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917화 (917/1,303)

917화 예민한 진료 (2)

똥을 참아 본 사람은 알 터였다.

이게 되게 힘들다는 걸.

심지어 그 변의 양상에 문제가 좀 있는 상황에서는, 어찌 보면 세상에서 제일 힘든 일이 되기도 했다.

덕분에 수혁은 환자의 얼굴이 실시간으로 바뀌는 걸 지켜볼 수 있었다.

“어…… 환자분, 어디 불편하세요?”

당연하게도 수혁에게는 은은하게 퍼져 나가는 방귀 냄새를 견디면서, 동시에 다른 사람이 고통받는 모습을 즐기는 이상한 취향이 있진 않았다.

그저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뿐이었다.

급기야 안대훈마저 이변을 눈치챘을 때까지 이르러서야, 수혁도 입을 열었다.

“그, 화장실 다녀오시죠.”

“아…… 네…… 그…… 하아.”

어떻게 말을 해도 상대를 당황하지 않게 만들 수 있는 방법 따위는 없다는 걸 바루다가 말해 준 덕이었다.

당연하게도 환자는 얼굴이 새빨개져 버렸다.

그런 환자의 뒤통수에 대고 수혁은 말을 더했다.

“물 바로 내리지 말고 사진 찍어 오세요.”

어지간한 환자였다면 곧장 달렸을 터였다.

진짜 한계까지 치달았거든.

뒈질 것 같다는 말이 과장이 아니라고 느껴지는 상황이랄까?

근데 도저히 달려나갈 수가 없었다.

이게 설마 진짠가 싶어서 그랬다.

“네?”

환자는 빨개진 얼굴로, 고통에 일그러진 얼굴로, 그리고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수혁을 돌아보았다.

“똥 사진 찍어 오세요.”

수혁은 역시 안과에서 충분히 얘기를 나누지 않은 탓에, 환자가 의사와 대화하는 법을 전혀 익히지 못했다고 여겼다.

그래서 보다 적나라한 표현을 썼다.

이쯤이면 되었겠지 하고 미소까지 띠어 보였다.

‘교수님…… 그건 아닌 거 같은데.’

대훈은 당황했지만, 그렇다고 여기서 더 말을 얹을 수도 없었다.

너무 이상하지 않나.

-저기 교수님, 환자분 사진 찍어 오라는 게 부끄러운 것 같은데요?

-응? 그게 왜? 똥 사진 정도는 찍을 수 있잖아.

-그…….

-의학적으로 필요한 일이야. 대훈아. 환자분! 빨리 찍어 오세요!

대화는 이렇게 진행될 것이 뻔해 보였다.

아마 그럴 터였다.

수혁은 안대훈을 보면 이상하다고 하지만, 정작 제일 이상한 건 수혁이니까.

남들 눈치를 대신 봐주지 않으면 언제고 사고 칠 수 있는 인간이기도 하니까.

해서 그대로 있으려니, 환자가 확 하는 효과음과 함께 얼굴이 진짜 홍당무가 된 채로 후다닥 달렸다.

중간에 푸다닥 소리가 났는데, 그건 복도에 있는 사람들까지 포함해서 모두 모른 척해 주었다.

다들 예의가 참 바른 사람들이었다.

“얼마나 걸리려나.”

수혁만 빼고 그랬다.

방금 똥 싸러 간 사람을 두고 언제 오냐니.

그건 마치 싸는 데 얼마나 걸리는지를 궁금해하는 것 같지 않나?

해서 대훈은 무려 수혁의 질문에 대강 답했다.

“그…… 글쎄요.”

“중요한 문제야. 싸는 동안에도 통증이 있다면, 아무래도 좀 느릴 거야. 그게 아니라 단순히 과민성 장 증후군이라면, 방금 환자의 표정과 새어 나오던 가스, 냄새의 밀도로 미루어 볼 때 순식간에 나오겠지.”

허나 오산이었다.

확실히 수혁은 의학의 신이었다.

모든 것은 의학과 결부시켜 생각할 수 있는 그런…….

‘내가 참 아직도 신앙이 부족하구만.’

안대훈은 짤막한 회개와 더불어 논의에 뛰어들었다.

“음…… 단순 과민성 장 증후군이 아닐 가능성을 염두에 두시는 거군요.”

“그렇지. 그랬으면 굳이 사진 찍어 오라고 하지도 않았지.”

“하긴…….”

