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8화 동창회 (5)
‘크론……인가?’
케이스를 읽으면서 든 생각은 하나뿐이었다.
크론.
아주 드문 질환이었지만, 최근 유병률이 2배 이상 치솟고 있었다.
원인으론 여러 가지를 꼽는데, 단골처럼 나오는 것 중 하나가 서구화된 식습관이었다.
‘음…….’
하여간, 내과 의사들에게는 나름 필수 질환이 된 지 오래였다.
전체적으로 유병률이 올라가고 있는 데서 그치는 정도가 아니라, 젊은 사람에게서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어서 그랬다.
게다가 치명적인 병이기도 했다.
특히 진단이 늦어지거나 오진이 되면 큰일이었다.
20대라는,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시점 한 토막이 통째로 사라져 버릴 테니.
“경과는 일반적인 크론이랑 같아. 보면 알겠지만…….”
하여간 동기 교수는 김성진뿐 아니라 다른 이들에게도 설명을 이어 나가고 있었다.
‘제발 이 새끼만 빼고…… 맞출 거면 이 새끼만 빼고!’
속으론 이런 바람을 품고서였다.
‘뭐…… 아무도 모를 거 같긴 한데…….’
물론 솔직하게는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다른 병원도 아니고, 칠성 병원 교수들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당장은 하던 치료 지속하면서 지켜보기로 결론이 난 마당 아닌가.
‘아닌 거 같은데?’ 정도일 뿐, 정말 아닌 것도 아니었다.
즉 그냥 크론인데 경과가 특이할 가능성이 제일 크다, 이 말이었다.
“최근 2년간 10킬로 정도가 빠졌어. 환자는 그냥 취업 준비하느라 스트레스 쌓여서 그런 거라고 생각했고. 취직하고 나서도 계속 빠지니까 이상해서 온 거야.”
“아…… 뭐, 그렇게 생각할 수는 있지.”
30대 후반이었으면 아마 ‘노력을 안 했는데 살이 빠진다고……?’ 하면서 병원에 갔을 터였다.
주변에서 슬슬 건강에 이상 생기는 친구들이 나올 시기니까.
그게 아니더라도 본인이 아플 수 있었다.
그렇다 보니 예민하게 움직이겠지만, 20대는 누구나 건강에 자신 있지 않겠나?
그 때문에 진단이 늦어지는 경우가 있는데, 나름 이리저리 캠페인을 진행해도 별로 개선되지 않고 있었다.
“물론 그것 때문에만 온 건 아니고, 오기 전에 열이 39도로 나고 또 설사가 심해져서 왔어.”
“크론이네.”
“그러니까, 크론인데?”
여기까지만 들어도 크론이었다.
이것저것 할 것도 없이, 물론 기본적인 검사는 해야겠지만, 치료부터 시작해야 될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칠성 병원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아서 크론에 준한 치료를 시작했다.
“병원에 와서 검사해 보니까 구내염도 있고, 피 검사 해 봤더니 백혈구가 13,040/μL(호중구: 90.0%)로 증가해 있고, CRP도 12.16mg/dL(정상 수치 0.5~1)이었어.”
“염증 수치가 엄청 올라가 있네.”
“응. 혈액 배양 검사나 변 검사에서는 아무것도 안 나왔고.”
“역시 크론 아냐?”
누가 의사들 아니랄까 봐, 정작 김성진은 가만히 있는데 지들끼리 이러쿵저러쿵 떠들어 대고 있었다.
심지어 다른 과 의사들도 그랬다.
다들 학창 시절 한따까리 하던 친구들이라서 그랬다.
오히려 마이너 과를 선택한 사람들 중에서 더 학구적인 사람들도 있으니, 대화는 열띤 토론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보면 크론이네요. 하지만 중요한 건 치료가 안 들었다는 점이죠.”
수혁은 차분히 듣고 있었다.
그걸 보면서 김성진은 과연 빈 수레가 요란하구나 싶었다.
이놈들하고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천재이자 위대한 의사인 수혁은 말도 안 꺼내고 있지 않나.
“내시경 했고, 보면 알겠지만 심하지는 않아도 자갈돌 모양이 있어. 미란(헐어 버린 곳)도 있고 해서 크론으로 임상적 진단한 후에 치료 시도했어. 처음에는 메살라진을 썼는데, 알레르기 반응이 있어서 인플릭시맵(Infliximab) 5mg/kg으로 치료했지.”
“현명하게 잘한 것 같은데.”
지금 떠들어대는 동기가 아닌 다른 동기 중에도 소화기내과를 전공한 친구들이 있었다.
