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0화 갑자기요? (5)
“응? 다시 말해 봐.”
전화를 받은 촬영 감독의 아내는 영문을 모르겠단 목소리로 되물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일하러 나간다던 사람이 멀쩡한 목소리로 이제 곧 수술받는다는데 납득이 가겠나.
납득이 가면 그게 진짜로 이상한 일일 터였다.
“그게. 어…… 병원 왔는데, 선생님이 어디 아프냐고 해서.”
“보통 그러면 싸움이 벌어지지 않아? 수술 받는 게 아니라.”
“응응. 그렇지. 보통은 그렇지.”
근데 왜 이렇게 됐을까?
아내의 말을 듣다 보니, 이젠 환자가 된 감독도 좀 어이가 없었다.
대체 어쩌다 이렇게 됐지?
고개를 끄덕이며 대화해 나가던 찰나, 어느새 수술실 입구에 도착했다.
덜컹 하는 소리에 놀라 주변을 둘러보니 그랬다.
“어, 나 수술실이야.”
“아니, 진짜야? 너 어디 가서 낮술 하는 거 아니지?”
“낮술이라니…… 일하다 술 먹으면 다 잘려.”
“그건 그렇지. 근데…… 잉?”
“진짜라니까. 옆에 박 기자도 있어. 바꿔 줄게.”
“아, 네네. 형수.”
박 기자는 얼결에 전화를 받았다.
허나 기자답게, 그러니까 말하는 게 직업인 사람답게 나름대로 조리 있는 설명을 해낼 수 있었다.
“진짜구나.”
“네.”
“이 인간…… 응? 병원 가랄 때는 그렇게 안 가더니, 이렇게 갑자기 수술을 받아?”
“그…… 너무 화내지는 마시고요. 희소 질환 같아요. 들어 보니까.”
“희소 질환이 생길 만도 하지. 밤마다 스트레스 쌓인다고 그렇게 처먹는데 뭐가 안 생기겠어요?”
“저기, 그건 너무…….”
마치 어디가 아프면 컴퓨터 너무 많이 해서 그렇다는, 어머니들의 컴퓨터 만병의 근원론 같은 소리이지 않나.
물론 많이 먹으면 아무래도 비만이 될 가능성이 좀 크고, 비만이 여러 질환의 원인이 되는 것도 맞기는 한데…….
‘희소 질환이 생기는 건…….’
기자는 잠시 멍하니 있다가 해야 할 말을 했다.
“아, 형수. 전신마취로 수술한대요. 제가 보호자로 있긴 한데…… 오시는 게 좋지 않을까요?”
“안 그래도 지금 반차 내고 있어요. 하아, 이 인간.”
“아, 그리고 놀라지 마세요?”
“여기서 더 놀랄 게 있다고요?”
“정관 묶는다는데, 합의된 거예요?”
“아직 안 묶었대요?”
“네?”
“어쩐지, 뭔 놈의 병원이 새벽부터 사람을 부르나 했다!”
기자는 이건 또 뭔 소리냐는 얼굴로 촬영 감독을 바라보았다.
촬영 감독은 작게 ‘X됐다’라고 중얼거리다가, 전화를 끊어 버렸다.
“형?”
“아니, 뭐 그런 게 있어.”
“뭔…….”
“전에 우리 낚시 간 날.”
“어…… 어, 그날.”
“공식적으로는 그때가 수술받은 날이야.”
“응……? 아니, 이 사람이 이거…….”
기자뿐만 아니라 방금 마취 동의서를 받으러 온 마취과 의사 또한 세상에서 제일 한심하다는 눈으로 촬영 감독을 바라보았다.
당연하게도 주변을 에워싸고 있던 의사들도 그랬다.
‘이런 새끼도 결혼을 해서 애가 셋인데.’
김승규만 살짝 삐뚤어진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딱히 티가 나지는 않았다.
뭔 생각을 해도 일단 사람들이 어지간하면 보지를 않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하여간 촬영 감독은 번갯불에 콩 구워 먹는 듯한 기세로 마취 동의서 및 수술 동의서에 사인을 마치고 안으로 들어갔다.
“거참…… 겨우 자리 좀 비나 했더니…….”
“뭐라고 했지?”
“아니, 아닙니다.”
원래 이렇게 수술이 빨리 진행되는 건 드문 편이었다.
진짜 초응급 수술이라면야 또 모르겠지만, 이 환자는 딱히 응급은 아니지 않나?
당장이 아니라 시간을 두고 좀 천천히 봐도 될 소견이었다.
질환명도 모르면서 잘도 그런 소리 한다 싶을 수도 있겠지만.
