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7화 갑자기요? (2)
간단한 혈액 검사와 소변 검사에 대한 결과는 금세 나왔다.
물론 종류에 따라서는 시간이 좀 더 걸릴 만한 것들도 있긴 했지만, 센터에서 급하다고 나가는 것들에 대해서는 진단 검사 의학과가 되었건 병리과가 되었건 최대한 협조하도록 되어 있었기에 그랬다.
“흠…… 소변 검사에서는 딱히 이상한 게 없네요.”
“아, 그럼……? 저는 괜찮은 거죠?”
“아, 아뇨. 혈당 검사에서 당 수치가 꽤 높게 나왔습니다. 아직 당화 혈색소는 검사 결과가 나오려면 시간이 걸릴 텐데…… 혹 당뇨에 대해 진단받은 적이 있나요?”
“아뇨. 전 지병이라고는 천식밖에 없습니다.”
“천식이요?”
천식은 국내에서 상대적으로 드문 질환에 속하는 편이었다.
일례로, 외국 영화를 보면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천식 환자들이 국내에서는 드물지 않나?
특히 소아가 아닌 성인들을 대상으로 보면 더더욱 그랬다.
이게 무조건 장점만 있는 건 아니었다.
대국민 홍보가 덜되어 있는 데다가, 일부 옛날 병원에서는 천식에 대한 최신 지견에 따른 치료를 잘 모르기까지 했다.
“네.”
“혹시 최근에도 치료를 받았나요?”
대개의 경우엔 흡입기, 그중에서도 벤톨린이 아닌 스테로이드가 함유된 흡입기를 사용하는 편이 효과가 좋았다.
코에 대고 사용하는 스프레이처럼 당장 효과를 보긴 어렵지만, 꾸준히 치료할 경우 딱 그 치료제만 써도 조절이 된다는 의미였다.
굉장히 좋고 또 안전한 치료제인데, 호흡 곤란이 있을 때 당장 쓸 수 없다는 이유로 외면받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수혁만이 아니라 이 자리에 있는 대부분의 의사들이 그런 치료만 받는 환자를 봤을 정도로 흔한 일이었다.
“아…… 네. 그때 제가 진짜 심해서 주사도 맞았습니다.”
“주사……요?”
허나 주사 치료까지 받는 경우는 진짜 드물었다.
발작이 있었나 싶을 지경이었다.
“네. 제가 사실 살짝 공황장애 비슷한 것도 있거든요. 치료받을 정도는 아닙니다만…… 천식이랑 겹치면 힘들 때가 있어요.”
치료받을 정도는 아니란 말에, 수혁은 자기도 모르게 인상을 썼다.
그건 의사가 판단할 일이지 환자가 판단할 일은 아니라서 그랬다.
아무튼, 지금 중요한 것은 환자의 치료에 대한 미온적인 태도가 아니라 주사 그 자체였다.
뭘 맞았을까?
“어떤 주사인지 아시나요?”
“아, 아뇨. 잘은…… 모릅니다. 그냥 늘 그렇게 가면 주사를 주세요. 벤톨린? 그것도 하고요.”
“흐음.”
느낌이 좋진 않았다.
‘설마 주기적으로 스테로이드 주사를 맞고 있는 건…… 아니겠지?’
[설마가 사람 잡는 법이지요. 그럴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이런 망할. 대체 스테로이드를 왜 이렇게 많이 쓰는 거야?’
[효과가 즉각적이니까요.]
‘그만큼 주의해야 한다는 걸 모르나?’
[모르겠습니까? 알면서도 쓰는 거겠죠.]
스테로이드 남용.
이것은 비단 헬스를 즐겨 하는 이들 중 일부에게만 해당하는 문제가 아니었다.
애초에 종류도 달랐다.
그들이 쓰는 건 아나볼릭 스테로이드였고, 여기서 문제가 되는 건 의학적으로, 약으로 흔히 쓰이는 스테로이드였다.
하여간에 이 스테로이드의 남용은 이전 세대 때부터 문제가 되어 왔다.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외국에서도 꽤나 문제를 일으켰더랬다.
그런데도 해결되지 않는다는 건, 여전히 이러한 치료를 감행하는 일부 의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병원 이름 알려 주시면 저희 측에서 전화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아, 네. 여기.”
“네.”
그렇게 병원 이름을 알아낸 수혁은 간호사에게 인계했다.
간호사는, 이전에는 이런 일에 익숙지 않아 낯설어했지만 센터에 온 이후로는 전화 선수가 된 지 오래였다.
간호사가 전화를 거는 사이에, 수혁은 환자에게 설명을 이어 나갔다.
“당뇨는 만성 질환이지, 당장 지금 복통의 원인일 가능성은 적습니다.”
