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891화 (891/1,303)

891화 보스턴 (2)

“이왕 온 김에 환자나 좀 보자는 얘기네.”

“네?”

아무리 봐도 리처드가 이해를 못 하는 것 같아서, 이현종이 흠흠 소리를 내면서 나섰다.

물론 별로 도움이 되진 않았다.

갑자기 환자를 봐?

리처드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일단 여기는 남의 병원이고, 아니 그걸 떠나서 이 인간들은 관광객이지 않나.

학회는 끝났고, 천금 같은 이틀 일정이 남았다고 들었다.

“환자 보고 싶다고. 이렇게까지 말하게 만들 거야?”

“아니…… 환자는…… 직업이 의사 아닙니까?”

“의사지. 그러니까 환자를 보고 싶다는 거야.”

“그…….”

리처드는 어이가 없어서 수혁을 돌아보았다.

수혁은 당연하게도 ‘너 왜 그렇게 보냐’라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다음 마주하게 된 것은 대머리 아니, 안대훈이었다.

번쩍이고 있어서 어쩔 수가 없었다.

이수혁과 이현종을 먼저 바라보게 된 것이 대단한 일이라고 볼 수 있었다.

‘환자 보게 해 달라고, 인마.’

그 또한 신도 아닌가.

마음속의 열망은 오히려 더 클 수도 있었다.

수혁의 바람을 이루어 내야만 하는 사람이니까.

‘이 새끼들 진심이구만.’

나머지에는 눈길조차 가지 않았다.

해서 리처드는 포기했다.

생각해 보면 첫날부터 좀 이상한 놈들이긴 했다.

멀리 뉴욕까지 와서 환자 하나 보겠다고 기다린 시간이 대체 몇 시간이란 말인가.

강의를 듣지 않았다는 건 뭐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사실 저 둘 정도 되면 분과 학회도 아닌 일반 내과 학회에서 뭘 얻을 수는 없었을 테니.

그렇다고 그렇게 죽치고 있나?

‘쉑쉑 버거라도 먹으러 가지, 보통은.’

특히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라면 놀러 나가기 마련이었다.

허나 이놈들, 리처드가 알기론 자유의 여신상도 보러 가지 않은 것 같았다.

뭘 먹고, 뮤지컬도 보긴 했지만, 멀리 움직인 적은 없었다.

“그럼…… 돌까요?”

상식에서 확 벗어나 있다는 얘기였다.

그런 인간들을 설득할 수 있을까?

‘비행기부터 그냥 지랄이었지.’

아니, 그건 포기하는 게 좋았다.

그냥 하라는 대로 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게다가 환자를 본다는 게 가능할 것 같지도 않았다.

설마 진료하겠다는 건 아닐 테고, 정말 그냥 어떤 환자들이 있는지 구경한다는 뜻 아니겠나.

“네, 좋죠.”

“드디어.”

“후후.”

반응이 좀 너무 뜨거워서 뜨끔 했지만, 하여간 리처드는 일행을 이끌고 중환자실부터 돌기 시작했다.

그제야 비로소 일행은 환자 하나하나 뜯어 볼 수 있었다.

아니, 일행이라기보다는 수혁이 그랬다.

“음.”

허나 정작 멈춰 선 사람은 이현종이었다.

괜한 일일까?

그럴 리는 없었다.

적어도 수혁은 그렇게 생각했다.

[진단명이 원인 미상의 열…… 불명열이로군요.]

불명열로 중환자실에 입원을 했다?

‘어려운 환자겠네.’

상태가 급작스럽게 나빠졌을 텐데도 실마리를 못 잡았다는 뜻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약도 일반적인 약만 쓰고 있었다.

“음? 아, 이분은 제 환자인데요.”

“심장이야?”

“네. 아니, 지금 심장이라는 건 아니고…… 제가 보던 환자예요.”

“근데 잘 모르겠다는 거지?”

“아, 네. 근데 뭐…… 불명열입니다. 심부전증이 있는 경우에는 그리 드물진 않죠.”

“하지만 제대로 치료하지 않으면 죽겠지.”

“음.”

리처드 또한 걸음을 멈추었다.

껄끄럽다는 기색을 딱히 숨기지도 않았다.

당연한 일이었다.

자기 환자지 않나.

의사라면 누구나, 자기 환자에게 누군가 개입하는 걸 달가워하지 않는 법이었다.

그중에서도 리처드처럼 일가를 이룬 사람이라면 더더욱 그러지 않겠나.

‘이현종…… 심장…….’

하지만 상대는 이현종이었다.

이수혁도 물론 대단한 사람이겠지만, 이현종은 궤를 달리하는 느낌이었다.

