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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닥터-927화 (927/1,303)

927화 아 2달 남았는데 (2)

나무라는 듯한 신현태의 말에 김인수는 살짝 위축되었다.

군의관 3년 지내다 보면 둔감해지기 마련이지만, 김인수는 애초에 교수 꿈나무다 보니 꾸준히 논문을 쓰고 어쩌고 하느라 교수들과 대화가 이어지고 있었다.

“어…… 죄송합니다.”

“아니, 죄송하다고 할 건 아니고. 내가 사실 지금 회의 들어가려고 차 타고 가는 중이야.”

“앗. 그럼 나중에 다시 말씀드릴까요?”

“아니…… 왜 그렇게 사람이 급해. 멀어. 시간 있기는 한데 많지는 않다는 얘기야.”

“네, 교수님. 근데 운전 중인데 괜찮으실지요?”

“어…… 나 원장이라 그룹에서 기사분 붙여 줬어.”

“앗.”

김인수의 머리가 후루룩 돌았다.

그의 뜻이 무슨 출세나 권력에 있지는 않았다.

허나 원장쯤 되면 기사가 붙는다는 말에는 혹할 수밖에 없었다.

드라마나 영화 같은 걸 보면, 이동하는 데 기사가 붙는다는 건 어쩐지 성공의 상징 같은 것 아니던가.

“말…… 안 해 줄 거니?”

그렇게 놀라서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으려니, 신현태가 다시 재촉했다.

상대적으로 부드러운 사람이라지만 기본적으로 교수를 하다 보면 성질이 급해질 수밖에 없었다.

아마 이현종이었으면 지금쯤 지랄이라는 말로밖에는 표현이 안 될 행동을 했을 게 뻔했다.

“아, 네. 교수님. 환자, 남수단 햇빛부대 파병 이력이 있습니다.”

“응……? 그럼 풍토병 가능성이 있잖아? 그걸 왜 말을 안 해.”

하여간 김인수의 말에 신현태는 좀 더 통화에 집중했다.

그냥 단순 지역 감염 폐렴이라면, 솔직히 말해서 별일 아닐 가능성이 꽤 컸다.

군대, 그것도 파병까지 갈 정도로 건강한 젊은 환자에서 문제가 있겠나?

물론 훈련병 시절에야 말도 안 되는 수준의 바이러스 감염도 가능하고, 심지어 그것 때문에 죽게 되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대개는 괜찮았다.

하지만 남수단에 다녀왔다면 얘기가 완전히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아프리카는 예나 지금이나 심각한 열병이 만연한 곳이고, 심지어 남수단이라면 콩고 민주공화국과 국경이 맞닿아 있는 국가이면서 동시에 서아프리카 지역이지 않나.

‘거기는 에이즈, 원숭이 두창에 에볼라까지…… 없는 게 없지.’

감염내과 의사에겐 가장 도전적인 지역이라 봐도 무방했다.

“네, 저도 풍토병일 가능성을 의심했습니다만…… 혼자 갔다 온 게 아니라, 부대 전체가 돌아온 듯합니다. 오는 내내 배에 타고 있었고요.”

“배? 그럼 꽤 걸릴 텐데.”

“네. 거의 열흘 넘게 같이 지냈다고 들었습니다.”

“열흘이라.”

열흘이면 감염병에 있어서 엄청 긴 시간이었다.

어지간한 질환의 잠복기는 넘는다고 봐도 무방했다.

물론 원숭이 두창의 경우엔 최장 3주의 잠복기도 관찰되기는 했지만…….

‘원숭이 두창은 증상이 너무 뚜렷해. 이 환자에겐 가능성이 없어.’

그건 두창이지 않나?

피부에 농포가 잡혀야 한다는 뜻이었다.

애초에 농포가 잡혀야 감염력도 생기는 질환이다 보니, 지금 김인수가 말하는 환자는 해당 사항이 없었다.

‘그거였어도 김인수 선생이 알 것 같진 않지만…….’

신현태는 여러 생각을 하면서 말을 기다렸다.

김인수는 신중한 말투로 말을 이었다.

“그중에서 단 한 명도 비슷한 증세를 보인 사람이 없었습니다. 모두 건강합니다.”

“역학조사를 직접 했나?”

“네. 제가 직접 했습니다.”

“아…… 그럼 확실할 텐데…… 흐음…… 그래서 풍토병을 배제했구나.”

“네, 그렇습니다.”

“흐음.”

