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929화 (929/1,303)

929화 아 2달 남았는데 (4)

환자가 가슴 검사, 그러니까 흉부 CT를 찍기 위해 준비가 한창일 때쯤 신현태가 도착했다.

“어떻게 되고 있어?”

신현태는 지위가 아주 높은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수도병원에 간 제자들의 요청을 몇 번인가 들어주었던 사람이었다.

그 때문에 어디라는 말만 듣고도 병원 안에 있는 시설물을 쉬이 찾아올 수 있었다.

하여간 그의 물음에, 김인수는 좀 민망하다는 얼굴로 말을 이었다.

같은 검사를 두 번에 걸쳐서 하고 있던 참이지 않나.

다행히 아까 조영제를 쓰지 않아서 망정이지, 만약 그거까지 들어갔으면 꼼짝없이 흉부 CT는 내일 찍었어야 할 터였다.

몸 안에 조영제가 아직 남아 있는 상황에서는 아무래도 사진이 제대로 나오지 못해서 그랬다.

“그래? 머리가 아프다고 하고 경부 경직까지 있었다고?”

“네.”

“안 좋은데. 감염병이겠는데…… 원인이 뭔지 정말 하나도 나온 게 없어?”

“네. 아직은 실마리가 전혀…….”

“흐음…… 그래, 일단 검사부터 하자고, 전에 찍었던 사진은 있나?”

“네, 여기.”

신현태는 자초지종을 들었음에도 일단 비난하지 않고 그저 진료에 필요한 질문만 던졌다.

김인수도 최대한 스승의 시간을 보전해 주기 위해 부리나케 움직여 CT를 띄웠다.

“그, 안녕하십니까. 안과 임병수입니다!”

“어, 어어. 그래. 도와주고 있구나. 안저검사했니?”

“네, 원장님.”

“그래. 고맙네.”

아무튼, 신현태가 왔으니 이제 안과 군의관은 자리 뜨기가 더 애매해졌다.

원장님 얼굴도 봤는데 어딜 간단 말인가.

물론 일이 있다고 하고 간다면야 말릴 사람이 없겠지만…….

‘일이…… 없잖아?’

하필 오늘은 일이 없었다.

그렇다고 신현태가 남의 스케줄을 들이파고 하지는 않겠지만, 혹시 모를 일이라는 게 발목을 잡았다.

그래서 자리에 남았다.

속으로만 투덜대면서였다.

“여기 영상입니다.”

안과 군의관이 내적갈등으로 고통받는 사이, 김인수는 사진을 띄웠다.

단순 흉부 X-ray부터 CT까지 다 띄웠다.

그렇게 본 영상 소견은 딱히 뭐 이상하다 싶을 만한 게 있진 않았다.

양측 폐, 그중에서도 하엽에 염증이 있다는 것 정도?

폐렴이라고 들었으니 그걸 보고 특이하다고 하기는 좀 그랬다.

다만 CT에서는, 적어도 신현태에게는 좀 이상해 보이는 게 있었다.

“여기, 이거. 살짝…… 종괴처럼 보이지 않아? 사이즈가 너무 작아서 좀 그렇긴 한데.”

“아…… 말씀 듣고 보니까…….”

“해상도가 아주 높지는 않네. CT가 좀 됐나?”

“기계까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하긴. 아무튼, 이때 당시에는 레보플록사신으로 치료한 게 꽤 합당해 보이는 소견인데…… 역학조사 결과 다른 아픈 사람들은 확실히 없었다는 거지?”

“네. 방금 전에도 다시 한번 확인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다 괜찮습니다.”

“거참…….”

이상해 보인다고 해도, 현재 상황을 반전시킬 만한 소견은 또 아니었다.

애초에 그런 게 자주 나오는 것도 아니긴 했다.

이수혁이나 이현종 같은 괴물이나 단서와 단서를 뛰어넘을 수 있는 추론을 할 수 있고, 또 그걸로 성과도 내는 것이지, 대부분의 경우에는 그럴 수 없었고 그래서도 안 되었다.

잘못된 추론을 해서 전혀 엉뚱한 곳으로 이르기도 하기에 그랬다.

위이잉.

신현태가 영상 소견과 전화상으로 전해 듣지 못했던 환자 병력 등을 숙지하는 사이, 검사가 시작되었다.

다행히 환자는 호흡이 억제되거나 의식 수준이 떨어지고 있지는 않아서 안에 다른 의료진이 따라 들어가진 않아도 되었다.

특히 안과에게 다행이었다.

분위기상 그가 따라 들어가야 할 것 같았으니.

‘휴…….’

