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1화 이걸 모른다고? (3)
‘?’
심장 내과 교수들은 물론이거니와 다른 이들, 그러니까 얼떨결에 안에 들어와 있던 레지던트들 모두 이런 느낌이었다.
지금 무슨 소리시지……?
역시 대 태화 출신이 아니다 보니 개소리를 하게 되는 걸까?
응?
그런 걸까?
‘우리 교수님들이 지금까지 내내 떠들던 건 뭔데?’
‘그러니까…… 저분이 아무리 통합진료센터 사람이라곤 해도…… 칠성 놈 아니던가?’
‘그래, 칠성놈이지. 그러니 이런 불경한 소리를…….’
‘병신들아. 이현종 교수님 표정 좀 봐.’
텃새라는 건,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라면 어디든 있을 수밖에 없는 법 아니겠나.
의사들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오히려 더 강한 면도 있었다.
다들 보수적인 성향이 강하다 보니 원래 봤던 사람이 아니면 아무래도 좀…… 저어하는 마음이 들기에 그랬다.
게다가 김성진은 다른 데도 아닌 칠성에서 온 놈 아닌가.
이미 원장단, 그리고 이사장 선에선 칠성 따위는 경쟁자도 아니었지만, 레지던트들은 당장 칠성과 입결을 포함해 거의 모든 것을 경쟁하고 있는 느낌이다 보니 적대감이 더 강했다.
“그래, 합리적인 추론이야.”
“!”
하지만 이현종의 반응이 좀 이상했다.
저거…… 아무리 봐도 칠성 놈 편을 들고 있는 거 아닌가?
아니, 이현종 정도 되는 사람이 편을 들 리가 없지 않나.
게다가 이현종은 칠성을 정말로 미워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니 저렇게 나오는 건 객관적인 증거가 있다, 이 말이었다.
‘그럼…… 우리 교수님들이 개소리를 시전하셨다…… 이 말인가?’
‘심장내과 교수님들 전반적으로 다 빡센데…….’
‘차기 월드 스타급 아니냐? 맨날 우리 보면 니들은 숄더 위에 왜 헤드가 없냐고…… 시비만 거시잖아.’
‘이제 보니 저분도 헤드가 아니었던 건가?’
레지던트들은 이현종의 말과 함께 급변하기 시작한 세계정세 아니, 교수들의 얼굴을 보며 이러쿵저러쿵 떠들어 대기 시작했다.
떠들었다고 해 봐야 속삭이는 수준이긴 했지만.
교수들이 워낙에 침묵을 지키고 있다 보니 대화를 드문드문 알아 들을 수 있을 정도는 되었다.
무엇보다 분위기는 아주 잘 읽혔다.
열 받았다.
하지만 화를 낼 수는 없었다.
“자, 이제 우심방의 이 덩이는 심장 근육과 완전히 동일한 성상을 가졌다는 걸 알게 됐어. 설마 여기서 조직 검사를 하겠다고 덤비는 놈은 없으리라고 믿고…….”
조직 검사라고 해서 예전처럼 무조건 가슴 열고 들어가거나, 밖에서 침습적인 방법으로 들어가는 건 아니었다.
심장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시대가 열리지 않았나.
당장 심혈관 중재 시술이 다 그런 것이었다.
그 얇은 심장 안에서도 이것저것 다 하는데, 상대적으로 넓은 심장에서 그걸 못 할까.
‘휴…… 닥치고 있길 잘했네.’
심장 내과 과장은 이현종의 말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아닌 게 아니라, 이현종에게 배운 이들답게 여기 모인 교수들은 다 손이 좋았다.
그중에서도 차기 월드 스타 감으로 꼽히고 있는 과장은 자신이 있었다.
솔직히 이현종 뺴면 세계 제일이라는 자부심도 있었고.
해서 심장 조직 검사도 못 할 건 없지 하고 있었는데, 이현종이 저렇게 나오면 할 말이 있어도 일단 여물어야 했다.
“심장이 위나 대장은 아니잖아? 니들이 소화기내과야? 그럼 그냥 아무렇게나 해도 돼. 모르겠으면 내시경 쑤셔 넣어서 조직 검사해. 그래 봐야 구멍밖에 더 나? 똥밖에 더 새어 나가? 그걸로 죽기엔 이제 태화 의료원은 너무 좋은 병원이지. 하지만 심장은 어때.”
그 사이, 이현종은 말을 이었다.
그래, 저게 맞았다.
대장에 구멍 나면 똥이 새고, 똥이 새면 콘타미네이션(Contamination, 오염) 때문에 복막염이 올 수는 있지만.
재빨리 대처하면 문제가 생기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해도 좋았다.
하지만 심장에 구멍이 나면?
‘하으.’
