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911화 (911/1,303)

911화 갑자기요? (6)

종양의 크기는 영상에서 확인한 것처럼 꽤 컸다.

대충 성인 주먹보다 살짝 큰 정도?

물론 정작 종양을 꺼낸 김승규는 장갑을 따로 주문해서 껴야 할 정도로 손이 큰 사람이다 보니 상대적으로 훨씬 작아 보이긴 했지만.

적어도 외과 계열 사람들은 이미 경험으로서 착시를 극복한 지 오래다 보니 순수하게 놀랄 수 있었다.

“이게 뭘까요……?”

“그러니까요.”

펠로우와 레지던트 4년 차, 둘 모두 종양으로부터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사람 배라는 곳은 정말이지 상상 가능한 모든 것이 발생할 수 있는 곳이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는 둘이었다.

기상천외했던 수술?

태화 의료원 정도로 커다란 병원 외과 의사가 마음먹고 이야기보따리를 풀면 하룻밤 가지고는 모자랄 지경이었다.

허나 그런 둘도 이런 건 처음 보았다.

“테라토마(다양한 세포·조직으로 이뤄진 기형 종양)라고 하기에는 위치가 좀 이상한데…….”

“그러니까요.”

비록 발언권이 극히 제한되어 있는 나머지, 모든 말에 대한 답을 ‘그러니까요’만 하고 있는 레지던트마저도 흥미롭다는 기색을 지우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 봐야 김승규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지나온 세월이 얼마나 길던가.

나이도 이현종보다 2살 많은 그는 정년이 지난 지도 2년째였다.

이현종이 올해 말해 정년이니, 그럴 수밖에.

석좌교수라 계속 일하는 것인데…….

‘나도 처음 보네.’

그는 신기하다는 얼굴로 종양을 집어 들었다.

수술방에서 너무 여유 넘치는 거 아닌가 싶을 수도 있는데, 지금은 그래도 됐다.

수술이 워낙 깔끔하게 잘된 덕에 피도 거의 안 났고, 사실 종양 자체가 이상한 거지 중한 환자는 아니었기에 여기서 얼마간 꾸물거린다 해도 괜찮다 이 말이었다.

“으음…… 메스 줘 봐.”

“아, 네.”

한석준 또한 하던 것을 멈추고, 종양 쪽으로 올라왔다.

그 사이 김승규는 철제로 된 판 위에 종양을 올려다 놓았다.

“일단 자 대고 사진 찍어.”

“네.”

펠로우는 김승규랑 하루 이틀 함께해 온 사람이 아니었다.

사실 김승규랑은 그냥 하루만 지내도 어느 정도 눈치껏 행동하게끔 되어 있는데, 심지어 경험까지 있으니 얼마나 잘하겠나.

그는 이미 일회용 덧장갑을 낀 채 외과에서 주로 쓰는 DSLR를 들고 대기 중이었다.

레지던트는 가로, 세로, 그리고 너비까지 잴 수 있게 자를 사진 찍을 때마다 딱딱 대주었다.

‘와…….’

‘우린 저렇게까지 보조해 주진 않는데.’

‘제가 애들 갈궈 보겠습니다.’

‘아니, 그럴 필요는 없이. 우리는 수술하는 과가 아닌데.’

‘그러니까. 그래도 부럽긴 하네. 역시 김승규 얼굴이 깡패야.’

‘그건…… 그건 저도 인정입니다.’

병원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조직처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모습이 대단히 인상적이었다.

무엇보다 눈에 들어오는 건 사진이 찍히는 동안 내내 칼을 든 채 옆에서 손가락을 까딱거리고 있는 김승규였다.

설마하니, 저걸로 동의 없이 칼질을 한 적은 없겠지만…….

비주얼만큼은 생애 단 한 번도 동의를 구한 적 없을 것만 같았다.

“다 됐나?”

“네.”

“그럼 잘라 보자.”

“네.”

하여간 사진을 다 찍자마자, 김승규는 칼로 종양을 반으로 갈랐다.

지이익 하는 소리와 함께 큼지막했던 종양이 딱 절반으로 갈라져 나왔다.

과연 김승규다 싶을 만큼이나 깔끔한 절개였는데, 이 순간만큼은 수혁마저도 절개보다는 종양 자체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갈라 보니 낭성 종양(안에 무언가가 들어찬 주머니 형태의 종양)인 듯했다.

낭종이라고 딱 잘라 말하기에는 껍질 두께가 상당했지만, 안쪽에 고여 있던 갈색의 탁한 액체가 나오는 것을 미루어 보면 그랬다.

‘으음…….’

[으음……’.]

어디서 많이 본듯한 광경이기도 하고, 또 그렇지 않기도 했다.

