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5화 우리 과도 아냐 (3)
3분?
3분이 무슨 의미가 있나……?
‘나는 음란 마귀라도 들어왔나…….’
신경과 레지던트의 머릿속 3분은 딱히 좋지 않은 의미의 3분뿐이었다.
물론 이건 미국 사람이라 그랬다.
나름 유명한 기업이 있는 한국 사람들은 짜장이나 카레를 떠올리고 있었다.
수혁을 제외하면 딱 한 사람, 이현종만이 무언가 떠올리고 있었다.
‘방금 온 거…… 저거 형광 물질이지. 저걸 그냥 받아 왔을 리가 없잖아, 이것들아.’
딱히 놀라고 있지도 않았다.
처음부터 수혁과 같은 추론을 이어 나가서 그런 건 아니었다.
다만, 그는 대가인 만큼 수혁이 쌓아 놓은 토대를 보기만 해도 대강 이게 어떻게 되어 가는 일인지 알아볼 수 있었다.
‘뇌압이 낮아졌다고 하고…… 실제로 증상도 있는데 ct는 괜찮다. 이때 우리가 뭘 의심해야 되냐.’
이현종은 기대하는 얼굴로 나머지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그 눈을 안대훈이 알아보았다.
‘저 형광 물질…… 아…… 그렇군, 그래. 그거다.’
그래서 대강 이해할 수 있었다.
이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예상도 할 수 있었고.
과연 이수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사이, 수혁은 환자를 새우등처럼 구부정한 자세로 눕혔다.
어차피 약 때문에 정신이 없었기 때문에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물론 수혁은 다리가 불편하기 때문에 혼자 했다면야 불가능했겠지만, 안대훈이 있지 않나.
녀석은 수혁이 무슨 일을 하는 건지 이해를 못 해도 달려들어 도울 위인인데, 지금은 어렴풋이나마 알고 있었기 때문에 부리나케 도울 수 있었다.
“지금 뭐 하시는…….”
“3분 기다리라더니……? 설마 뇌압 올려서 터뜨리려고?”
부산스럽게 움직이는 둘을 보며, 신경과 레지던트와 이비인후과 레지던트가 중얼거렸다.
아니, 중얼거리는 정도가 아니라 숫제 항변하기 시작했다.
별 소용은 없었다.
“일단 둬.”
“어…… 네. 근데 이거 진짜 문제 생기는 건 아니겠죠?”
“뭔 문제가 생겨. 게다가 너희는 뇌압 문제라고 생각이 들었으면 인마, 뇌압을 재야지.”
“그건…… 그렇죠. 그렇죠?”
리처드가 이현종의 마수에 갇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방금 이현종의 말은 일리도 있었다.
신경과가 듣기에도 그랬다.
“음…… 뭐…… 그럴 수 있죠.”
전반적인 증상.
그러니까 뇌의 어디라고 딱 짚어 낼 수 없을 정도로 전방위적인 손상을 의심해 볼 수 있는 증상을 보이지 않았나.
그렇다면 뇌압의 변화를 보다 적극적으로 의심해 보는 것이 옳았다.
그냥 수술 후고, CT상 이상이 없으니 대증 치료나 할 것이 아니라…… 무언가 적극적으로 봐야 한다는 뜻이었다.
‘어제…… 아, 응급실 통해 입원하고 제대로 노티를 해야 했나.’
교수님은 사실 이 환자를 직접 본 적도 없었다.
그냥 전화로 들었을 뿐.
그러니까 사실상 재입원 후의 처치는 모두 그의 책임하에 있단 얘기였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그러한 사실이 막 불안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비록 조절되지 않는 통증은 있다지만 CT상 이상은 없어서 그랬다.
거기에 더해, 경련이나 사지의 힘 빠짐 등의 증상도 아직은 보이지 않았다.
해서 주말이 지난 다음 교수님이 오면 보다 적절히 보려고 했는데, 일이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되었다.
“자, 따끔.”
수혁은 그사이 이미 환자의 몸을 새우처럼 만들곤, 손톱으로 척추 사이의 틈에 자국을 낸 다음 바늘로 푹 찔렀다.
그러자 곧 바늘 끝에 노란 기운이 있는 맑은 물이 맺혔다.
뇌척수액이었다.
곧 제대로 꽂혔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제 압력을 재려면 실린더를 연결하면 될 텐데, 수혁은 그 대신 방금 올라온 약물을 집어 들었다.
“어, 어! 뭐 하시는!”
빛깔이 참 영롱해 보이는 약물이었다.
뭔지는 몰라도, 처음 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위험하단 생각만 드는 그런 약물이었다.
