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928화 (928/1,303)

928화 아 2달 남았는데 (3)

“의식 레벨은?”

“선생님, 김 상병 아까부터 대답 꼬박꼬박 하고 있습니다.”

“아. 아.”

김인수는 간호장교의 말에 환자를 돌아보았다.

확실히…… 경부 경직은 있는 상태긴 해도,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아파 보이진 않았다.

열은 슬금슬금 오르고 있고, 어떻게 봐도 안 좋아지고 있긴 하지만, 이미 어려울 만큼 안 좋아진 건 아닌 듯해 보인다는 얘기였다.

‘와…… 나 진짜…… 훅 갔네.’

뇌수막염이 물론 무서운 병이긴 했다.

예전엔 이 병 때문에 영구적인 전농, 즉 귀가 안 들리게 되는 경우도 꽤 많지 않았던가.

하지만 그건 어린 시절에 걸렸을 때 한정되는 얘기였고, 또 열 조절이 안 될 때의 이야기이기도 했다.

아직 이 환자의 원인 병원체를 알지 못하긴 하지만, 여하간에 약을 막 쓰고 있지 않나.

열은 조절 중이었다.

‘차근차근 생각하면 이럴 일이 아니었는데…….’

아마 대학 병원에 있었을 때라면, 그러니까 전문의도 아니고 전공의로 있던 때도 이런 일로 손을 벌벌 떨진 않았을 터였다.

하지만 지금은…….

“음.”

김인수는 부리나케 자신의 손을 감추고, 신음을 가장해 목소리를 확인했다.

다행히 손이 떨리는 것에 비하면 목소리는 괜찮았다.

하도 목소리 깔고 말하는 연습을 해 와서 그런지, 지금도 그냥저냥 들을 만했다.

‘시벌…… 의사가 이러면 안 되지…….’

단지 계급이나 나이 때문만이 아니었다.

내과 의사는 자기 담당 환자를 보는 데 있어 완연한 선장 노릇을 해야만 했다.

근데 그 선장이 벌벌 떨고 있으면 이거 되겠어?

“그래, 김 상병. 좀 어떻지?”

“네?”

물론 김 상병 입장에서는 좀 황당한 느낌이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진짜 살벌한 분위기 아니었던가.

‘난 무슨 의학 드라마라도 찍는 줄 알았다고…….’

티비에서나 보던 걸 직접 겪게 될 줄이야.

가끔 저런 걸 해 보고 싶단 생각이 들기도 했었지만, 대개는 가운 입고 설치는 걸 해 보고 싶은 거지, 이렇게 아파서 쓰러져 있는 역할은 논외였다.

누가 진짜 환자가 되고 싶어 하겠나.

“어떻냐고.”

“아…… 네. 그…… 머리가 아픕니다.”

“정도로 따져 보면 어떻지? 어제랑 비교하면.”

“어제…… 어제보다 훨씬 아픕니다.”

“음.”

그런 생각도 잠시뿐이었다.

김인수의 질문은 무시해도 좋을 만한 종류의 것이 아니었기에 그랬다.

게다가 표정도 너무 진중했다.

아까 분위기도 심상치 않았고…….

“역시. 빨리 CT 찍어 주세요!”

“아, 네!”

김인수가 하도 호들갑을 떨어놔서 혹시 이거 CPR 각인가 싶었던 군무원은 CT 찍어 달라는 말에 들고 있던 물품을 내려놓았다.

대신 환자를 검사대 위로 옮겼다.

“움직일 수 있어?”

“아, 네.”

“그래, 그럼 이리로. 이리로. 천천히…… 떨어지면 안 돼.”

“네.”

말이 옮기는 거지, 절대다수의 환자가 건장한 청년인 이곳에서는 대개 자기가 갔다.

외상으로 인해 많이 다친 경우가 아니라면 거의 그랬다.

이번에도 크게 다르진 않아서 환자가 스스로 옮겼다.

그렇게 자리한 후, 김인수는 자기가 불러 놨던 안과 의사에게 물어왔다.

당연하지만, 같은 군의관이었다.

연차는 아래긴 해서 편하게 물을 수 있었다.

“야, 어때?”

“네? 그…… 사실 제대로 보진 못했는데.”

“어? 너 안과의사잖아.”

“아…… 네. 그렇죠. 근데 형이 하도 난리를 쳐가지고. 전 CPR 치는 줄 알았어요.”

“CPR은 무슨 놈의 CPR이야…… 환자 멀쩡히 말하고 했는데.”

“아니…….”

제일 지랄했던 건 너거든……?

내가 눈 뜨라고 했더니 ‘저리 비켜’ 하고 와서는 의식 레벨부터 물었거든?

