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1화 Case 2 (4)
띠디딕.
주민지원센터는 현관문 비밀번호를 몰라도 열 수 있는 장치를 지니고 있었다.
아직 지어진 지 그리 오래되지 않은 곳이다 보니, 따로 바꾼 집도 없다고 했다.
“요새는 경찰이 와도 저희가 같이 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왜요?”
“문 안 열어 주면 따기가 어려워서요.”
“아…….”
“그래서 이런 걸 들고 있는거죠.”
센터장은 너스레를 떨더니, 문을 열었다.
안쪽에서부터 고여 있던 공기 냄새가 훅 하고 풍겨 왔다.
당연하게도 좋은 냄새는 아니었다.
“읍.”
센터장은 부리나케 뒤로 돌아 나왔다.
“벼, 병원에 계시는 거 맞죠?”
고독사니 뭐니 하는 것들을 떠올리고 있었다.
요새 워낙에 그런 얘기가 많지 않나.
혹 들어갔다가 시신이라도 보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이 온몸을 감쌌다.
뒤에 있던 시큐리티 직원들도 내색은 안 했지만, 조금씩 몸을 움찔거리고 있었다.
“네, 계십니다. 근데 청소를 안 한지는 좀 되신 거 같네요.”
“그러게요.”
그 와중에 오직 수혁과 대훈만은 안으로 들어섰다.
신까지 벗고선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이내 부엌에서 냄새의 진원지를 찾아냈다.
“요리해 두시고 까먹으셨나 보네. 이건 나중에 처리하도록 하고…….”
치매 환자를 직접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하지만 치매라는 질환에 대해 배운 것은 있지 않은가.
더군다나 수혁은 어떤 질환이든지 어지간히 숙지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네, 교수님.”
물론 그러한 것을 다 떠나서, 둘은 내과 의사였다.
이보다 더한 냄새도, 더 끔찍한 꼴도 병원에서 이미 지겹도록 봤다는 얘기였다.
“저기, 두 분. 도와드릴…… 필요는 없겠습니까?”
“아. 네. 약을 찾기는 해야 하는데…… 혹시 좀 도와주실 수 있을까요?”
“아…… 그, 진짜 뭐 이상한 건 없는 거죠?”
“네, 없습니다.”
“네네. 그럼 들어가겠습니다. 이거 뭔가 두근두근하는군요.”
지원센터장은 아무래도 동심을 간직한 사람인 듯했다.
그는 두 손을 슥슥 비비며 안으로 들어와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뒤따라왔던 시큐리티 직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애초에 지원센터와 시큐리티 인력이 한 몸이라고 해도 좋아서 가능한 일이었다.
“음…… 교수님. 여기.”
“아, 좋아.”
대훈이 누가 봐도 약통인 것을 발견했다.
안에 든 것은 작은 알약이었다.
“교수님 말대로 꽤 있는데요?”
대훈만 찾은 건 아니었다.
환자의 끊어진 기억만큼이나 다양한 곳에서 약통과 약이 발견되었다.
어떤 건 약통만 있고 어떤 건 약만 있고 그랬다.
아마 기억이 사라지면서 원래 다니던 병원에 가지 못했던 듯했다.
서글픈 일이었다.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었던 일들을 하나둘 못하게 된다는 것은.
심지어 그걸 인지조차 못 하게 된다는 것은, 비극이었다.
“응, 그럴 수밖에 없지. 환자분 나이를 생각해 봐. 아무런 병도 없는 사람을 찾는 게 더 어려워.”
검진을 아예 안 받아서 모르고 있는 사람은 있을지언정, 지병 하나 없는 60대가 얼마나 있겠나.
수혁이 대학병원 의사다 보니 보는 사람이 죄다 환자라 그런 생각이 드는 것도 있기야 하겠지만.
이현종도 신현태도 먹는 약 하나둘쯤은 있었다.
의사가 몸 관리를 못 해서 그렇게 되었다고 보는 것보단, 그냥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그렇게 된 것이라고 보면 되었다.
다행인 것은 이제 약을 이용하면 그 질환의 결과로 나타나는 최악의 질환을 상당히 높은 확률로 예방할 수 있단 점이었다.
“아, 그렇군요.”
“흐음…… 이 약은…….”
“뭔지 아시겠습니까?”
“뭐, 알긴 알겠는데 사실 약이 많아서……. 이건 일단 병원부터 가서 검사를 내려야 할 것 같아.”
“네, 교수님. 모시겠습니다.”
“운전은 내가 하고 오지 않았니?”
