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6화 아 2달 남았는데 (1)
김인수.
3년 차 군의관.
내과 전문의.
싱글.
여러 가지 수식어가 따라붙는 그는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이제 전역까지 2달밖에 남지 않은 데다가, 기본적으로 수도 병원으로 올라와 있는 사람이다 보니, 이런 모습을 보이는 건 말이 안 되는 상황이긴 했다.
‘아…… 뭐지…… 이 환자?’
하지만 김인수의 마음은 최근 굉장히 어지러워져 있었다.
알 수가 없는 환자가 하나 와서 그랬다.
“쿨럭. 쿨럭. 군의관님…… 저, 기침이 멈추질 않습니다.”
“으, 으응. 일단…… 내가 약을 쓰고 있으니까.”
“전에는…… 좋아지다가 왜 이러는 걸까요?”
“그게…… 오전에 간 민간 병원에서는 뭐라고 했어?”
남자 22세 환자.
기침을 주소로 내원했었고…… 당시 엑스레이상 폐렴이 의심되어 레보플록사신을 썼더랬다.
생각보다 폐렴 소견이 좀 심하긴 했지만, 그땐 그 누구도 긴장하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국군 수도 병원은 나름 군의관 풀이 괜찮아서 그랬다.
영상의학과 전문의에 내과 전문의가 붙어서 진료하는 경우가 어딨겠나.
‘그때는 좋아졌는데…… 왜 이러는 거야 대체.’
그렇게 호전되는가 싶더니, 지금은 더 악화되고 있었다.
그렇다고 약 쓰기 전에 나갔던 혈액 배양 검사에서 뭐가 나왔냐고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망할.
망할!
“아…… 거기서도 기록만 봐서는 잘 모르겠다고 합니다. 일단 약을 주기는 줬는데…….”
“모르겠다고 하면서 약을 줬다고?”
“네.”
“아니…… 일단 줘 봐.”
“네.”
김인수는 후우 한숨을 쉬면서 처방전과 의뢰서에 대한 답신을 바라보았다.
‘댁들이 모른다고 하면 안 되지, 이 사람들아…….’
민간 병원이라고 해서 그냥 동네 병원에 보낸 건 아니었다.
애초에 동네 병원보다는 국군 수도 병원의 진료가 더 나으니까.
해서 분당 한국대학교 병원에 보냈는데, 답신이 진짜로 애매하게 왔다.
아니, 애매하다 못해 이건…….
‘핑계를 대? 그것도 우리를 비난하는 방향으로?’
수도 병원에서 초기 대응이 부적절하게 이루어지는 바람에 진단을 놓친 거 같다, 우선 경과 관찰하고 배양 검사를 다시 나가 보자 등등.
모르겠다는 말만 하면 될 것을 주저리주저리 적어 놨다.
그나마 다행인 건, 병사는 이 답신을 읽지 못했단 점이었다.
같이 갔던 부사관이 들고 와서 아예 봉투에서 꺼내 보지도 않았기에 그랬다.
그렇다고 해서 인상이 펴질 일은 또 아니었다.
망할.
부우웅.
김인수가 속으로나마 ‘망할’을 열 번 정도 되뇌고 있을 때쯤, 전화기가 울렸다.
김진용이었다.
“어…… 웬일?”
“목소리가 왜 그래. 너 설마 병원이냐?”
“어, 그렇지. 지금 시간에 병원이지 그럼.”
“야, 이제 말년인데 뭘 그렇게까지 해”
“넌 어딘데……?”
좋은 친구는 아니었다.
학교생활까지 치면 거의 10년은 같이 부대꼈으니 친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쁜 사람을 좋게 포장해 줄 용의는 없었다.
“집이지.”
“집……? 휴가야?”
“아니, 그냥 튀었어. 뭐 어쩔 거야. 난 이제 나갈 건데.”
“아…….”
이것 봐.
병원에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부대에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이렇게 무단결근을 하면 어찌 된단 말인가.
새삼스럽게 군인본분 위국헌신 같은 말을 들먹일 생각은 없었다.
다만 그 부대에 있는 병사들이 불쌍했다.
‘하긴…… 안에 있어서 진료를 대충하긴 했을 거야.’
뻔했다.
제대로 보지도 않고 약이나 깔았겠지.
무리한 억측은 결코 아니었다.
이 녀석은 태화에서조차 그랬으니.
“근데 나 환자 보고 있어서.”
“아…… 공 치자고 전화한 건데. 안 나올 거야?”
“공?”
“골프 인마. 군의관 3년 했으면 이제 어지간히 쳐야지.”