그만큼 응급 수술이라는 건 툭툭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일단 마취과의 허락이 있어야 했는데, 예외 상황이 몇 가지 있었다.
산부인과에서 환자를 밀고 들어오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열어 주는 게 맞았다.
거기는 일단 생명이 둘이나 관여되어 있고, 산부인과는 예나 지금이나 피가 너무 많이 나는 과다 보니 실제로 초초응급인 경우가 많아서 그랬다.
‘김승규 교수님…….’
그다음 예외는 태화에만 있었다.
김승규.
이 양반이 열어 달라고 하면 과장이건 누구건 간에 별말 없이 그냥 열었다.
왜?
무서우니까.
원래 쉬어야 할 시간에 들어온 마취과 의사의 불만도 삽시간에 제압되었다.
“자, 그럼 환자분…… 마취합니다.”
그저 해야 할 일만 열심히 하기로 했다는 얘기였다.
“약 들어갑니다. 하나, 둘…… 네, 되었습니다.”
예전에는 마취가 무슨 일곱을 세야 한다는 둥 뭐 이런 얘기도 있었지만, 요즘 들어서는 별 의미 없는 말이 된 지 오래였다.
마취제는 점점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고 있었고, 거기에 더해 마취 기법도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고 있어서 그랬다.
순식간에 정신을 잃은 환자의 목에, 마취과 의사가 어렵게 어렵게 플라스틱 관을 꽂아 넣었다.
“와…… 숏넥(Short Neck)이네. 어렵네.”
살집이 좀 있는 환자다 보니, 목이 뒤로 완전히 꺾이질 않아서 애를 먹은 모양이었다.
물론 바루다를 탑재하고 있는 수혁이 보기엔 죄다 핑계였다.
‘거기서 살짝…… 2mm가량 밑으로 넣었으면 바로 들어갔지.’
[환자가 깨어나면 목 아프다고 하겠네요.]
‘응. 백퍼 긁었네.’
[거참.]
수혁 정도로 정밀한 조정이 가능한 사람에게는 정상적인 해부학적 구조를 가진 환자라면 누구나 어려울 것이 없어서 그랬다.
“그걸 낑낑대?”
“그러니까.”
물론 두 석좌 교수에게도 그랬다.
“그, 죄송합니다.”
“환자에게 죄송하다고 해야지.”
“네네.”
“이따 내가 확인한다?”
“네네.”
김승규는 이현종과 더불어 나무라면서도, 수술 준비는 빈틈없이 진행했다.
심지어 간 이식이 아닌데도 그랬다.
같이 들어온 펠로우와 레지던트가 잔뜩 긴장한 덕도 있었다.
‘망할…… 간 이식 이제 좀 할 만한가 했더니 이게 무슨…….’
‘하아…… 김승규 교수님이 왜 이런 수술을 하냐고…….’
루틴으로 하는 수술도 어려웠다.
일단 얼굴이 너무 무섭기도 하고…….
성질이 솔직히 좋은 편도 아니고…….
게다가 수술을 잘하는 인간이다 보니 속도가 빠른 편이었다.
심지어 거기서 더 늘고 있고, 또 이런저런 술식의 변화를 자꾸 시도하고 있어서 더더욱 어려웠다.
‘아…… 신이시여…….’
‘아…….’
근데 일상적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족보에도 없는 수술을 하게 생겼지 않나.
심지어 비뇨기과 조인트 수술이었다.
집도의가 김승규만 아니었다면.
아니, 김승규가 들어온 상황만 아니었다면 욕이라도 시원하게 내뱉었을 터였다.
“준비가 빠르네?”
“그러니까요. 정예인가.”
“저쪽도 주력이 있겠죠. 어디 얼마나 잘하나 볼까요?”
게다가 외과 계열 의사들만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싶은 게, 이현종과 이수혁, 안대훈까지 들어와 있었다.
일명 통합진료센터 트로이카인데, 좋은 뜻으로 불리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뜻도 있었다.
다 또라이지 않나.
‘하아…….’
‘내가 뭘 잘못했다고…….’
두 에이스는 한숨을 쉬면서도 정말이지 빠르게 수술 준비를 마쳤고, 가우닝(복장 착용)까지 마친 채 자리에 맞춰 섰다.
아래는 비뇨기과, 위에는 외과가 맡아서 들어가는, 절개를 두 개나 넣고 진행하는 수술이었다.
쉬울 리가 없었다.
“자, 그럼…… 복강 탐색술 및 미상의 종양 절제술 시작합니다.”
“비뇨기과는 우측 정관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이는 종양 탐색술 및 절제술 시행합니다. 정관 수술도 같이 진행할 거고…… 필요 시 수술 확대될 수 있습니다.”
