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923화 (923/1,303)

923화 치프 우하윤 (2)

‘그때…… 항암제를 어떤 거로 썼다고 했지? 아, 그래…… 5-플루오로우라실(5-fluorouracil), 에비루빈산(Farmorubicin), 시클로포스파미드(Cyclophosphamide). 딱히 면역 항암제나 타겟 항암제는 아니야. 아마 뭐가 안 나왔겠지.’

항암제는 세대에 세대를 거듭하며 발전한 결과, 이젠 면역 항암제가 나오고 있었다.

면역이랑 암이랑 무슨 상관이 있나 싶을 수도 있을 텐데 실은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봐도 무방했다.

암이라는 건 기본적으로 오류로 인해 발생한 내 세포 아닌가.

이걸 잡아내서 제거하는 게 면역 세포였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도 벌써 몇 번이나 암세포가 제거되었을 거란 얘긴데…… ‘이 면역 세포를 도와서 암과 싸우게 하자’라는 게 바로 면역 항암제였다.

개개인별로 다르게 적용해야 할 가능성이 큰 데다가 제작 공정 자체도 바이오 시미컬을 이용하기에 가격이 더럽게 비싸긴 했지만 그만큼 효과도 좋았고, 무엇보다 기존 항암제의 부작용을 크게 개선했다.

‘그렇다면…… 이 환자에서는 확실히 면역력이 감소해 있을 거라고 볼 수 있어.’

허나 아직까지는 적응증이 아주 넓지 못했다.

검사를 통해 적응증에 해당한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기존 항암제를 쓰는 수밖에 없었다.

하윤은 그러한 인과관계를 떠올리면서 환자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갔다.

그러자 조금 역한 냄새가 났다.

염증에 의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쇠약한 사람에게서 나는 그런 냄새였다.

‘그러고 보니…… 꽤 말라 보이는데.’

암 환자라고 하면 보통 비쩍 마른 모습을 떠올리기 십상인데, 그건 한창 치료가 진행 중인 환자거나 소화기계에 발생한 암 환자들에 해당하는 일이었다.

유방암, 그것도 3년 전에 치료가 종결되었다면 나이에 의해서라도 살이 좀 불었어야 했다.

“혹시, 환자분.”

하윤은 수혁과 대훈을 무작정 동경하는 게 아니었다.

어떻게 했더라?

어떻게 했지?

지금 수혁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이런 류의 고민을 날마다 해 온 참이었다.

“최근에 체중이 빠지거나 하지는 않으셨어요?”

그 때문에 추론이 꽤 광범위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뒤에 있던 이들은 조금 놀란 얼굴로 그들의 치프 우하윤을 바라보았다.

‘오…… 확실히…… 재발도 의심해야겠구나.’

‘맞네…… 그럼 역시 체중이…….’

어찌 보면 당연한 질문이었다.

하지만 물어볼 생각을 못 하고 있었다.

의사들이 이러고 있었으니, 환자는 어떻겠나.

“어…… 자세히는…… 근데 빠진 거 같긴 하네요. 지금 생각해 보니.”

“왜 빠졌다고 생각하셨나요?”

“입던 옷이 살짝 헐렁해졌어요.”

“얼마…… 사이에 그렇게 되셨죠?”

하윤의 미간에 한 번 잡힌 주름은 쉽사리 펴질 줄을 몰랐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옷 사이즈는 그렇게 쉽게 변하는 것이 아니니까.

그 정도로 빠졌다면 1, 2킬로 내외의 변화가 아닐 터였다.

더군다나 이 정도 나이의 여성에서 별다른 노력 없이 살이 그 이상 빠진다는 건…… 일반적이지 않은 일이었다.

“모르겠어요. 한 달? 한 달 안 된 거 같은데.”

“아, 그렇군요. 제가 좀 보겠습니다.”

“네.”

하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튀어나오려 했던 욕설을 간신히 삼키곤 환자의 목부터 살폈다.

아프다고 하지 않았다.

허나 안을 들여다봤을 때 확인 가능한 소견은 단지 붉게 발적된 점막뿐이었다.

물론 이것도 염증의 결과일 수는 있었다.

‘고열에 탈수……로 인해 이렇게 되었다고 보는 게 더 합당하지.’

하윤은 더 정확해 보이는 추론을 해낸 다음 목에서 경부로 시선을 옮겼다.

전이, 그러니까 재발이 있었다면 아마 이쪽 임파선이 비대해졌을 것이란 생각을 하면서였다.

허나 딱히 보이거나 만져지는 것은 없었다.

물론 경부 검진이라는 것 자체가 그렇게까지 정확한 방법은 아니긴 했다.