비록 로컬에 나가 있긴 하지만, 그들 또한 분과 전문의다 보니 이런저런 전문 진료는 쉬지 않고 이어 나가고 있었다.
어찌 보면 오히려 로컬 의사들이 외래는 더 어려운 면도 있었다.
대학 병원은 의뢰를 받아 오는 편인데, 외래는 그냥 오니까.
자기 과가 아닌 환자들을 썡으로 봐야 한다는 뜻이었다.
하여간 그 또한 칠성 병원의 처치를 옹호했다.
“근데 그 약을 썼는데도…… 딱히 호전이 없고, 오히려 복통이 더 심해지더라고. 심지어 혈액 검사 결과도 안 좋아지고…….”
“허…….”
“그래서 지금 약을 바꿔야 하나 고민 중인데, 혹 진단이 틀렸을까 봐. 그것 때문에 고민이지.”
“너무 전형적인데 그걸 고민해야 하나? 다른 약을 써 보지, 왜. 요새 좋은 약 많잖아.”
“그렇긴 한데, 사실 초장부터 약이 잘 안 듣는 경우는 드물잖아.”
“음…….”
소화기내과 의사들뿐만 아니라, 다른 과 의사들도 의견이 분분했다.
물론 전문과 의사한테도 어려운 케이스이니만큼 대개는 별 의미 없는 말들이 많았다.
‘김성진이 조용하네…… 표정은 변화가 없고. 저런 스타일이었나?’
한편 유민관은 그저 보고만 있었다.
어차피 피부과를 택했던 순간부터 바이탈은 연이 없다고 정해 놓은 마당이었다.
게다가 그는 일종의 사업가다 보니 의학적인 사실보다는 미용 그 자체에만 관심을 두고 있었다.
거기에 관심 있는 분야를 좀 보태 본다면, 도움이 될 만한 인간들 정도가 될 터였다.
김성진은 당연히 논외였는데 이제 생각이 조금씩 바뀌고 있었다.
“메살라진에 알레르기가 보였던 것이 좀 아쉽지만…… 인플리시맵도 충분히 좋은 약이에요. 특히 처음 시작하는 치료라면 더더욱 그렇죠. 그게 실패했다면…… 떠오르는 게 하나쯤 있어야 합니다.”
유민관의 생각과는 별개로 김성진은 하마터면 대답할 뻔했다.
떠오르는 게 있어……?
없는데요?
아……?
혹시?
전혀 모르겠어서 그랬는데, 마침 안대훈과 공부했던 내용이 떠올랐다.
이거 우리나라에서는 볼 일이 거의 없지 않겠느냔 말에 안대훈은 예의 그 인자한 미소를 지었더랬다.
-형제님, 우리 목표는 세계 최고 아니었습니까?
그랬냐고 물을 뻔했는데, 가까스로 참을 수 있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까 확실히 통합진료센터는 그걸 꿈꿀 만한 역량을 가지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최소한 이현종, 이수혁은 그렇지 않나?
안대훈도 이대로 지치지만 않으면, 그 반열까지는 모르겠지만 하여간 세계적인 레벨은 될 것 같았다.
“가만…… 아까 환자 정보 중에 그냥 넘어간 거 하나 있지 않았나?”
“뭐?”
김성진은 자신의 기억과 수혁의 말을 더해, 수혁 버전으로 입을 열었다.
여태 침묵을 지키고 있긴 했지만 애초에 김성진에게 낸 문제이지 않았나.
덕분에 이목이 순식간에 툭 쏠렸다.
“가족력. 삼촌 중에 궤양성 대장염 환자가 있다며?”
“아…… 그랬지. 뭐…… 염증성 장 질환에서 가족력이 있는 경우가 드문 건 아니니까.”
“그분은 치료를 어떻게 받고 있대?”
“응? 그건…… 그건 나도 잘 모르겠는데.”
“확인을 안 했어?”
심지어 대화의 흐름이 묘했다.
단서를 묻는가 싶더니만 이미 비난을 하고 있지 않나?
‘설마 벌써 또 알아냈나?’
유민관은 그런 생각에 좀 더 집중했다.
동기 교수도 그런 생각이 들어서 긴장했다.
“그거까지 하나?”
물론 여전히 답은 퉁명스러웠다.
그에 대해 김성진은 살포시 비웃음을 섞은 채 말했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이것도 다 수혁과 이현종에게 배운 것이었다.
정말이지, 아는 걸 이용해서 깡패짓을 하는 데 특화된 인간들이지 않나.
“안 했다면, 내가 해 봐야지. 전화기 줘 봐. 병동 걸고.”
