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919화 (919/1,303)

919화 이걸 모른다고? (1)

다른 사람도 아닌 이현종이 성화를 부리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현종 스스로는 김승규와 자신을 굉장히 구분해서 생각하고 있고, 실제로도 압박감 등에서 꽤나 거대한 차이가 나는 것도 맞기는 하지만.

아랫사람들이 느끼기에는 또 그렇게까지 많이 다르지도 않았다.

“아니…… 왜…… 왜요?”

“저…… 저 외래인데.”

“일단 다 오시랍니다.”

우선 김성진은 안국태 밑에서 구르고 구르던 사람이지 않나.

그 때문에 뭔가 큰소리가 나는 순간, 저도 모르게 심장이 뛰고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리게 되었다.

그런 인간이 전화를 걸어서 이현종 교수님이 오시라는데요, 라고 하면 제자들 마음이 어떻겠나.

‘어…… 내가 시술한 환자가 잘못됐나……?’

심지어 이현종의 제자라 하면 다들 심장내과 교수들이고, 그중에서도 심혈관 중재 시술을 하는 사람들이었다.

그 살 떨리는 분과를 선택하고 그 안에서 살아갈 수 있을 만큼 간이 큼지막한 사람들이지만, 불안에 떨려고 하면 또 얼마든지 떨어댈 수 있는 사람들이기도 했다.

워낙에 심각한 질환을 많이 보고 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왜…… 그러시는 줄은 아세요?”

“아, 네. 그…… 의뢰하신 환자분 때문에요. 왜 이걸 모르냐고 아까 잠깐 소리를 지르셨습니다.”

“하.”

시술 문제는 아니구나 싶었다.

하긴, 시술 문제로 날뛸 거였으면 일단 날뛰기 전에 그 환자부터 살리고 봤을 터였다.

이현종이 좋은 의사라서만이 아니라, 원래 심장은 그래야 했다.

아차 하는 순간 죽어 버리니까.

“지, 지금은요?”

물론 다른 문제라고 해서 떨림이 가시진 않았다.

이현종은 훌륭한 교수지만, 꽤 무서운 교수기도 했으니까.

특히 옛날엔 진짜 무서웠다고 들었다.

그땐 자기가 알고 있는 걸 모르는 사람들에게, 그러니까 사실상 병원에 있는 전원에게 기본적으로 화가 나 있었다고 하니까.

“지금은…… 차 마시고 계셔요.”

“차……?”

“이수혁 교수님이 열 받으면 드시라고 선물한 차가 있어요. 가뜩이나 혈압이 요새 살짝 간당간당 하신데, 약 먹기는 애매하거든요? 그래서 이렇게…….”

“무슨 차요?”

“철관음이요.”

“아, 철관음…… 그럼 좀 다행이네요.”

철관음이니 뭐니 하면서 이름이 복잡한 것들이 있지만, 뭉뚱그리면 결국 녹차지 않나.

녹차에는 카테킨이라는 성분이 있고, 이 성분이 얼마간 혈압을 떨어뜨려 줄 수 있다는 건 실험으로 증명된 사실이었다.

물론 그보다는 차의 향과 그 차를 우려 낼 때 걸리는 시간 때문에 훨씬 더 강력한 진정 효과를 보일 거란 전문가 의견에 신빙성을 느끼고 있었지만…….

‘그래, 우리 교수님이 이수혁 교수님 만나고부터 훨씬 부드러워지셨지.’

그전에는 진짜 무슨 사냥개도 아니고…….

“일단 가겠습니다. 외래에 있는 사람들 제외하면 일단 갈 수 있어서요.”

“네네. 오실 때 녹화 장비도 갖고 오시라고 했습니다.”

“녹화……? 아…… 오늘 진짜 강의구나. 네네.”

그러던 사람이 이렇게 사려 깊어졌다.

예전 같았으면 일단 다른 사람을 시킬 생각도 하지 못하고 직접 전화했을 터였다.

그럼 무슨 말을 하고 싶으신 건지 파악도 하기 전에 일단 혼났겠지.

게다가 급히 내려가면 왜 녹화 장비 안 가져왔냐고 난리를 쳤을 터였다.

녹화 장비의 ‘ㄴ’ 자도 꺼내지 않았는데 왜…….

“너 또 옛날에 혼난 생각 하고 있냐?”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니, 당연히 얼굴이 어두워질 수밖에 없었다.

어느새 옆에 다가온 동기가 물어왔다.

말이 동기지, 이젠 아내였다.

좀 예쁜 것 같아서 고생할 때 커피 타 줬더니 다음 텀에 커피를 사 주더라고?

고마워서 밥이나 사 줄까 했다가 그날 못 들어왔는데…….

“어. 너무 무서워.”