배를 타고 왔고, 같이 타고 온 것도 모자라 아예 같이 지냈던 사람들이 멀쩡하다는 건 전염병일 가능성이 떨어진다는 것을 시사했다.

김인수의 고민은 이제 신현태에게로 엉겨 붙기 시작했다.

“으으음…….”

그는 자신이 통화 중이라는 사실도 잠시 잊은 채 신음을 흘렸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혼자 외래를 보다가 본 환자가 아니지 않나.

아끼는 제자가 도움을 요청한 상황이었다.

어떻게 해서든 진단에 도움을 줘야만 했다.

그게 체면에도 맞았고, 사리에도 맞는 일이었다.

“감염병이 아닐 가능성도 있겠는데. 자가면역질환 쪽은 확인해 봤나?”

“네? 아…… 혹시 몰라서 검사는 나가 봤는데, 아직 나오는 게 없습니다.”

“나갔어?”

“네.”

해서 질문을 던져 봤는데, 검사는 이미 나갔다는 말이 돌아왔다.

하긴 그게 당연한 일이긴 했다.

김인수면 그래도 짬밥이 얼만데 생각 없이 그냥 두었겠나.

기계적으로라도 처방은 나갔을 터였다.

“결과는? 나온 게 없다는 건 아직 결과가 안 나왔다는 뜻인가?”

“아, 아뇨. 나온 게 있습니다만…… 특이한 소견은 없었습니다.”

“그렇군. 으음.”

신현태는 곤란해졌다.

이렇게 전화로만 뭘 알아보기에는 쉽지 않은 환자여서 그랬다.

김인수도 물론 훌륭한 의사긴 하지만, 그의 문진과 신체 검진 등이 신현태만 하겠나?

신현태는 지금껏 수십 년간 감염내과 교수로 살아온 사람이었다.

그것도 그냥저냥 지낸 게 아니라, 이현종 때문에라도 미친 듯이 노력한 기간이 적지 않았다.

“일단…… 나 회의 끝나고 그쪽으로 갈게.”

“네? 오신다고요?”

“아. 퇴근하나?”

“아, 아닙니다. 환자부터 해결해야 저도 뭘 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실은 지난 며칠간 그냥 여기 당직실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그래?”

확실히 김인수는 인성이 된 놈이었다.

아니, 이건 인성 문제가 아니라…….

‘얘도 명의병 환자구나. 그것도 중증…….’

의사라고 해서, 다 자기 인생 희생해 가며 환자를 봐야 한다는 법이 있던가.

아무리 사람 살리는 일이 숭고한 일이라 해도 저렇게 하다간 지쳐 버리기 일쑤였다.

허나 누가 시켜서 하는 게 아닌 우러나서, 그것이 비록 부담감에서 발로한 것이더라도 하고 있다면 확실히 명의병에만 머물지 않고, 명의에 이를 가능성이 컸다.

신현태도 지금은 좀 나았지만, 지금보다 더 젊었을 시절에는 한창 앓았던 기억이 있었다.

“그래, 그럼…… 어차피 오늘 회의는 그렇게까지 오래 안 걸릴 테니까, 내가 갈게.”

“네, 교수님. 감사합니다. 저, 그리고…….”

신현태의 목소리가 눈에 띄게 밝아져서 김인수도 나름 안심했다.

과연 신현태다 싶기도 했다.

제자가 전화했다고 해도 생판 남의 병원에 오겠다고 하는 게 어디 쉬운 일이라던가.

물론 국군수도병원은 그 특성상 진료 협력 병원 교수의 방문을 장려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다 오는 건 절대 아니었다.

“그리고?”

“그…… 통합진료센터에는 비밀로 해 주실 수 있을까요?”

이런 좋은 사람이라면, 그리고 기분이 좋아진 상태라면 이런 부탁을 해도 될 거 같았다.

“비밀……? 아.”

다행히 신현태도 김인수와 비슷한 처지의 사람이었다.

멍청한 사람은 절대로 아니었다.

아니, 수재였다.

어쩌면 천재일 수도 있었다.

허나 옆에 있는 놈이 이현종이었지 않나?

반평생을 괴물과 함께했던 만큼,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 인정 욕구가 치밀어 오를 수밖에 없지.’

천재들은 기본적으로 누군가를 평가하거나 할 때 기준이 높지 않겠나.

이현종은 심지어 성질도 그렇게 좋은 편은 아니다 보니 더더욱 그랬다.

그런 사람이 인정해 줄 때는 어찌나 기쁘던지.

무엇보다 김인수는 예비 펠로우였으니, 더더욱 욕구가 있을 터였다.