굳이 ‘적다’라고 한 데는, 그런 증상을 보일 만한 한 가지 가능성이 있어서 그랬다.
아니길 바랐다.
췌장암이 발생한 경우, 암에 의해 췌장이 파괴되면서 췌장에서 분비되는 인슐린이 감소하고, 갑자기 당뇨가 생길 수도 있었으니까.
또 췌장암은 생긴 부위에 따라 둔중한 통증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만약 지금 환자의 나이에 췌장암이 발병한 거라면, 예후는 극악이라고 봐도 좋았다.
아니, 췌장암은 어떤 나이에 발병하든 간에 그랬다.
아직 현대 의학이 해결할 수 있는 범주에 들어오지도 못했다.
“아…… 그럼…… 일단은 괜찮은 거죠?”
하지만 환자는 그런 수혁의 생각을 알 수 없는 상황이지 않겠나.
게다가 일단 괜찮은 거 아니냐는 말을 한 걸 보니, 환자는 될 수 있으면 이 상황을 회피하고 싶은 사람이었다.
도망가고 싶다는 게 너무 느껴져서, 수혁은 그의 팔을 잡아끌었다.
그런다고 끌릴 몸집은 아니었지만 예의를 배운 사람이다 보니 나가려던 발걸음을 멈추긴 했다.
사실 문 쪽에 이현종, 안대훈, 그리고 기자까지 죄다 서 있기도 했다.
나가고 싶다 해도 나갈 수 없는 상황이란 얘기였다.
“일단은 들어 보시죠.”
“아…… 네.”
촬영 감독은 집요함을 넘어 집착하고 있는 수혁을 보곤 일종의 체념을 했다.
해서 다시 자리에 앉았고, 수혁은 본격적으로 입을 털기 시작했다.
‘고지혈증에 당뇨…… 지방간도 있을 거 같고?’
[네, 뭐가 진짜 많네요. 근데 정작 지금 배가 아픈 것을 설명할 수 있는 혈액 검사 결과는 없습니다.]
‘그게 제일 위험한 거 아니냐?’
[네, 사실은…… 그렇죠.]
급성 질환이라면 급성 질환에 맞는 지표가 나오기 마련이었다.
물론 아주 경미한 질환이라면 검사를 해도 안 나오는 경우도 있었다.
그럴 때는 혈액 검사 지표를 변화시킬 만한 질환이 아니란 얘기인 거였는데…… 그런 건 대개 증상도 경미하기 마련이었다.
허나 이 환자는 그렇지 않았다.
NRS 5점 이상의, 그것도 며칠간 지속되는 것으로도 모자라 점점 더 심해지는 통증이라면 무조건 예민하게 봐야 했다.
“간 수치가 올라 있는데, 이건 아마 지방간에 의한 것으로 보입니다. 간염을 의심하기에는 수치가 또 그렇게까지 높지는 않아요.”
“그게 그럼 복통의 원인일까요? 여기가 아프진…… 않는데…….”
촬영 감독은 간이 있는 부위를 손으로 짚었다.
확실히 그가 아프다고 한 부위는 그곳보다 더 아래에 있었다.
우하복부.
“아뇨, 지방간이 통증을 일으키지는 않습니다.”
“그럼 저 진짜 괜찮은 거 아닐……까요?”
“지금도 아프지 않으세요?”
“아프긴 합니다.”
“아까보다 더 아파 보이는데요?”
“어…… 살짝 그런 것 같아요. 날카로운 통증이 간혹 지나갑니다.”
“네, 그래 보여요. 검사에서 별다른 게 나오지 않았더라도 통증이 심해지고 있다면 잘 봐야 합니다.”
“으음…….”
방금 표정으로 추정해 본 NRS 점수는 대략 7.
7점부터는 진짜 아픈 영역이기에 수혁은 아까보다도 더 진중해졌다.
그는 몸을 일으켜 촬영 감독에게로 다가갔다.
머릿속으로는 추론을 이어 나가고 있었고, 이를 확인하기 위한 관찰도 쉬지 않았다.
‘마냥 살만 찐 게 아냐. 버팔로 험프(Buffalo Hump, 버섯목 증후군. 뒷목 경추 일부가 돌출되어 볼록해진 상태)가 있어.’
[네. 승모 부위에 유의미한 수준의 지방 축전이 관찰됩니다. 이는 고용량 스테로이드에 지속적인 노출이 있었다는 증거가 됩니다.]
‘그래, 그렇지. 게다가.’
아까 간호사가 건네준 쪽지만 봐도, 문의해 봤더니 그쪽 병원에서 그냥 끊었다고 하지 않나?
뭔가 켕기는 게 있지 않고서야, 상급 병원 요청을 씹을 수는 없는 법이었다.
