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904화 (904/1,303)

904화 이제 보니까 우리……? (2)

“네……? 기자 연락처요?”

“네. 알려 주세요. 알잖아.”

이현종은 그 길로 홍보팀을 향해 내달렸다.

차를 몰고서 그냥 막 달렸다.

그런 이현종을 마주한 홍보팀 직원은, 당연하게도 당황한 얼굴이었다.

‘이거…… 좋은 소식 아닌가……?’

기껏해야 다른 병원에서 한마디 나오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었지, 내부 총질은 전혀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솔직히 전문의 시험 1등이 뭐 대수라고 이렇게 홍보를 한단 말인가.

물론 합격률이 팍 떨어지는, 특히 1교시가 진짜 너무 어려워서 다 날아간 시험에서 만점으로 1등이라는 건 대단한 일이긴 했지만.

하지만 홍보가 너무 속 보이는 짓이다 보니 걱정은 되었다.

‘근데…… 이 양반은 왜 이렇게 화가 났어.’

이현종이 화내는 게 사실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었다.

이 양반이 화내는 거야 뭐, 항상 있는 일 아닌가?

이유를 막론하고 그랬다.

하지만 오늘은 좀 이상했다.

“그게…… 왜…… 그러시는지?”

이상한 사람에게 기자 번호를 알려 줘도 될까?

아무리 요즘엔 예전만 못하다지만, 그래도 되도록 원한은 사고 싶지 않은 존재들이 바로 기자였다.

작정하고 파다가 보면 이상한 거 하나쯤 발견하지 못하겠는가?

‘아니, 한둘이 아닐 수도 있어.’

이현종이라면 더 있을 수도 있었다.

“무슨 일이긴! 기사가 후져서 그렇지!”

“아니…… 이거 이런 말씀을 드리긴 좀 그렇지만…… 이 내용은 저희 측에서 거의 다 작성해서 드린 겁니다. 거기서 한 건 뭐…… 그냥 문장 몇 개 더한 게 다예요.”

“기자가 직접 쓴 게 아니라고?”

“네.”

“아니, 그럼 지 이름을 왜 올렸어?”

“요새는 다들 그렇게 합니다. 특히 홍보기사는…… 그래도 여기는 제대로 하는 데라 나름 문장이라도 더한 거지, 아니면 복붙입니다. 이 기자분 좋은 분이에요…… 나름 특집 기사도 내주고……. 특집은 오셔서 직접 취재도 하고, 인터뷰도 하시고.”

“이건 대답이 아니라 변호잖아.”

눈앞의 직원도 홍보팀 소속이다 보니 말은 청산유수였다.

이렇게 저렇게 사람 설득하는 것도 잘하고.

하지만 그것도 사람 봐 가면서 해야 했다.

이현종은, 특히 뭔가 마음을 정한 상태의 이현종은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게 좋았다.

“아…… 그.”

“내가 뭐 미친놈인 줄 알고 이러나! 어? 전화해서 이상한 소리할까 봐 그래?”

“아니…… 그. 뭐라고 하실 건데요?”

“왜 나만 쏙 빼놨냐고.”

“네?”

이보다 이상한 얘기를 할 수 있을까?

‘아니, 아니지. 저렇게 얘기하면…… 오히려 더 낫지.’

이현종이라고 해도 안 믿지 않을까?

‘아니, 아냐. 그 양반 경력직이니까…… 이현종도 아마 잘 알 거야.’

이현종이라는 게 또 문제였다.

“눈알 굴리지 말고. 어? 또 이상하게 오해하고 있네.”

“네? 아니, 그게.”

“여기 지금 봐 봐. 안대훈 선생은 곧 통합진료센터에 들어갈 예정이다. 그의 스승이자 부센터장인 이수혁 교수 또한 전문의 시험에서 만점으로 수석을 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렇듯 안 닮은 듯 똑 닮은 사제지간은…….”

“네네. 이거 맞지 않습니까? 이수혁 교수님 때도 저희가 엄청 홍보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요.”

그때는 진짜 항의 전화를 많이 받았더랬다.

무슨 논문을 쓴 것도 아니고, 어떤 업적을 이룩한 것도 아니고, 단지 우리나라에서 매년 치르는 시험에서 일등 한 게 뭔 대수라고 그렇게 홍보를 하냐며.

물론 효과는 대단했다.

이렇다 저렇다 말은 많아도, 대한민국 사람들은 1등을 좋아하지 않던가.

백날 학벌 타파해야 한다고 하면 뭐하나, 줄 세워서 1등 하는 사람을 그렇게 사랑하는데.

이런저런 이유가 있기야 할 테지만 아마 초반에 통합진료센터로 사람들이 몰린 데는 그것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을 터였다.