낭성 종양이야 워낙에 흔한 거 아닌가.

하지만 종양의 위치, 기인한 조직을 감안해 보면 좀 이상했다.

특히 애초부터 영 이상한 것을 의심하고 있던 수혁과 바루다가 보기엔 더더욱 그랬다.

‘저…… 갈색 액체…… 염증으로 인해 생성된 것으로 보이는데…….’

[일반적인 자궁은 열린 공간이니 저렇게까지 모이진 않습니다만…….]

‘아, 내 눈에 뭐가 씌였나. 왜 자꾸 나는 저게 자궁내막증처럼 보이지?’

[수혁 때문에 제 눈에도 뭐가 씌였나 봅니다. 아무리 알고리즘을 돌려도 가장 가능성 있는 질환은, 자꾸 자궁내막증으로만 보입니다.]

갈색의 액체도 좀 그런데…….

그 액체 사이로 드러난 붉은색의 점막, 즉 종양의 안쪽 점막의 모양새도 이상했다.

아무리 봐도 저게…….

“이게 뭐야?”

“모르겠습니다.”

“테라토마는 아닐 거 같긴 했는데. 진짜로 아니니까 당황스럽네.”

혼란스러운 것은 수혁과 바루다만이 아니었다.

좀 다른 이유에서였긴 한데, 하여간 ‘뭐야 이게?’ 하는 생각이 모두의 머릿속에 자리하고 있었다.

망할.

대체 이게 진짜 뭐란 말인가.

“흠…… 정말 아무것도 없네요?”

“그러니까요.”

테라토마.

기형종이라고도 불리는 종양인데, 이를테면 그냥 체내 모든 조직이 생길 수 있는 종양이라고 보면 되었다.

그리고 갈라 보면 꼭 이런 액체가 나오기도 했는데, 차이가 있다면 안에 있는 조직이 균일할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어떨 땐 종양 안에 이가 생기기도 하고, 털도 있고 할 지경이니 뭐.

그에 반해 이 종양의 내부는 균일하기 짝이 없었다.

“일단…… 병리과에 보내 봐야지, 뭐. 누가 갈래.”

김승규는 방 안을 둘러보았다.

역시나 눈치 빠른 펠로우의 신호로, 미리 들어와 있던 인턴이 슬그머니 손을 들었다.

허나 그의 눈에 들어온 이는 전혀 생각지 못한 엉뚱한 사람이었다.

“이수혁 교수……?”

“네. 어차피 마무리하는 거야 뭐 늘 하는 거 아닙니까?”

“그건…… 그렇지.”

아쉽긴 했다.

이 인간의 리듬 게임, 나름 재밌었거든.

난이도가 너무 쉬워서 아쉬울 지경이었는데…….

‘간 이식 때 부르면 진짜 대박이겠어.’

오늘은 그냥 가능성을 봤다는 데 만족해도 나쁘진 않을 것 같았다.

말마따나 이런 절개를 닫는 건 딱히 김승규까지 나설 것도 없지 않겠나.

펠로우 아니라 레지던트 4년 차만 되어도 기깔나게 닫을 수 있었다.

“그리고, 제가 그렇지 않아도 의심하고 있는 질환이 있는데 한번 물어보기라도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오, 어떤?”

“자궁내막증이요.”

“응?”

김승규는 환자의 얼굴을 돌아보았다.

보통 간 이식에서는 얼굴은커녕 목 위로는 완전히 드랩을 덮는 것으로도 모자라 위로 펼쳐 놓기까지 해서 별 소용 없는 짓이었겠지만.

이 환자는 아니었다.

멀쩡히 얼굴이 보였다.

마취된 채로 누워 있는, 털이 부숭부숭한 얼굴이.

나름 얼굴에 대한 편견을 줄이고자 평생 노력해 온 그였지만, 이건 남자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그…… 환자는 남자야.”

아니, 그전에 남자 그것도 달려 있잖아.

방광 뒤에 자궁도 없었고.

절제술이 되어 있다기엔 깨끗했다.

아무 흔적도 없었다고.

“네, 저도 그래서 아직 말씀드리지 못한 건데…… 종양 소견까지 보고 나니까 확실히…… 흠.”

“음.”

“그래서, 제가 가서 면역 염색 의뢰를 좀 해 보려고 합니다.”

“아, 그래. 그런 생각이라면 뭐…… 그래.”

김승규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전에 치매 환자는 뭐 이해가 되었던가?

‘황당한 인간이잖아, 저거.’

아니, 리듬 게임이 가능하다는 것부터가 어이가 없었다.

이 수술의 난이도가 별거 아니다 보니 긴가민가한 상황이긴 했지만.

확실히 잠깐 백강혁을 느꼈더랬다.

