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6화 갑자기요? (1)
‘어디 아프냐고……?’
촬영 감독은 기분이 썩 좋지만은 않았다.
이런 얘기를 한두 번 들은 게 아니어서 그랬다.
솔직히 좀 육중한 몸이긴 했다.
BMI니 뭐니 하는 건, 기분 나빠서 딱히 계산 안 할 정도로.
그 때문인지, 그는 오지랖 넓은 사람에게 지나칠 정도의 관심을 받았다.
-안 아파! 뚱뚱하면 다 아프냐?
-그래, 그래도 일찍 죽을 수도 있어.
-차라리 죽으라고 고사를 지내라…….
-뚱뚱하면 여자들이 싫어해.
-나 결혼해서 애도 셋이거든?
해서, 요새는 아예 프로필 사진에 노래 하나를 띄워 놓고 있었다.
국내 블루스의 전설.
최항석과 부기 몬스터의 ‘난 뚱뚱해’라는 노래.
뚱뚱해도 좋고 행복하니까 그만 좀 말하라는 일종의 시위였다.
헌데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툭 찌르니까 당황스러운 나머지 말이 잘 안 나왔다.
“지금 아프신 거 같은데?”
“네, 네?”
교수들 중에 원래 좀 직설적인 사람들이 있지 않던가?
지금 인터뷰를 하면서 느낀 건데, 이 양반은 그중에서도 발군인 듯했다.
건방지다는 말조차 안 나올 정도로…….
진짜 가관이었다.
“아프죠?”
그런 사람이 눈 앞에서 알랑거리고 있으니 이거야 원…….
“식은땀을 흘리시는데. 이건 더워서 나는 땀이 아니에요.”
물론 수혁은 그런 편견이 거의 없는 인간이었다.
오로지 데이터에 기반한 사고를 하기 위해 수련받고 있는 인간 아닌가.
때문에 지금 질문도 괜히 하는 게 아니었다.
감히 예상하자면, 이 환자는 지금 NRS(1~10점으로 나눈 통증 척도) 4점에서 5점 혹은 그 이상의 통증을 느끼고 있었다.
“아니, 그게.”
“어딜까. 배? 흠.”
촬영 감독은 그렇지 않아도 좀 아프다곤 느끼고 있었어서, 여전히 적절한 반응을 못 하고 있었다.
그 사이, 수혁은 이미 감독을 환자처럼 대하고 있었다.
원래 이게 제일 익숙한 포맷이다 보니 더 없이 자연스럽기까지 했다.
“저기…… 말리셔야 되는 거 아닙니까?”
그 꼴을 잠시 보고 있던 기자가 나머지 둘에게 다가갔다.
이현종, 안대훈은 둘의 대화를 무슨 강 건너 불구경하듯 보고 있었다.
말을 꺼냈는데도 그랬다.
“응? 왜요?”
“지금 진료 중인데…… 뭘 말려요?”
“아니…… 이게 정식으로 접수한 환자도 아니고…… 본인이 원하지도 않았는데…….”
“자기 발로 오지 않는 환자도 아프면 환자지.”
“네. 이수혁 교수님이 괜히 저러실 분이 아닙니다.”
“그……그렇습니까?”
오히려 당당하게 나왔다.
이현종은 누가 뭐래도 대가였고, 안대훈도 보기에는 대가였다.
그렇다 보니 기자는 살짝 압도당하는 기분이 들었다.
확실히 방금 전까지 있었던 대화를 보면, 괜히 저럴 위인은 아닌 것 같지 않나.
“그렇지. 내 아들이라서 하는 말이 아니라…… 쟨 진짜 천재야.”
“네. 보세요. 자기도 모르는 병이 있었을 수도 있어요. 대개는 뭐…… 배탈이겠지만.”
“아…….”
게다가 나머지 둘도 보통 사람은 아니었다.
뻔뻔하게 나오다 보니, 기자는 자기도 모르게 둘 사이에 껴서 대화를 지켜보기 시작했다.
‘아니…… 왜 말리다가 같이 봐.’
촬영 감독은 그런 기자를 원망 어린 눈으로 보다가, 이내 수혁을 바라보았다.
수혁은 적어도 다른 이들과는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
겉으로만 어떡해 하는 느낌은 아니란 얘기였다.
뭐랄까…….
‘진짜로…… 의사의 눈인데.’
그래, 이건 의사의 눈이었다.
편견을 가지고 바라보는 건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단 얘기였다.
더군다나 지금 마침 배가 좀 아프지 않나?
아니, 지금이라고 하기도 좀 애매했다.
언제부터라고 꼭 짚어서 얘기하기는 어려울 만큼, 전부터 둔중한 통증이 있었다.
며칠? 아니, 몇 주?
