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5화 이제 보니까 우리……? (3)
신현태의 중얼거림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기자가 와서 그랬다.
명색이 원장인데, 기자 앞에서 체통을 지켜야 하지 않겠나.
물론 이현종이었다면야 별 신경 안 쓰고 들이박았을 테지만.
뭐 어쩌겠나.
이럴 땐 정상인이 질 수밖에 없는 법이었다.
“이거 참…… 제가 병역 명문가 기사는 여러 번 봤는데…….”
하여간 기자는 수혁, 이현종, 그리고 안대훈 앞에서 너스레를 떨었다.
안대훈은 그의 공약대로 하루도 쉬지 않고 나올 작정을 하고 있었기에 따로 연락을 취할 필요도 없었다.
아니, 심지어 머리에 광까지 내고 온 참이었다.
‘이렇게 보면…… 이수혁 교수님이 제일 어려 보이는데, 아니란 말이지?’
나이 차고 나발이고, 안대훈이 이수혁을 거의 신처럼 모시고 있다는 후문이었다.
취재 전까지는 그렇게 들었고, 취재하면서는 그냥 느꼈다.
이건 찐이다.
요즘 들어 이렇게까지 윗사람을 모시는 사람은 못 봤다.
아니, 옛날에도 이렇게까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존중은 몇 번 보지 못했더랬다.
“국시 명문 센터를 취재하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그래서 말인데…… 저희가 사실 유튜브 채널도 하고 있거든요. 기사만 내기에는 좀 아까워서…… 이런 취지로 영상 하나만 찍으려고 하는데 괜찮을까요?”
기자는 그런 생각을 뒤로하고 서류를 건넸다.
맨 위에 적힌 제목은 다음과 같았다.
-태화 의대 수석 졸업, 내과 전문의 시험 만점 수석자들이 밝히는 공부 잘하는 법!
확실히 어그로는 끌릴 것 같았다.
적어도 이현종, 수혁이 생각하기엔 그랬다.
이런 제목이면 수험생이나 수험생 지닌 부모, 또 수험생이 될 사람들, 또는 의사들은 정말 공부 잘했는지 궁금한 이들 등등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할 것 같았다.
‘어…… 이 양반……?’
그에 반해 안대훈의 안색은 그리 좋지 못했다.
그는 애써 표정을 감추며 이현종과 수혁을 바라보았다.
천재들이었다.
그것도 규격 외의.
그냥 수재라거나 공부 잘한다 정도가 아니진 않나?
‘하긴…… 아직 우리 병원이나 학교 말고는 이 둘에 대해서 명확히 평가 가능한 사람이 없지.’
그나마 이현종은, 아는 사람은 누구나 아는 슈퍼스타이긴 했다.
하지만 일반인들 사이에서는 그렇지도 않았다.
그냥 병원 교수 정도가 다 아닐까?
어쩌면 이수혁이 더 유명할 수도 있었다.
태화 바이오 그룹의 바이럴 마케팅 덕분인데, 그것도 반발심을 최대한 피하기 위해서 가볍게 얘기하고 넘어갔기에 진짜 미친 수준의 천재란 느낌은 주지 않았다.
‘이 두 사람이…… 흠. 일반인 범주에서 얘기해 주려나.’
안대훈은 그런 천재 틈바구니에서 살아남은 사람 아닌가.
다른 사람들의 시선으로 볼 때는 안대훈도 충분히 천재였지만, 스스로 평가하기엔 범재여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 그가 보기에 이 둘은 좀 많이 벗어나 있었다.
그 경계가 무엇이 되었건 간에 정상은 아니었다.
비록 안대훈은 그걸 신적인 무언가로 판단하고 있었지만, 믿음이 부족한 독사의 자식들에게는 달리 보일 수도 있다는 사실 또한 잘 알고 있었다.
“그…….”
“좋아. 이런 건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겠어.”
“그렇지. 이 애비도 공부 쪽이라면 자신 있거든.”
그래서 말리려 해 봤지만 별 소용은 없었다.
둘이 벌써 신나서 떠들어 대고 있었다.
“이러다 100만 영상 가는 거 아니에요?”
“대학 병원에서는 교수인 내가 알고 보니 유튜브 스타?”
“하하하.”
“꺄륵.”
이런 식이었다.
충심이 불꽃같이 일었지만, 또 이렇게 좋아하는 모습들을 보고 있자니 선뜻 입이 떨어지질 않았다.
게다가 이 반응에 힘입어 기자는 같이 온 촬영 감독에게 이것저것 세팅을 지시하고 있었다.
