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0화 Case 2 (3)
‘지금 증상 자체는…… 파킨슨과 연관된 치매야.’
[네. 그것도 중증이죠.]
‘파킨슨…… 흐음.’
전형적인 알츠하이머에서 6개월 만에 이 정도로 나빠지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라 봐도 무방했다.
급속 진행성 치매의 정의에 들어간다는 얘기였다.
허나 파킨슨은…….
이 병은 경과가 변화무쌍한 편이었다.
어떤 사람은 치료를 해도 확확 진행해 버리고, 또 어떤 사람은 그냥저냥 관리가 잘되기도 하고…….
더욱이 환자처럼 완전히 전형적이지 않은 파킨슨병의 경우엔 그러한 경향성이 더 심했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치료에 대한 반응이 아예 없을 수가 있나?’
[이상한 일이죠. 음. 물론 보호자가 너무 강력하게 말해서 제대로 된 치료를 하진 못한 상황입니다.]
‘그래, 그것도…… 뭐 이해는 가는데.’
[그런가요? 제가 보기엔 너무 비합리적인 행위입니다만.]
‘나도 잘은 모르겠는데…… 아니, 몰랐는데.’
수혁은 가만히 서서 ‘부모’를 떠올렸다.
예전엔 그를 버린 친부모가 떠올랐다.
지금보다 더 어리고, 앞날에 대한 희망보다는 절망이 드리워진 날에는 그냥 세상이 다 싫었다.
대체 어떤 부모가 자식을 버릴 수 있단 말인가.
그런 부모를 키운 부모, 그러니까 할아버지 할머니들도 그리 좋은 사람은 아닐 터였다.
그런 식으로 꼬리에 꼬리를 물다 보면, 결국, 세상이 미워질 때도 있었다.
‘원장님도 그랬지만…… 아빠가 아프면 나도 인정할 수 없을 것 같아.’
지금?
지금은 아예 다른 식으로 생각이 돌아갔다.
이현종은 수혁에게 있어 일종의 구원이었다.
제아무리 긍정적인 사람이라 해도 이따금 찾아오던 어둑한 마음을 완전히 거둬 버린, 그런 사람이었다.
‘의사인 나도 이런데 일반인은 어떻겠어.’
[흠…… 부정 단계를 보호자가 겪는다는 말인가요?]
수혁의 말에 바루다는 참으로 바루다다운 말을 했다.
학술적으로 풀어 냈다는 얘기인데, 다행히 수혁은 그런 바루다에 익숙했다.
‘그렇게 볼 수 있지.’
[그럼 이러다 화도 내겠네요?]
‘이미 냈을걸?’
수혁은 의뢰서를 전달하러 왔던 젊은 의사의 말을 떠올렸다.
-아유…… 근데 보호자가 좀 빡세요. 이게…… 통합진료센터 환자가 맞는지조차 모르겠습니다. 갑자기 외과 교수님이 와서 난리를 피워 대는 통에 보내 드리긴 하는데…….
수혁이 다른 의사 보고 젊은 의사 운운하기엔 나이가 좀 이르긴 했지만.
하여간, 같이 왔던 의사는 말만 안 했지, 보호자를 일종의 진상으로 치부하고 있었다.
하지만 수혁은 그렇게 생각지 않았다.
상황은 많이 다르지만, 어쩐지 젊은 날의 이현종이 겹쳐 보여서 그랬다.
일하느라 바빠서 정작 가장 중요한 사람에게 신경 쓰지 못했던 시간이 그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는 게 보이는 느낌이랄까.
‘아빠는 내가 진짜 성심성의껏 챙겨야지.’
[갑자기?]
‘하여간…… 영상도 제대로 못 찍고 온 거지?’
[네, 그렇죠. 그쪽에서도 보호자가 이렇게 나오는데 영상 검사를 강권하진 못했을 겁니다. 치매에서 영상 검사는 사실 보조적인 검사에 불과하니까요.]
‘그렇지. 하지만…….’
[다른 질환을 의심하고 있다면, 결정적인 단서를 줄 수도 있는 일이죠.]
수혁은 머릿속을 정리한 후, 보호자에게로 다가갔다.
환자는 이미 자리에 돌아간 뒤였다.
지금은 집에 간다는 소리를 하지 않고 있었는데, 뭔가 또 다른 기억이 뒤섞인 모양이었다.
하여간, 이때가 아니면 차분한 대화는 어려울 거라 수혁은 서둘렀다.
“보호자분.”
“아, 네.”
“영상 검사를 좀 해 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그건.”
“치매에 대한 확정 검사가 아니라, 다른 질환일 가능성을 보겠다는 의미입니다.”
“아.”