CT 한 번 찍는 정도의 방사선이야 노출된다 해도 크게 이상은 없겠지만.

의료진으로 살아가는 이상 한 번만으로 끝나지는 않지 않나.

더욱이 인턴 시절에는 노상 들어갔더랬다.

그때의 아픈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영상 넘어옵니다.”

“응, 그래. 어……?”

그 영상을 차분히 바라보던 신현태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분명 방금 이 환자가 딱 1주일 전에 찍었다던 CT를 보지 않았나?

그때랑 이렇게까지 다르다고?

“이게 뭐지?”

“어…… 이게…….”

그의 물음에 김인수도 제대로 답을 하지 않았다.

사실 매일 X-ray는 찍고 있었다.

하지만 CT가 아니다 보니 이렇게까지 자세하게 보기는 어려웠다.

다만 점점 안 좋아지고 있다는 것만 느끼고 있을 뿐이었다.

허나 CT로 본 환자의 폐는 상황이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아까 CT에서…… 좌측 하엽에 종괴 비슷하게 보였던 거. 그게 확 진행됐네.”

“종괴라기보다는…….”

“괴사라고 봐야 해. 안에는 이미 공동이 형성되었어. 환자 면역질환이 있나?”

“아뇨. 그럴 만한 질환은 없었습니다.”

“흠. 그렇단 말이지. 근데…… 이게 대체 어찌 된 일이지?”

면역질환이라.

신현태가 보기에도 그럴 것 같지는 않았다.

물론 나이가 젊다고 해서 병이 없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었다.

그렇게 좋게좋게 생각하고 넘어가기엔, 세상에 불운한 사람이 너무나 많았으니까.

그리고 신현태쯤 되면 세상에서 가장 많이는 아니더라도, 다른 사람들은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그 불행을 접하고 있다고 봐야 했다.

허나 그런 그가 보기에도 환자는 기본적으로 건강해 보였다.

우선 이만한 병변이, 그러니까 좌측 폐에 5cm 가까워 보이는 괴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환자가 숨도 쉬고 제대로 활동을 하고 있다는 건 대단한 일이었다.

“결핵은?”

“결핵은…… 결과 안 나왔습니다. 배양 검사는 지금 진행 중일 텐데…….”

“전화해 봐. 2주라고 해도, 그 안에 대강 윤곽이 잡히는 경우가 많아.”

“네.”

이런저런 생각과 함께 신현태의 머리가 부리나케 돌아가기 시작했다.

‘결핵은…… 아닐 가능성이 커.’

확인은 해 보라고 했지만, 결핵은 기본적으로 느리게 자라는 균이었다.

물론 면역이 떨어져 있다면 얼마든지 몸을 잡아먹을 수 있는 질환이긴 했지만, 그럼에도 다른 균주에 비하면 진행 자체는 느렸다.

치료가 더럽게 안 돼서 그렇지…….

‘여기에 뇌수막염이라……?’

1주 만에, 약을 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번지고 있었다.

바이러스 질환이라면 항생제와 딱히 관계없이 번질 수 있지만, 이 폐렴의 형태가 바이러스에 딱 들어맞지는 않았다.

오히려 세균성 폐렴에 가까웠다.

하지만 세균이라면, 그것이 설령 슈퍼 박테리아에 해당하는 개체라 해도 이렇게까지 빠른 건 설명이 안 됐다.

‘그렇다면…… 진균(곰팡이균)일 가능성이 커.’

곰팡이균이 원래 한번 감염을 일으키게 되면 속도가 빠르지 않나.

항생제에 딱히 듣지도 않다 보니 그것도 들어맞았다.

형태?

형태도 그랬다.

이런 식의 종괴처럼 보이는 병변을, 신현태는 진균 환자들에게서 벌써 숱하게 본 바 있었다.

‘하지만 진균은…… 정상 면역 환자에게서 감염을 일으키지 않는데…….’

문제가 있다면 환자의 면역이었다.

정상 면역 환자에서 아예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대개의 환자는 면역이 억제되어 있거나 최소한 저하되어 있었다.

‘흐음…… 하지만 다른 소견이 너무 들어맞아. 게다가…….’

바이러스 질환이나 세균성 폐렴이었다면, 종류를 막론하고 주변인에게 전파되었어야 할 터였다.

이 친구가 어디 넓은 집에서 계속 살다 온 것도 아니고 군인이지 않나.

1인당 영위할 수 있는 면적이 교도소 재소자보다도 적은 게 병사라는 보고도 있었다.

이게 왜 중요하냐면, 전염병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 결국 밀접한 접촉이기에 그랬다.

