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908화 (908/1,303)

908화 갑자기요? (3)

환자의 영상 속 이상 소견은 주로 방광 뒤에서 관찰되고 있었다.

꽤 커다란 이상이었다.

직경이 9cm가 넘어갔으니.

“흐음…….”

“으음…….”

“음.”

그걸 보고 있노라니, 정말이지 이상하단 생각밖에는 들지 않았다.

의학적인 견지에서 보면, 남자와 여자는 정말 다른 생물이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지금 세 의사가 주시하고 있는 Pelvis, 즉 골반은 아예 다르다고 봐야 했다.

남자는 방광 뒤에 바로 직장이 있지만, 여자는 그사이에 자궁이 있지 않나?

그러니까 이 영상을 여자의 것이라고 보면 그나마 좀 이해해 볼 수 있단 얘기였다.

허나 저 환자는 남자였다.

벗겨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이게 성기잖아요?”

CT를 찍지 않았나.

영역에 걸려 있었기 때문에 바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렇지. 사이즈를 보면…… 정상이야. 작지는 않아.”

“네. 그렇다면 발달 과정에서 문제가 없었다는 것이고…… 호르몬 관련한 이상이 없었을 거란 얘긴데…….”

“그래, 그렇지. 근데 이건 뭐야.”

성기가 있나 없나 정도는 바로 확인할 수 있다, 이 말이었다.

심지어 이현종의 말대로 작지도 않았다.

성염색체 이상이나 발달 과정에서의 이상은 없었을 거란 얘기가 되었다.

이것까지는 좋았다.

좋은데…….

‘대체…… 이 뒤에 이건 그럼 뭐지……?’

[테라토마라고 보기에도…… 위치가 이상합니다.]

‘그렇지? 아니, 아니. 잠깐만……?’

[왜……? 아, 이게…… 기원이 전립선이 아니군요?]

전립선 뒤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이는, 방광 뒤에 딱 붙은 이건 대체 무엇인고 하며 계속 보고 있자니, 그 밑으로도 덩이가 이어지는 중이었다.

작은 실선이었지만, 컷을 따라가다 보니 확실히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수혁아, 왜 잘 보고 있는데 영상 돌려?”

“아니, 이거 잘 보세요. 이거. 이거 죽 내려오잖아요.”

“뭐가 내려가? 응? 어……?”

“아, 정말요! 정말 이어지는 것이 있습니다.”

한창 영상에 집중하고 있던 이현종, 안대훈의 불만이 잠시 터져 나왔지만, 말 그대로 잠시일 뿐이었다.

수혁이 가리킨 곳을 보니 정말로 실선 비슷한 것이 아래로 이어지고 있어서 그랬다.

이제 쟁점은 전립선 따위가 아니었다.

그렇지 않아도 전립선 가까이 있기는 해서, 뭔가가 붙은 느낌은 아니다 싶던 참이었다.

어디까지.

대체 어디까지 내려가야 이 정체불명인 덩이의 기원이 있을까.

세 의사는 오직 그것만 생각하고 있었다.

‘옳지. 좋아. 그래, 이 표정이지.’

얼떨결에 따라와 있던 기자는 영상을 두고 숙덕대는 의사들을 낫 놓고 기역 자도 모르는 얼굴로만 바라보고 있다가, 의사들의 표정을 보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찰칵.

그러곤 사진을 찍었다.

대충 아까 인터뷰했던 내용 중에 1등 관련한 것만 취합하고…….

같은 센터에 있는 세 의사가 환자 보는 데 얼마나 집중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 결과, 얼마나 황당한 질환까지 진단할 수 있는지를 보여 주면 될 것 같았다.

‘아니, 근데…… 우리 박 감독님…… 뭐 큰일이라도 있는 모양인데……?’

그렇게 무아지경으로 사진을 찍다가, 기자는 안쪽을 돌아보았다.

CT라는 게 원래 찍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는 건 아니지 않나.

이제 조영제 없이 찍는 영상은 이미 다 들어왔고, 지금은 조영 증강 영상을 찍는 중이었다.

저것도 그리 오래 걸리진 않을 터였다.

그런 생각을 하며 자세히 보니, 정작 감독은 별생각이 없어 보였다.

느닷없이 CT까지 찍게 된 마당이다 보니 조금은 겁도 먹을 만한데 무덤덤한 얼굴이었다.

‘무심한 인간이긴 하지…… 그래야 촬영 감독을 할 수 있기는 한데…….’

촬영 감독, 즉 카메라 감독이라고 하면 대개는 예술가스러운 모습만 떠올리기 십상일 터였다.

기자도 그랬다.