그는 이미 국제 학회에서 인정받고 있는 수준이 아니라, 저 위에 서 있는 사람이지 않나.

이현종이라고 하면 치를 떠는 사람도 많지만, 그 앞에선 그 누구도 감히 입도 벙끗하지 못했다.

여전히 복수를 꿈꾸기에 이현종은 최고의 자리에 있었다.

“한번…… 보시겠습니까?”

“그래. 그러지. 자, 드가자.”

“네.”

해서 리처드는 고개를 숙였다.

합리적인 선택이긴 했다.

‘진짜 모르겠긴 하거든…….’

심부전증이 있는 사람, 그러니까 심장이 제대로 뛰지 못하는 사람들이 패혈증에 잘 걸린다는 건 딱히 통계를 들이밀지 않더라도 알 만한 일이었다.

피가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고 심장 내에 고인다면 피떡이 지기 쉬울뿐더러 뭔가 자라나기도 쉽지 않겠나.

고인 물이 썩는다는 말은 비단 바깥에서만 통용될 수 있는 말은 아니었다.

우리 몸속의 피도 마찬가지였다.

‘근데 원래 심부전증에 대해…… 내가 치료를 했단 말이야.’

리처드는 끙 하는 소리를 내며 환자를 내려다보았다.

이제 갓 60세를 넘긴 남자 환자는 그야말로 죽은 듯이 누워 있었다.

애초에 지금 연결한 여러 장치가 없다면 당장 사망해도 이상할 게 없는 상황이었다.

“장치 달았나?”

“아, 네. AICD(Automated Implantable Cardioverter Defibrillator, 체내 자동 제세동기)요.”

“아…… 그랬군. 꽤 심각했던 모양인데…… 그거 달아 놓고 얼마나 됐지?”

“2달가량 됐습니다.”

“그럼 그게 감염원일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겠는데.”

“네, 그렇긴 한데…… 초음파 소견을 보시겠습니까?”

“아니, 지금 보지.”

“아, 네.”

하여간 이현종은 빠르게 대화를 이어 나갔다.

장치를 단 상황에서 발생한 감염이지 않나.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고 봐야 했다.

물론 이쪽에서도 최선을 다하고 있기야 하겠지만, 세상일이 마냥 최선을 다한다고 다 잘되던가?

그럴 수는 없는 법이었다.

드르륵.

마침 리처드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질문에 답을 하다 보니, 이 환자에 대한 추론을 이어 나가기 어렵다는 걸 다시 한번 확인하게 돼서 그랬다.

‘아마도…… 감염은 감염일 텐데……. 어떤 감염인지를 모르겠단 말이지.’

그는 환자가 끄응 하는 신음과 함께 실려 왔던 때를 떠올렸고, 이현종도 마침 그걸 물었다.

초음파를 가져다 댈 준비를 하면서였다.

“처음 올 땐 어떻게 왔지?”

“아, 네. 3주 전부터 시작된 발열하고…… 설사 및 피로감을 주소로 왔습니다.”

“점점 심해졌다고 진술했나?”

“아뇨. 왁스 앤 웨인(오르락내리락)했다고 보고했습니다.”

“왔다 갔다 했다, 이 말인데…… 흠…….”

이현종은 자연스레 입을 다물고 환자의 심장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경식도 초음파가 심장을 보는 데 있어 제일 유리한 검진이긴 했지만, 그건 당장 할 수 있는 게 아니지 않나.

해서 그냥 가슴팍에 대고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알 수 있는 게 많았다.

“잠깐 손 좀 치워 봐.”

이현종은 모니터 앞에 얼쩡거리고 있는 리처드에게 비켜설 것을 요구했다.

타당한 요구였다.

거기엔 당장 그제 시행한 초음파 소견이 떠 있었으니.

이건 경식도 초음파였다.

“당시 소견을 보면…… 흠…… 심내막염은 아닌 것 같은데…… 지금도 그렇고.”

“네, 그렇죠. 심전도 소견도 이를 뒷받침합니다.”

“그러니까. 그래서 아까부터 너무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있었어. 진짜 밸브는 깨끗하네?”

밸브라 함은, 심장에서 빠져나간 피가 다시 돌아오지 않도록 툭 닫히는 구조물을 말했다.

심장이 이상하게 뛰거나 하면 이 구조물에 뭔가가 들러붙기도 쉬웠다.

즉, 기기에 문제가 생겼거나 심장에 염증이 생겼다면 밸브에서 균 덩어리가 보여야 한다는 뜻이었다.

허나, 그런 건 없었다.

“음…….”