저런 걸 사람 몸속에 넣는다는 발상을 할 수 있다는 게…….
피에 넣어도 당연히 안 되겠지만 뇌척수액에는 더더욱 넣으면 안 될 것 같았다.
“FDA 인가받은 약입니다. 이거 처음 보는 거 아닐 텐데요?”
“뭔 인가를 받아!”
“비인가 약물이 병원에 있겠어요?”
“어…… 아니, 그래도. 이거 보고 있지만 말고, 좀.”
신경과 레지던트는 필사적으로 수혁을 막으려 했다.
수혁이 뻔뻔하게 나와서 좀 움츠러들긴 했지만 그래도 노력했다.
열통 터지는 건, 이비인후과 놈은 또 가만히 있다는 점이었다.
해서 어깨를 툭 하고 쳤더니 손사래까지 쳤다.
“잠깐만요. 저거…… 우리 쓰는 약이야.”
“네?”
쓴다고?
저런걸?
황당하단 얼굴로 보고 있으려니, 이비인후과 놈이 답했다.
“네, 뇌척수액이 샐 때…… 사실 이게 육안으로는 콧물인지 뭔지 구분이 잘 안 되잖아요. 특히 양이 적거나 하면…….”
“그럼…… 아, 맞네. 나도 들어 보긴 했다. 형광 염색을 한다고…… 그럼 저게?”
“네. 그 약이에요.”
“내과도 써요?”
“내과는…… 한 번도 못 봤는데. 저희랑 보통 협업은 신경외과가 하죠.”
“그건 그렇죠. 저도 못 봤으니…… 이상한…… 이상한 사람이네?”
듣고 보니 또 그럴싸하긴 했다.
뭐가 되었건 저걸 뇌척수액에 넣어도 괜찮을 거란 생각이 들었으니, 말리진 않았다.
주우욱.
그렇게 벌어낸 시간 동안 수혁은 형광 물질을 주입했다.
아까 말한 3분에서 불과 1분 30초가 지난 상황이었다.
그러니까 자세 잡고, 척수 천자하고, 주사하기까지 걸린 시간이 1분 30초였다는 건데, 놀랄 만한 짓을 해 놓고선 수혁의 표정은 그저 평온하기만 했다.
“1분 30초 남았네요. 그때 다시 보죠.”
“어…… 네.”
그러한 모습이 신앙심을 건드린다는 사실을, 수혁이나 바루다는 몰랐다.
진짜로 대단찮은 일이라 여겨서 그러고 있을 뿐이었다.
진심이란 얘기였는데 그래서 더 주변으로 퍼졌다.
‘과연…….’
안대훈은 눈을 감고 마음을 다잡았다.
시골 출신인 신경과 레지던트도 마찬가지였다.
갈팡질팡하는 마음을 다잡고 있었다.
‘뭐야…… 진짜 맞는 건가? 그럼…… 이건 진짜 신인데?’
이런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어쩔 수 없었다.
상식선에서 맞지 않는 일이었으니까.
세상에, 대체 슥 보다가 들어와서 진단이 가능한 의사가 어디 있단 말인가!
“시간 됐군요. 보실까요?”
“아, 네.”
“헷갈릴 거 같으면 빛 조정하세요.”
“아뇨…… 일단 보겠습니다.”
형광 물질이다 보니 어떤 빛을 쬐느냐에 따라 가시성이 달라지기 마련이었다.
해서 최적의 빛을 내는 방법이 있었는데, 그건 또 다른 설비가 필요했다.
설비라고 하면 좀 거창한 느낌이고 광원 소스만 들고 오면 되긴 하는데, 그건 포터블(휴대용)이긴 해도 덩치가 커서 시간이 걸렸다.
그게 귀찮기도 하고 해서 이비인후과 의사는 고개를 저었다.
‘아까…… 거기가……?’
게다가 점점 그럴싸해지는 상황에서 돌이켜 생각해 보니, 짚이는 구석이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아무리 봐도 콧물 같았지만, 그게 아니라면…….
이 환자는 당연히 아플 수밖에 없었다.
양이 적은 게 아니었거든.
보옹보옹 튀어나오는 게 보이진 않았지만, 그랬단 말이지.
“음…….”
해서 레지던트는 포터블 내시경을 코 안으로 들이밀었다.
보통 내시경의 진입 방향은 얼굴과 수직 방향이어야 하지만, 지금은 이비인후과 의사가 쥐고 있기도 하고 목적이 뻔한 상황이지 않나.
해서 머리 쪽으로 들어갔다.
“어…….”
빛이 새어 나오는 듯한 느낌이었다.