왠지 세심하고 섬세하고 예민하고 소중히 다뤄 줘야 하는 사람들일 것 같잖아?

물론 그러한 면이 없는 건 아니었다.

허나 그보다는 군인 같은 면모가 더 컸다.

무거운 장비를 착착 옮겨야 하고 또 세팅해야 해서만은 아니었다.

그걸 촬영 앵글에 따라 계속 바꾸고, 원하는 그림이 나오지 않으면 또 바꿔야만 했다.

지금이야 대충 인터뷰나 따러 와서 그렇지 돈 좀 쓰는, 그러니까 돈 쓰는 사람이 아주 그럴싸한 모습을 기대하는 영상에선 음향 및 조명 감독과의 소통도 해야 했고, 조연출을 비롯한 다른 스텝들을 굴려야 할 때도 많았다.

‘그중에서도 저 인간은 발군이지.’

묵묵히 일을 견딜 수 있을 것.

기자가 볼 때는 그게 촬영 감독의 가장 중요한 덕목인 거 같았다.

그 인내심이라는 하나의 덕목만 놓고 보면, 지금 CT실에서 무념무상의 얼굴로 누워 있는 저 양반이야말로 1등이었다.

“어…… 이거 정관인데. 우측 정관이요.”

“하아…… 정관에서 기인한 종양이라고?”

“흐음…… 제가 경험이 일천해서 그런데, 이런 종양이 있습니까?”

기자가 그렇게 촬영 감독에 대한 걱정을 이어 나가고 있는 동안에도, 세 의사는 연신 토의를 이어 나가고 있었다.

아까보다 더 열정적이었다.

수혁과 이현종은 방금 질문을 던진 안대훈을 바라보았다.

“아니, 나도 처음 봐. 수혁이는? 너는 좀 다르지 않니?”

“아뇨. 저도 처음 봅니다. 진짜 처음 봐요.”

“허어…… 대부님과 교수님도 처음 보는 경우라니…….”

무언가 영험한 느낌이 드는 호칭이 나오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진지한 분위기가 깨질 것 같지는 않았다.

아니, 기자에게 대부님이란 호칭은 딱히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처음 봐?’

태화의 교수 둘이 모였는데 처음 보는 케이스가 있어?

게다가 여기 통합진료센터 아닌가……?

잘은 몰라도, 김다현 태화 바이로 그룹 회장이 심심하면 이야기하는 의학의 미래에 이 센터가 끼어 있었다.

이것저것 섞인 잡탕으로 보는 건 아닌가 하는 느낌을 지우기 어려웠지만…….

하여간 그렇게 다양한 경험을 해 온 사람들을 우습게 볼 수는 없었다.

더욱이 그중 하나는 이현종이었다.

‘아니…… 이게 대체 뭔 일이래…….’

기자는 다시금 촬영 감독을 돌아보았다.

저 무던한 얼굴이 무너질 것을 생각하니까 가슴 한편이 아파 왔다.

“잠시만요. 정관에서 기인한다…… 그리고 복통을 일으킨다……. 스테로이드 복용력이 있고, 환자는 비만하죠.”

그때, 수혁도 환자를 돌아보았다.

같은 시야를 공유하고 있을 게 뻔했다.

허나 기자와는 바라보는 지점이 아예 달랐다.

그는 환자의 신체적인 특징, 그것만 봤다.

‘억측인데…… 이건.’

[네. 제 의견도 그렇습니다. 남성한테 자궁내막증이 생긴다는 게 말이나 되는 얘깁니까? 입 밖으로 내지 않은 게 천만다행입니다.]

‘그렇지……? 네 추론도 비슷한 거지?’

[네. 가능한 질환 중…… 저 비슷한 모양을 이루고 또 증상을 나타낼 수 있는 것이 자궁내막증인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이 환자는 에스트로겐을 섭취했다거나 하는 증거가 전혀 없어요.]

‘지방 세포에서 에스트로겐이 좀 나오긴 하잖아?’

[좀 나오는 것 정도로 자궁내막증이 발생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니. 그건 아냐.’

[그럼 그냥 입 다무시죠.]

처음엔 뭔가 그럴싸한 생각을 떠올린 줄 알았다.

머릿속에서 전깃불이라도 탁 튀는 느낌이 들었거든.

증상과 생김새를 봤을 때!

이건 자궁내막증이다!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동시에 우리 촬영 감독의 얼굴도 눈에 들어왔다.

저 험상궂은 얼굴에 부숭부숭한 털…….

‘그래, 아니지. 그럴 수가 없지.’

게다가 CT를 통해 물건도 정상적이라는 걸 확인하지 않았나?

자궁내막증이라니.

그런 소리는 안 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말이 안 되잖아?