“어…… 아니, 뭘…… 네가 환자한테 뭘 할 줄 알고.”
“전화로 실례라도 할까 봐? 너나 나나 의사 경력이 몇인데 그런 실수를 해. 자신 없으면 주지 말고. 근데 난 통화만 하면 5분 안에 진단해 낼 자신 있어.”
“음…….”
도발도 잘했다.
특히 이쪽으론 이현종이 거의 장인이었다.
상대편을 도발해서 미칠 지경으로 몰고 가는 데 있어서도 월드 스타급이란 얘기.
그 밑에서 배운 사람답게 김성진은 금세 분위기를 후끈 달아오르게 했다.
“아니…….”
“야, 줘 봐. 설마 욕이라도 하겠냐?”
“그래, 진짜 진단하면 잘된 거 아니야?”
이현종이 그랬더랬다.
상대만 도발하는 건 초보라고.
광역 도발을 걸어서, 상대를 압박하는 게 진정한 고수라고.
덕분에 동기 교수는 어버버하다가 끝내 전화기를 넘겨주고야 말았다.
환자를 바꿔 달라는 말까지 하고서였다.
“안녕하십니까, 김성진 임상 강사라고 합니다.”
“아…… 네.”
김성진은 환자의 목소리를 들으며, 확실히 치료가 효과가 없다는 걸 알아차릴 수 있었다.
힘이 없는 정도가 아니라 중간중간 신음이 섞여 있었다.
‘이걸 왜 묻지?’
김성진은 당황한 마음으로 그러나 멀쩡한 얼굴로 물었다.
“혹시 다리 안 아프세요?”
“네?”
“응?”
주변에서도 놀랐다.
이놈이, 크론이라는데 갑자기 다리?
미쳤나?
하는데, 답이 돌아왔다.
“아…… 아픕니다. 이따금씩…….”
“지금 더 아파지지는 않으셨어요?”
“네? 아, 네. 어……? 그러고 보니까 지금 더 아픕니다.”
아프다는 답이었다.
수군거림이 거세지는 순간, 김성진의 질문이 이어졌다.
“삼촌은 괜찮으세요? 궤양성 대장염으로 진단되신 분.”
“아…… 그게, 외국으로 나가셔서 연락은 잘 안 되는데…… 요양차 가셨다고 들었습니다. 많이 아프시다고 했어요.”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이것으로 필요한 정보는 다 얻었습니다.”
그러곤 전화를 마무리했다.
마지막이 너무 수혁스러웠던 느낌이 있긴 했다.
다시 말하면 김성진스럽지가 않았단 말인데, 그걸로 뭐라 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저 놀랍기만 할 따름이어서 그랬다.
질문을 딱 두 개만, 그것도 예상치 못했던 이상한 질문만 했는데 그게 다 어째 의미심장한 답을 얻어 내지 않았나.
‘점쟁이 빤스라도 입었나?’
유민관은 그런 생각을 하면서 둘의 대화를 더욱 흥미진진하게 보기 시작했다.
“자…… 정리해 보자.”
김성진은 오만한 얼굴로 동기 교수를 바라보았다.
동기 교수는 그런 김성진을 어딘지 모르게 주눅 든 얼굴로 마주했다.
여전히 한쪽은 교수고 한쪽은 임상 강사란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은 저울추가 훅 기울고 있었다.
“환자에겐 궤양성 대장염으로 진단받고 치료했지만 잘 낫지 않았던 삼촌이 있어. 본인은 최소 2년 전에 발병한, 체중 감소를 동반한 설사병을 앓고 있지. 고열도 있고, 다리 통증도 동반하고 있어. 크론이라는 진단 하에 치료했지만 듣지 않았지.”
때문에, 김성진이 말할 때 그거 고개만 끄덕일 뿐 찍소리도 못하고 있었다.
다른 이들도 그랬다.
뭔가 강의를 듣는 기분이 들어서 그랬다.
지금까지는 알고 있던 내용을 확인받는 것에 지나지 않았음에도 그랬다.
“크론이 아닐 거란 생각을 해야만 하지. 왜냐면 크론인데 초기 치료에 전혀 반응이 없는 건 이상한 일이니까. 자, 그럼…… 보자. 환자는 고열이 있어. 왔다 갔다 하지. 다리 통증도 있고. 친인척 중에 비슷한 증상을 보였을 사람이 있어. 이렇게 말하면 떠오르는 게 없나?”
김성진은 또 하나의 수혁이 되어 오연한 얼굴로 주변을 돌아봤다.
‘이 맛에 이수혁 하는구나!’
너무 신나서 돌아 버릴 거 같은 심정을 겨우 억누르고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