하지만 안과 군의관은 태화 출신이었고, 그 말은 곧 김인수가 선배라는 뜻도 되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안과라…… CPR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잘 몰라서.”

“그래, 안과는 그럴 수 있지. 마이너니까.”

암만 마이너라도 ‘그래도 의사인데 설마 CPR을 모르겠습니까’라고 말을 하기엔 살짝 켕기는 구석도 있었다.

아닌 게 아니라, 전에 교육에서도 실수를 하지 않았나.

‘근데 그건 나도 억울하긴 했다…….’

군의관 아니라, 그냥 큰 병원 의사로 살아가다 보면 응급 상황에 대한 교육을 받기 마련이었다.

알아야 하는 지식이긴 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안과 의사가 바이탈이 흔들리는 상황에 대처해야 하는 상황이 왔다면 이미 최소한 병원이 망했거나 나라가 망했다고 봐야 할 터였다.

대한민국 의료 시스템이 그렇게까지 허투루 돌아가지 않아서 그랬다.

그럼에도 알긴 알아야 해서 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응급 상황에 대처하는 실습을 진행했는데, 하필 같은 팀이 안과와 병리과 그리고 이비인후과였다.

-와, 그래도 이비인후과가 있으니까 기도 응급은 다룰 수 있겠네요.

농담처럼 던졌는데 반응이 영 별로였다.

이미 망했다고 여기고 있다고 해야 할까……?

그리고 진짜 망했다.

CPR의 C도 못 한 느낌.

“아무튼, 대충도 못 봤어?”

“대충은 봤죠. 유두부종(뇌압이 증가되어 시신경이 부어오르는 것)은 없어요.”

“그래?”

“의심하는 눈초리로 보지는 말고요. 안과니까 안과는 잘 보지.”

“그래, 그렇겠지. 음.”

그렇게 변명하듯 소견을 늘어놓고 있으려니, 영상이 넘어오기 시작했다.

사실 김인수로서는 유두부종 여부가 중요했던 거다 보니, 바로 영상에 집중하게 되었다.

‘난…… 나가도 되나?’

안과 군의관은 애매한 기분이었다.

딱히 자기 환자도 아니고, 이제 뭘 더 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검사가 진행 중이라 나가기도 애매했다.

무엇보다 윗사람인 김인수가 영상만 보고 있으니 더더욱 그랬다.

“어때 보여?”

거기에 더해, 김인수의 질문이 이어졌다.

“네?”

어때 보이냐니?

머리 얘기하는 건가?

‘저기…… 브레인 CT는 인턴 때 잠깐 본 게 다거든요……?’

진짜로 ‘이건 뇌고 이건 뼈구나’밖에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런 안과 군의관를 보더니, 김인수가 휴 하고 한숨을 쉬었다.

“하긴…….”

묘하게 기분이 나쁜데, 그렇다고 또 뭐라고 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아무튼, 뇌압이 막 올라간 것 같지는 않은데…… 그럼 뇌수막염이 생긴 지 얼마 안 되었다는 얘기야.”

“네네.”

“일단 머리로 넘어갔으니까…… 세프트리악손 추가하는 게 좋겠고. 음…… 뇌척수액 검사를 해 봐야겠는데. 요추천자 좀 도와줄래?”

“네?”

왜냐.

자꾸 할 수 없는 걸 말해서 그랬다.

뭔지 모르는 건 아닌데…… 해 본 적은 없었다.

“잡고만 있으면 돼. 움직이지 않게. 지금이야 오베이(지시 이행)가 잘 되긴 하는데, 뇌수막염이면 언제 어떻게 될지 몰라. 게다가 아플 때 반응은 예상할 수 없어.”

“아…… 네네. 알겠습니다. 자세만 유지되게 하면 되는 거죠?”

“응.”

“네. 그럼…… 어디서 해요?”

“병동 처치실로 가야지.”

“네.”

환자는 검사가 끝나자마자 곧장 병동 처치실로 이송되었다.

올 때처럼 의무병 하나랑 김인수가 끌었다.

그 사이 간호장교는 영상의학과에 사진 부탁을 했는데, 이는 이미 이 환자에 대해 따로 얘기가 된 상황이라 가능한 일이었다.

‘아…… 나 외래 없는 날이라 게임이나 하고 있으려고 했는데.’

옆에서 터덜터덜 걷고 있던 안과 군의관은 그 모습을 보며 어떤 말도 못 하고 한숨만 쉬었다.

비번이고 아니고를 떠나서, 딱 봐도 환자가 안 좋아 보이긴 하지 않나.

