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6화 예민한 진료 (1)
“아. 결핵……이군요.”
대훈의 말에, 환자를 향하려 했던 수혁이 다시 대훈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곤 방금 슬라이드로 보았던 것을 사진을 찍어 컴퓨터 모니터에 띄워 놓았다.
아무리 통합진료센터가 돈이 많다고 해도, 병리과만 한 설비를 갖추어 놓을 수는 없는 법 아닌가.
해서 실시간으로 볼 수는 없었다.
지금과 같은 방식이 최선이었다.
“그래. 여기 보면, 폐실질 조직에 결절 구조로 구성된 육아종의 집합이 있지. 염색을 해 봐야 더 정확히 보이긴 할 테지만…… 급한 대로 이렇게 확인해도 그렇게 보이긴 하지?”
“네. 이런 식으로 육아종의 집합을 이룬다면…… 확실히 결핵이겠군요.”
“응. 아이가 아직 어리고 면역이 약하기 때문에…… 이걸 이대로 방치하면 사실상 암이나 마찬가지야. 폐를 잡아먹힐 공산이 커. 물론…… 그 전에 절제 수술을 진행하긴 했을 텐데, 그 때문에라도 치료가 뒤로 쭉쭉 밀리게 될 테니 어느 쪽으로든 좋진 못하지. 그리고…….”
수혁은 말을 하다 말고 현미경 쪽으로 돌아서선 배율을 조정했다.
쭉 땡겼다 이 말이었다.
그러곤 사진 하나를 더 찍어서 모니터에 옮겨 주었다.
그러자 방금 전까지는 그저 육아종의 집합으로 보이던 것의 구체적인 모양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 환자분. 죄송합니다. 잠시만…….”
“네네.”
수혁은 모니터를 보려다 중간에 눈에 띤 환자에게 양해를 구하곤 대훈에게 말을 이어 나갔다.
사실 응급 질환은 아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애초에 응급한 상황이면 응급실에 가야지, 여기서 이러고 있겠나.
제아무리 통합진료센터에 대한 선호도가 미쳐 날뛰는 중이라곤 해도, 태화 의료원의 자체적인 시스템이 이를 허용할 수 없을 터였다.
“확대해서 보면 상피 조직구와 림프구로 구성된 육아종 구조가 보이지. 사실 결절성 육아종이라는 게 면역질환에서도 충분히 생길 수 있는 거긴 해. 하지만 림프구로 이루어져 있다는 건, 아무래도 결핵일 가능성이 더 크지.”
“아…… 그렇군요.”
안대훈은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 또한 훌륭한 의사긴 했다.
아마 갓 전문의를 딴 내과 의사들을 쭉 줄 세워 놓으면 제일 나을 터였다.
아니, 위로 몇 년 정도는 커버칠 수도 있었다.
허나 병리 슬라이드를 볼 수 있냐고 하면, 그건 또 아니었다.
이건 뭐라고 할까…….
선을 넘은 수준이었다.
‘그 선을 나도 넘어야 해…….’
이 선을 보고 나면 대개 두 부류로 나뉘기 마련이었다.
대부분은 그 선 안쪽에 남았다.
이건 내과 의사가 할 일이 아니다, 저 사람은 그냥 너무 천재라서 저러는 거다 내지는 진짜 쓸모없는 짓을 하고 있다는 생각으로.
허나 안대훈은, 이미 마음속으론 선에 발가락 정도는 걸친 상황이었다.
때문에 엄청나게 진중한 얼굴로 설명을 듣고 있었다.
이것 또한 무리는 아니었다.
애초에 제대로 염색도 되지 않은 슬라이드를 보면서 림프구니 뭐니 할 수 있는 건 어지간한 병리과 의사조차 할 수 없는 일종의 묘기니까.
“여기서 좀 더 확대를 해 보면…… 다핵 거대 세포도 보여. 이게 뭔지는 염색을 해 봐야 알겠지만, 여기까지만 봐도……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결핵을 의심하는 게 온당해 보이지. 아무리 봐도 암은 아니야.”
“네. 확실히 암은 아닙니다.”
“환자는…… 이걸로 어떻게 되지는 않겠지.”
수혁은 기쁜 얼굴로 고개를 마저 끄덕이고는 협진 의뢰서에 답신을 날렸다.
이러이러한 연유로 결핵인 것 같은데, 아이의 면역력을 고려해서 첫 2개월 동안엔 이소니아지드(Isoniazid) 150mg, 리팜핀(Rifampin) 200mg, 피라진아미드(Pyrazinamide) 500mg을 투여한 뒤에 4개월간 이소니아지드(Isoniazid)와 리팜핀(Rifampin) 유지 요법을 쓰라는 내용이었다.
