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933화 (933/1,303)

933화 혹독한 티칭……? (2)

수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처음엔 어디가 불편하셨어요?”

“처음…… 처음이요?”

진단이 틀렸다는 생각이 들면, 그 즉시 처음으로 돌아갈 것.

이건 의사에게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환자에게도 그러했다.

당연한 얘기 아닌가.

의사는 머리를 굴려 여기까지 온 것이지만, 환자는 통증을 비롯한 여러 증상과 함께 여기까지 온 마당이었다.

그런데 처음으로 돌아가서 다시 살펴본다?

이론적인 배경을 아는 것도 아니다 보니 더더욱 힘들었다.

“네. 처음. 환자분이 내가 아프다는 걸 처음 인지하셨을 떄요.”

“어…….”

물론 수혁도 그러한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여러 번 겪어 봤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시행착오에서 뭔가를 배우는 건 수혁의 특기이지 않나.

바루다도 탑재하고 있다 보니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해서, 질문의 방식이나 말투가 점점 세련되어져 가고 있었다.

“아…… 제가 아프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요…….”

아프기 시작한 날짜와는 괴리가 있을 수도 있었다.

예민한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기 마련이니까.

허나 만성 질환에서 중요한 것은 역시 환자의 느낌이었다.

그가 아프다고 생각하는가 아닌가.

이것이 진단에 큼지막한 단서를 줄 때가 아주 많았다.

“그건…… 음. 사실 머리가 아프다고 느낀 건 두어 달 되었습니다.”

“두어 달이라면 꽤 오래되었는데, 실제로 병원에 간 건 2주 전이잖아요? 그때는 그럼 왜 병원에 가셔야겠단 생각이 드셨어요?”

수혁의 질문은 계속되었다.

별거 없단 느낌을 줄 수도 있겠지만.

안대훈과 김성진은 질문이 뭘 노리고 있는지 알기에 퍽 놀라고 있었다.

‘그래…… 새로운 증상이 생기셨다고 말하기보단…….’

‘저게 좀 더 환자들의 언어에 가깝지. 그러면서도…… 답을 의학적으로 해석하기에 적합해 보여. 확실히…… 이수혁 교수님은 진짜 똑똑하구나.’

그냥 머리만 좋고 진료만 잘하고 연구만 잘하는 사람들은, 얼마든지 있다고 말할 정도는 아니나 병원 내에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허나 저렇게까지 머리가 좋은 사람이 다른 사람 생각까지 하면서 뭔가 개선을 해 나가는 건 희귀한 일이었다.

“그때…… 경련이 있었어요. 이쪽으로.”

“네, 지금 마비된…… 우측으로요.”

“네.”

“그게 2주 전에 처음 있었던 건가요?”

“아, 아뇨. 사실 그 며칠 전에도 한번 그랬는데, 그러다 말길래 피곤한가 보다 했습니다. 사실 근육 경련하고는 좀 다르긴 했는데…… 그때 갔으면 좀 나았을까요?”

“아, 아뇨. 제가 봤을 땐 그렇게 차이가 있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 그렇군요.”

수혁은 증상의 시작 시기와 더불어 일련의 진행 과정을 다시 한번 꼼꼼히 물었다.

그 결과 약을 쓰고 당장 좋아졌지만, 거의 얼마 되지도 않아서 오히려 더 나빠졌다는 사실을 더욱 자세히 알 수 있었다.

허나 그것뿐이었다.

아직은 그랬다.

“그럼 질문을 좀 바꿔 보겠습니다.”

“네.”

“운동 좋아하시죠?”

“아…… 네. 좋아합니다.”

믿음이 부족한 편인 김성진이 슬슬 이건 뭐지 싶을 때쯤, 질문이 바뀌었다.

살짝 생뚱맞게 느껴질 만큼이나 다른 방향으로 바뀌었다.

운동이라니?

이거 약간 신변잡기 아닌가?

운동 습관이 있다 없다 정도가 중요한 거 아닌가?

“야외 활동도 즐기시고요.”

“네? 네. 아무래도 체력에 자신이 있어서요.”

“그래요. 전에도 낚시 사진을 보여 주셨다던데.”

“아…… 간호사분한테요. 네, 그랬습니다.”

수혁은 고개를 끄덕이다가, 다시 말했다.

“그럼 혹시 그렇게 잡은 물고기를 드시기도 하시나요?”

“네? 아…… 네. 뭐…… 먹죠. 아무래도 야생에서 바로 잡아 먹으면 더 건강에 좋을 테니까요.”

“음.”

수혁이 보기엔 이 또한 믿음의 한 갈래였다.

어찌 보면 미신이라고 봐도 좋았다.

