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893화 (893/1,303)

893화 우리 과도 아냐 (1)

리처드는 따라 들어가면서 무언가 기시감을 느꼈다.

아니, 위화감이라고 해야 할 터였다.

이상했다.

정말로.

‘아.’

그 이유를 깨닫는 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내과 환자가 아니었다.

아니, 내과 중환자실도 아니었다.

이 새끼들, 언제 여기까지 왔을까.

그전에 대체 어떻게 온 거지?

여기 오려면 뭐가 되었건 간에 문도 열고 해서 왔을 텐데.

‘이렇게까지 당당하게 돌아다니고 있으면…… 나라도 문을 열어 줄 것 같긴 한데.’

보안 절차가 있기는 했다.

당연하지 않겠나.

동네 가면 있는 2차 병원도 밖에서 볼 땐 엄청 쉬워 보이겠지만 막상 들어가서 보면 이게 또 어디 들어가는 게 쉽지는 않았다.

허나 의사에게는 예외일 수 있었다.

특히 지금 눈앞에 있는 이수혁, 이현종처럼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뻔뻔한 놈들에게는…… 허점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흐음…….”

상념에서 리처드를 깨운 것은 공교롭게도 리처드를 상념의 늪에 빠지게끔 만든 장본인인 이수혁이었다.

그는 환자를 보면서 아래턱을 쓰다듬고 있었다.

털이 나와 있거나 하진 않았다.

그냥 습관적인 행동인 듯했다.

“저기, 이수혁 교수님.”

아직 늦지 않았단 생각이 들었다.

아까 환자를 본 것도 사실 좀 이상한 일이지 않았나.

그나마 용인될 수 있었던 건, 그 환자는 내과 환자고 또 자기 환자였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현종은 이수혁과 달리 그 이름을 대면 면피가 될 수 있는 존재였다.

“아, 네. 의견 있으세요?”

해서 말리려고 했더니 영 엉뚱한 개소리가 튀어 나왔다.

의견?

이거 약간 토론하자는 느낌 아닌가?

아니, 느낌만 그런 게 아니라 너무 당당해서 그런지 토론에 나설 뻔했다.

‘휘……휘말리지 말자.’

자기도 모르게 두통 환자네요, 라고 할 뻔했다는 얘기였다.

다행한 것은 리처드가 역시나 정치적인 사람이라는 점이었다.

“아니, 아니! 교수님. 여기 신경과 중환자실입니다.”

“네, 알죠.”

“아는 사람이…… 게다가 이거 보니까 준중환자실이라…… 의식이…… 있을 수도…… 아.”

리처드는 환자의 눈동자를 보면서 망했다 싶었다.

시벌.

이제 어쩌지.

괜히 들어왔다가 나갑니다, 뭐 이런 핑계가 통할까?

한국에서도 잘 안 통할 텐데, 여기는 더더욱 안 통할 수밖에 없었다.

“으, 으으으!”

그때 환자가 발작을 하기 시작했다.

아니, 발작이라기보다는……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그래, 이건 비명이었다.

‘다행이네. 아니지. 아니, 이건 미친 생각이야.’

리처드는 뜨끔해서 손을 황급히 저었다.

환자가 고통스러워하는데 다행이라니?

이거 너무 개새끼지 않나.

“조절되지 않는 두통이라…… 아니, 반드시 아픈 것으로 인한 증상 같지는 않은데.”

“어…… 과장님?”

결론적으로 말하면 후회를 하고 있었으면 안 됐다.

뭐가 되었건 일단 억지로라도 수혁을 밖으로 잡아 뺐어야 했다.

그러지 못했던 대가를 치르고 있었다.

담당 간호사가 달려왔다, 이미.

그 정도가 아니라 신경과 레지던트도 왔다.

“아, 하하. 그. 아파하길래 들어왔지.”

“아…… 네.”

대충 얼버무렸지만, 그야말로 얼버무린 정도에 지나지 못했다.

신경과 레지던트의 눈에 불신의 빛이 싹트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흐음.”

수혁은 벌써 차트를 보고 있었다.

‘아니, 이 양반은! 가서 랍스타 먹으라고! 아, 사 달라는 건가? 그런 건가? 시위하는 건가?’

학회가 끝났으면 관광을 하라고, 관광을!

아니, 다른 사람들은 학회 중간에도 은근슬쩍 사라지고 하던데, 이 새끼들은 학회가 끝났는데도 일할 거 없나 하고 돌아다녀?

무슨 병이라도 있나?

아, 설마.

‘명의병인가…….’

리처드는 답 없는 병을 떠올렸다.

언젠가부터 의사들 사이에 번지기 시작한 병.