“요새는 훨씬 나아지셨잖아.”

“대체 무슨 일인데 우리만 아니고 다 불려가는 거지?”

“그건…… 모르겠네. 우리는 면피가 되지 않을까?”

둘은 힐끗 옆을 돌아보았다.

이제 50줄에 들어선 교수들도 전전긍긍하는 얼굴로 엘리베이터에 타고 있었다.

“니들은 뭐 들은 거 없어?”

“없습니다. 강의하신다고…….”

“아 씨…… 교수님 강의 무서운데.”

“그게 강의냐. 터는 거지…….”

다들 한마음 한뜻으로 바들거리며 엘리베이터에 탔다.

허나 다른 한편으로는 또 어떤 새로운 것을 배우게 될까 하는 기대도 있었다.

이현종은 그저 위세만 부리는 교수가 아니라, 진짜 실력을 갖춘 사람이라서 그랬다.

사실 정년에 가까워진 교수면 아무리 대단한 사람이라고 해도 좀 예스러운 느낌이 들어야 정상인데, 그렇지도 않았다.

그야말로 끊임없이 공부하는 인간이 바로 이현종이었다.

얼마간은 수혁이 영향을 주고 있었는데, 하여간 심장내과 교수들이 곧 통합진료센터 안으로 들어섰다.

개중에는 이미 학회 내에서 내로라할 만큼 잘 나가는 사람도 있었지만, 이현종 앞에서는…….

“왔냐. 왔으면 앉아. 문은 닫고.”

“어…… 네.”

다들 쭈구리였다.

할 수 있는 한 최대로 어깨를 접고 앉았더니, 이현종이 그새 만든 PPT를 띄웠다.

말이 PPT지 사실상 기록을 캡처해서 잘라 붙인, 거의 뭐 개발새발 만든 피피티였다.

하지만 그 앞에 선 사람이 이현종인데 뭔 의미가 있겠나.

어…… 하는 순간 이현종은 진료 기록을 띄웠다.

“52세 남자 환자. 회사원이고, 직장인 건강 검진에서 발견된 우측 심방의 종괴로 우리 병원 심장내과에 의뢰된 환자야. 이 케이스 처음 보는 사람?”

이현종은 형은 나가 있어, 뒈지기 싫으면 같은 표정으로 물었다.

아쉽게도 여기 병진이 형은 없었다.

안 그래도 이 케이스가 이상하다 싶어서 주간 회의 때 공유를 한 덕분이었다.

그냥 공유만 한 것도 아니고, 수술을 해야 하냐 아니면 경과 관찰부터 해야 하냐로 첨예한 대립이 있었더랬다.

그게 당장 이번 주였다 보니 다들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정치인이었다면 ‘기억에 없습니다’라는 스킬이라도 시전해 볼 수 있겠지만, 이 사람들은 그냥 찐 의사였다.

“그래…… 다 봤구만, 그래. 그럼…… 여기서 의견을 묻자.”

이현종은 하아, 하고 한숨을 쉬고는 주변을 돌아보았다.

통합진료센터 인원인 김성진뿐만 아니라, 레지던트들과 인턴 그리고 방금 들어온 심장내과 교수들까지 해서 꽤 인원이 많았다.

이현종이야 다 가르칠 생각이었으니 크게 상관하진 않았지만, 교수들로서는 죽을 맛이었다.

‘여기서 이거 틀리면 X되는 거잖아……?’

그렇다고 애들은 보내라는 말도 할 수 없었다.

해서 그냥 기다렸다.

“우측 심방 종괴. 초음파상에서 이렇게 보이네? 환자에게 증상을 물었는데…… 기록을 보면 심장 관련 증상은 하나도 없었어. 다시 말해 발열, 흉통, 현기증, 두근거림이 없다는 거야. 발열을 왜 묻냐고 하는 애들은 여기 없기를 바란다, 정말.”

이현종은 모난 눈으로 레지던트들을 훑었다.

몇 놈 고개를 숙이는 것으로 보아 나중에 좀 더 족쳐야 할 것 같았다.

다행인 것은, 뭐가 되었건 통합진료센터 소속인 사람들은 괜찮아 보인다는 점이었다.

“심내막염이 있는 경우에도 이런 게 생길 수 있지. 하여간…… 환자는 관련 증상이 없어. 이 종괴는 무증상 종괴라는 거지. 그렇지?”

“네.”

“그렇습니다.”

현종은 심장내과 교수들, 그러니까 자기가 심혈을 기울여 키워 냈다고 해도 무방한 이들에게 물었고, 그들은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보니까…… 환자의 생활 습관이 꽤 양호해. 보면 흡연은 아예 안 해. 끊은 것도 아니고, 시작도 안 했어. 음주가 좀 문제가 되긴 하는데…… 그래 봐야 주 1회가량이고, 한번 마실 때 소주 반병에서 한 병이 끝이야. 음주로 인해 흉통이 발생한다는 보고도 없었어.”