“차까지 모시겠습니다.”
“그래.”
두 사제는 그렇게 대화를 이어 나가며 아파트를 빠져나왔다.
“이것 참, 영광이었습니다. 교수님!”
“아, 네. 협조 감사합니다. 센터장님.”
“뭘요. 진료 잘 받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지원센터 사람들을 뒤로하고서였다.
‘흐음…… 이거…… 조울증 약이었나?’
[네. 아마도 조증 삽화에 쓰고 있었을 겁니다.]
‘하긴, 리튬을 다른 이유로 썼을 것 같진 않아.’
[네. 그렇죠.]
리튬.
꽤 대표적인 약이지 않나.
그러면서도 내과 입장에서는 특이한 약이기도 했다.
내과에서는 잘 안 쓰는 약이기에 그랬다.
[그 외에 고혈압과 당뇨도 있었군요.]
‘그런 것치고는 당 조절은 꽤 잘되었던 것 같아. 당화혈색소가 5.9였지?’
[네. 진단 전 당뇨거나 뭐 그럴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조절 중이었군요.]
‘흐음…… 하여간. 가서 약 성분 다 맡겨 보자고. 약을 꽤 많이 먹고 있었어.’
[네.]
수혁은 부우웅 차를 몰고 병원으로 향했다.
이미 날은 저물어 가고 있었다.
미국에서 돌아온 날부터 한시도 쉬지 않고 이러고 있다니.
가만히 앉아서 생각해 보면 기가 차서 헛웃음이 나와야 할 상황이었다.
허나 둘 다 이미 학회는 잊은 듯이 행동하고 있었다.
“흐음…….”
수혁만이 아니라 대훈도 환자가 먹던 약을 보며 고민에 빠져 있단 얘기였다.
녀석은 비닐 봉지에 담긴 약통을 보며 휴대폰을 열심히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노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저게 제일 효과적일 수도 있었다.
배경 지식이 부족한 상황에서는 검색이 원래 갑 아니던가.
전문 지식에 대해서는 검색 엔진이 오히려 방해가 될 수도 있겠지만, 그에 대해 충분히 훈련받은 사람이라면 괜찮았다.
“교수님.”
“응?”
“리튬…… 이게 아무래도 좀 이상합니다.”
“어…… 왜?”
“관련 케이스가 있지는 않은데요. 리튬 중독 사례가 있긴 합니다.”
“아…… 치매로 잡힌 건 아닌데, 다른 카테고리에 그런 사례가 있단 얘기지?”
“네네. 제가 말씀을 똑바로 드리질 않았네요.”
“일단 주차하고, 올라가서 얘기하자. 운전하면서 옆에 볼 정도로 운전을 잘하진 못해.”
“네.”
대훈은 운전하면서 옆을 보는 건 누구라도 안 된다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어차피 직접 운전도 거의 안 하는 양반 아닌가.
게다가 이제 센터에 들어가게 되면, 자신이 전담으로 맡아서 기사 노릇을 할 작정이었다.
“히히.”
“왜 갑자기 웃어?”
“아니, 아닙니다.”
붙어 있을 생각을 하니까 기분이 좋아져서 저도 모르게 웃음이 흘러나왔다.
너무 이상한 장면이었지만, 안대훈이 이상하던 게 어디 하루 이틀 일이었던가.
[또 뭐 실없는 생각 했겠죠.]
‘응. 물어보면 높은 확률로 기분이 나빠질 거야.’
[그렇습니다. 전 상관없지만, 연산 능력이 떨어지니까 가만히 있죠.]
‘좋아.’
해서, 수혁은 무시한 채로 차를 세우곤 위로 향했다.
나름 부센터장이다 보니 엘리베이터 바로 앞에 세울 수 있었다.
권력의 맛이란 은근히 달콤한 법이었다.
하여간, 그렇게 병동에 도달하자마자 수혁은 환자의 약을 모두 약제실로 내려보냈다.
원래는 성분을 분석해서 어떤 약을 어떻게 먹고 있었는지 리포트가 올라오면, 그에 따라 필요한 약을 주기 위한 절차였지만.
지금은 원인 약제를 확인하기 위함이었기 때문에 따로 이런 부탁을 했다.
“일단 약 종류만 나오면 바로 알려주세요. 용법이나 이런 건 좀 늦어도 됩니다.”
“아, 네. 부센터장님.”
그렇게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수혁은 기분이 좋았다.
‘근데 진짜 집에 가니까 다른 약이 있네. 왜 환자는 약을 안 먹는다고 했을까……?’
