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913화 (913/1,303)

913화 더 커진 센터 (1)

의사 커뮤니티 말고, 그러니까 일반적인 커뮤니티의 반응이야 당연히 좋을 수밖에 없었다.

태화 측에서 심어 둔 바람잡이들도 있을뿐더러 이미 여러 차례 비슷한 류의 바이럴을 돌려와서 그랬다.

게다가 수혁을 비롯한 세 의사는 어떻게 봐도 좀 순수해 보이지 않나.

진짜 환자밖에 모르는 바보들이었다.

미디어에서 만들어 낸 그런 모습이 아니라 진짜로 그래서, 기사는 더더욱 어그로를 끌고 있었다.

-남자한테 자궁내막증이 있다고……?

-내가 해부를 잘 몰라서 그렇긴 한데 남자한테도 자궁이 있냐?

-아니, 없을걸.

-근데 그걸 어떻게 진단을 한 방에 해?

-그러니까 천재라는 거 아닐까?

-하긴…… 의대 들어간 것부터가 일단 수재라는 건데 거기에 전문의 시험 만점으로 수석이면…….

-저 센터는 뭐 하는 곳이길래 저런 인재들만 가?

-통합진료센터라는 곳이래! 외국에서도 진료 의뢰하고 그런다던데?

좀 티 나는 댓글들도 있긴 했지만 하여간 반응이 좋았다.

의사 커뮤니티에서는 반발이 좀 있긴 했지만, 사실 의사들 보라고 낸 기사도 아니니 상관없었다.

게다가 진짜 최전선에서 활동하는 의사들은 이미 수혁과 이현종은 알고 있었기에, 그쪽에서는 오히려 반발이 없었다.

군의관 커뮤니티에서도 김인수 등의 활약으로 반응이 점점 좋아졌다.

젊은 의사들 중, 특히 내과 의사들 중에서는 수혁의 팬들이 워낙 많다 보니 가능한 일이었다.

물론 애매하게 수혁과 비슷한 그레이드(학년)인 사람들이 질투를 좀 하긴 했지만, 질투도 엇비슷해야 유지할 수 있지 않겠나.

“와…… 환자가 진짜 늘었네.”

“전문의 시험 수석이 그렇게 대단한 일인가……?”

“그러게요. 오히려 안 좋게 보던 때도 있지 않았습니까?”

그 결과, 태화 통합진료센터는 그야말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각지에서 몰려드는 환자 때문에 몸살을 앓고 있다, 이 말이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다른 과에도 환자가 몰리고 있었다.

아무래도 아무 환자나 받아 주는 데가 아니다 보니 튕겨 나오는 환자들도 많을 수밖에 없지 않겠나.

그런 이들 중 갑갑증이 도진 사람들이 ‘태화 내에서 의뢰가 들어가면 얼굴이라도 볼 수 있지 않겠나’ 하는 기대를 품어서 그랬다.

실제로 그럴 가능성이 있기도 해서, 태화의 환자가 전체적으로 2~30%가량 늘어 버렸다.

“아이고…… 첫날부터 장난이 아니네…….”

김인수, 장종우는 현재 군의관이었다.

군의관의 군 복무 기간은 3년 2개월이기 때문에, 3월부터 들어올 수 있는 게 아니라 5월턴으로 들어와야만 했다.

그래서 3월 2일 현재 센터에 출근한 사람은 이현종, 이수혁, 안대훈 그리고 김성진 이렇게 넷이었다.

그중에서 나머지 셋은 원래 이곳에 있었기 때문에 첫 출근을 하게 된 사람은 김성진뿐이었다.

‘와아…… 머리가 새하얘지는데……?’

그래서 그런가, 더더욱 정신이 없었다.

세상에…….

이렇게 환자가 많을 수 있단 말인가.

시장통 같았다.

심지어 이게 다 일반적인 환자인 것도 아니었다.

죄다 의뢰해서 온 환자들이었고, 그중에서도 선별된 환자들만 있었다.

“좋아. 일단 쭉 볼까.”

“네.”

“좋지. 심장 쪽 주소로 온 사람은 나한테 넘기고…… 김성진 선생! 뭘 그렇게 두리번거리고 있어. 자네는 이쪽으로 와서 봐!”

“아, 네네!”

해서, 김성진은 이현종의 말마따나 이리저리 두리번거리고만 있었다.

그러다 큰소리를 듣고 나서야 이현종에게로 향했는데, 센터 내에는 놀랍게도 진료실도 있어서 그 안으로 들어가야 했다.

수혁도 그랬다.

“대훈아, 준비됐지?”

“네.”