뭘 모르는 사람은 모르니까 겁이 나고, 뭘 아는 사람은 아니까 겁이 나는 상황이었다.
“니들이 뭔가 착각하고 있는 것 같은데…… 중재 시술을 하는 게, 그게 100% 안전해서 하는 거야? 아니잖아. 안 하면 죽으니까 하는 수 없이 하는 거야. 죽으니까! 아니면 안 해, 인마!”
이현종은 이제 화를 내고 있었다.
딱히 급발진하는 느낌은 아니었다.
이미 스텝업을 차근차근 밟아 나가고 있었기에 그랬다.
엄밀히 말하면, 처음부터 화낼 준비를 하고 있었던 셈 아닌가.
애초에 내려오라고 할 때부터…….
다른 이들 역시, 지금 생각해 보니 그랬던 느낌이었다.
“그 말은 곧 심장에 뭘 하기 전에 일의 경중을 미리 따져야 한다는 거야. 감 떨어졌어? 심혈관 중재 시술하다가 사망하는 경우 있어, 없어.”
“이, 있습니다.”
“그래. 그런 생각 못 하면, 우리가 만지는 게 심장이라는 생각을 못 하겠으면 가서 소화기 해! 거기는 그래도 돼! 근데 우리는 안 돼!”
소화기내과 사람이 여기 있었다면 아마 기함했을 터였다.
막말로 ‘구멍 나도 되지 뭐’ 이런 생각으로 시술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나.
암을 제거하거나 용종 제거를 하거나, 하여간 정당한 사유 없이 나는 구멍은 환자에게도 이득보단 불이익이 훨씬 크다고 봐야 했다.
다들 조심한다, 이 말이었다.
하지만 이 자리에는 소화기내과 의사가 없었고, 이현종은 깡패였다.
덕분에 별 무리 없이 말이 이어지고 있었다.
“머리를 굴리라고! 중재 시술한다고 손만 열심히 움직일 생각하지 말고. 머리가 나쁘면 우리 손도 고생인데, 무엇보다 환자가 고생해. 아니지. 고생만 하면 다행이지. 환자가 죽어! 심장은 죽는다고. 알아?”
분위기는 점차 살벌해져만 가고 있었다.
이쯤 되자 아까 말을 꺼냈던 김성진은 뻘쭘해졌다.
‘내……내가 뭘 알아서 한 말은 아닌데…….’
분위기가 마치 ‘김성진도 아는 걸 니들은 왜 몰라!’ 수준이지 않나?
따지고 보면 진짜 낫 놓고 기역 자도 모르는 건 김성진이다 보니, 뻘쭘한 것을 넘어 슬슬 민망해져만 가고 있었다.
“자…… 머리를 굴려 보자.”
다행인 것은, 이현종이 그렇게 불합리할 정도로 화만 내는 인간은 아니란 점이었다.
다들 알아먹었고, 레지던트들까지 얼어붙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아챈 시점에서 이현종은 화면을 뒤로 돌렸다.
“우심방에 종괴가 있어. 아니, 있는 것 같아. 그럼 뭐부터 생각해야 되지?”
이현종의 질문에 교수들도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이 인간의 질문과 답변에는 딱히 제한이 없어서 그랬다.
이수혁 같은 괴물이 있어서 질문의 의미가 없어지지 않는 한, 그냥 아는 사람이 답하는 게 원칙이었다.
“종괴의 종류…… 종류부터 떠올려야 합니다. 원론적으로는 그렇습니다.”
“원론적이라는 말은 굳이 왜 붙여? 당연히 그렇게 해야지.”
“아, 네네. 맞습니다.”
“그럼 여기서 발생할 수 있는 게 뭐가 있는데?”
“원발성 종양과 혈전입니다. 종양에는 점액종, 횡문근종이 대부분이고, 나머지가 섬유종, 지방종, 혈관종 등입니다. 악성으로는 육종이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좋아. 혈전일 가능성은 있나?”
“검사상 없습니다.”
“악성은?”
“모양이나 검사 결과를 보면…… 이 역시…….”
악성 종양은 달리 말하면 암이지 않나.
암의 가장 큰 특징은 주변을 파괴한다는 것이었다.
양성 종양에서 발생할 수 있는 메스 이팩트랑은 차원이 달랐다.
이놈은 그냥 직접적으로 주변을 부숴 버렸다.
심지어 자기 자신도 파괴되는 경우가 많았다.
너무 빨리 자라다 보니 혈액 공급이 미처 자라는 속도를 못 따라가서 그랬다.
이 정도 크기의 종양이라면, 이상 소견이 하나둘쯤은 발견되어야만 했다.
