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2화 혹독한 티칭……? (1)
“생검으로만 진단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해야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우선적으로 치료를 시도해 볼 수 있어요.”
수혁은 질문을 하겠다고 해 놓고, 대훈과 김성진 둘을 향해 말을 이어 나갔다.
원래 수혁이나 이현종의 티칭이라는 것이 이러했다.
질문 자체도 누굴 깎아내리기 위해서 던지는 게 아니라, 가르치려고 하는 것 아닌가?
한 가지 차이가 있다면, 질문은 추론 방식을 포함한 가르침을 주려 하는 것이라면, 이런 설명은 지식 자체를 때려 박아 주기 위함이라는 점이었다.
“특히나 생검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이득이 적은 경우…… 즉 자가면역질환군이라는 의심이 드는데 정확한 진단이 안 된 경우라면, 생검을 통해 정확한 진단을 내려 볼 수도 있긴 하겠지만 치료에는 필수적이지 않죠. 병변이 뇌가 아닌 다른 곳이라면야, 더 정확한 진단을 위해서라도 당연히 생검을 해 보는 게 좋겠지만 뇌는…… 부담이 됩니다. 즉 이런 경우에는 스테로이드 치료를 해 보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 될 수 있죠.”
수혁의 말에 김성진의 얼굴이 살짝 펴졌다.
예전 같았으면 아예 활짝 웃었을 터였다.
허나 이제 그 정도는 아니었다.
‘대화 패턴이…….’
수혁의 화법은 그야말로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 봐야 한다’를 증명하는 화법이라 할 수 있었다.
어찌나 드리프트를 잘 도는지, 칭찬받나 하고 있는데 어느새 까이고 있을 때가 있었다.
혹은 까이고 있나 싶은데 칭찬으로 이어질 때도 있었고.
물론 후자는 극히 드물다고 보면 되었다.
대부분은 까이는 결론으로 이어지기 마련이었다.
‘오늘도 그렇겠지.’
때문에 김성진은 쉬이 방심하지 않았다.
잘한 일이었다.
수혁은 그제야 아까 예고했던 질문을 던졌으니까.
“자, 그럼. 스테로이드를 썼죠. 이 케이스에서도 실제로 스테로이드를 먼저 써 봤습니다. 아직 EGPA 인지 혹은 면역글로불린 G 인자와 관련된 질환인지는 모르죠. 자, 어떤 결과를 예상하고 쓰는 거죠?”
“그…….”
김성진은 잠시 고민했다.
스테로이드라는 약에 대한 고찰을 이어 나가면서였다.
‘엄청 센 약이지…….’
감염내과에서는 엄청 조심하면서 쓰는 약이기도 했다.
아니, 사실 모든 내과에서 이 약을 쓸 때 조심했다.
흔한 약인 것에 비해 너무 강해서 그랬다.
단순히 효과가 좋다거나 하는 문제가 아니었다.
잘못 쓰면 오히려 역효과를 보기 쉬웠다.
그것도 어마어마한.
면역 억제를 일으키거나 혈당을 끌어올리거나, 하여간 막대한 합병증을 보이는 약이란 얘기였다.
“즉각적인 증세 변화를…… 기대하고 쓰는 약입니다.”
“그렇죠. 스테로이드는 단순히 면역 억제만이 아니라, 부종을 제거하는 데도 탁월한 효과를 보이는 약이니까요. 저림과 경련 등의 증상은 대뇌 피질의 직접적인 손상 때문에 발생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 대개는 해당 병변으로 발생한 부종 때문에 다른 부위가 눌려서 생기는 것이었을 테니, 당연히 즉각적인 호전이 있어야만 합니다. 물론 이 효과를 더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다른 동반 치료가 필요합니다. 뭐가 있을까요?”
수혁은 꼬박꼬박 존댓말을 하면서, 폭풍 같은 질문을 이어 나갔다.
그야말로 ‘폭풍’이라는 단어가 딱 어울리는 질문 세례였다.
처음엔 이렇게 이어지는 질문에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형제님, 침착하십시오. 모든 질문은 결국 이어집니다. 하나의 결론을 위한 질문이에요.
김성진은 원내 레지던트 출신인 안대훈과는 달리 아무래도 이런 식의 질문에 익숙할 수가 없어서 그랬다.
도움을 준 것은 역시나 안대훈이었다.
그놈의 형제님이라는 호칭만 빼면 진짜 나무랄 데 없는 동료라 할 수 있었다.
기실 칠성 출신이기에 어느 정도 텃세도 각오하고 있었건만, 텃세는커녕 어떻게 하면 우리 김성진 새 신자에게 잘해 줄까만 고민하는 집사님 느낌이 들었다.