“좋아. 일단 의뢰서부터 보고…… 급해 보이는 환자들부터 보는 거다.”

“네.”

물론 외래는 아니었기 때문에, 환자들은 온 순서대로 들어가는 게 아니라 급한 대로 들어가게 되어 있었다.

불만이 살짝 터져 나올 만도 한 상황이었으나 의외로 꽤 조용했다.

사실 다른 과 병실에서 기다리라고 했는데도 무작정 내려온 이들이 많아서 그랬다.

아니, 아직 본격적으로 콜을 하지도 않은 상황이었다.

그저, 환자들이 마치 예전 예수님이 마을로 오셨다고 하면 몰려오던 병자들처럼 쭉쭉 몰려왔을 뿐이었다.

“2살…… 아기가 와 있네. 만으로 2살이니까 대략 4살 정도 되었을까?”

“횡문근육종(근육에 생기는 암)으로 진단이 되었습니다.”

“그게 아닐 수도 있다, 뭐 이런 건가?”

“아뇨. 진단은 병리과에서 최종 컨펌받았습니다.”

“그럼 그건 확진인데.”

수혁은 고개를 털었다.

병리과에서 슬라이드 보고 진단된 케이스가 뒤집어진 경우도 있었던가?

있을 수는 있었다.

결국, 병리과도 사람이 하는 일이긴 하니까.

하지만 대형 센터에서 이루어지는 일에 실수가 있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사람에게만 의지해서 일을 굴리는 게 아니라, 시스템으로 하는 감시 또한 병행하고 있어서 그랬다.

“그걸 바꾸자는 건 아닌 거 같습니다. 아, 이미 CCRT(항암 방사선요법) 시행하고 1년 정도가 지났습니다.”

“그럼 지금은 경과 관찰 중일 텐데…… 여기 왔다는 건, 재발이 의심된다는 거구나.”

환자가 확 몰리다 보니 태화 의료원은 물 들어올 때 노 젓자는 마인드로 입원한 환자에 한해, 담당 의사 판단만으로 통합진료센터에서의 협진을 한시적으로 허용하고 있었다.

당연히 이현종이 그냥 받아들일 수는 없는 조건이었다.

신현태도 알고, 김다현도 알고 있는 상황이기에, 그에 따른 당근이 주어졌더랬다.

-내년 센터에 사람 더 뽑죠.

병원 입장에서 해 줄 수 있는 것 중에 제일 큰 당근이었다.

사실 예산도 많이 주면 많이 줄수록 좋기는 한데, 센터 만든 지 얼마나 됐다고 설비를 또 들이겠나.

갈아 넣을 인력이 더 중요했다.

수혁도 동의했던 터라, 딱히 화를 내거나 하진 않았다.

아니, 사전에 동의하지 않았다 해도 수혁은 일단 환자를 보기 시작하면 화를 낼 수 없는 사람이었다.

딱 환자에게만 집중할 수 있는 인간이라 그랬다.

“폐…… 음.”

이미 환자 영상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엑스레이부터가 작았다.

어른이랑은 모양도 확연히 달랐다.

흉곽은 작고, 그에 비해 커다란 심장 등.

네 살인 것에 비하면 사진 자체는 잘 찍었지만 이러한 연유로 인해, 판독은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양측에 결절성 병변이 보이는데…… 일단 폐렴으로 생각하고 항생제 치료를 이 주간 진행 중입니다.”

“이게 치료하고 중간에 찍은 거지?”

“네.”

“호전은커녕 더 커졌네.”

“네. 그래서 아이 부모님에게 재발을 고려해야 한다는 말도 넌지시 한 모양입니다.”

“하.”

횡문근육종.

쉽게 말하면 근육에 생기는 암이었다.

무슨 네 살짜리한테 암이 생기나 싶기도 하겠지만, 소아암 병동에 가면 생각보다 너무 많은 아이들이 있어 놀랄 터였다.

‘그게 재발을 한다……?’

[잘 봐야겠군요.]

‘그래야지. 부모님들 억장이 무너질 텐데…….’

[문제는 현재로선…… 재발했을 가능성이 그렇지 않은 것보다 커 보인다는 점입니다.]

‘응, 나도 그렇게 생각하긴 하는데…… 다른 가능성도 있긴 있어. 여긴 미국이 아니니까.’

[아, 그 질환입니까?]

소아암.

이름만 들어도 끔찍하지 않나.

제아무리 의사들이 나쁜 소식 전하기를 훈련받는다고 해도, 이 진단명을 부모에게 전달할 때만큼은 익숙해진다는 느낌을 전혀 받을 수 없었다.