뭔가 인위적인 건 건강에 별로고, 자연적인 건 건강에 좋은 거 같은 건 꽤 그럴싸한 가설이 되는 게 문제였다.

왜 문제라고 하냐면, 딱히 야생동물이 건강에 좋을 게 없었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면 인류는 문명을 이룩하면서 점점 더 건강이 좋아지고 있지 않나?

비록 과도한 열량 섭취와 더불어 운동량은 부족해지면서 비만 인구가 늘어가고 또 그로 인한 각종 대사 질환의 유병률이 늘어나고는 있지만, 그럼에도 현대인은 그전까지 존재했던 모든 인류보다 더 오래, 더 건강하게 살고 있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일단 위생이나 기생충 등과 같은 질환에서의 해방이 중요할 터였다.

“민물고기 회 같은 것도 드시고요?”

“아…… 네. 그거…… 처음에는 모래 냄새가 나긴 하는데, 나중에는 그 맛에 먹습니다, 하하.”

환자는 자신의 건강을 증명이라도 하겠다는 듯 최대한 호탕하게 웃었다.

딱히 효과는 없었다.

멀쩡한 사람도 환자복만 입혀 놓으면 아파 보이지 않나.

심지어 이 환자는 꽤 아픈 사람이었다.

지금도 우측의 운동 능력은 크게 떨어져 있었고, 심지어 이따금 경련도 일었다.

무엇보다 민물고기는 적어도 의사들에게는 건강과 거리가 상당히 먼 음식이었다.

“처음 진단할 때도 기본적인 문진은 했을 겁니다. 그렇죠? 의뢰로 받은 환자라 해도, 문진을 다시 한번 하도록 지침을 세워 뒀잖아요.”

“네, 그렇습니다. 저도 다시 하긴 했습니다.”

“네. 상당히 상세하게 물어본 거 알고 있어요. 그러한 문진을 토대로, 영상학적인 증거까지 보고 내린 진단이 EGPA였죠.”

“어…… 네.”

말만 들으면 이게 혼내는 건지 뭔지 알 수가 없었다.

김성진은 그냥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엄밀히 말하면 혼나는 기분이었다.

물론 수혁은 딱히 그럴 생각이 없었다.

‘뭐…… 나라도 첫 진단은 그렇게 내렸을 거 같아.’

[제 판단도 같습니다. 적어도 그 상황에서는 가장 합리적인 진단이었습니다.]

첫 번째는 어쩔 수 없었을 터였다.

다만 아쉬운 건, 스테로이드 치료가 꽝이 나왔는데 처음으로 다시 돌아가서 할 생각을 못 했다는 점이다.

“그런데 틀렸죠. 그렇다면…… 문진을 다시 할 때 훨씬 더 깊이 들어가야 한다는 말이 됩니다.”

“아…… 그럼……?”

“첫 번째 진단은 합리적이었어요. 누구의 잘못이라고 보기도 어려워요. 물론 과감한 의사가 봤다면 바로 대뇌 생검을 했을 것이고, 진단도 즉시 됐겠죠. 하지만 살아 있는 기생충을 상대로 아무 처치도 없이 대뇌 생검을 한다는 건 굉장한 위험을 수반하는 일입니다.”

“네, 그렇, 그렇죠.”

대화가 어지간히 이어지고 나서야, 김성진은 수혁이 딱히 자신을 나무랄 생각이 없었다는 걸 알았다.

주로 이렇긴 했다.

다만 뭘 모르는 입장에서 듣다 보니 혼나는 기분이 들 뿐이었다.

“즉, 스테로이드를 쓴다는 선택을 했을 때까지는 좋아요. 나무랄 데 없는 선택이었습니다. 다만 그 후가 문제죠. 뜻했던 효과를 보지 못했다면 대강 볼 게 아니라, 철저하게 봐야 했습니다. 자, 문진을 통해 민물고기를 먹는 습관이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럼 뭘 하고 싶죠?”

“일단…… 브레인 CT 검사를 다시 해 봅니다.”

“왜죠?”

“혈관염이 아니라 기생충의 움직임 때문이라면 흔적이 남을 수 있어서 그렇습니다. 또 얼마나 진행했는지도 봐야 합니다.”

“그렇죠. 자, 환자분. 들으셨죠? 이제 CT실로 갈 겁니다.”

“네? 네?”

환자가 뭔가 반응을 하기 전에 미리 대기 중이던 이송 요원과 안대훈, 그리고 김성진 등이 환자가 있는 침대를 슥 밀어 나왔다.

수혁은 그 뒤를 천천히 따랐다.