“배구나.”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으려니, 수혁이 확신에 찬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어, 어떻게 알았어요?”
이 양반이 점쟁이 빤스라도 입었나 싶었다.
아프다는 걸 알아보는 건, 그래,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안색이 창백하다든지, 뭐 그런 이유로?
근데 어디가 아픈지 아는 건 또 다른 얘기였다.
해서 물으니 수혁이 씨익 웃었다.
“촬영 시작하고 다른 부위로는 대략 10번 정도 손이 가셨는데, 배는 100번도 넘게 만졌거든요. 근데 제가 물어보고 나서는, 딱 물어봤을 때 말고는 한 번도 만지질 않았어요.”
“아…….”
뭔가 비범해 보이는 이유가 튀어 나왔다.
언제 그걸 다 셌단 말인가.
솔직히 구라 같은데…….
얼굴만 봐서는 절대 거짓말하고 있는 것 같지 않았다.
게다가 수혁의 직함 또한 그럴 리가 없다고 강변하고 있었다.
태화의료원 통합진료센터 부센터장.
의학 신문과 여러 번 일해 본 바 있는 촬영 감독으로서, 이게 얼마나 무게 있는 직함인지 모르면 안 될 일이었다.
“자, 이쪽으로 오시죠. 복도에서 진료하는 건 좀 그러니까.”
“아, 네.”
해서 촬영 감독은 어차피 의미도 없던 촬영이겠다, 기자도 딱히 더 찍을 생각도 없어 보이겠다, 냅다 수혁을 따라나섰다.
구경하고 있던 보호자나 환자들이 한마디씩 보태었다.
“어이구, 또 한 건 하시네.”
“아…… 김씨가 길거리에서 캐스팅 아니 진료받았다고 했지?”
“그렇다니까요. 지하철 타려는데 누가 잡아서 나는 뭐 도를 아십니까인 줄 알았지. 근데 의사더라고? 덕분에 살았지.”
“그러니까. 아니, 대체 어떻게 저럴 수가 있지.”
놀랍게도 병실에 비슷한 경험을 아니, 감독보다 더한 경험을 한 이가 있었다.
듣기만 하면 좀 이상하긴 하지만, 실은 지하철 입구에서 같이 있던 이가 수혁을 알아보고 ‘얘가 아픈 거 같은데 병원 가야 되냐’라고 물었던 사실을 빼먹어서 더욱 신비하게 느껴지는 참이었다.
그런 식으로 수혁의 뛰어남이 구전동화처럼 과장에 과장을 더해 가고 있을 무렵, 수혁은 환자 아니, 감독을 자리에 앉혔다.
외래는 아니다 보니 간이 진료실이란 느낌이 부쩍 드는 곳이었다.
그럼에도 일반적인 외래 진료실에 비하면야 차고 넘치는 느낌을 주었다.
확실히 통합진료센터는 기대를 한몸에 받고 있을뿐더러, 그 기대에 맞춰서 투자도 받고 있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여기 누우면 될까요?”
“네. 눕는 동안 몇 가지 물어볼게요.”
“아, 네. 그…….”
감독은 끙 소리를 내며 침대에 누웠다.
누워서 자기 위한 침대가 아니라 검사받기 위한 침대다 보니, 올라가기에도 꽤 높았다.
힘이 들었다.
그런 모습을 수혁은 주의 깊게 바라보았다.
‘흐음…….’
[근력이 떨어져 있지는 않습니다.]
‘단순히 무거워서 힘든 거다, 이 말이지?’
[네. 통증도 운동 제한을 일으킬 정도로 심해 보이진 않습니다.]
‘좋아.’
몇 가지를 추론해 내면서, 수혁은 입을 열었다.
“배가 언제부터 아프셨어요?”
기본적인 질문이었다.
동시에 아주 중요한 질문이기도 했다.
통증에 있어서 발생한 시간이 언제냐는 건, 원인이 뭔지 유추할 수도 있을 만큼 결정적인 단서가 되기도 해서 그랬다.
“며칠……? 사실 잘 모르겠습니다. 불편하다가 아픈 거라서.”
“그럼 내가 아프다고 인지한 건 언제쯤이세요?”
“음…… 아프다는 건…… 음.”
“아주 정확할 필요는 없어요. 대강이라도 좋아요.”
주관적이어도 좋았다.
어차피 통증이라는 게 완전히 객관적일 수는 없는 법이니까.
“한 3일에서 4일……?”
“그렇군요. 그게 더 심해진 것 같나요?”
“아, 네. 그건 확실히. 처음엔 그냥 둔하게 아팠는데…… 지금은 찌르는 듯한 통증이 간혹 있습니다.”
“찌르는 듯하다라…… 흠.”
“심각한 걸까요?”
“이제 차차 봐야죠. 주로 어디가 아프세요?”