그럼에도 하윤은 실망했는데, 그 이유는 하윤이 나름 이비인후과 두경부암센터 교수들에게 수련을 받았기에 그랬다.

어떻게 하면 그나마 예민하게 목을 만져 볼 수 있는지에 대해 배웠다는 얘기였다.

‘없어…… 이상한데…… 단순 염증일까?’

염증…….

염증에 단순이라는 말을 붙여도 될까.

그래도 되는 경우도 있기는 했다.

동반되는 다른 증상이 없는 경우엔 그랬다.

하지만 이 환자는 어떤가.

고열에 통증까지 동반되어 있었다.

목만 아프다고 했다가 이제는 아래로, 아래로 뻗쳐 가고 있었다.

‘임파선은 붓지 않았어. 그렇다면…… 임파선염은 아닐 텐데. 뭐가…… 아, 설마.’

무엇이 있어 통증이 밑으로 뻗쳐 나갈까.

대개의 경우엔 근육통이겠지만, 그렇다면 해부학적인 한계가 보여야만 했다.

가령 승모가 아픈 건데 전혀 생뚱맞은 부위의 근육이 아플 수는 없지 않겠나?

이 환자의 경우가 그랬다.

근육의 크기를 한참 넘어 있었다.

“허리도…… 아프시다고요?”

“네. 허리? 허리라기보다는 배……?”

“아, 네. 여기까지군요.”

“네네.”

목부터 시작된 통증은 어느새 어깨를 넘어 배까지 진행되어 있었다.

항생제와 진통 소염제가 들어가는 와중에도 진행한 것이었다.

근육도 아니고, 임파선도 아니면 대체 뭘까.

혹시나 싶어 뒤를 돌아보니 1년 차는 그냥 얼어 있었고, 2년 차도 멀뚱히 서 있었다.

나도 저때 저랬나 싶었지만, 무용한 생각이었다.

‘하아.’

하윤은 고개를 살짝 저어 대고는 추론을 이어 나갔다.

수혁이라면…….

배운 것을 전부 사용하고 있을 터였다.

어떤 환자를 봐도 모든 지식을 이용해 종합적인 사고를 해 오지 않았나.

그런 쪽으로는 아무래도 통합진료센터를 겪은 태화 의료원 전공의들, 그중에서도 열심히 하고 있는 소수의 이들이 능숙할 수밖에 없었다.

아마 어지간한 병원의 교수들보다도 잘할 터였다.

그쪽은 세분화해서 나눠 가고 있는 데 반해, 이쪽은 종합하고 있었으니.

‘혈관이라면…… 저렇게 따라 내려갈 수도 있지. 애초에 혈액이 흐르고 있으니 염증이 있다면 훨씬 빨리 번질 거고……. 혈관염이라…… 안 좋은데.’

하윤은 몸을 따라 내려갈 수 있는 구조물 중 혈관을 짚어 냈다.

이쪽저쪽 안 가는 곳이 없는 기관이니, 지금 환자 증상의 범인으로 지목되기에 합당해 보였다.

“일단 검사를 좀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영상 검사인데, 김 선생.”

“네? 아, 네.”

결론을 내린 하윤은 교수에게 보고하기 전에 일단 검사는 해 보기로 정했다.

MRI 검사는 고가이기에 주치의 선에서 처방하기엔 무리가 있지만, 치프라면 그래도 되었다.

그들의 판단은 설령 잘못되었을지라도 어지간한 지식과 경험에서 기반하기에 그랬다.

“MRI 동의서 좀 받아. 설명 제대로 해 드리고.”

“어…… 이걸 왜…….”

“아. 혈관염이 의심되어서 그래.”

“혈관……염이요……?”

주치의, 그러니까 2년 차는 영문을 모르겠단 얼굴로 물어왔다.

사실 혈관염이라 단정 짓기엔 단서가 좀 부족한 상황 아닌가?

실제로 그랬지만, 하윤은 이미 어느 정도 나름의 근거를 마련해 둔 참이었다.

“아까 흉부 엑스레이에서 뭐 이상한 거 못 봤어?”

“네? 그…… 페렴 소견은 없었…….”

“흉부 엑스레이에서 그것만 보나?”

“아, 아닙니다. 교과서적으로는 더 많은 정보를…….”

“교과서적이 아니라, 임상적으로도 그래야지.”

하윤은 지금 말투가 수혁과 비슷했으려나 하면서 말을 이었다.