사실은 빛이 반사되는 것이겠지만, 붉은 점막만 있어야 할 콧속에서 청록색 빛이 보였다.
그것도 꽤 많이.
“아…… 씨…….”
양이 적었으면 놀라기만 했을 텐데.
양이 많으니까 화가 났다.
왜냐.
양이 많다는 건, 많이 흘러나왔다는 것이고, 많이 흘러나왔다는 건 구멍이 크다는 얘기기에 그랬다.
“아…… 아…… 아!”
이비인후과 레지던트는 콧속을 들여다보면서 성질을 냈다.
신경과 레지던트는 이 새끼가 미쳤나 하고 있었고, 나머지는 알 만하다는 표정이 되었다.
아니, 리처드는 예외였다.
그의 표정을 요약하자면, 딱 이랬다.
-어떻게?
리처드는 정말로 경악스럽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물론 우리의 이수혁은 그저 평소와 다름없는 표정이었다.
“새죠?”
그러곤 이렇게 물을 따름이었다.
그제야, 이비인후과 레지던트는 정신을 차리고 내시경을 뺐다.
“많이…… 많이 새는데요…….”
“보입니까, 포인트는?”
“아뇨. 수술방 들어가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중비갑개가 살짝 큰데, 그 사이로 흘러나오고 있어요. 아…… 이거…….”
“작은 수술은 아니겠군요.”
“네, 그럴 가능성이…… 아…… 아무래도 이거…… 이 환자 머리 부딪쳤다고 했죠?”
“네, 뇌출혈이 생길 만큼의 충격이었다고 들었습니다.”
수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신경과를 바라보았다.
신경과는 그야말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단 얼굴이 되어 있었다.
당연했다.
이게…… 된다고?
그가 딱히 믿음이 부족해서 그런 것도 아니었다.
리처드도 그러고 있으니까.
하지만 리처드와 신경과는 상황이 달랐다.
“저기요?”
“아, 네네.”
“이 환자 수술 필요하다지 않습니까. 노티해야 할 것 같은데요?”
리처드는 교수고 과장이지만 내과 의사지 않나.
다시 말하면, 지금 이 환자에 있어서는 방관자란 얘기였다.
그에 반해 신경과는 뭐 빠지게 달려야만 했다.
이 환자가 수술을 받아야 할 테니.
일단 프리 옵(Pre OP, 수술하기 전)이 문제였다.
마취를 걸어도 되는 상황인가?
판단이 어려웠다.
‘교수님한테는 또 뭐라고 하지? 처방받은 약으로는 조절이 안 되어서 입원해서 조절한다고 했는데…… 딱 그렇게만 알고 있을 거 아냐.’
아우.
저도 모르게 신음이 흘러나왔다.
“일단 수술은 가능할 겁니다. 오늘 아침에 찍은 엑스레이랑 해서 보니까, 마취는 문제없어요. 리처드 박사님, 그렇죠?”
“응? 아, 잠깐만.”
“이거 보세요. 이게 이러니까.”
“아…… 그렇네, 그래. 내 이름으로 컨펌하게.”
다행인 것은 수혁의 오지랖이 단순히 문제 제기에서 끝나질 않는다는 점이었다.
그 덕에 일단 큰 산 하나는 넘을 수 있게 되었다.
아니, 다른 산도 별 게 아니었다.
“네네, 교수님. 그…… 샙니다…… 뇌척수액이 줄줄 샙니다…….”
협진 수술에서 제일 어려운 점이 뭘까.
바로 그 수술하는 과를 불러다 앉혀서 환자를 보게 만드는 것이었다.
헌데 지금은 그럴 리가 없다고 하면서 씩씩대고 왔던 이비인후과 의사가 무릎 꿇고 울고 있는 상황이었다.
교수님한테도 알아서 노티하고.
“그럼 빨리 잡아!”
수화기 너머 전해지는 텐션이 장난이 아니었다.
화가 났다는 건데, 상관없었다.
아니, 오히려 좋았다.
화를 낸다는 건 어찌 되었건 주말임에도 불구하고 병원에 와서 수술을 할 생각이라는 얘기니까.
환자 앞이나 보호자 앞에 서면 언제 그랬냐는 듯 친절해질 터였다.
수술도 열심히 할 것이고.
“흐음…….”
그렇게 한 건 끝낸 수혁은 밖으로 나서고 있었다.
“저기? 저기요?”
하지만 그 눈이 아무리 봐도 뭔가를 더 찾는 눈이었고, 이 새끼가 여기 와서 찾을 만한 건 환자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자마자 리처드는 부리나케 달려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