“뭔가 문제가 있을 가능성이 커. 동시에 다른 질환이 있을 가능성도 있지만…… 자가 면역 질환과 더불어 또 다른 질환이 있다는 건 믿기 어려운 일이야. 아무래도…… 눈물샘의 부종은 우리가 익히 잘 아는 질환의 드문 발현 형태일 가능성이 있어 보여.”

“그렇군요. 역시…… 흠…….”

대훈은 수혁의 말을 따르기 위해 타이머를 맞춰 두었다.

맞춘 것이 환자가 후다닥 달리고 40초 정도 후였으니, 이 시간에 40초를 더하면 될 터였다.

똑똑.

그렇게 10분가량을 서성이고 있으려니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문을 열어 주니, 환자가 앞에 서 있었다.

“10분 40초.”

대훈은 그 환자를 마주한 채, 타이머에 표기된 시간에 40초를 더해서 수혁에게 알려 주었다.

“평균적인 용변 보는 시간에 비해 살짝 긴데. 급해 보이셨던 것에 비하면 아주 길고.”

“그…….”

환자는 다시 나갈까 싶었다.

이게 공개 처형인가 싶어서 그랬다.

그래도 눈물샘이 부어 있는 게 현재로선 가장 크나큰 스트레스였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진료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어떻게 해서든 이 대화 주제를 벗어나고 싶었다.

“사진 찍으셨죠?”

물론 진료실 내에서 일이 환자 뜻대로 흘러가는 경우가 있으면 얼마나 있겠나.

더욱이 수혁과 함께라면 더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환자는 이제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곤 휴대폰을 건넸다.

분명 손도 닦고 다 했지만, 단지 그 사진을 찍었다는 사실만으로 어쩐지 더러운 물건이 된 느낌이었다.

당연하게도 수혁은 눈을 빛내며 방금 받은 휴대폰에서 갤러리를 실행해 사진을 띄웠다.

“어으.”

대훈은 저도 모르게 눈깔을 찌푸렸다.

그러다 환자의 얼굴이 벌게지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죄송하다고 했다.

그게 더 신호가 되어, 환자는 이제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었다.

수혁은 도리어 별 반응이 없었다.

지금까지 온갖 이상한 얘기를 해 놓은 주제에 누구라도 이상한 소리를 할 것만 같은 순간에는 오히려 조용했다.

‘살짝…… 붉은 기가 있어.’

[하지만 양이 너무 많아서 판단이 불가합니다. 다만…… 뭔가 문제가 있긴 하겠군요.]

‘그래. 게다가 환자 얼굴을 봐. 아직도 찡그리고 있어.’

[수치심에 의한 찡그림으로 판단되긴 합니다.]

‘왜? 내가 뭐라고 했나?’

[저도 그건 이해가 안 가는데 하여간 지금 보이는 반응만 보면 그렇습니다.]

‘그럼 물어봐야지.’

[네, 안 물어보고 있다가 사고 치는 것보다는 물어보는 게 훨씬 낫죠.]

물어보는 데 무슨 품이 세게 드는 것도 아니고, 뭐하러 가만히 있겠나.

“수치스러운가요?”

해서 수혁은 물었다.

“네? 네?”

환자는 급기야 이게 무슨 시험 같은 건가?

아니면 몰카인가?

이런 생각마저 들었다.

“아니면, 아프신가요? 배 말입니다.”

“어…….”

정신이 없어서 그런가.

환자는 그냥 본능적으로 배를 내려다보았다.

그러곤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이상했다.

보통 싸고 나면 후련해야 하는데…….

그렇지가 않았다.

여전히 둔중한 통증이 남아 있었다.

“아파요.”

“네, 그렇군요. 일단 변의 양상을 보면 정상적이지 않습니다. 너무 가늘어요. 색도 그렇고…… 물론 단순 과민성 장 증후군에서도 이렇게 보이는 경우가 있긴 합니다만…… 아닐 가능성을 시사합니다. 무엇보다 지금까지 이어지는 통증은 확실히 수상하군요.”

“그럼…… 배가 아픈 거랑 눈 부은 게…… 연결되어 있다는 뜻인가요?”

“그럴 가능성이 있어 보입니다. 혹 당시, 그러니까 병원에서 주사 맞고 나서 눈이 가라앉았을 때 배는 어땠습니까?”

“어…….”

환자는 곰곰이 생각에 빠졌다.

딱히 복통에 대한 기억은 없었다.

선명하지 않다고 할까?

기록에도 전혀 쓰여 있지 않았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하여간 수혁은 흐음 하곤 말을 이었다.

“기억에 없는 것을 보니, 그렇게 불편하지는 않으셨던 것 같군요.”