아니, 오히려 더더욱 힘들어지기만 했다.

원래 공포와 같은 부정적인 감정은 학습이 되기에 그랬다.

-왜……!

-안 돼…… 안돼안돼안돼. 안 됩니다, 선생님.

숫제 절규하는 부모를 보면서, 어떻게 마음에 그 모습의 한 조각이라도 담지 않을 수 있겠나?

사람이라면 도저히 그럴 수 없는 법이었다.

문제는 의사는 다음을 피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병원에서 나온다면야 모를까 소아과 전문의. 그중에서도 암 전문 교수가 된 마당에 어찌 그럴 수 있겠나.

‘이건 아무래도 담당 교수님……의 희망도 담겨 있는 것 같은데.’

[일단 보죠. 가능성이 있기는 합니다.]

‘그래, 있지. 있긴 해.’

수혁과 바루다가 떠올린 질환은 결핵이었다.

결핵.

이른바 개발도상국형 질환이란 오명을 뒤집어쓰고 있는 이 병은, 인류의 역사와 함께해 온 아주 유서 깊은 병이었다.

대한민국에서도 창궐했던 적이 있었는데, 이 치료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크리스마스 씰을 만들어 발행했을 정도였다.

지금은 나라가 잘살게 되었고 또 유병률도 줄어서 씰을 대대적으로 판매하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호발하는 국가 중 한 곳이긴 했다.

북한과 중국 등 가까운 나라에서는 아직도 결핵이 창궐하고 있어서 그랬다.

“결핵에 대한 검사로 진행한 게 있나?”

“네? 아, 네. 객담 ATB(결핵균 검사)는 음성이었고, 환자는 결핵 진단을 받은 사람과의 인접 병력이 없었다고 쓰여 있습니다.”

“흐음.”

그렇다 보니 대한민국 의사들은 다른 주요 선진국 의사들에 비해 결핵에 대한 경각심이 어마어마한 편이었다.

소아과에서 결핵에 대한 검사를 이미 실행한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할 지경이었다.

‘결핵은 꽝이라고 해서 진짜 꽝이 아닐 수도 있는 질환이지.’

상식적으로 결핵이 아니라고 보는 게 옳아 보이는 상황이긴 했다.

[네? 검사에서 아니라고 나왔으면…… 일단 아니라고 보는 게 맞죠.]

‘아니, 아냐. 일단 결핵이 맞다는 가정을 하고 추론해 보자고.’

[그런 게 어딨습니까?]

‘내가 그러길 바라니까. 애는…… 애가 아픈 건 좀 그렇잖아?’

[아픈 데 애, 어른의 구분이 있는 겁니까?]

바루다는 이해할 수 없었다.

수혁이 비합리적인 추론을 억지로 진행하려는 저의를 알지 못했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수혁이 간절히 원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오랜 세월 수혁과 함께해 온 바루다였기에, 이걸 알아내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없지. 그래도, 그렇게 해 보자고.’

[뭐…… 알겠습니다. 어려운 일은 아니죠. 지금부터 바루다는 환자가 결핵이라고 상정한 채로 추론하겠습니다.]

‘좋아.’

그리고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수혁에게 한 번쯤 져 주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았다.

묘한 쾌감마저 들었다.

말도 안 되는 짓을 하고 있다는 생각.

이게 어쩌면 소위 말하는 ‘인간 다운 행동’인가 싶기도 했다.

딱히 인간처럼 되고 싶다는 욕망은 없었지만, 이해하게 되면 진단에 도움이 될 것 같기도 했다.

“환자 사진 좀 보자.”

“네? 아, 네.”

수혁은 대훈이 함께 있다는 것을 자각하고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이제야말로 대훈을 수제자로 키워야 할 시점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해서 일단 사진을 같이 보기 시작했다.

“결절은 양측에 균일하게 자리하고 있어. 확실히 처음에 폐렴으로 본 것이 합리적이란 생각이 들 정도로…… 전이랑은 양상이 좀 달라.”

“아, 네. 그렇습니다. 결절 형태를 띠고 있기는 하지만…… 전이로 인한 결절과는 모양이 좀 다릅니다.”

“하지만 항생제에는 전혀 반응이 없지.”

“네. 진균 치료도 고려하고 있지만…… 사실 진균성 폐렴하고는 양상이 너무 달라서 가능성은 없어 보입니다.”

“그래, 그렇지. 지금으로서는 전이일 가능성이 커 보이는 게 사실이야. 하지만 그건 너무 불행한 일이잖아? 그러니까 결핵이라고 생각하고 보자. 결핵임을 뒷받침하는 증거를 찾아봐.”

“아……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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