“그래, 비밀 지켜 줄게.”

“감사합니다.”

“혹시 내가 모르겠어도 거기에는 안 물어볼 거고. 다른 사람들을 동원해 보자.”

“네, 감사합니다! 교수님!”

그래서 적극적으로 돕기로 했다.

김인수는 감사하다 말하며 전화를 끊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직접 와서 봐주시면 뭐라도 되긴 할 거야. 그럴 거야.’

그럴 수밖에 없지 않나?

“저, 군의관님! 군의관님!”

그렇게 안도의 한숨을 몇 번 더 내쉬고 있으려니까, 누군가 달려왔다.

날카로운 소리였다.

거의 비명에 가까운?

그 순간 김인수는 빠릿해졌다.

병원에 있다 보면 이런 종류의 알람에 예민해질 수밖에 없어서 그랬다.

“왜, 왜 그래요?”

돌아보니 간호장교였다.

같은 대위고, 그 말은 간호장교로 일한 지도 꽤 되었단 얘기였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같은 연차의 대학 병원 간호사와 비교하는 건 무리가 있었다.

개개인의 노력과는 별개로, 대학 병원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쌓는 지식과 경험을 따라잡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별거 아니어라, 제발. 제발!’

해서 김인수를 요행을 바랄 수 있었다.

“환자 고열과 함께 목이 뻣뻣하다고 합니다. 제가 만져 봤는데, 경직된 느낌이…….”

“아…… 어떤…… 어떤 환자요?”

“김시환 환자요!”

“아.”

허나 요행은 없었다.

목이 경직되다니.

요행은커녕 망할 일이었다.

‘이런 미친?’

전혀 그런 낌새가 없었는데, 갑자기?

뭐 이런 생각을 하면서, FM 대위답게 구보로 뛰었다.

“김시환 상병!”

그러곤 병실로 들어가면서 외쳤다.

“네, 네.”

다행히 의식은 있었다.

허나 누워 있는 폼이 어째 좀 어색했다.

아까와는 확연히 다른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하여간, 김인수는 퍼뜩 드는 생각이 있었다.

‘그러고 보니까…… 머리 아프다고 했었지.’

열나서 아프다고 생각했다.

기침하고, 열나고, 가래도 있고, 심지어 엑스레이도 안 좋고.

CT상에서도 그랬으니까.

헌데 목이 경직되고 있는 것을 보면…… 머리 쪽으로도 염증이 번진 모양이었다.

불안감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항생제를 쓰고 있는데…… 뇌수막염이 진행돼?

‘자가면역질환은 아닐 거 같다…….’

이런 종류의 자가면역질환이 있다면 인류는 멸망하지 않았을까?

뭔 놈의 면역 세포가 자기 몸을 이렇게까지 적극적으로, 그것도 급하게 공격을 해?

신현태의 질문과 함께 자가면역질환으로 확 기울었던 김인수의 마음이 다시 감염병 쪽으로 확 기울기 시작했다.

‘망할.’

혹시나 해서 만져 봤더니 진짜로 경부 경직이 있었다.

부정할 수 없는 뇌수막염의 징조였다.

“안과 불러 주시고, CT! CT 찍읍시다!”

“네!”

다급해진 의료진들과는 달리, 환자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

분명 갑자기 머리가 좀 더 아파진 것 같기는 했다.

근데 죽을 정도는 아니었다.

‘다들…… 왜 이래…… 이제 그만해…… 나 너무 무서워…….’

호들갑을 떠니까 진짜로 죽을 것 같아지고 있었다.

“어…….”

드르륵 소리와 함께 침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의무병과 함께 김인수가 밀고 있었다.

‘대위님…… 원래 이런 거 안 밀잖아……요?’

왜 그렇게 불안한 얼굴로 뛰는 건데.

의사가 이러면 안 되는 거 아닙니까?

응?

나 무섭다고.

드득-

문이 열리고 CT실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짜증 난 얼굴의 군의관 하나가 나타났다.

수도병원은 가뜩이나 바쁜데 불러제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형, 뭔데요?”

“어! 뇌수막염! 안압 좀 봐 줘!”

“어……? 네네. 알겠…… 알겠어요.”

그런 것도 잠시, 김인수가 호들갑을 떨기 시작하자 그도 호들갑을 떨기 시작했다.

“눈! 눈 떠!”

“아니…… 뜨고 있어요…….”

감아야 될 것처럼 말하지 말라고…… 이 사람들아…….

김 상병은 불안한 마음에 심장이 두근대기 시작함을 느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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