그렇다면 대체 무엇인가 하는 고민이 생기긴 하는데…….

[어차피 저만한 덩이가 발견된 순간부터는 수술과가 관여해야 합니다. 떼고 보면…… 대충 뭔가 확인이 되지 않겠습니까?]

‘오, 그렇지. 왜 그 생각을 못 했지?’

[이게 내과 의사들의 한계죠. 무조건 내과적인 생각만 하는 거.]

‘너도 일종의 내과 의사 아니냐?’

[전 내과 의사 너머의 무엇이라고 생각하면 좋을 겁니다. 후후.]

혀가 긴데, 다시 말해서 바루다 이놈도 모른단 뜻이었다.

그러니 뭐 어쩌겠나.

“그래서, 뭐 같은데?”

“네, 교수님. 뭡니까?”

수혁은 자신을 무슨 기적 자판기라도 되는 양 바라보고 있는 둘을 돌아보았다.

저 눈에 담긴 기대감에는 단 하나의 거짓도 없어 보였다.

그렇게 보이는 것만은 아닐 터였다.

“후.”

그래서 좀 미안해졌다.

진심을 살포시 짓밟아 줘야 할 때가 왔으니.

“모르겠어요.”

“응? 변죽은 다 울려 놓고?”

“아니, 교수님…….”

자궁내막증이라는 말을 하는 것보다는 모르겠단 말이 나을 것 같아서 한 말인데, 비난이 좀 심했다.

특히 안대훈의 반응이 상처가 됐다.

너마저 이럴 수는 없는 법 아니냐.

해서, 수혁은 굳이 안 해도 될 말을 더했다.

“그…… 떠오르는 게 하나 있기는 한데, 아무래도 아닌 거 같아서.”

“응? 뭔데.”

“뭔데요, 교수님. 역시 그러실 줄 알았습니다.”

“아니, 그게 말하기는 좀 그래요.”

“음…… 모르나 본데…….”

“아니, 저는 믿습니다.”

바루다의 비난이 잇따랐다.

[자궁내막증이라는 말도 못 할 거면서…… 왜 그런 말을 하지? 빨리 그냥 저거 뭐야. 장준혁 부르죠.]

‘어, 그래야겠다.’

정당한 비난 같았다.

해서 화제를 돌리기로 했다.

“지금 교수님 수술 중이십니다.”

장준혁을 부르기로 했다, 이 말인데 아쉽게도 수술 중이었다.

아무리 빚을 지워 놓은 게 있어도 외과 사람들은 이럴 때가 문제였다.

수술 중이라는데 어떻게 부른단 말인가.

게다가 장준혁은 간담췌 파트다 보니 심각한 수술일 게 뻔했다.

당장 저번에 따라 들어갔던 환자도 췌장암이지 않았나.

듣자니 수술이 기깔나게 잘 되어서, 예후는 좋을 거 같다고 했지만…….

췌장암은 원래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게 반도 안 되는 법이었다.

나머지는 하늘에 달려 있었다.

“누구 부르지……?”

수혁은 나라 잃은 얼굴로 둘에게 물었다.

이현종은 김승규의 얼굴을 떠올렸지만, 금세 고개를 저었다.

어지간하면 마주치고 싶지 않은 얼굴 아닌가.

딱히 사이가 나쁜 것도 아닌데 그랬다.

본능적인 공포가 있었다.

“김승규 교수님이요.”

‘김승규에게 그런 공포도 없는 인간이 있을까?’ 하고 있는데, 그런 게 없는 인간이 손을 들고 나섰다.

안대훈.

그는 정말이지 일말의 두려움도 느껴지지 않는 얼굴이었다.

“아, 그렇네?”

양아들 이수혁도 비슷한 얼굴이었다.

“얘들아. 다른 교수도 많은데? 우리 병원에 외과 계열 교수만 수백 명이야.”

이현종이 말리려 했지만 별 소용은 없었다.

“아, 네. 김승규 교수님. 지금 혹시 시간 되세요?”

“어, 되지. 웬일인가?”

일단 김승규가 들떴다.

누가 환자 일 아니고 그냥 찾은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게 처음이라서 그랬다.

사실 처음인 것 같은 게 아니라, 진짜 처음이었다.

“아, 여기 환자 있는데. 혹시 수술해 주실 수 있을지 여쭤보려고요.”

실은 환자 얘기였다 보니 살짝 텐션이 죽기는 했지만…….

하여간, 그는 반쯤 날듯이 뛰어 왔다.

너무 신나서 웃으면서였는데, 방금 촬영 마치고 나온 촬영 기사가 갑자기 기도하기 시작했다.

‘주님…… 지금 제 앞에 사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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