그 병에 걸리면 인생 꼬이기 십상이었다.

딴 걸 못 하고 의학에 인생을 박아 버리거든.

사돈 남 말 할 때는 아니었다.

당장 리처드도 그랬으니.

[히스토리가 좀 특이한데요?]

‘그러니까. 이미 수술을 받았잖아?’

물론 수혁은 그런 복잡한 생각일랑 하나도 떠올리지 않고 있었다.

그저 환자를 내려다보며 차트를 뒤적거릴 뿐이었다.

처음 여기 들어온 건 우연이었다.

준중환자실은 당연히 중환자실보다는 환자들이 경하긴 했다.

허나 이 환자는 좀 달랐다.

통증 조절 때문에 내려와 있다고 하고, 그게 잘 안 된다고도 들었다.

-누구…….

-의사요. 이 환자 왜 여기 있죠?

-아, 치료가 잘 안 돼서요.

-진단명이 두통인데. 이건 증상이잖아요?

-원인 질환이 뭔지 아직 잘 모른다고 들었습니다.

거기에 더해 좀 더 추궁을 했더니 간호사는 좀 더 정보를 풀었다.

원인 질환을 모르는, 그리고 조절되지 않는 두통이라.

이건…….

이건 참을 수가 없었다.

[환자가 처음 병원에 온 건 벌써 2주 전이군요. 그로부터 일주일 전에 머리를 부딪친 병력이 있고…….]

‘CT에서 경막하혈종(두개골 내 출혈)과 동반된 뇌압 상승 소견이 있었고…… 심지어 일부가 밖으로 삐져 나가고 있었어.’

[그래서 수술을 시행했고 증상은 좋아졌군요. 퇴원을 했고…….]

‘일주일 만에 다시 내원하게 됐구만. 증상은 오히려 더 심해진 상황이야. 흐으음…….’

[여기 신경과가 뭐 대강대강 할 만한 사람들은 아닐 겁니다. 게다가 신경외과에서 처치한 내용을 보면 꽤 합리적입니다.]

‘그러니까. 당장 이것만 보면 오진을 하거나 잘못된 처치를 하진 않은 것으로 보여.’

거기에 더해 살짝 하긴 했지만, 하여간 진료 기록을 훑어보고 나서도 오리무중이었다.

보통의 의사라면 이쯤에서 확 좌절하거나 할 텐데.

수혁은 달랐다.

바루다도 그랬다.

도리어 달아올랐다.

“보이고 있는 증상은 일단 두통이 메인…….”

그 사이, 레지던트는 환자를 재우다시피 해서 통증을 조절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다른 증상으로 이어지기도 하기에 어쩔 수가 없었다.

주말이 아니라면 또다시 교수랑 모여서 고민이라도 해 볼 텐데, 지금은 그저 넘기는 것이 최선이었다.

‘그 외에 초조함과 졸림…… 거기에 밤에는 비명을 질렀다. 이건 야경증(잠에서 깨어 비명을 지르는 것)보다는 뭔가 다른 증상 같은데. 섬망 아니었을까.’

수혁은 그렇게 잠이 들어 버린 환자를 내려다보며 생각을 이어 나갔다.

[수혁.]

‘응?’

[아까…… 환자가 깨어나서 두통을 호소할 때 말입니다.]

‘응.’

[호소하면 호소할수록 증상이 더 심해지는 양상을 보였습니다.]

‘무슨 소리지?’

당연하게도 바루다의 도움을 받고 있었다.

[재생하죠.]

바루다가 있어서 가능한 일이 눈앞에 벌어졌다.

아까는 눈으로만 보고 딱히 주의 깊게 분석할 생각을 하지 못했던 장면이 다시 두르르 돌아갔다.

다시 말해, 환자가 아파하는 모습을 다시 볼 수 있었다.

“으아, 으아아아! 으아아아아아아아!”

확실히 점진적으로 아파하는 느낌이 일었다.

이상한 광경일 수도 있지만, 또 당연한 광경일 수도 있었다.

원래 약 기운이 떨어지면서, 혹은 아픔에 의해 각성하면서 아픔을 더 또렷이 느낄 수도 있는 것이니.

‘어…….’

허나 거기에 바루다가 어떤 선을 보여 주자 느낌이 달라졌다.

환자가 내지르는 소리의 데시벨이 그 선의 변화와 연결되어 있었다.

선은 환자의 머리와 골반 사이를 잇고 있었다.

다시 말해, 머리가 서는지 눕는지를 보여 주고 있었다.

‘서면 더 아파하는구만?’