이럴 땐 눈치를 챙겨야 했다.

안과다 보니, 내과에 도움도 많이 받아 오지 않았나.

내과에 김인수만 있는 건 아니었지만, 제일 잘 받아 주는 사람이 김인수다 보니 은혜도 많이 입었더랬다.

‘그래…… 게임이 대수냐. 대강 맞춰 드리자, 오늘은.’

후배도 동기도 아닌 선배인데 지금껏 웃는 얼굴로 매일 환자 봐 줬으면, 지금은 좀 잘해야 하지 않겠나.

뭐 그런 생각으로 처치실에 도착하자, 김인수는 익숙하다는 듯 환자를 새우 자세로 만들고 옷도 걷어 젖혔다.

“자, 잡아. 말 통하니까, 말 계속 걸고. 나도 걸긴 할 거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고.”

“네.”

“자, 김 상병. 등 찌를 건데. 아플 거야. 그리고 느낌이 좀…… 이상할 수 있거든? 근데 자연스러운 거니까 너무 놀라지 말라고. 움직이면 이거 안 돼.”

“네, 군의관님.”

그러곤 안과 군의관과 환자 모두에게 지시를 내렸다.

‘후…….’

엄청 침착해 보였다.

하지만 내면을 보면 딱히 그렇지만도 않았다.

‘그냥 전화할까, 시발.’

수혁을 떠올리고 있었다.

문제집 뒤에 달린 정답지 느낌이었다.

진짜 그랬다.

그거 보고 풀면 문제는 시원하게 풀리지만 어딘지 모르게 좀 찝찝하지 않나?

지금 수혁에게 전화를 걸면 그럴 것 같았다.

‘아냐…… 아냐. 할 수 있는 건 다 하자. 어차피 환자는…… 아직 응급 상황도 아니고, 아직은 그렇게 될 것 같지도 않아.’

애써 그 유혹을 떨쳐 내고, 김인수는 기다란 스파이날 니들을 환자의 등에 푹 하고 찔러 넣었다.

벌써 손톱으로 들어가야 할 부분에 표시를 해 둔 참이라 가능한 일이었다.

“따끔.”

“읍.”

환자는 ‘따끔이 아니라 묵직한데……?’라는 느낌을 받았다.

얇아도 그 긴 바늘이 몸을 관통할 기세로 찔러 들어오고 있으니 당연했다.

“좋아. 맺힌다. 움직이지만 마.”

“네…….”

“받을 거.”

“네.”

바늘 끝에는 누런 액체가 뚝뚝 밀려 나오기 시작했다.

밀려 나오는 속도를 보니, 확실히 뇌압이 올라가 있는 것 같아 보이진 않았다.

하지만…….

‘색이 아주 맑지가 않은데……?’

혼탁한 느낌이었다.

이 말은 곧 염증이 있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육안으로 뭘 판단하는 건 위험한 일이었다.

심지어 검사 결과도 틀리거나 잘못되는 경우도 있는데 육안으로 봐서야 되겠나.

느낌은 느낌으로만 남겨 두는 것이 좋았다.

“바로 나가 주시고…… 근데, 김 상병.”

하여간 벌써 뇌척수액까지 혼탁해졌다면 뭔가 문제가 진행 중이라고 보는 게 옳았다.

폐에서 시작한 감염이 여기까지 올라오는 것도 쉽잖은 일인데 이렇게 됐어?

그럼 폐는…….

폐는 어찌 되었다는 말일까.

“네, 네.”

“혹시 숨 쉬는 건 좀 어때?”

젊다는 건 좋은 일이었다.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몸의 반응이 달랐다.

폐 기능도 예외는 아니었다.

노인이었으면 벌써 숨차 죽었을 만큼이나 망가진 후에도, 그 얼마 안 되는 폐로도 숨을 쉴 수 있었다.

“네……? 그건…… 어…… 그러고 보니까 살짝 숨이 차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래.”

당연한 일인데, 실제로 체험한 건 군대에 오고 나서였다.

그전까지는 이렇게 젊은 환자는 볼 일이 없어서 그랬다.

대학 병원이라는 곳에 젊은 환자가 제 발로 오는 경우는 극히 드물지 않던가.

그중에서도 태화는 예약도 특히 더 어렵고 어딘지 모르게 진짜 많이 아파야 가는 곳이다 보니, 더더욱 그럴 수밖에 없었다.

“아무튼, 가슴 쪽도 검사 좀 해 보자.”

“아…… 네.”

“뭔가 더 진행하고 있는 것 같아. 최선을 다해서 찾아볼 테니까 힘들어도…… 조금만 참아 줘.”

“네, 그렇죠. 그래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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