보호자는 수혁의 말 때문이 아니라, 수혁의 표정 때문에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이전의 수혁이었다면 지을 수 없었던 표정이었고, 사실 지금도 뭔가를 의식해서 짓고 있는 게 아니었다.
연기가 아니란 얘기였다.
다시 말하면 진심이 담겨 있었다.
자식의 부모 생각하는 마음을 드디어 수혁도 배우게 된 덕이었다.
“노파심에 말씀드리는 건데…… 사실 다른 질환일 가능성이 그렇게 크진 않습니다.”
“그…… 제가 검색해 보니까 급속 진행성 치매에서 다른 질환일 가능성은 30%까지 올라간다던데요…….”
“알츠하이머 치매의 경우에는 그렇습니다만, 환자분은 그 양상이 살짝 다릅니다. 다만 여전히 다른 질환일 가능성이 있으니 확인은 해 봐야겠죠.”
“아…….”
“저희 센터는 검사를 좀 빨리 잡는 편이다 보니 늦어도 내일 오전까지는 PET CT까지 모두 완료할 수 있을 겁니다.”
수혁은 말을 이으면서 환자의 얼굴을 살폈다.
눈치를 살핀 게 아니라, 정말로 그냥 시진을 펼쳤다.
그리고 중간중간 환자를 돌아보았다.
이상한 일이었다.
분명 심각한 질환을 앓고 있는 건 환자였는데, 그녀의 얼굴엔 그늘이라곤 하나도 없었다.
대신 그 그늘의 배도 넘는 것 같은 짙은 어둠이 보호자의 얼굴에 깔려 있었다.
‘이래서 치매가 무섭다는 거구나…….’
자기 자신을 잃어가는 질환은, 자신의 아픔에 아파할 기회조차 앗아가는 중이었다.
그걸 지켜봐야 하는 아들의 가슴은 미어져 가고 있었고.
그 때문에 잠도 못 자는 것 같았다.
신체적인 이상 징후가 이곳저곳에서 관찰되고 있었다.
“이곳은 잠시 저희에게 맡기고, 하루만 요 앞에 숙소에서 주무시고 오시죠.”
“네? 아니, 그. 엄마가…….”
“그 질환이 아닐 수도 있지만, 맞다면 만성 질환입니다. 장거리 달리기가 될 거에요. 벌써부터 지치시면 안 됩니다.”
“그…….”
“여기에 집도 없으신 거 아닙니까? 하루도 못 쉬셨을 텐데…… 하루만 주무시고 오세요.”
“그…… 알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수혁의 말에 보호자는 짙은 한숨과 함께, 고개를 숙였다.
그러고 나서도 한참을 환자 곁에서 비척거리다가 나갔다.
‘이수혁 교수…… 진료 보는 태도가 좀 바뀐 거 같은데……?’
그런 모습 하나하나가 김승규에게는 퍽 인상적이었다.
분명 진료 자체는 옛날에도 잘했다.
그랬는데, 오늘 같은 느낌은 없었다.
‘이건 마치…….’
대가?
그래, 대가의 진료였다.
단지 똑똑한 의사와 친절한 의사만 비교한다면 당연히 똑똑한 의사가 나을 터였다.
허나 똑똑하면서 친절한 데다 환자에 대한 공감이 가득한 의사라면 어떨까.
그런 의사를 우리는 ‘대가’라 불렀다.
더할 나위 없었으니.
‘진짜 더할 나위 없는 의사가 되어 가고 있구나…….’
김승규는 수혁을 보며 감탄하다가, 이내 이현종을 돌아보았다.
이현종의 얼굴 또한 볼 만한 것이었다.
뿌듯해 죽겠다는 얼굴.
그걸 보며 부럽다고 생각했다가, 돌연 화가 났다.
‘왜 외과 새끼들은 저러지 못할까.’
응?
왜 외과는 안 저러냐고.
외과 인기가 떨어져서 우수한 인재가 안 오나?
그것도 사실이긴 한데…… 기실 내과라고 해서 뭐 크게 다른 건 아니었다.
저기도 망한 건 똑같다, 이 말이지.
“어, 대훈아. 전화 받을 수 있어? 너 근데 왜 목소리가 이렇게 가깝지? 집에 간 거 아니야?”
두 거물이 수혁을 두고 이러쿵저러쿵 생각을 이어 나가고 있을 때쯤, 수혁은 대훈에게 전화를 걸었다.
당연히 집에 있고 또 자고 있을 거라 생각하면서였다.
왜냐?
미국에서 오늘 왔잖아.
아무리 좋은 좌석에 타고 왔다고 해도 열 시간을 훌쩍 넘는 시간 동안 어딘가 한정된 공간에 짱박혀 있어야 한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이라던가.