더군다나 이 병사는 그냥 병사도 아니고 배를 타고 왔다.

근데 다른 사람들은 괜찮다고 했다.

몇 번이나 확인했음에도 그렇다면 아마 맞을 터였다.

‘진균이라면, 역시 정상 면역을 가진 환자에게 전파가 되진 않겠지. 어쩌다 하나의 확률을 뚫었다 해도…… 또 그런 수준의 확률을 뚫는 건 불가할 테니까. 흠…… 나…… 좀 늘었나?’

신현태는 그런 추론을 하다가 스스로에게 놀랐다.

이거 약간 이현종 같아서 그랬다.

아직 진균 감염을 확실하게 의심할 만한 소견이, 그러니까 결정적일 수 있는 소견이 나온 건 아니지 않나?

그럼에도 신현태는 이 환자가 진균 감염일 거라고 90% 이상 확신하고 있었다.

이것도 그가 겸손해서 그런 것이지, 사실 신현태 정도 되는 감염 내과 의사가 감염병을 가지고 ‘어 이거 같은데’라고 하면 95% 이상 맞는 거라고 봐야 했다.

“결핵은 아니라고 합니다.”

이미 거의 확신을 가지게 되었을 무렵, 김인수가 돌아와서 보고했다.

“좋아. 그럼 진균일 가능성이 크겠어.”

“네?”

그 말에 신현태는 당연하다는 듯한 어투로, 살짝 수혁과 닮아 있는 목소리로 답했다.

‘항상 좀 엉뚱하다고 생각되는 타이밍에 푹 찌르지, 걔가.’

그게 진짜 멋지지 않나?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는데, 신현태가 보기엔 그게 수혁의 매력 포인트였다.

하여간 신현태는 계속해서 수혁을 떠올리며 말을 이었다.

“잘 봐 봐. 네가 역학조사 결과 밀접 접촉했던 다른 부대원들 중에는 아무도 아픈 사람이 없다고 했지?”

“네.”

“그 말은, 그때는 괜찮았거나 혹은 감염력이 낮은 질환이었다는 걸 의미하지. 당시에도 기침을 했다고 하니 후자일 거야.”

“네, 저도 그게 좀 이상했습니다.”

“그래. 그걸 감안하고 보자고.

“네.”

김인수도 살짝 기시감을 느끼고 있었다.

‘약간 수혁이…… 같은데……?’

감히 그런 말을 입에 올리지 못하고 있을 뿐이었다.

“폐렴으로 진단되고 약을 썼지? 근데 진행했어. 바이러스 질환임을 의심해 볼 수도 있지만, 형태를 보자고. 세균성 또는 진균에 해당하지.”

“네, 그렇습니다. 특히 이 종괴성 병변은…….”

“진균의 특징이지. 혹은 결핵이나. 하여간, 약을 썼는데도 진행을 한다고 하면 역시 진균일 가능성이 커. 게다가 이렇게 되면 밀접 접촉한 사람들 모두 정상 면역자이니 전파가 잘 안 되었던 것도 설명이 돼. 물론 딱 하나 의문이 남지. 왜 이 사람은 걸렸을까?”

“음…….”

“하나의 의문만 남기는 방향으로 가자고. 그리고 마침 진균 중에 이러한 코스를 보이는 놈이 하나 있긴 있어. 진행이 이것보단 더 빠르고 예후도 안 좋지만…… 면역 차이를 감안한다면 확실히 그놈이야.”

“어…… 뭐죠?”

이제 김인수 아니라 뒤에 있던 안과도 눈을 빛내고 있었다.

‘나도…… 원장 끝나면 통합진료센터나 갈까.’

이 맛에 수혁이가 잘난 척을 하는 거구나 싶었다.

어법만 따라 하는 건데 효과가 이렇게 좋잖아?

이런 거였어!

“크립토코쿠스(Cryptococcosis, 발열·두통·폐렴 및 뇌수막염 증상을 보이게 하는 곰팡이균). 정확한 종류는 검사해 봐야 알겠지만…… 하여간, 그래.”

“아…… 그럼 이거 약을…….”

“바꿔야지. 그리고 흉부외과에 의뢰해서 폐 조직 검사도 해 보자고.”

“가, 감사합니다.”

“근데 하나 부탁이 있어.”

“네, 원장님. 말씀만 하십시오.”

신현태는 김인수의 어깨를 토닥였다.

살짝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으면서였다.

“나 내일 출근해서, 센터에 이거 내가 이렇게 진단했다고 자랑하고 싶은데, 그래도 될까?”

“네?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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