“네…… 확실히…….”

“그럼 같은 약으로 조절이 되었다고 봐도 무방할 텐데. 흐음.”

복통과 열 그리고 설사 등의 증세.

환자의 나이와 성별.

그리고…….

‘환자에게 흡연력이 있지.’

[네. 눈이 붓고 나서는 줄인 것 같은데, 하루 한 갑 정도는 꾸준히 피운 것으로 보입니다. 대략 8년간 피웠군요.]

흡연력.

‘눈물샘의 부종을 제외하고 보면…… 염증성 장 질환을 의심하고 싶어지는데…….’

[그중에서도 크론입니까?]

‘유병률이 최근 어마어마하게 올라갔지.’

[다 좋은데…… 눈물샘이 부었다는 얘기는 들어 보지 못했습니다. 케이스 리포트에서도 그렇고요.]

‘기전은 가능한가? 그게 중요하지.’

수혁의 물음에 바루다가 잠시 침묵했다.

이런 종류의 추론, 그러니까 임상적인 추론이 아닌 생리학적인 추론에는 수혁이 딱히 도움을 주지 못해서 그랬다.

이건 오롯이 바루다의 몫이었다.

[흐음…… 크론병의 기전은 부종을 주로 일으키죠. 더 진행하면 가성 종양 등으로 발전하기도 하고요. 육아종의 형성 또한 드물지 않습니다. 대상은 점막인데…… 궤양성 대장염과는 달리 크론은 침범하는 범위가 다양합니다. 이론적으로 눈물샘도 충분히 가능하긴 하겠습니다.]

‘좋아. 그럼 워크업을 해 볼까.’

[네. 해 볼 만하다고 판단합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바루다는 이런 식의 추론에 있어선 가히 세계 최고라 해도 무방할 정도의 실력을 발휘했다.

관련 지식을 쌓아 두어서만은 아니었다.

녀석은 수혁과 듀오를 이루어 이리저리 하도 많은 환자를 보러 다니다 보니, 이런 식의 훈련이 과하게 이루어진 지 오래였다.

덕분에 수혁은 근거 하나를 확인하곤, 그에 맞춰 처방을 내릴 수 있었다.

“오히려…… 배 쪽이 주된 증상이라고 판단이 됩니다.”

“네? 정말……요?”

“네. 내시경을 해 봐야 정확히 알 수 있을 텐데…… 그건 관장 등의 사전 처치가 필요하니, 우선 CT부터 찍어 보죠. 대훈아, 장강명 센터장님에게 연락 좀 드려 봐. 방금 설사하신 양이 적지는 않아서…… 대강 확인하는 건 가능할 것 같다고 하고.”

“아…… 네.”

수혁의 말에 대훈은 참 너무 하신단 생각과 함께, 그러나 충직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장강명에게 전화해서 방금 말했던 대로 전달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아니, 방금 싼 거랑 관장은 좀 얘기가 다른데…….”

“그냥 확인만 할 수 있으면 된다고 하셨습니다. 아무래도 염증성 장 질환을 염두에 두신 것 같습니다.”

“환자는 눈이 부은 채로 왔다가 긴장해서 똥 싸고 온 게 다 아닌가?”

“저희 같은 범부가 어찌 봉황의 뜻을 다 알겠습니까.”

“자네, 그…….”

“네?”

“아니, 아닐세. 아냐. 내가…… 내가 보지 뭐.”

그렇게 장강명이 고개를 끄덕이는 사이에, 환자는 CT실에 들어갔다.

곧 윙윙거리는 소리와 함께 기기가 돌아갔고, 이내 기기는 영상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흐음.”

대훈은 전화를 마치자마자 달려와선 그렇게 뜬 영상을 같이 확인했다.

“평행 결장하고…… 여기. 맹장 근처에 보면 장이 많이 부어 있지?”

“아…… 네. 그리고 복강 내 림프절들도 전부 부어 있습니다.”

“그뿐만이 아냐. 장간막에도 염증이 보여.”

“이건…… 정말로…….”

“그래, 염증성 장 질환이지. 눈까지 같이 생각하면 아마도 크론일 거야. 장강명 교수님은 뭐라셔?”

“보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래, 그럼 같이 가자.”

“네, 교수님!”

눈이 불편해서 왔는데 장 질환이라니.

이런 공교로울 데가 다 있단 말인가.

대훈은 수혁이 아니었다면 진단이 되긴 되었더라도 수개월 내지는 수년 밀렸을 거란 생각을 하며, 신바람 나게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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