“아…… 난 딱히…… 몇 번 안 쳐 봤는데.”
“아니, 넌 그렇게 허송세월을 하냐?”
허송세월……?
나 군의관 시절에만 논문 4개는 넘게 썼는데……?
헬스도 열심히 해서 체력도 좋아졌다.
몸이 이뻐졌는지는 모르겠지만, 하여간 지독한 펠로우 기간 정도는 어느 정도 견딜 수 있을 거 같았다.
‘뭐…… 얘한테 논문 얘기하는 건 의미가 없지.’
레지던트끼리나 하는 얘기긴 한데, 대개 두 부류로 나뉘기 마련이었다.
하나는 교수를 하기 위해 대학 병원에 남는 부류, 그리고 다른 하나는 개원 쪽으로 나가는 부류.
전자와 후자 사이에 더 우월한 쪽이 있는 건 결코 아니었다.
뭐가 되었건 있는 자리에서 열심히 하는 전문직은 세상에 보탬이 되는 법이니.
하지만 김진용은 진짜로 그냥 돈이나 벌 생각이었다.
그럴 생각이면 다른 과를 해도 좋았을 텐데, 전문의까지 딴 마당에 그런 생각은 의미가 없었다.
“뭐…… 그렇게 됐어. 하여간, 나 지금 환자가 좀 어려운 환자라.”
“어어. 알았다. 전역하기 전에 한 게임 해.”
“응, 그래.”
김인수는 아까와는 조금 다른 의미의 한숨을 쉬고는 전화를 끊었다.
고개를 돌아 보니, 환자가 멀뚱히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쩌지.’
막말로 그는 전역을 2달 앞둔 사람이고, 수도 병원엔 내과 의사들이 더 있으니 그쪽으로 맡겨도 되었다.
하지만 명의가 되기 위한 조건 중 하나는 책임감이었다.
김인수를 그것을 타고나기도 했고, 또 이현종과 이수혁을 통해 배우기도 했다.
관여를 하게 된 이상 그냥 둘 생각은 없었다.
게다가 김인수는 자신이 현 수도 병원에서 제일 나은 의사라고 자평하고 있었기 때문에 더더욱 그럴 수밖에 없었다.
‘수혁이…… 이수혁 교수님한테 물어보면 어떻게든 되긴 할 거야.’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2년 후배이자 지금은 교수가 된 이수혁이었다.
일종의 치트키 같은 존재라고 볼 수 있었다.
물론 사람이고, 또 이수혁도 나름의 고민을 하기야 하겠지만.
다른 사람이 볼 때 이수혁은 에디트 같은 사람 아닌가?
하지만…….
‘당장 거기 들어가야 되는데 좀 그렇잖아? 흐음…… 그래, 신현태 교수님하고 상의를 해 보자.’
김인수는 열려 있는 사람이었다.
괜한 자존심을 부리지 않는 사람이기도 했다.
하지만 뭔가 좀…….
기왕 통합진료센터에 들어가게 되었으면 잘 보이고 싶지 않겠나?
“내가…… 우리 은사님하고도 상의를 해 볼게.”
“아…… 태화 나오셨다고 했죠? 그럼 이수혁 교수님인가요?”
“아…… 그…… 아직 은사님은 아니시고. 사실 내 후배셔. 물론 나보다 훨씬 뛰어난데, 감염 쪽 교수님하고 얘기하려고.”
“아, 네. 감사합니다. 군의관님.”
“그, 그래.”
김인수는 감사 인사에 객쩍은 표정을 지으며 병실을 빠져나왔다.
그런 김인수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환자에게 다른 병사 환자가 말했다.
“야, 니네 군의관은 되게 친절하다.”
“응? 어, 그렇더라. 좋은 분인 거 같아.”
“그러니까. 나는 저런 사람은 처음 보는 거 같은데? 우리 부대 놈은…….”
“야, 그래도 대위인데 놈은 좀.”
“뭐 어때, 보이지도 않는데.”
“그런가?”
사실 객쩍어할 필요는 없긴 했다.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까.
실력 없이 노력만 하고 있다면야 문제가 되겠지만, 김인수는 내과 전문의지 않나.
게다가 약간의 어드밴티지를 얻었다곤 해도 일단 통합진료센터에 붙은 사람이니 실력도 있는 편이었다.
무엇보다 환자는 이미 고마워하고 있었다.
“어, 인수야. 웬일?”
“네, 교수님. 저 김인수입니다.”
“응, 그래. 무슨 일이야?”