지팡이를 툭툭 짚어 가면서였는데, 그것을 박자 삼아 말을 이었다.

“아마 환자분은 민물고기만이 아니라 민물 게, 가재, 멧돼지 등도 섭취하셨을 가능성이 커요.”

뒤를 돌아보니, 셜록에 빙의한 사람 한 명이 서 있었다.

다리 하나를 저는 건 왓슨이긴 했지만, 이미지는 딱 셜록이었다.

그럼 같이 오고 있는 이현종이 왓슨이라는 건데, 그것도 좀 잘 맞진 않았지만 하여간.

“아니, 어떻게…….”

“영상을 토대로 추정해 보면, 다시 말해서 그게 다발성 혈관염이 아니라 기생충의 알로 인해 발생한 병변이라고 추정을 해 보면…… 그 비슷한 소견을 보일 수 있는 게 있습니다. 혹시 떠오르는 게 있는 사람?”

“음…….”

질문에 침묵이 뒤따랐다.

안대훈도 김성진도 곰곰이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솔직히 말해서 영상 자체도 가물가물했다.

대략적인 인상만 남아 있을 뿐, 정확한 모양은 어찌 생겼는지 알 수가 없었다.

“좋아요. 파라고니머스 웨스터만(Paragonimus westermani)……이라는 기생충이 있어요. 이 기생충으로 인해 발생하는 질환을 폐흡충증(Paragonimiasis, 폐흡충에 의한 감염병)라고 합니다. 이 질환의 소견상 아마 지금 환자분 CT를 찍으면 원래 있던 병변 주변으로 해서 환형 병변의 수가 증가했을 거예요. 피막 형성을 동반한 다발성 출혈성 병변도 보일 거고.”

“어…… 네.”

“아, 그렇군요.”

일종의 예언이었다.

김성진은 왜 안대훈이 살짝 종교적인 색채를 띠게 되었는지 알 것 같았다.

그냥 이 안대훈이 너무 특이해서 그런 건 줄로만 알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원흉이 따로 있었다.

‘교수님…… 그렇게 말씀하시면 저도 믿음이란 게…… 아니, 신앙이란 게 싹 틀 거 같지 않습니까요…….’

김성진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안대훈을 돌아보았다.

안대훈은 허허 웃으며 머리를 쓰다듬고 있었다.

그냥 민머리가 아니라 매일 공들여, 소문에 따르면 구두약을 쓴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닦아 내는 머리다 보니 자체적인 후광 효과가 있었다.

‘상서롭게 보이는데…… 이러다 나 큰일 나는 거 아닌가.’

원래는 그 모습을 볼 때마다 웃음 참기가 어려워 혼났는데, 이제 보니 웃기기는커녕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자, 이쪽으로 오시죠!”

한 사람이 정체성에 혼란을 겪고 있을 무렵, CT실 문이 열렸다.

그러곤 환자가 CT 검사대 위로 옮겨졌다.

그 모습을 보면서 수혁은 예언을 아니, 설명을 이어 나갔다.

“CT에서는 아마 왼쪽 전두엽 운동 영역에서 출혈성 병변을 암시하는 고밀도 변화를 보일 거예요. MRI에서는 아마 조영제를 쓰고 T1 강조 화면을 띄우면 여러 개의 작은 고리를 확인할 수 있을 거고요.”

“아…….”

“네, 믿습니다.”

김성진은 하마터면 아멘이라고 할 뻔했다가 정신을 차렸는데, 옆에서 안대훈이 ‘믿습니다’라고 해서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다.

이게 진짜 다 맞으면 어쩌나 싶은 상황이었다.

시간이 흐르고.

그러니까 영상이 넘어오고 나서, 김성진은 저도 모르게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제가 죄인이군요.’

믿음이 부족한 것을 회개하기 위함이었다.

CT?

수혁의 말대로였다.

딱 원래 있던 병변 주위로 말했던 소견 그대로의 병변들이 새로 생겨나 있었다.

‘MRI까지 맞추는 건 좀 선 넘는 거 아닌가…….’

MRI는 CT에 비해 아무래도 판독 난이도가 있는 영상 장비 아닌가.

심지어 아주 예전에 수련받았던 사람들은 영상의학과 전문의임에도 불구하고 자신 없어 하는 경우도 있었다.

물론 머리는 기본으로 봐야 하긴 하겠지만…….

보고 맞추는 게 아니라 안 보고 예언을 하는 건 말이 안 되지 않나.

“선생님.”

“네?”

회개하다가 또 황당해서 허 참 하고 있으려니 안대훈이 불렀다.

“그냥 믿으시죠. 그게 편합니다.”

뭔지 모를 미소를 지으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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