는 리 일가를 낚아 왔다.

그런데 이번에는 또 어떤 사업가를 낚았다.

아니, 아직 낚았는지 어쨌는지는 몰랐다.

부웅.

하여간 기다리고 있으려니 전화가 왔다.

이현종은 부리나케 그 전화를 받았다.

하도 여기에 집중하고 있느라, 수혁이 자신을 노려보고 있다는 것조차 몰랐다.

정확히 말하면 수혁이 아니라 바루다가 노려보는 것이었지만, 하여간에 모르고 있으니 오해도 없었다.

“태화 의료원 통합진료센터 센터장 이현종입니다.”

이현종은 본인이 낼 수 있는 가장 낮은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그제야 수혁도 뭔가를 알 것 같았다.

바루다도 그랬다.

[흉계가 있군요.]

‘아빠한테 이런 말 하는 게 좀 그렇긴 하지만…….’

[저 사람이 목소리 깔 때는 다 뜻하는 일이 있기 마련입니다. 본성은 한없이 가벼운 인간 아닙니까.]

‘욕을 하네?’

[저는 인공지능이라 욕이라고는 한 톨도 할 줄 모릅니다. 그저 팩트를 말할 뿐이죠.]

‘지랄 마.’

약간의 의견 충돌은 있었지만, 이현종이 꿍꿍이를 품고 있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었다.

“아…… 그렇군요.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여기서 매사추세츠는 지척이니까요. 게다가 보스턴에 있으니 사실 가서 볼 것도 많겠죠.”

매사추세츠 종합 병원.

이렇게만 말하면 다른 나라 사람에게는 그 명성에 비해 위압감이 좀 약할 터였다.

허나 하버드 대학에 수련 병원이 없어 실질적인 수련 병원 역할을 하고 있다는 말을 더하면 어떨까.

아마 세계 최고의 병원 중 하나라는 느낌이 딱 들 터였다.

“아…… 진짜요? 그럼 가 볼 만하죠.”

“네, 저희도 좋습니다.”

“저는 늘 충성입니다.”

“좋습니다, 교수님.”

물론 최고고 지랄이고, 일반적인 관광객에게 뉴욕에서 보스턴으로 가라는 말은 선을 넘어도 너무 세게 넘는 말일 터였다.

하지만 일행은 의사들이었다.

그중에서도 세계 최고 자리를 넘보고 있는 태화 의료원의 의사들.

그런 그들에게 보스턴행은 의미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수혁은 이현종의 흉계를 읽었고.

‘교주님께서…… 무언가 다른 뜻을 품으셨군그래.’

안대훈은 그런 수혁의 의중을 읽었다.

그렇게, 만장일치로 귀국 전 보스턴행이 결정되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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