여기가 좋네, 여기가 뒤가 이쁘네 등의 말이 들렸다.
“우리 교수님들이라면 인정이지.”
“그러니까. 내가 딴 데서 얼마나 고생을 했던지…….”
“아니, 진짜 남들이 돌팔이인 건지 여기가 천재인 건지는 모르겠는데…… 오자마자 진단이 됐다니까? 검사하고 확진 받아야 해서 더 있긴 했는데…… 하여간 속이 다 시원해.”
“기자 양반! 멋지게 찍어 줘요! 이 사람들 이거 진짜 천재라고!”
거기에 더해 환자들, 그리고 보호자들까지 가세한 참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긴 했다.
센터 병동 분위기가 전반적으로 다른 병동과 다를 수밖에 없지 않겠나?
이곳은 그야말로, 오가는 모든 사람들이 희망을 갖게 되는 곳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아니, 간혹 진단은 되는데 치료가 안 되는 경우도 있으니, 그저 속이 시원해지는 곳이라고 할까?
아무튼, 응원하고 있었다.
“자, 그럼…… 간단하게 자기소개부터 하시고요.”
“네.”
“아니, 그냥 소개를 하시면 됩니다. 저한테 대답하시지 말고요.”
“네.”
그렇다고 해서 촬영이 막 부드럽게 가는 건 아니었다.
아무리 천재면 뭐하나.
방송은 안 해 봤는데.
허나 기자가 베테랑이었다.
그는 최대한 자연스레 질문을 던지고 답을 이끌어내는 데 특화되어 있는 인간이었다.
“자, 그럼 각기 학창 시절 성적에 대해 오픈해 주실까요? 전교 1등이셨던 분 계십…… 아. 다 1등이구나. 역시 아무나 태화대학교 의과대학에 오는 건 아니로군요.”
“하하.”
“그냥 뭐…… 하다 보니까 되던데.”
“저는 죽도록 했습니다. 공부만이 살길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기자는 허허 웃다가 이내 질문을 던졌다.
“그럼 각기 공부하는 팁을 여쭤볼 텐데요. 아무래도 중요한 과목이 국영수 아니겠습니까? 국어부터 가죠. 요새는 언어 영역이라고 하긴 하는데, 어떻게 공부를 하셨는지 그게 궁금합니다.”
그 말에 수혁과 이현종은 눈을 끔벅이다가 서로를 바라보았다.
‘언어를…… 공부?’
‘그냥 문제가 무슨 말인지 알아보면 되는 거 아니에요?’
[이건 저도 이해 불가능이군요. 한국인이 언어 영역이라는 과목을 왜 공부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그냥 하면 되는 거 아닌가?
뭐 이딴 생각이나 하고 있었다.
아니, 전반적으로 그렇다고 보면 되었다.
막상 팁이라고 생각해 보니, 이게 참…….
‘하긴. 두 분은 공부 하신지 오래되긴 했지. 시간이 좀 걸릴 거야.’
불행하게도 기자는 그 눈 끔벅임의 뜻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허나 안대훈은 알아차렸다.
이대로 두면 X된다는 사실도.
‘우리 교수님…… 괜히 욕먹게 할 수는 없지.’
충신을 넘어 광신에 영역에 든 인간이지 않나.
“저부터 하죠.”
“오. 네네. 어떤 팁이 있으실까요?”
“일단 저는 뭐든 보는 걸 좋아했습니다. 그게 소설이 됐건, 뭐가 되었건 말이죠.”
“언제부터였나요?”
“어릴 때부터요. 그게 언어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 것 같습니다.”
“아하. 그리고 또 있으시다면?”
“근데 이게, 빨리 보고 이해력이 좋아지는 게 다는 아니더라고요? 고전은 일종의 암기 과목이라고 보고 덤벼들었습니다. 그랬더니 성적이 올랐습니다.”
“오…… 다른 두 분은 어떠신가요?”
처음엔 이런 식으로 먼저 힌트를 주려 했다.
이대로만 하시라고.
허나 이현종도 수혁도 의학적인 부분을 제외하면 살짝 좀 모자란 부분이 있지 않나?
수혁은 원래 이것보단 나은 인간이었는데, 바루다 때문에 의학 공부에 매진하다 보니 인간성을 더러 잃어 버리고 있었다.
차라리 술이라도 먹였으면 바로 만취라 귀여운 면이라도 보일 텐데 지금은 그럴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언어는 머리가 좋으면 되죠.”
“그렇죠. 아빠 말이 맞네. 네, 언어는 머리입니다.”