“그래, 그럼 나머지 종양이어야지. 근데 그 종양들은 모양이나 성상이 꽤 특이하지. 우선 이런 식으로 아예 주변에 영향을 안 미칠 수 있나?”
“그…… 어려운 일입니다. 이 정도로 크면…….”
심장은 기껏해야 어른 주먹 두 개 정도의 크기이지 않나.
심지어 두꺼운 근육으로 이루어져 있다 보니, 안쪽 공간은 훨씬 좁았다.
거기에 1cm가 넘는 종양이 있으면 어떻게든 영향을 받아야 했다.
“이미 다 답을 했는데…… 하여간. 이렇게 큰 종양이 악성도 아니고, 혈전도 아니고 심지어 양성 종양일 가능성도 떨어져. 그럼 뭐야.”
“그…….”
이현종은 답을 했다고 했다.
교수들은 창백해졌다.
답을 해?
‘하아…… 역시.’
그중에서 차기 월드 스타 과장만은 예외였다.
아까 MRI에서 보았던 모양과 이현종의 말, 그리고 이 분위기를 종합해서 보니 답이 보여서 그랬다.
‘아직도 멀었나.’
욕이 나와도 무방할 상황이었다.
태화 의료원 심장내과 과장 자리가 그냥 아무렇게나 주어지는 자리겠는가.
심지어 그냥 과장만 한 게 아니라 차기 회장이기도 했다.
이현종이야 당연하다는 듯이 한자리 해 먹었다지만 다른 이에게도 그런가?
그럴 수는 없었다.
이게 되려면 단지 큰 병원 교수라는 이유만으로는 부족했고, 당연히 이런저런 업적이 필요했다.
‘그래도 저놈은 좀 낫네.’
이현종은 부들부들 떠는 과장을 보곤, 다행이란 생각을 하며 말을 이었다.
“자, MRI 보면 화살표 모양이지. 종양이 화살표 모양이야. 근데 위치가 이상하지. 원래 이 위치에는 뭐가 있어야 하지?”
이젠 아예 답을 준 셈이었다.
여기서도 모르면 교수 직함 다 떼고 나가야 했다.
할 수만 있다면 내과 전문의 자격증도 때고 싶어지는 상황이 펼쳐질 처였다.
“아…… 크리스타 터미널리스(Crista terminalis)…….”
“이게…… 이렇게 크게 될 수도 있나?”
“허어.”
다행히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교수들은 저마다 탄식하며 정답을 내뱉었다.
그에 비해 레지던트들의 표정은 순수 그 자체였다.
설마 하고 옆을 돌아봤더니 김성진도 비슷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크리스타…… 뭐요?
뭐 이런 표정이었다.
‘무리도…… 아닌가?’
수혁이나 안대훈이 있었다면 얘기가 달랐을 터였다.
수혁이가 있었다면 딱히 이런 퀴즈를 낼 필요성도 못 느꼈을 터였고, 안대훈이었으면 적어도 교수급의 깨달음을 보여 주었을 터였다.
‘이게 일반인 수준이라는 거겠지.’
이현종은 잠시 하늘을 바라보았다.
사람을 아프게 만들었으면 고칠 사람이라도 좀 똑똑하게 내놓지, 이게 대체 뭐 하는 일이란 말인가.
이런 놈들 데리고 뭘 하라고.
‘어쩔 수 없어.’
젊은 시절의 이현종이었다면 반쯤 체념한 얼굴로 성질만 내고 나갔을 터였다.
하지만 이젠 알았다.
기나긴 세월 끝에 이현종은 그냥 원래 사람이 이렇다는 걸 알게 되었다.
자신이 특이한 것일 뿐, 대개의 인간은 이런 것이다.
그 생각과 함께 참을 인 자를 세 번 새겨 넣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
“크리스타 터미널리스(Crista terminalis). 심장이 더 잘 뛰게 해 주는 기관이야. 꽤 커. 해부학적 변이의 일환으로 지금과 같이 종양으로 오인될 만큼 커다란 경우도 있어. 그렇다고 뭔가를 해 줘야 할 건 없지. 원래 있는 것이니까. 지금도 봐라. 전혀 문제없잖아? 괜히 뭘 한답시고 시도하면 그때부터 문제가 생기는 거야. 여길 보면…….”
이현종은 종양으로 오인된 크리스타 터미널리스를 펍메드(의학 및 생명과학 논문 데이터베이스)로 검색해 보았다.
그러자 케이스 리포트가 몇 개 떴는데 대부분 예후가 안 좋았다.
“여기서도 사고 쳤지? 심장은 조심해야 해. 그냥 둬도 될 것을 괜히 건드리면 이렇게 된다고. 알아들어!”
그걸 보고 났더니 또 화가 났다.
이 환자도 이렇게 될 뻔했잖아.
망할 제자 놈들 같으니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