진단부터 치료까지 딱딱 완성해 낸 수혁은 그제야 비로소, 방금 전에 진료실로 들어왔던 안지영 환자를 돌아보았다.
환자의 눈은 다시 봐도 퍽 특징적이었다.
‘눈물샘이 붓는 질환에는 뭐가 있지?’
[현재로서는 감도 잡히지 않습니다. 만약 자가면역질환이라 해도 극히 드문 질환일 거고, 또는 우리가 알고 있는 자가면역질환의 극히 드문 발현 양상이라고 추측됩니다.]
‘그렇군. 그럼 해당 안과에서 그런 판단을 한 게…… 아주 잘못된 건 아니란 건가?’
[그건 아니죠. 눈물샘이 부었으면 다른 검사를 해 봐야지, 왜 스테로이드부터 때린단 말입니까.]
‘나도 그렇게 생각하는데 괜히 한번 해 본 소리야.’
수혁은 바루다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
안과에서 아주 제대로 된 진료를 한 게 아니다 보니, 여기서라도 물어볼 게 많지 않나.
대훈은 금과옥조와 같은 말씀을 단 하나도 놓치지 않기 위해 귀를 기울였다.
“환자분. 혹시 눈이 언제부터 그렇게 부으셨나요?”
“아…… 이거…… 이건 몇 달 됐어요. 이렇게 계속 지내야 하는 건 아니겠죠?”
멀리서도 좀 불안정해 보이긴 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얼굴은 사람이 다른 사람을 인지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곳이기 때문이었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얼굴이 상한다면 자아에 어마어마한 상처를 주기 마련이었다.
그래서 그럴까?
가까이서 본 환자의 얼굴엔 불안감이 뚝뚝 묻어나고 있었다.
“일단 전에 안과에서 약 처방 받았을 때는 호전이 되었던 거죠?”
“아…… 네. 그때는 그랬어요. 근데 다시 이렇게 되고…… 그 약이 함부로 막 쓰면 안 되는 거라고…… 그러더라고요.”
“네, 그건 맞습니다.”
만약 거기서 또 썼다?
별 근거도 없이 단지 이전에 증상이 호전되었다는 것만 보고 스테로이드를 또?
그랬다간 스테로이드 때문에라도 다른 문제가 생겼을 터였다.
뭐가 되었건 이렇게 온 게 다행이라는 얘기였다.
“그럼 좀 다른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네…… 근데 저…….”
“우선 진단이 되어야 치료도 할 수 있는 거니까요. 답답하시겠지만, 지금은 제 질문에 답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아…… 네. 그…… 네.”
환자는 후 하고 한숨을 내쉬곤 대훈이 가져다준 의자에 앉았다.
말이 진료실이지 외래가 아니다 보니, 의자가 업무용 의자라 허리를 쫙 감싸 주고 하는 게 퍽 편한 편이었다.
덕분에 환자는 살짝이나마 안정감을 느낄 수 있었다.
“열이 나셨다고 했죠?”
“아…… 네.”
“열은 언제부터 나셨죠?”
“사실…… 그게…… 열감이 느껴진 지는 꽤 됐어요.”
“꽤라는 게 얼마나……?”
“한 몇 달쯤?”
“두 달 이상입니까?”
“아.”
수혁은 그런 환자를 보면서 질문을 이어 나갔다.
‘안과에서 이런 걸 제대로 묻지 않았던 모양인데?’
[네. 성의가 없군요.]
‘환자가 많다 보면 그럴 수도 있다곤 하지만…… 우리 안과는 안 그러던데…….’
[여기는 시스템적으로 불이익을 주니까요. 매년 진료 보는 걸 영상으로 찍어서 리뷰도 해 주지 않습니까? 이런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 병원이 얼마나 있겠어요.]
‘하긴…… 그때마다 아주 난리난리 생난리였지.’
환자가 의사의 말에 제대로 답하지 못하는 건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다.
의사의 언어가 환자의 언어와 같을 수가 없지 않겠나.
다만 같은 질문을 반복하면 할수록 환자의 답이 구체화된다는 게 다행이었다.
이는 그저 누군가의 느낌이 아니라, 통계적으로 증명된 하나의 이론이었다.
그러니까 지금 환자가 제대로 된 답을 주지 못하고 있는 건, 이 질문을 딱히 들어 보지 못했다는 걸 의미했다.
‘교수들의 반발을 억누를 수 있는 병원이 거의 없긴 하니까.’
[네. 여기 말고 딴 데 가기가 좀 그렇잖아요? 게다가 그거하고 나면 또 보상도 있고요.]