비유가 좀 수상쩍긴 한데 진짜로 그런 느낌이었다.
-정신 바짝 차리고, 진단 하나만 생각하세요. 그럼 오답이라도 근거는 마련할 수 있을 겁니다.
하여간, 김성진은 바로 얼마 전에 들었던 격언을 떠올리며 답했다.
“그, 글리세린과 같은…… 두개내압 감압에 도움이 되는 약을 쓰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래요. 사실 뇌압을 낮추는 데 있어선 스테로이드는 일종의 보조 역할이죠. 여기서는 글리세린이 오히려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겁니다. 해당 병원에서는 쓰지 않았지만, 전원받은 우리 병원에서는 썼죠. 그리고 어떻게 됐죠?”
감염내과 의사가 글리세린이라는 약을 별다른 망설임도 없이, 그것도 이런 압박감 심한 상황에서 떠올릴 수 있다는 건 대단한 일이었다.
-형제님, 공부합시다.
이게 다 안대훈 덕이라 할 수 있었다.
그냥 공부하자고 푸시하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솔직히 공부하고자 하는 열망이나 의지는 김성진도 대단하지 않겠나.
다만, 어떻게 할지가 막막할 따름이었다.
통합진료센터에서 요구하는 자질이나 스킬은 다른 내과 분과에서 요구하는 그것과 너무 달라서 그랬다.
‘어떻게 그런 식으로 아카이브를 만든 걸까?’
아는 사람은 알 텐데, 안대훈은 수혁의 모든 행적을 기록하는 데 일종의 사명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냥 해야 될 것 같아서 하는 사람이 아니라, 해야만 해서 하는 사람이었다.
때문에, ‘아카이브’는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안 하면 죽을 것 같은 고통을 느끼는 인간이 걸출한 의사의 케이스 정리를 도맡게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 가에 대한 증명이라고 봐도 좋았다.
세상의 모든 의학 지식이 다 그곳에 있는 느낌이었다.
심지어 수혁의 말투로 해설되어 있어서, 어지간한 지식만 있어도 알아듣기 쉬웠다.
“여기서는 호전을 보였습니다.”
“그 호전이 이어졌나요?”
물론 수혁과의 대화를 이어 나가면서 동시에 다른 생각을 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직 진단이 된 게 아니지 않나?
이럴 때의 수혁은 결코 멈추지 않았다.
“아니…… 아닙니다.”
무엇보다 방금 질문이 핵심이었더랬다.
이 케이스가 통합진료센터에 넘어오게 된 이유이자, 김성진에게 넘어간 이유이기도 한 질문.
김성진은 순간적으로 등 뒤가 축축하게 젖어 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사실 그럴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하고 있어서 그랬다.
약을 더 추가하거나 하면 되지 않나? 뭐 이런 생각도 하고 있었다.
심지어 의뢰를 해 온 류마티스내과에서도 거기에 대한 의견을 구하고 있었고.
수혁이나 이현종이 물론 천재긴 하지만, 사실 류마티스내과 교수도 그 비슷한 수준은 될 터였다.
적어도 류마티스에서는 그렇지 않겠나?
‘아닌가……? 아닌 거 같네?’
하지만 그런 생각은 수혁의 얼굴을 보는 순간 산산조각이 난 채 사방으로 흩어져 가고 있었다.
쐐기를 박은 것은 뒤에서 조용히 성호를 긋고 있는 안대훈이었다.
족보에도 없는 성호였는데, 지가 만든 거라 그랬다.
하여간 의미는 명확했다.
“왜 그렇다고 생각하죠?”
이미 틀렸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왜 틀렸냐고 묻는 것만큼 잔인한 일이 또 있을까.
‘이래서 레지던트들 없을 때 시작하셨군…… 하긴, 요새 항상 그렇지.’
더 무서운 건 이러한 일이 매일같이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화가 나는 건 아니었다.
김성진도 임상 강사 노릇을 해 보지 않았나.
그것도 안국태 밑에서 했기 때문에, 사실상 모든 티칭은 그의 몫이었다.
그래서 알았다.
남을 가르친다는 게, 그것도 매일같이 비슷한 강도로 가르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음…… 스테로이드와 글리세린이…… 효과를 본 건 단순히 뇌압 수치가 감소한 것뿐이고, 근본적인 치료가 되지는 않아서…… 라고 생각합니다.”
하여간 수혁이 지금까지 던져 댔던 질문을 떠올려 보니 이번 질문에 대한 답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해서 그렇게 말했고, 수혁이 다시금 웃었다.