“어…… 네. 다른 팁……은?”
“음. 글쎄요.”
“이게 그냥 보면 되던데. 한국인이 한국말 못 하면 이상하잖아요?”
“아…… 네.”
기자도 당황했지만, 안대훈은 더했다.
이런 망할 분들 같으니라고.
욕받이 인형이라도 될 작정이신가?
안대훈은 유난히 광을 내서 번뜩이는 머리통을 긁적이며 생각에 잠겼다.
‘그래…… 욕받이 인형…….’
순간, 깨달음이 툭 하고 들어섰다.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
‘내가 이분들을 변화시킬 수 있을 거란 생각을 했다니. 이런 불경한 일이 다 있나.’
그 후로 안대훈은 선제적으로 나섰다.
진짜 또라이 같은 답을, 그러니까 나머지 둘의 답은 아무것도 아니게끔 만들어 내는 답을 했다는 얘기였다.
“수학이요? 저는 그냥 발로 했는데. 미분, 적분이요? 그걸 이해 못 하면 좀 이상한 거 아닙니까?”
쉽지는 않았다.
둘도 좀 이상한 편이라 그랬다.
하지만 작정하고 들이박는 사람을 어찌 이길까?
게다가 안대훈은 외모부터가 좀 범상치 않은 편이다 보니 효과적이기도 했다.
‘이거 쓸 수 있어요?’
촬영 감독이 기자를 돌아보며 눈으로 물었다.
‘아니. 쓰겠냐? 이거 쓰면 나 태화랑 다시는 일 못 해…….’
기자는 고개를 저었다.
사실 한참 전부터 안 듣고 있었다.
그동안 대신 끼적일 기사 내용이나 떠올리고 있었다.
그렇게 의미 없는 촬영이 저물어 가고 있을 무렵, 수혁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근데 내가 아까부터 좀 신경이 쓰여서 말인데.’
[촬영 감독 말이죠?]
‘어. 저 양반…… 어디 아파 보이지 않냐? 식은땀도 흘리고.’
[네. 본인도 자각하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닌 것 같은데…… 참고 있는 듯합니다.]
그 사이에도, 기자는 고민만 했다.
누군가에게는 의미 없는 촬영일 수도 있었다.
안 쓸 거니까.
찍은 사람이 항의하지 않겠냐고?
괜찮았다.
이 사람들은 의사니까.
워낙 바쁜 사람들이다 보니, 나중에 영상 나왔다 해도 찾아보지도 않을 확률이 높았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둘 다 영 성의가 없어지고 있었는데, 그래서 수혁이 어느 시점부터인가 카메라 렌즈가 아니라 감독만 보고 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했다.
‘어디지? 어디가 아픈 거야?’
[글쎄요. 얼굴만 봐서는…… 통증의 정도만 추정 가능할 뿐입니다.]
‘몇 살 정도 됐을까? 추정 가능해?’
[야외에서 주로 일하는 직종인 경우, 데이터베이스가 부족해 정확한 추정이 어렵습니다. 전에 군대 중사 환자 기억합니까?]
‘아, 그분. 나도 놀랐지.’
[네. 29살이었다니. 데이터베이스 상으로는 39살도 젊게 봐 줄 만한 얼굴이었습니다.]
머릿속으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느라 실제로는 입도 벙끗하지 않고 있었다.
이쯤 되니 이현종과 안대훈도 이변을 알아차렸다.
‘이 자식 이거 또 왜 이래. 접신이야?’
‘아니, 아닙니다. 눈을 따라가 보십쇼.’
‘눈을 따라가? 은유적인 표현이면 너부터 때린다?’
‘문자 그대로의 의미입니다. 저기, 감독님을 보고 계시는군요.’
‘음? 아. 으응……?’
‘진료 중이신거 아닐까요?’
해서 셋 다 입을 다문 채 수혁과 감독을 돌아보고 있었다.
그제야 기자도 촬영 감독도 뭔가 이상하다는 걸 알아차릴 수 있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지 자랑만 하느라, 아니, 자랑 정도가 아니라 미친 소리 하느라 신나 있던 놈들이 이러고 있으니 그럴 수밖에.
덜컥.
심지어 수혁은 지금 일어나기까지 했다.
‘일어나……?’
뭐지?
기자는 왜 저러나 하고 있었고.
촬영 감독은 어버버하고 있었다.
난데없이 의사가 일어나서 자신을 향해 직진하고 있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감독님.”
“네?”
“어디 아프세요?”
“네?”
이게 시비인지 뭔지 좀 헷갈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