그 인간에게 배우면 도움이 될 거란 사실 정도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도 생각만 해도 팔뚝에 오소소 소름이 돋아나는데, 어찌 그럴 수 있을까.

‘백강혁 대체 리듬 게임이라……? 이거 유행할 수도 있어.’

확실히 그 후로 장준혁 실력이 꽤 늘었다.

수혁이 직접 들어와서 리듬을 맞춰 주던, 진짜 미쳐 돌아가던 수준의 수술까지는 아니더라도 확실히 벽을 깼구나 싶을 정도로 늘어 있었다.

어느 정도냐면…… 휘플 수술(췌장암 수술)이 있는 날에도 감히 정규 수술을 하나 더 넣을까 말까 고민할 수 있을 정도였다.

베테랑 외과 의사들도 휘플 수술이 잡힌 날은 저녁은커녕 일말의 잠도 포기해야 한다는 걸 감안하면 실로 어마어마한 실력 향상이었다.

드르륵.

그렇게 김승규가 애써 자궁내막증이란 황당한 진단명을 납득하고 있는 사이, 수혁은 철판 위에 종양을 둔 채로 밖으로 나왔다.

그 뒤를 이현종, 안대훈이 따랐다.

둘이라고 해서 자궁내막증이란 진단명에 꽂히거나 한 건 아니었다.

다만 수혁 없는 수술방에 굳이 있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했을 뿐이었다.

‘발걸음이 묘하게 들떠 있는 걸 보면 나름대로 확신은 있는 것 같은데…….’

‘교주님께서 틀릴 리가 없지. 대부님도 봐. 확신을 가지고 있잖아.’

둘은 수혁을 따라가면서, 이상한 이유를 들어가며 자궁내막증을 이해하려 애썼다.

물론 수혁은 남들의 생각은 이제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

처음엔 좀 그렇긴 했지만.

종양의 모양을 보고 나니…….

‘이거 만약 맞았으면 잘난 척 100년 감이었는데, 아쉽네.’

[틀렸으면 쪽팔림 1년 감 아닐까요?]

‘그러니까. 베팅하기 딱 좋은 숫자 아니냐.’

[그건…… 모르겠군요. 베팅이라는 단어에서 벌써 거부감이 딱 듭니다.]

어쩐지 맞을 것 같기도 했다.

말도 안 되는 바람이긴 했다.

진단이라는 건, 특히 종양에 대한 진단이라는 건 병리과의 컨펌을 받아야 하지 않나.

현미경만 들이댄다고 해서 진단이 막 되는 것도 아니었다.

극도로 발달한 현대 의학에서 확진이라는 단어를 듣고 싶으면, 면역 염색 정도는 해 줘야 했다.

괜히 병리과라는 과가 따로 떨어져 나와 있는 게 아니란 얘기였다.

똑똑.

하여간 수혁은 병리과 검체 접수를 위해 마련된 작은 창구가 아니라, 수술실 밖에서만 들어갈 수 있는 문을 두드렸다.

어련히 시일 되면 답을 주는 곳이 병리과였기에, 이런 식으로 미리 찾아오는 사람들은 대개 뭣도 모르는 놈들이거나 진상이거나…….

‘아, 이수혁이네.’

한숨을 쉬면서 돌아가라는 말을 하려 했던 직원은 그냥 입을 다물고 문을 열었다.

뒤에 있던 사람들은 보지도 못한 채였는데, 따라붙는 꼴을 보니 과연 열어 주길 잘했단 생각이 들었다.

-아니, 네가 감히 내 아들의 요청을…….

-불경하도다! 이 독사의 자식들아!

전개가 뻔하지 않나.

개새끼들.

한 가지 좋은 건, 별도의 안내가 필요치 않다는 점이었다.

어찌나 함부로 왔다 갔다 했는지, 안내해 주지 않았는데도 검사실로 직행이었다.

“어…… 아, 이수혁 교수님.”

게다가 교수들도 뭐라고 하질 않았다.

말은 안 하는데, 한 명은 암만 봐도 신도였다.

수혁이 함께 찍힌 몰타 십자가 사진을 국제 병리과 학회에 출품하기도 하지 않았나.

이건 병리과 사진이 아니라 종교적인 의미가 있는 거 아니냔 비난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랑곳하지 않았다.

지금도 봐라.

쩔쩔매면서 안내하고 있잖아.

아마 뭘 요구하건…….

“네? 42세 남자 환자한테…… 자궁내막증이 의심된다고요?”

하지만 직원의 예상은 빗나갔다.

수혁이 입을 열자, 교수는 고개를 모로 돌린 채 이현종과 안대훈을 바라보았다.

드디어 그날이 온 거냐는 얼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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