두 집도의가 각기 보조로 들어온 간호사에게 수술명을 확인받고는 서로 눈을 맞추었다.
“그럼…….”
“해 보죠.”
그렇게 수술이 시작되었다.
방금 말한 것처럼 수술이 양쪽에서 진행되고 있다 보니, 보는 사람들도 정신이 없었다.
특히 뭐가 뭔지 모르겠는 내과 의사들에게는 더더욱 그랬다.
수혁마저 그랬으니 말 다 한 셈이었다.
“음…….”
허나 그것도 잠시였다.
[오, 잘하는데?]
‘확실히 김승규 교수님이 달라. 그에 비하면…….’
[이거 처음 본다고 했을 때부터 제가 알아봤습니다.]
‘응, 뭔가 좀…… 딱 뭐라고 짚기가 그런데…….’
[백강혁은 이렇게 하지 않았을 겁니다.]
곧 적응한 수혁은 백강혁이라 하는 거의 전설이 되어 버린 사상 초유의 외과 의사를 레퍼런스 삼아서 두 의사의 수술을 평가하기 시작했다.
“호오…….”
한석준이야 대체 이 소음이 뭔가 싶었지만, 김승규는 대번에 알아먹었다.
‘드디어 시작인가.’
이것이야말로 장준혁 교수가 말했던 호오음 리듬 게임일 터였다.
‘아니, 근데…….’
두근거리는 심장은 잠시였다.
이내 이상이 있다는 걸 알아차려서 그랬다.
뒤를 슬쩍 보니, 과연 수혁은 양쪽을 번갈아 가면서 보고 있었다.
그 말은 곧 호오음 리듬 게임에 참여자가 하나 더 있다는 말이었다.
소리만 들어서는 도저히 게임을 플레이할 수가 없었다.
‘아…….’
처음엔 그랬다.
당연한 일이었다.
소리만 듣고, 내가 하는 걸 보며 낸 소리인 거라 어찌 알 수 있겠나.
그렇게 생각하고, 반쯤 포기한 채로 수술을 진행하고 있으려니, 어쩐지 점점 알 것만 같은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호오.”
‘그래, 지금. 지금 이건 완벽했지.’
전적으로 수혁과 바루다 덕이라 할 수 있었다.
정말이지 너무도 정확한 타이밍에 소리가 들려왔다.
“으음……”
‘그래, 이번엔 나도 좀 긴가민가했어. 그럼 이렇게……?’
“오.”
‘좋아.’
칼질에 따라 들려오는 소리.
그 소리를 최대한 오 또는 호오로 맞추려다 보니, 칼질이 점점 더 빨라지기 시작했다.
‘아…… 뭐야.’
‘왜 빨라져.’
보조하는 입장에서는 정말이지 죽을 맛이었다.
어찌 이리 수술이 빠를 수 있단 말인가.
루틴도 아니다 보니, 다음에 뭘 할지 예상도 안 되는데.
그렇다고 이해해 줄 사람이냐?
그럴 리가 없었다.
전형적인 천재 스타일이다 보니, 못 하는 것 자체를 거의 이해하지 못했다.
‘아니…… 왜 간 이식보다도 빨라?’
‘이게 대체…… 선생님. 이게 무슨 일…….’
‘나라고 알겠냐?’
‘아…….’
그렇다고 해도 오늘은 좀 심했다.
신바람이 나 있나 싶을 정도로 손이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아니, 이 양반이 약을 빨았나.’
조금 뒤늦게, 한석준도 발동이 걸렸다.
집도를 하는 사람은 모를 수가 없을 정도로 노골적인 리듬 게임이라 그랬다.
부아아아앙.
보조로 들어와 있는 모두의 귓가에 이런 소리가 들리는 듯한 기분이었다.
망할 새끼들이 처음 보는 종양이네 어쩌네 했던 주제에 이렇게 빨리해?
고속도로야?
아우토반이야?
수술방에 제한 속도 표시판이라도 가져다 놔야 하나 싶은 순간, 김승규가 입을 열었다.
“이쪽은 박리 끝났어. 주변과 분리가 잘 되는 걸로 볼 때……일단 악성은 아닌 것 같은데.”
“네, 이쪽도 끝났습니다. 정관만 묶으면 됩니다.”
“그럼 자른다?”
“네, 제가 먼저요. 그러면 그냥 당겨서 뽑으면 될 겁니다.”
“아, 그렇군.”
“네.”
수술이 끝났다.
톡 하는 소리와 함께, 정체불명의 종양이 환자의 배 밖으로 빠져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