오히려 그래서 수혁은 스테로이드를 의심하고 있었다.
그러니 이 버팔로 험프 소견은 일종의 증거라도 봐도 좋았다.
‘장기간 노출이 되었다면 여러 질환이 있을 수 있어. 오히려 너무 많은 질환이라…… 분간이 안 되는데.’
[CT라도 찍어 보죠.]
‘그래. 일단 검사를 좀 해 보자.’
[금액이 문제면 우리가 내준다고 해요.]
‘어? 내 돈으로?’
[문제 있으면 돈 내겠지. 문제가 있지 않겠습니까? 저런 류의 통증은 무조건 이상이 있을 수밖에 없어요.]
‘하긴, 뭐…… 그렇지.’
여차하면 돈을 쓰게 생긴 상황이었지만, 수혁은 바루다의 설득에 홀랑 넘어갔다.
“우선 CT 찍어 보시죠. 뭐라도 나올 겁니다.”
“네?”
같은 논리가 환자에게도 잘 통하는 건 아니었다.
뭐라도 나올 거라니.
좀 성의가 없지 않나?
되짚어 보니 수혁이 보기에도 확실히 그래서, 말을 좀 보태었다.
“여기가 좀 남들보다 너무 크다는 생각해 보신 적 없으세요?”
“네? 아…… 제가 좀 무거운 걸 들다 보니 승모가 커진 것 같긴 한데.”
“승모근은 이렇게까지 물렁하진 않아요. 이건 지방이 축적된 결과입니다.”
“네?”
“스테로이드를 장복하게 될 경우에 이런 변화가 생길 수 있는데…… 문제는 이렇게 신체적인 변화를 수반할 정도로 장복했다면, 안에 뭐가 생겨도 생겼을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죠. 확인해 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제가 스테로이드를…… 어…….”
“일단 찍어 보시죠. 그리 오래 걸리지도 않아요.”
“그…… 네.”
모르는 얘기를 아는 얘기에 섞어서 하면 본래 좀 설득력이 생기지 않던가.
해서, 환자는 얼결에 다른 이들의 손에 이끌려 CT실로 들어갔다.
수혁은 이현종, 안대훈과 함께 검사실에 자리했다.
이제 곧 영상이 넘어올 것을 기대하고 있었다.
당연하게도 의사들끼리의 수다도 첨가되었다.
“아니…… 스테로이드를 줬대? 아까 그 주사가 설마 스테로이드야?”
“네. 뭐…… 천식 발작이라면 확실히 효과는 있었을 거예요. 근데 꾸준히 제대로 된 치료를 하지 않고 갈 때마다 그런 치료를 했다면…… 쿠싱 증후군(호르몬 과다 생산으로 인해 비만 등의 합병증이 나타나는 증상)이 생길 만도 하죠. 가뜩이나 혈당도 높은데 계속 스테로이드를 주사했다면, 진짜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너무 많죠.”
“이거야, 원…… 그걸 확인도 안 하고 스테로이드를 줘?”
“그런 경우가 아주 없는 건 또 아니라서…….”
“그건 그렇지. 아…… 이거 참.”
이번 같은 경우엔 뒷담화였다.
위이잉.
그렇게 혀를 차고 있으려니 기기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환자의 몸을 둘러싸고 CT 기기가 돌아가면서, 곧 영상이 이쪽으로 날아왔다.
한 컷, 한 컷.
쌓여 가는 영상을 보고 있던 수혁이 흠 소리를 냈다.
문제가 없어서 그런 게 아니었다.
너무 이상한 게 있었다.
“이게 뭐야……?”
“그러게. 이게 대체 뭐야……?”
“어…… 뭐죠?”
배에 뭔가가 있었다.
우측 정낭 쪽에서 발생한 것으로 보였다.
작지도 않았다.
충분히 주변을 누를 수 있을 정도의 크기였다.
제일 직경이 긴 부위는 대략 9cm가량 되었다.
세상에 9cm라니?
“영 좋지 못한 부위에 뭐가 있는데.”
이현종은 자기도 모르게 알 부분을 만지며 말했다.
그뿐만 아니라, 수혁이나 안대훈도 그러고 있었다.
무의식적으로 손이 갔다.
“이게 암은 아닌 것 같은데…….”
“쿠싱 증후군에서 이런 것도 생길 수 있나요?”
“아니, 내가 쿠싱 관련한 논문이나 케이스만 거의 수백 개는 봤을 텐데…… 이런 건 못 봤어.”
“허어…… 뭐지.”
세 의사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한 손은 꼭 아래로 내리고 있다 보니, 뒤에 있던 방사선사도 저도 모르게 만지작거리면서 중얼거렸다.
“어휴, 안 됐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