[네. 미세한 차이입니다. 하지만 표정과 데시벨 등으로 미루어볼 때, 살짝 호전을 보이기도 한다는 점에는 확실히 연관되어 있죠.]

‘그렇다면 이거…….’

바로 누우면 뇌압이 오히려 올라간다.

척수에 있는 뇌척수액이 올라가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이 환자에 대한 치료는 모두 뇌압을 낮추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처음 증상은 뇌압 상승에 의한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지금 치료는…….’

[일단 머리 위치부터 잘못됐습니다. 보세요. 머리를 30도나 세워 놨잖아요?]

‘그래, 뇌압을 낮추기 위한 조치지.’

[하지만 뇌압이 낮은 게 문제라면…… 잘못된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흠.’

[음.]

그게 잘못되어서 아프다는 생각이 들자 빠르게 토의가 진행되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뇌압이 왜 낮지?

머리를 다쳤어.

근데 뇌압이 낮아?

암만 머리를 열어 주었다곤 해도, 이게 문제가 될 만큼 낮아진다는 건 좀 이상한 일이었다.

해서 둘 다 신나게 떠들다가 입을 다물었다.

물론 밖에서 볼 때는 한참 전부터 입을 다문 채로 눈알만 굴리고 있었기 때문에 영 이상한 순간이었다.

“정말 아파해서 들어온 거야. 다른 뜻은 없어.”

“지인이거나 그런 건 아니라는 거죠?”

“어, 그렇지. 근데 곤란해 보이긴 하네.”

“네. 아…… 이게 너무 어려워서요. 실마리가 아예 잡히질 않습니다.”

다행한 것은 그 이상한 기운을 느끼기에 리처드는 너무 바쁘단 점이었다.

레지던트 또한 처음엔 좀 이상하다 싶긴 했지만, 일단 환자를 봐야 하다 보니 마음이 바빠졌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하…… 이게 대체 왜 이러지?’

감이 잡히질 않았다.

원래 신경과가 좀 이런 곳이긴 했다.

모든 과에서 ‘아, 이거 좀 이상한데…… 우리 과 문제는 아닌 거 같아’라는 생각이 들면 혹 신경과 문제 아닐까 하고 던져서 그랬다.

그런 경우 대개는 핑곗거리가 있었다.

허나 이 환자는 그것도 아니었다.

머리가 아프다잖아.

누가 봐도 신경과 문제로 보이는데 모르겠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하여간 지금 이 두통은 체위성 두통(앉거나 섰을 때 일어나는 두통)이야. 뇌압이 낮아져서 생기는 두통의 특징이지.’

[그렇죠. 원인을 밝히는 건 그다음으로 미뤄야겠습니다.]

‘그래. 그게 맞아. 결국, 제일 중요한 건…… 증상이야.’

[맞습니다.]

그렇게 마음이 바쁜 둘이 의미 없는 대화를 쌓아 나가는 동안, 수혁은 작은 결론에 도달했다.

이유?

그건 수혁도 아직 확실히 할 수 없었다.

어쩌면 전에 했던 수술이 좀 지나쳤던 것일 수도 있었다.

아니면 어딘가 놓친 부상 부위가 있을 수도 있고.

“신경과 선생님.”

그걸 모르는 상황에서 이런 말을 해도 되는 걸까?

뭐 그런 의문이 들 수도 있었다.

다른 사람이 아니라 수혁이 제일 그럴 만한 위인이었다.

자존심 때문에라도 그렇지 않겠나?

“아, 네. 근데 누구…….”

“그게 중요합니까, 아니면 환자를 치료하는 게 중요합니까?”

물론 수혁은 이현종이 가슴으로 낳은 아들이다 보니 이미 많이 뻔뻔해진 참이었다.

아니, 어떻게 보면 이현종보다도 더 뻔뻔할 때가 있었다.

그렇기에 이따위 질문도 아무렇지 않게 던질 수 있었다.

“어…….”

“의사 맞아요? 의사는 환자를 생각해야지.”

“어…… 그건, 그렇긴 한데…… 뭔가 뾰족한 수라도 있습니까?”

“있죠.”

그 결과, 신경과 의사는 훅 하고 말려 들어왔다.

리처드는 살짝 기가 찼다.

이 망나니 새끼들이 세계 최고의 병원에서 대체 뭔 짓거리를 하고 있는 건가, 뭐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끼어들 생각이 들진 않았다.

이미 주도권이 넘어갔으니.

“어떤……?”

“이 환자 머리 아픈 거, 뇌압이 떨어져서 그래요.”

“네? 아니, 이 환자는 혈종이 있던 환자입니다.”

“알아요. 근데 증상 자체는 뇌압이 떨어져서 생기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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