수혁은 누운 감독의 양쪽 무릎을 굽히게 했다.
이렇게 하면 배에 힘이 빠져서 촉진을 하기에 유리해졌다.
‘이렇게 해도 배꼽이 명치보다 한참 높이 있네.’
[BMI가 대략…… 32? 33? 정도는 될 것 같군요.]
국내 기준으로 보면 고도 비만이라는 뜻이었다.
좋지는 않았다.
비만은 그 자체로도 문제를 많이 일으키는 법이니.
비난하고자 함이 아니라, 그냥 의학적인 사실이 그러했다.
“여기…… 여기요.”
“우측이네요?”
“네. 이 통증이 이 자리에 머물러 있나요? 아니면 왔다 갔다 하나요?”
“왔다 갔다 하지는 않은데…… 이걸 뭐라고 해야지?”
“어떤 느낌인지, 그냥 환자분께서 편한 방식으로 말씀하시면 됩니다. 불명확해 보이면 제가 다시 물을게요.”
“아, 네. 그…… 통증이 옆구리로 뻗어 나갈 때가 있습니다.”
“아…… 뻗어요?”
“네.”
우측 하복부의 통증이 옆구리로 뻗는다라.
‘결석일까?’
[가능성은 있습니다.]
둘의 대화처럼 결석일 가능성도 있었다.
요로 결석이라고 하면 무조건 어마어마한 산통이 있을 거 같지만, 질환이라는 게 그렇게 딱 무 자르듯 나뉘던가.
통증의 양상은 여러 이유로 변할 수 있는 법이었다.
그중에서도 당뇨가 있으면 여러 통증이 둔중해져서, 진단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었다.
“소변 보는 건 어떠세요?”
“네? 음…… 딱히…….”
“전혀 문제가 없으시다는 거죠?”
“네. 뭐…… 아직 소변 보는 게 불편할 나이는 아닌 것 같습니다.”
“그렇군요.”
다만 소변을 보는 데 이상이 없다면, 결석일 가능성은 좀 낮아지는 게 사실이었다.
수혁은 금세 추론의 방향을 뒤바꾸었다.
“여기를 누르면 어때요?”
손을 환자의 우하복부에 올려두면서였다.
“딱히…….”
“더 아프시진 않다는 거죠?”
“네.”
“뗄 때는요?”
“그것도 딱히.”
눌러 보니 알 수 있었다.
살이 굉장히 많다는 것을.
이러면 신체 검진에 살짝 오류가 있을 수도 있었다.
압통과 반발 압통이 심하지 않다고 해서 심각하지 않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는 얘기였다.
이렇게 되면 뭐가 남을까.
“일단…… 혈액 검사랑 소변 검사를 좀 해 보죠.”
경과 관찰을 하는 것도 방법 중 하나이긴 했다.
‘하지만…….’
[아파도 병원으론 안 올 사람 같죠?]
‘응. 일단…… 영상 쪽 사람들은 많이 바쁘더라고.’
[네. 저희가 본 사람들이 특이한 케이스였을 가능성도 있지만, 대개는 그렇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그런 치료도 환자를 봐 가면서 선택해야 하는 방법이었다.
해서, 수혁은 검사부터 권했다.
“어…….”
“금방 할 수 있어요. 어차피 오늘 인터뷰하고 영상까지 찍으실 생각이셨으면 시간이 좀 빌 것 같은데요, 아닌가요?”
“아, 네.”
“아니, 왜 기자님이…….”
아니나 다를까, 간단한 검사 하자는데도 꺼려하지 않나.
다행인 것은 기자가 수혁의 편을 들기 시작했다는 점이었다.
잠깐 사이에 완연한 관전자가 되어 있었다.
무엇보다, 기자는 평소 촬영 감독에게 어딘가 아픈 데가 있지 않냐고 묻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묻는 이에게 동조하는 편이긴 했다.
이참에 건강 검진을 한다손 치면 어떨까 싶었다.
“자자, 이쪽으로.”
“어…….”
게다가 병원에 들어오기 전이라면 또 모를까, 들어온 다음에는 마수에서 벗어나기가 어려운 법이었다.
‘뭐라도 나오겠지.’
[네. 뭐 하나 나오면 그걸로 꼬투리를 잡죠.]
심지어 수혁은 좀 질척거리는 의사 스타일 아닌가.
명의병에 걸린 지 오래 되었다 보니, 환자다 싶으면 최대한 잘해 주려고 애쓰는 편이란 얘기였다.
“아야.”
“자, 이제 소변 보시고, 중간뇨 들고 오세요.”
물론, 센터 전체가 한통속이기도 했다.
촬영 감독은 숙달된 간호사의 손에 이끌려 피도 뽑히고, 화장실 안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