[알 수 없습니다. 인지 기능 퇴행을 보이는 환자를 이해하는 건…… 어려운 일입니다.]
‘하긴, 그건 그렇지.’
사실 사람이 다른 사람을 온전히 이해하는 건 어려운 일 아니겠나.
다만 합리성에 기대어 추론을 이어 나갈 뿐이었다.
그 합리성이 날아간 지금은 정말이지 불가능하다고 보면 되었다.
그리고 그 알 수 없는 것에 심력을 쏟는 건 낭비였다.
바루다를 탑재한 수혁은 낭비를 최소화하는 데 도가 터 버렸기 때문에, 즉시 약에 대한 고민 그 자체로 돌아올 수 있었다.
“리튬 얘기 더 해 봐.”
“아, 네.”
대훈이야 애초에 그런 류의 고민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냥 수혁의 요청을 무조건 이루어야 한다는 소망밖에 없었다.
덕분에 수혁이 묻자마자 즉답을 할 수 있었다.
“이게 아까 찾은 자료입니다. 리튬 중독 사례인데요.”
“오호…… 리튬 중독이라는 개념도 있구나. 계속해 봐.”
“네네. 탈수 증상이 있을 때 증상이 더 심해질 수 있는데, 주요 증상이 인지 장애입니다.”
“호. 그래? 치료 목적의 용량에서도 가능한 건가?”
“네. 리튬이…… 만성 조울증에서 굉장히 좋은 약이긴 하지만, 사실 부작용도 있는 약이지 않습니까?”
“그렇긴 하지.”
모든 약은 그럴 수밖에 없지 않겠나.
치료 효과가 들지 않았을 때의 손해를 생각한다면, 일단 먹어야만 했다.
게다가 조울증은 그중에서도 심각한 병이기에 잘 듣는 리튬을 쓴다는 얘기였다.
“그래서 치료 용량에서도 드물게 이런 증상이 생길 수 있다고 합니다. 사례를 봐도…… 과용했다는 얘기는 없어요.”
“그렇군. 그럼 이 환자에서도 충분히 가능하긴 한데…….”
“네. 게다가 이 환자분, 설사가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게 원인이 되나? 그럴 것 같진 않은데.”
“네네. 아마 설사는…… 다른 원인이었을 것 같은데……. 하여간 설사는 탈수를 일으키니, 중증 인지 장애의 원인이 될 수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
“아, 그렇지. 환자가 원래도 몸집이 크지 않은데 탈수까지 발생했던 거라면, 이미 리튬 중독에 의해 인지 장애가 발생했을 경우…… 음. 그래.”
둘은 신나게 대화를 이어 나갔다.
수혁도 꽤 신이 났지만, 안대훈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녀석은 진짜로 숨넘어가기 직전이었다.
얼마나 신나겠나.
태어나서 처음으로 수혁에게 도움이 되고 있는데.
“선생님. CT랑 MRI는 아까 나가셨을 때 찍었고…… 방금 PET CT 찍고 올라오셨습니다.”
“오, 그래요?”
그때, 간호사가 끼어들었다.
원래 센터가 빠르긴 빠르다지만 이 정도라니.
수혁은 기대보다도 더 빨리 찍은 영상을 확인하기 위해 검사 결과를 띄웠고, 그 바람에 대화가 끊겨서 대훈은 좀 새침해졌다.
‘왜…… 날 째려보지.’
간호사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대훈은 그런 간호사를 좀 더 노려보며 내가 화났다는 걸 어필하고 싶었지만, 그럴 시간이 없었다.
“야, 영상 보자.”
“아, 네.”
수혁의 말 한마디에 또 사르르 녹아서 그랬다.
“CT는 딱히 뭐가 없고…… MRI에서도 미세 혈관 병증 말고는 뭐가 없네.”
“네. 특이 사항은 없어 보입니다.”
“알츠하이머였다면 이 정도로 진행되었을 때…… 이미 뇌가 축소되었을 텐데 말이지. 그치?”
“네. 희망적인데…… 중요한 건 역시 PET CT겠죠?”
“그렇지.”
둘은 또 신이 나서 막 떠들어 대기 시작했다.
이미 해가 저문 지 오래였고, 저녁때도 지났는데, 내일로 넘어가려는 시점임에도 그랬다.
‘확실히…… 저 둘이 통합진료센터의 미래라는 게 참…… 맞기는 한데.’
간호사들, 그리고 레지던트들은 그런 둘을 보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저어 댔다.
물론 둘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