“대동맥궁 부근이 확장되어 있었잖아. 엑스레이라 판별이 어렵긴 하지만…… 환자의 증상이 뻗어 가는 양상을 보이고, 고열을 동반하고 있다는 점.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파선염은 아니라는 것을 보면, 일단 혈관염이라 생각하고 검사하는 게 좋아.”

“아…… 네! 선생님!”

2년 차 입장에서는 아침부터 날벼락인 셈이었다.

1년 차들이 보는 앞에서 6시부터 내내 털리고 있지 않나.

하지만 표정이 그리 어둡지만은 않았다.

혈관염이라니?

대동맥궁이라니?

그럼 대동맥에 혈관염이 생겼다는 건데…….

‘환자 죽을 뻔한 거 아냐, 이거?’

가슴이 두근거렸다.

시벌…….

그걸 막아 준 치프라면 쌍욕을 넘어, 솔직히 한 대 쳐도 참아 줄 만했다.

“환자분, 의심되는 질환이 있는데 검사 한번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MRI 검사다 보니 시간이 좀 걸릴 수 있는데, 최대한 빨리 할 수 있도록 조치하겠습니다.”

하윤은 대강 설명한 후, 환자에게도 설명을 이어 나갔다.

그 시각, 조태진은 병동 스테이션에 나와 있었다.

7시 40분.

평소보다 훨씬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이른 시간이긴 했다.

‘올해는 또 어떤 사건 사고들이 있을까.’

수혁이랑 돌 때는 사건 사고는커녕 진짜 재밌고 신나는 일만 있었는데.

돌이켜 보면 그건 정말 이상한 일이었을 뿐이었다.

보통 레지던트들과의 일은…….

특히 3월, 4월은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인턴들도 이제 막 들어온 애들 아닌가?

그래서인지 기상천외한 사고를 치는데…… 심지어 그걸 막아 줄 주치의도 사고를 치고, 치프들도 이상하게 2년 차 때 잘하던 애들이 3월에는 사고를 치는 경우가 많았다.

“교수님 일찍 오셨네요. 커피 한잔 드려요? 내리다 보니까 남았는데.”

“아뇨, 이미 두근거려서.”

“역시 교수님도 그러시는구나.”

“네. 수혁이 보고 싶다.”

“네?”

“아니, 아닙니다.”

조태진은 가슴을 쓸어내리며 고개를 털었다.

그런 조태진을 보면서 병동 수간호사도 한숨을 쉬었다.

병동에서 사고가 터지면 의사들도 고생이지만 간호사들도 고생 아닌가.

특히 그중에서도 책임지는 입장에 있는 수간호사는 스트레스가 더했다.

가뜩이나 신규 간호사들은 잘 도망치는데 사고라도 겪으면 어찌 되겠나.

“하유.”

“이휴.”

두 높은 사람은 저마다의 이유로 한숨을 쉬었다.

그러다 조태진이 집에서 가져온 카모마일 차를 한 모금 마시곤 입을 열었다.

“근데 얘들은 어디 갔대요? 안 왔을 리는 없는데.”

“아…… 지금 치프 회진 돌고 있을 거예요. 담당 간호사 하나가…… 아, 저기 오네요.”

“오. 하윤이네. 그나마 나으려나.”

조태진은 저 멀리서 모습을 드러낸 하윤을 보며 애써 미소를 지어 보였다.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않나.

쟤는 1등이니까.

성적만 얘기하는 게 아니라, 레지던트 생활을 종합해 봐도 그랬다.

“교수님, 노티드릴 환자가 있습니다.”

“응? 으응. 그래, 해 봐.”

허나 조태진의 미소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보자마자 노티드릴 환자가 있다지 않나.

‘사고라도 쳤나?’

뭘 잘못 줬나?

조태진도 긴장한 나머지 어제 병원에 와서 환자를 보고 간 참이었다.

특별히 위중한 환자는 없었다.

지옥의 3월이 오기 전에 최대한 환자를 정리했으니까.

근데 사고라니?

“어제 응급실 통해 내원한…….”

허나 노티를 듣다 보니 어랍쇼 싶어졌다.

‘얘 봐라……? 왜 얘한테서 수혁의 향기가 살짝 나지?’

안대훈도 그럴 때가 있었더랬다.

자주는 아니었고, 진하지도 않았지만.

그것만으로도 레지던트 이상의 대우를 해 주었다.

그리고 지금 하윤이 그랬다.

이 단단한 논리, 그리고 그 논리를 근거로 한 처방까지.

“교수님?”

하윤은 그때 조태진의 눈에 살짝 눈물이 맺힌 것을 확인했다.

‘지인인가……?’

그가 수혁을 떠올리고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기에, 영 엉뚱한 생각만 하게 되었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