의사들도 사람이 매너리즘에 빠질 수는 있었다.
허나 그 손해가 어떤 사람의 생 또는 목숨이라는 걸 간과해선 안 될 터였다.
때문에 태화 의료원은 교수들이 내 나이에 이런 것까지 해야 하냐는 불만을 터뜨리는 걸 감수하고 꾸준히 외래 진료 모니터링을 진행하고 있었다.
그 덕분일까?
적어도 문진에서 잡아 낼 수 있는 걸 놓치는 경우가 다른 곳에 비하면 훨씬 적었다.
“두 달은 안 된 것 같기도 하고요.”
“그럼 6주?”
“네. 그 정도……?”
“혹시 눈이 부은 것도 그즈음에 시작되었을까요?”
“아, 네. 그런 것 같아요. 확실히…… 안과에 갈 때는 열도 났어요. 대학 병원에 갈 때는 안 났지만.”
안과에 갈 때는 났는데, 대학 병원 갈 때는 안 났다.
그럼 열은 별일 아니었나 싶을 수도 있겠지만, 다른 가능성도 염두에 두어야만 했다.
“약을 드셨나요? 처방받은 약.”
“아…… 네.”
“어떤 약인지는 모르시죠?”
“그…… 네. 모르겠어요. 근데 열나는 건 좀 나아질 거라고 하면서 주셨어요.”
“그렇군요.”
약이라고 하면 다 치료제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로컬에서 더 많이 쓰이는 약은 증상 완화제라고 봐도 좋았다.
즉 안과에서 준 약은 진통 소염제일 거라는 얘기였다.
그 약을 먹는 데 열이 나겠나.
적어도 먹는 동안에는 열이 나도 안 나는 것처럼 보였을 터였다.
거기에 더해 대학 병원에서 때린 스테로이드, 그것도 열을 내릴 수 있었다.
‘뭔가 총체적 난국인데…….’
[열 말고 다른 증상이 있진 않았는지 물어보십쇼. 열과 눈만 부은 것으로는 도저히 추론이 불가합니다.]
‘아, 그렇지. 그래.’
두 가지 단서로는 아무래도 좀 부족했다.
해서 수혁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때, 처음 열나고 눈이 부었을 때…… 혹시 다른 불편감은 없으셨나요?”
“네? 아…… 딱히…….”
그리고 수혁은 바루다의 도움으로, 환자에게 뭔가 숨기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일반적으로 사람이 거짓말을 하거나 켕기는 것이 있을 때 보이는 행동을 지금 환자가 보였다는 얘기였다.
이럴 땐 캐물어야 했다.
예의 같은 걸 따질 때가 아니지 않나.
진료실에서의 의사는 탐정이 되어야 하고, 반드시 병을 찾아내야만 했다.
“사소한 것도 좋아요. 본인 생각하기에 이건 아닐 것 같은 증상도 좋습니다. 뭐든 단서가 될 수 있어요. 판단은 제가 할 테니 환자분께서는 다 얘기해 주세요.”
“아…….”
그리고 수혁은 이런 짓을 한두 번 해 본 게 아니었다.
무의식적으로 말하고 넘어간 것도 다 단서화해서 추적하는 인간이지 않나.
말할 의지가 있어 보이는 사람을 추궁하는 거?
이건 너무 쉬웠다.
“그…… 제가 스트레스받으면 설사를 좀 하는데요. 그때도 좀…….”
“설사라. 배는 아프지 않으셨어요?”
“아팠어요.”
환자는 이 말을 하면서 배에 손을 살짝 올렸다.
연기가 아니었다.
[지금도 좀 불편하군요.]
‘긴장해서 그런 건 아닐까?’
[아닐 수도 있습니다. 과민성 장 증후군은 대개 변을 보고 나면 통증이 해소되죠.]
‘지금 갑자기 마려울 수도 있지.’
수혁은 바루다와 방금 본 행위에 대해 토의를 하면서 말을 이었다.
“그때 설사를 하고 나면 배가 안 아파지셨나요?”
“음…… 아뇨. 좀 전반적으로 불편했어요.”
“설사에 혹시 피나 점액 같은 것이 섞여 있지는 않았고요?”
“제가 변을 보고 나선 안을 잘 안 들여다봐서요.”
“그렇군요. 그럴 수 있죠.”
그래, 의사도 아닌데 똥을 관찰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 않겠나.
수혁은 고개를 끄덕이는 것과 동시에 환자의 행동을 유심히 살펴봤다.
아까와 달리 다리도 꼬고 있었다.
엉덩이를 살짝 든 것 같은데, 그와 동시에 냄새도 풍기고.
‘곧 싸시겠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