이현종은 딱 거기까지 말하고 다시금 주변을 바라보았다.

꿍꿍이속을 숨기기 위해, 나름대로 평안한 눈을 하고서였다.

‘수혁이가 준 차가 도움이 되는구만…… 하긴, 수혁이가 또 연기의 달인이지.’

지금 이현종이 하는 짓은 수작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온갖 거짓 술수로 무장한…… 함정이었다.

개미지옥이랄까?

“자, 그럼 묻겠어. 수술을 해야 한다, 아니면 경과 관찰만으로도 충분할 거 같다. 손.”

그렇게 묻는 이현종의 눈은 살짝 공허해 보이기까지 했다.

수혁이었다면 본신의 능력도 능력이거니와 바루다의 도움까지 받았을 테니 궁금해하는 빛마저 내비쳤겠지만.

이현종은 아직 이게 한계였다.

물론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어…… 저는 수술.”

“저도요. 아직 나이도 젊고…… 굳이 위험 감수를 할 필요는 없을 거 같습니다.”

의견은 첨예하게 갈렸다.

듣다 보니까, 이게 이현종도 답을 알고 묻는 것 같지는 않아서 그랬다.

원래 의학이라는 게 그렇지 않나?

칼로 무 자르듯 딱딱 갈리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오히려 그렇지 못할 때도 엄청 많았다.

다 사람이 하는 일이고, 특히 지금과 같이 심장과 관련한 일에는 변수가 더더욱 많을 수밖에 없었다.

“아니, 아니죠. 심방 종괴고…… 이건 안에 생긴 거 아닙니까? 밖에서 수술할 게 아니라 심장을 열어야 해요. 체외 순환기를 돌려야 하는데…… 아무리 환자가 기저 질환이 없는 상황이라고 해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네, 제가 그렇지 않아도 흉부외과에 문의 했는데 거기서도 난색을 표했습니다. 심장 종괴라는 게…… 아시겠지만 제거하는 게 말처럼 쉬운 건 아니지 않습니까?”

그걸 증명이라도 하겠다는 듯, 지금도 양측의 의견이 팽팽하게 갈려 있었다.

심지어 부부 사이의 의견도 갈렸다.

하나는 수술해야 한다였고, 다른 하나는 수술하지 말자 쪽이었다.

둘 다 이렇게만 들으면 되게 설득력 있게 들렸다.

어떤 의견도 ‘네가 반드시 맞았다’ 내지는 ‘네가 틀렸다’라고 말하기 어려울 거 같았다.

‘병신들…….’

이현종은 속으로 혀를 끌끌 찼다.

허나 겉으로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면서 두 의견 충돌을 오히려 이끌어내고 있었다.

“그래도 심장에 저만한 덩이를 달고 살라고? 그러다 저거 막말로 세동(심장이 제대로 수축하지 못한 채 불규칙적으로 박동하여 혈액을 전달하지 못하는 것)이라도 일으키게 되면 어쩌려고.”

“심실에 생긴 게 아니잖아. 심방세동이 그렇게까지 응급한 질환으로 연결될 가능성은 적다는 거…… 알 만한 사람이 이래? 혹시나 그렇게 된다고 해도, 난 차라리 페이스 메이커를 달거나 약으로 조절하는 게 나을 거 같은데?”

“구조적으로 망가진 걸 그렇게 하겠다고?”

“어. 심장 수술하면 구조가 온전히 남냐? 남아? 뭐 신이 와서 수술할 거야?”

“와…… 이 새끼가, 이거.”

“이 새끼? 야, 새끼라고?”

그렇게 충동질을 한 결과, 개판이 되었다.

안 그래도 이현종이 딱 저 같은 놈들만 모아 놓은 곳인 데다가, 이현종이 싸움은 좋은 거라고 가르쳐 놔서 더더욱 그랬다.

실제로 의학 토론이 도움이 되기는 했다.

그렇지 않았으면 50세 정도의 나이에 학회에서 대가 소리를 듣는 제자들이 나올 수도 없었을 터였다.

“워워. 여기 교수님도 계시는데.”

“아, 맞네.”

“하지만 수술은 해야 해. 일단 진단이 되었으면…… 해결을 해 줘야지. 다른 데도 아니고 심장이야, 심장! 심장에 종괴라고!”

“그래, 심장이니까 신중해야지!”

개판이 되었다가, 다시 토론이 되었다가.

중구난방이었다.

이현종은 그런 제자들을 보면서 후후 웃었다.

‘병신들아. 이거 일단 종괴가 아니야…….’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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