‘확실히 이 사람은 열심히 하네.’
[그러니까요. 안대훈만 한 명석함은 없지만…… 성실한 사람입니다.]
‘이런 말 하면 좀 죄송스러운데, 신현태 교수…… 삼촌하고 좀 닮았지.’
[죄송할 게 있나요? 닮은 건 닮은 거지. 그리고 신현태는 대가입니다. 그만한 사람도 없어요.]
‘하긴.’
만족을 담아 낸 미소였는데, 최근 하도 잘난척하느라 비틀어진 미소를 지어 대서 그런지 오해를 불러일으킬 만한 미소를 짓고 말았다.
‘나 X된 건가……?’
김성진은 두려움에 벌벌 떨었다.
“자. 근본적인 치료가 되지 않았다고 했어요. 그렇다면 이 말은 결국, 진단이 틀렸다는 말이 되겠죠?”
“아, 네. 그렇습니다.”
그러면서도 수혁과의 대화 흐름을 놓치지는 않았다.
처음도 아닌데 그럴 리가 있나.
이 인간과 소위 말하는 티칭 시간은 만만한 것이 아니었고, 그만큼 혹독한 수련을 거친 결과 어지간해서는 당황하지 않게 되었다.
어마어마한 지식을 쌓게 된 것 또한 당연한 일이었다.
느낌일 수도 있지만, 이미 안국태 밑에서 몇 년 구르던 때보다 더 많이 배운 것 같았다.
“진단이 틀렸다면 어떻게 해야 하죠?”
일단 이런 마음가짐도 그랬다.
안국태는 진단이 틀렸다는 말 자체를 싫어했다.
환자의 경과가 이를 증명하고 있을 때도 그랬다.
그래서 환자를 잃게 되거나, 쓸데없는 합병증을 앓아야 할 때도 있었다.
쓸데없는 자존심을 부린 결과인데, 수혁은 다른 이의 진단에도 가차 없는 만큼이나 자신의 진단에 대해서도 그랬다.
“아니다 싶으면 처음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렇죠. 그게 중요해요. 처음부터 환자를 되짚어 봐야 하는데…… 다행히 이 환자는 저희 센터에서 직접 볼 수 있죠. 문진이 가능하다는 겁니다.”
“네, 그렇습니다. 문진이…… 너무 중요합니다.”
정말로 처음으로 돌아갔다.
문진부터 시작한다, 이 말이었다.
물었던 걸 또 물어야 할 때도 있다는 얘기였는데, 그래서 처음에는 ‘쓸데없는 짓거리 아닌가?’ 싶기도 했다.
하지만 여기서 일하다 보니 알게 된 사실 중 하나가, 의사의 의도에 따라서 같은 질문도 얼마든지 뉘앙스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었다.
아니, 심지어 질문 자체가 달라질 때도 있었다.
“가죠.”
“네.”
해서 김성진은 수혁의 뒤를 묵묵히 따랐다.
환자에게로 가면 무슨 말이 나올까를 기대하면서였다.
‘또 어떤 말로 까이게 될까?’
두려움보다는 기대가 컸다.
하도 까이다 보니 거기서 오는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되어서 그랬다.
-그게 성령 충만입니다.
대훈의 말을 들어 보면 뭔가 잘못되어 가고 있는 거 같기는 한데…….
끼이익.
하여간, 김성진은 수혁을 따라 환자 병실로 들어섰다.
환자는 명백히 상태가 처음 보았을 때보다, 그러니까 기록에 적힌 것보다 오히려 안 좋아져 있었다.
즉 치료제를 썼는데, 좋아지기는커녕 더 진행되었다는 말이었다.
“팔은 좀 어떠세요?”
“잘 못 움직이겠어요…… 어쩌죠?”
수혁은 환자의 앞에 섰다.
체격이 꽤 좋은, 그러니까 운동 좀 한 몸을 지닌 환자는 풀이 죽어 있었다.
건강만큼은 자신 있다고 자부하고 있었는데 그게 무너졌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이번 기회에 취미도 바꾸셔야지.’
[네. 그거 정말 위험한 취미입니다.]
‘그러니까 말이야. 이놈의 보신 문화 이거…….’
[캠페인이라도 해 보시죠.]
‘캠페인…… 나 말 잘 못 하는데?’
[네?]
‘캠페인은 잘난 척이 아니잖아.’
[아, 그런 뜻이로구만.]
수혁은 그런 환자의 어깨를 가만히 두드려 주었다.
그러곤 김성진, 안대훈을 돌아보았다.
이제부터 보고 배우라는 뜻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