“아, 저 병원입니다.”
“잉…….”
“교수님이 병원으로 가시는데 제가 어찌 집에 갈 수 있겠습니까? 학회에서 발표 들었던 거 복습하고 있었죠.”
놀라운 수혁의 앞에 안대훈이 모습을 드러냈다.
어느새 수술복으로 갈아입고 있었다.
말이 수술복이지, 내과에서는 거의 뭐 근무복에 잘 때는 잠옷으로도 쓰고 있다 보니, 퍽 잘 어울렸다.
연륜 있는 외과 의사처럼도 보였다.
‘저런 놈이라도 있으면 얼마나 좋나.’
그런 안대훈을 보면서도 김승규는 부러웠고, 이현종은 뿌듯했다.
“그래, 안 힘들어?”
“힘들리가요? 일하다 온 것도 아니고 공부만 하다 온 건데요. 게다가 매일 호텔에서 자고, 일등석 타고 돌아오지 않았습니까.”
“그래, 뭐……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지.”
수혁은 허허 웃고는 안대훈을 가까이 불렀다.
그러곤 주변을 슬쩍 돌아보았다.
사람이 꽤 많았다.
어찌 된 게 센터 소속이 아닌 사람들이 더 많았다.
딱히 교수들뿐만 아니라, 레지던트들에게도 이 센터가 꽤 볼 만한 곳이라 그랬다.
간혹 배움에 대한 열의가 넘치는 애들이, 자기 과 환자가 의뢰된 경우엔 와서 따라다니는 경우도 있었다.
‘이거 보이니?’
‘아, 네.’
해서 수혁은 목소리를 죽였다.
안대훈 또한 냉큼 목소리를 죽였다.
눈짓으로 그의 심복들을 주변에 세우기까지 했다.
그들은 티 나지 않게, 그러나 확실하게 다른 레지던트들 그리고 간호사의 접근을 막았다.
김승규나 이현종 같은 깡패가 오면 다 허사겠으나, 하여간, 어지간한 것들은 막을 수 있을 터였다.
‘여기 가서…… 이 환자가 어느 병원을 다녔고, 어떤 약을 먹었는지 조사 좀 할까.’
‘아…… 같이요?’
‘어. 너 전에 한번 환자 집턴 적 있지?’
‘엄밀히 말하면 대동하고 들어간 거긴 하지만…… 빈집이라고 해도 방법이 없는 건 아니죠.’
‘좋아. 그럼 이따 한…… 20분 후에 로비에서 봐.’
‘네, 교수님.’
덕분에 수혁은 영 또라이 같은 주문을 할 수 있었다.
같이 환자의 집을 털자는 제안이었는데, 이건 불법의 소지가 있는 정도가 아니라 그냥 불법이었다.
그럼에도 대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자는 얘기였다.
“그래, 피곤할 텐데 가서 쉬어.”
“네, 교수님.”
둘은 그렇게 자연스레 헤어졌다가, 로비에서 만났다.
그러곤 차를 타고 환자의 집으로 향했다.
집이 그리 멀지는 않았다.
홀어머니긴 했지만 형편이 그리 어려운 건 아니었던지, 집은 역 근처 대단지 아파트에 자리하고 있었다.
“문을 열어 달라……고요?”
“네.”
“제가 뭘 믿고…….”
“환자분이 기억을 못 하시니 강제로 따 달라는 겁니다. 지금 환자가 먹던 약이 뭔지 모르면 큰일 나요.”
“기억을 못 한다니요?”
“전화해 보세요. 여기 등록 대장에 적혀 있을 거 아닙니까?”
“아니, 그래도…… 이게.”
“어허. 이분 모르십니까?”
가기는 갔지만, 수혁은 아무래도 좀 부끄럽기도 하고 좀 뭣하기도 해서 뒤에 있었다.
행동에 나선 것은 안대훈이었다.
그는 자랑스러운 얼굴로 수혁을 가리켰다.
그를 본 주민지원센터장은 아 하고 소리를 냈다.
“태화…… 교수님?”
“네, 그렇죠. 아시네.”
“아, 그럼 진짜로?”
“네.”
“아이, 그럼 이거 열어 드려야지.”
태화 바이오에서 얼마나 언론 플레이를 하고 있는지 대강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연예인도 아니고, 일개 대학 병원 교수 얼굴을 사람들이 알고 있을 지경이었다.
하여간, 일이 편하게 됐다.
‘이거 아니었으면 또 여기저기 연락 돌릴 뻔했는데. 역시 교주님의 흥복이십니다.’
‘그런 소리 하다 걸리면 다시 못 들어가게 되니까 조용히 해.’
‘네. 묵언하겠습니다.’
‘그러니까 그런 소리를 하지 말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