“그런 얘기가 아니라! 왜 나는 쏙 빼.”

“네?”

“나도 만점에 수석이라고!”

“어……? 교수님도요?”

“왜 그딴 얼굴이지? 나 월드 스타야, 월드 스타.”

“아니, 그건 알죠. 당연히 알죠. 근데…….”

이현종은 월드 스타라는 말을 얼굴빛 하나 바뀌지 않은 채 자기 입으로 할 수 있는 위인이었다.

그래도 될 만큼의 업적을 세운 사람이기도 했다.

아마 당분간 대한민국에서 이현종만 한 위인이 나오긴 어려울 터였다.

수혁이 있음에도 그럴 정도니, 말 다 한 셈이었다.

당연하게도 홍보팀에서는 이현종에 대해 많이도 떠들어 댔었다.

“전문의 시험도 그러셨어요? 근데 왜 가만히…….”

“아니, 그게 솔직히 떠들 만한 얘기는 아니잖아. 당연한 거 아니야? 시험 보면 만점이지. 그럼 다른 점수가 있나.”

“아, 네.”

나중엔 자제했더랬다.

왜 그랬더라 하고 있었는데, 이제 기억났다.

본의 아니게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사나이, 그것이 이현종이었다.

“그래서 가만히 있었더니 이게 뭐야. 나만 빼 놓고. 나도 수혁이랑 공통점이 있다구.”

“아…… 네, 그런…… 그런 얘기셨구나. 흠.”

“눈 감으면서 끄덕이지 말고. 수혁이 흉내 내는 거야?”

“아니, 이거 얘기 만들어 볼 수 있을 거 같은데…… 이수혁 교수님이랑 부자지간이시잖아요?”

“그렇지. 흠.”

부자지간이라는 말에 이현종은 저도 모르게 후후 하고 웃었다.

뜻하지 않게 시간을 번 홍보팀 직원은 머리를 굴렸다.

‘부자지간이 만점에 수석…… 그 담에 사제지간이 또 만점에 수석. 흠…… 한 명뿐이라면 별 의미가 없을 수도 있는데 이게 학풍으로 보이게 되면…… 그럴싸한데?’

홍보란, 달리 말해 마케팅 아니던가.

아무것도 아닌 것도 팔 수 있어야 한다 이 얘기였는데, 이건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니었다.

의사들이 제아무리 그거 의미 없네 어쩌네 한다고 해도, 같은 센터에 세 명이 만점에 수석이라면 뭐…… 국내에서는 최고라고 할 수 있지 않나.

그래, 그럴 수밖에 없었다.

억울하면 니들도 응? 수석 하든지?

“교수님. 그럼 아예 셋이서…… 인터뷰 한번 해 보실래요? 저희가 아는 사진 작가님도 불러 드릴게요.”

“오. 셋이? 나는 수혁이랑 둘이 해도 좋은데.”

“아니, 지금 홍보는 안대훈 선생님을 이용해서 하는 거라서요. 갑자기 두 분이 하면 좀 이상하잖아요.”

“아. 그래, 그러지 뭐. 근데 언제?”

“세 분만 되시면 오늘도 될 거예요. 괜히 이런 톤으로 기사 나갈 수 있는 게 아닌 것처럼, 저희가 평소에 기름칠 좀 열심히 해 두고 있습니다.”

“오늘? 오늘…… 음.”

이현종은 센터를 떠올렸다.

미국에 갔다 와서 그런가, 아직 환자가 별로 오지도 않았다.

원래 있던 환자야 가기 전에 최대한 정리했고, 중간중간 왔던 환자들은 원격으로 처리했다.

그러니까, 지금 있는 환자 중에서 제일 심각한 케이스는 김승규가 데리고 온 환자였다.

‘그건 수혁이가 해결했고.’

1시간 정도 하지 않겠나?

그 정도야 뭐, 시간 있을 거 같았다.

“부를까요?”

“네, 그러시죠. 둘이야 뭐. 아, 근데 안대훈…… 엄밀히 말하면 아직 3년 차라서 센터에 안 나와도 되는데.”

“아…… 매일 출근할 거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요? 그걸 어찌 알아요?”

“기사에…… 기사에 있습니다.”

“아.”

홍보팀은 너 기사 보고 온 거 아니냐는 얼굴이었다.

대놓고 묻지는 못했지만 하여간 그런 불만이 있었다.

물론 이현종은 딱히 별생각이 없었다.

무언가 될 것처럼 되다 보니, 자연스레 말투도 존대로 바뀌었다.

머릿속으론 그거까지 내가 왜 봐야 하냐, 뭐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컨트롤(Ctrl) + 에프(F) 쳐서 수혁이만 보고 온 거라, 사실 기자 이름도 들어오고 나서 알았다.