하여간 김인수는 자신이 가장 신뢰하고 또 좋아하는 교수 중 하나인 신현태에게 전화를 걸었다.
예상대로 신현태는 친절하게 받아 주었다.
김인수는 안심하면서 말을 이었다.
“네, 교수님. 환자 상의드릴 일이 있어서요.”
“어…… 그래, 얼마든지. 어떤 환자길래?”
마침 신현태는 차를 타고 이동 중이었다.
원장이 되고 보니 이런저런 일로 회의에 참석할 일이 많아서 그랬다.
태화에서는 원장 정도 되면 계열사 임원 대우를 해 주기 때문에 기사도 있었다.
해서 뒷자리에 앉아 느긋하게 들을 수 있었다.
“네, 남자 22세 환자입니다. 특이 병력은 없는 환자고…… 내원 2주일 전부터 갑자기 기침이 심해져 부대 군의관 진료 보았고, 감기로 진단되어 약 먹다가 악화되었습니다.”
“아이고…… 아직도 부대 군의관은 전문과 없이 그냥 보니?”
“네? 아, 네. 작은 부대에는 군의관이 한 명만 있어서…… 아마 정형외과 군의관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래, OS(정형외과)면 기침을 알 수가 없지.”
게다가 군의관이라고 하면 좋아하는 사람이 거의 없지 않나?
진료를 대충 본다는 편견도 있고.
김진용 같은 놈이 있다 보니 할 말이 많을 수는 없긴 한데…….
그럼에도 핑계를 대자면, 군은 인력 수급의 문제로 아무 과 의사나 막 박아 넣는 편이었다.
그렇다 보니 전혀 모르겠는 환자를 봐야 하는 경우가 많아서 이런 경우가 종종 있었다.
“네. 아무튼, 악화된 채로 사단 의무대로 이송되어 엑스레이 시행했습니다. 거기서 폐렴 소견을 보인다고 해서 저희 병원으로 왔습니다.”
“그게 언제야?”
“일주일 전입니다.”
“으음…… 지금 입원 중이고?”
“네.”
“으음.”
신현태는 끄응 소리를 냈다.
말을 종합해 보면 벌써 수도 병원에 입원하지도 일주일이나 되었다는 뜻이라 그랬다.
근데도 갈피를 못 잡고 전화를 했다는 건, 확실히 어려운 환자라는 뜻이었다.
‘인수가…… 그래도 열심히 했던 친구지?’
김진용이 전화했으면, 그런 놈은 전화할 만큼의 성의도 없겠지만, 대강 생각했을 터였다.
어지간하면 모를 테니.
하지만 인수는…….
신현태는 자기도 모르게 자세를 고쳤다.
“그래, 경과는?”
“오자마자 혈액 검사랑 엑스레이 다시 찍었습니다. 당시 양측 폐 하엽에 폐렴 소견이 보였고, 혈액 검사에서는 CRP가 상승해 있었습니다.”
“백혈구는?”
“12,000가량……으로 상승해 있었습니다. 세균성 폐렴으로 판단하여 혈액 배양 검사 및 객담 배양 검사 먼저 나갔고, 동시에 레보플록사신으로 경험적 항생제 치료 시행했습니다.”
“잘했네.”
나이가 젊고, 기저질환도 없는 환자 아닌가.
그렇다면 복합 약제까지는 쓸 거 없이 단독 약으로 가도 무방했다.
레보플록사신이면 내성이 흔하게 발견되는 약제도 아니니…….
“네, 그렇게 약을 쓰면서 이틀 후에는 호전을 보였습니다. 그러다가…….”
“악화됐니?”
“네.”
“배양 검사에서는 나온 거 없고?”
“없었습니다.”
“왜…… 그렇지? 오자마자 썼잖아. 아, 이전 부대에서 항생제를 썼나?”
“네. 부대에서 감기약으로 오구멘틴을 처방했었습니다.”
“아니…… 감기로 진단했다면서 약은 항생제를 줬어?”
이건 뭐지?
감기면 가벼운 상기도 감염을 뜻하는 거고, 그런 경우엔 그냥 증상 조절만 하면 되는데……?
감염내과 교수로 거의 평생을 살아온 신현태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네. 줬다고 합니다.”
“그래…… 줬다는데 뭐. 하여간 일이 어렵게 됐네? 음…… 아무리 생각해도 일반적인 폐렴일 것 같은데…… 혹시 병력 사항에선 특이한 게 전혀 없는 거니?”
“아, 아뇨. 있기는 합니다.”
“그럼 그거부터 말을 해 줘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