“진짜 이상하죠? 심내막염이 없다면…… 사실상 리드 감염(Lead Infection, 전극도자 감염)도 없다고 봐야 합니다.”

“으음…….”

리처드는 단정 지은 채 고뇌에 빠져 있었다.

허나 이현종은 생각이 좀 달랐다.

‘반드시 없다고 볼 수 있나……?’

물론 관련 내용을 확인한 적은 없었다.

다만 이론적으로 가능하다 싶을 정도에 불가했다.

이럴 땐 수혁에게 도움을 청하는 게 좋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 또라이 같은 아들은 세상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논문을 다 보고 있었으니.

“수혁이, 네 생각은 어때?”

“제가 알기로…… 심내막염 소견 없이 리드 감염이 일어나는 경우는 없었습니다.”

“그렇지.”

“네, 맞아요.”

수혁의 말에 리처드가 맞장구를 쳤다.

어딘지 모르게 안도하는 기색도 엿보였다.

자신만의 생각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던 모양이었다.

허나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야 하는 법이었다.

아니, 한국 사람의 말은 끝까지 들어 봐야 하는 법이었다.

대한민국 사람들은 영어로도 꼬아 말하는 것이 가능한 인간들이었으니까.

“지금까지는 그렇죠. 지금까지는.”

“응?”

“그래, 지금까지는 그랬어. 앞으로도 그럴 거란 보장은 없어. 이론적으로는 얼마든지 가능해.”

“네. 드물겠지만…… 리드 감염만 있는 경우도 가능하긴 합니다.”

“아니, 근데.”

“한번 초음파로도 볼까?”

“볼 수 있나요?”

“잠시만요.”

“나는 볼 수 있지.”

“그럼 보죠.”

어느 순간 리처드는 배제되었다.

유일한 이 병원 의사고 또 이 환자의 지정의임에도 그랬다.

‘내가 왜 이걸 돕고 있지.’

어어 하다 보니, 어느새 경식도 초음파를 돕고 있었다.

아니, 들어가고 있었다.

사실 환자는 의식이 없고, 그에 따라 인공호흡기를 끼고 있었기 때문에, 하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긴 했다.

그렇다고 당장 할 생각은 없었는데.

쑤우욱.

아차 하는 순간에 이미 초음파는 안으로 들어가 있었다.

그러곤 심장을 비추고 있었다.

가장 먼저 보인 건, 전에 봤던 그 앵글이었다.

“일단…… 이렇게 봐도 밸브는 깨끗해. 그 외에도 심내막염을 의심할 만한 소견은…… 전혀 없어.”

“네, 그렇다니까요?”

“리드를 볼까.”

“저도 보긴 봤어요.”

“그래, 근데 흐릿하잖아. 저래서야 의미가 크게 없지.”

“없긴 한데…… 심내막염이 없는 상황에서…… 응?”

초음파가 슬쩍 돌아가는가 싶더니, 귀신같이 리드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리드에 부착되어 있는 섬유질 같은 물질도 눈에 들어왔다.

“이, 이게 뭐야?”

“감염이지. 아마 전보다 더 자라서 눈에 잘 보이는 거 같긴 하지만…… 나라면 자라기 전에도 놓치진 않았을 것 같은데.”

“아니…….”

“균 배양 검사는 나갔지?”

“아, 네. 아직 리포트된 건 없어요.”

“리드 감염을 일으킬 만한 균을 특정해서 물어보면 대강 알 수 있을걸.”

“아.”

균 배양 검사는 진단검사의학과에서 확인해 주는 검사였다.

대부분의 일이 그렇지만, 이것도 당연히 사람 눈이 중요했다.

그리고 임상적인 추론도 중요했다.

대개는 추론을 더해 주지 않아서 그렇지.

“스타필로코쿠스 계열이었다면 심내막염을 일으켰을 거야. 그보다는 더 순한 놈이겠지. 어떤 게 있을까?”

이현종의 말에 수혁이 바루다를 이용해 추론한 결괏값을 내놓았다.

“제멜라(Gemella) 종류가 제일 가능성이 있겠는데요.”

“어? 하나만 말한다고?”

“심내막염 없이 이렇게 된다면…… 이 녀석일 가능성이 제일 커요. 물론 다른 혐기성 그람 양성균도 가능하긴 하겠지만, 이걸 특정해서 묻는 게 제일 효과적일 겁니다. 항생제 쓰기도 좋으니…… 운이 좋다고 해야 할지.”

“저기 아직 확실하지도 않은데 항생제를…….”

“아직도 여깄어? 빨리 뛰어가서 물어보기나 하지.”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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