“그럼 해 줘요. 간만에 인터뷰 좀 하지, 뭐.”

“알겠습니다. 톤은 그럼 센터에 그…… 만점에 수석 출신이 셋이나 있다. 이런 식으로 잡아도 될까요?”

“그 뭐. 알아서 해 줘요. 원래 별거 아닌 일도 대단하게 포장 잘하잖아요. 이건…… 이건 듣다 보니까 꽤 대단해 보이긴 하는데요?”

“네네. 대단하죠. 명문가 느낌 딱 납니다.”

이현종은 홍보팀을 나와선 병동, 그러니까 센터로 향했다.

한바탕하긴 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센터는 꽤 복작대고 있었다.

“저, 정말입니까!”

통합진료센터가 늘 그렇듯 나쁜 일로 소란이 일고 있지는 않았다.

어제 수혁의 제안으로 인해 병원 근처 모텔인지 어딘지 모를 곳에서 꿀잠 자고 온 보호자가 거의 뭐 무릎을 꿇고 있었다.

‘뭐…… 그럴 만한 일이지. 나라도…….’

죽어 가던 자기 아빠를 누가 살려 줬으면, 이현종은 저것보다 더 잘할 자신도 있었다.

이미 무릎 꿇는 건 물론이거니와 더한 것도 했을 터였다.

“네. 아닐 가능성이 아주 큽니다. 물론 좀 더 지켜보긴 해야 할 텐데…….”

“가, 감사합니다. 정말…… 우리 엄마…… 정말 고생 많이 하셨거든요. 저 하나만 바라보고 사셨는데…… 제가 공부 그거 알량하게 좀 한답시고 미국 가는 바람에 불효나 하고.”

“기회가 다시 생겼으니, 이제부터 가까이 지내시면 되죠.”

“네네. 정말…… 정말 감사드립니다.”

기회라는 말에, 이현종은 저도 모르게 어깨를 움찔거렸다.

한 번만.

이번 한 번만 살려 주시면 최선을 다하겠다 했던 기도가 떠올라서 그랬다.

그 기도는 그냥 기도로 남았고, 지금은 해묵은 앙금이 되어 가슴속에 새겨져 있었다.

이미 시간은 꽤 흘렀다.

그가 아직 한창 젊었을 적 일이니, 무심한 사람들이라면 이제 다 잊지 않았냐는 말도 함부로 할 수 있을 만한 세월이 흘렀다.

‘그래, 잘됐네.’

하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익숙해질지언정, 아주 괜찮을 수는 없었다.

부모는 각기 하나뿐이니까.

“그동안에는 어머님이 좀 불안정할 수도 있어요. 정신건강의학과 선생님도 오셔서 보시긴 할 텐데, 그래도 곁에서 익숙한 사람이 지키고 있는 게 워낙 정신 건강에 좋으니까요. 며칠만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부탁이라뇨. 당연히 해야 할 일이죠!”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려니, 보호자가 허리 굽혀 인사를 하곤 병실로 들어갔다.

요 며칠은 정말 고생하겠지만 얼굴은 밝기만 했다.

치매라고 생각했다가 그게 아닐 수도 있겠단 말을 들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하여간, 이현종은 수혁 외에도 마치 센터 붙박이장이라도 된 듯한 기세로 서 있던 안대훈에게로 다가갔다.

“기자 온다니까. 우리 인터뷰하자.”

“네? 또요?”

“또?”

“아, 아니, 기사 떴길래. 따로 인터뷰 한 적은 없습니다.”

대훈은 그의 눈에 깃든 광기를 단번에 읽어 낼 수 있었다.

‘질투하시는구나. 아니…… 친부도 아닌데 부자지간으로 묶이셨으면서 욕심도 많으시지.’

그 뒷단의 일까지 싹 읽어 낼 수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미쳐 버린 상태의 이현종은 무서우니까 닥치고 있었다.

아니, 그 정도가 아니라 재빨리 해명까지 해 두었다.

“그래. 그러니까 준비하자고. 환자 처리할 거 있으면 빨리하고. 알고 보니까 우리 셋 다 응? 전문의 시험 만점에 수석이더라고?”

“근데 그건 당연한 거 아니에요? 시험을 봤으면 일단 만점은 해야죠…… 전문의 시험이 무슨 경시대회도 아니고.”

“나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남들은 그게 아닌가 보더라. 옳지, 저기 현태 오네. 야, 넌 전문의 시험 만점이었나?”

“아, 몰라. 그 점수를 어떻게 기억해.”

“만점이 아니었구나…….”

“왜 갑자기 시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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