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942화 (942/1,303)

942화 미친놈들인가? (3)

‘진짜 미친놈들인가…….’

유민관은 운전대를 잡은 채 고뇌에 잠겼다.

나인브릿지가 있는 곳에서 제주대학교 병원까지의 절대적인 거리가 아주 먼 것은 아니긴 해도, 결코 가깝다고 할 정도는 아니었기 때문에 더더욱 생각할 시간은 많았다.

아니, 시간이 없다고 해도 생각에 잠기긴 했을 터였다.

“우리 형 괜찮은 거죠?”

‘아니…… 이게 시발 무슨 일이냐고……!’

이번 여행의 목적은, 유민관이 정도 이상의 야망을 품은 후로의 여행이 으레 그러했듯이 접대성 성격을 진하게 띠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이현종이 골프에 미친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는 상황 아닌가.

물론 수혁이 골프에 별 관심이 없다고는 해도…….

상식이 제대로 박힌 사람이라면, 당연히 이현종을 중시해야 했을 터였다.

해서 차는 골프채를 4개 싣고, 사람도 운전자 제외하고도 4명이 더 타도 무리 없을 사이즈의 차, 즉 카니발을 빌렸다.

그게 업보였을까?

지금 차에는 이현종, 이수혁, 코치 그리고 최원준 선수까지 타고 있었다.

“저기…… 일단 연습하셔야 하는 거 아닙니까?”

다른 사람도 그렇긴 했지만, 최원준은 지나치게 부담이었다.

저 인간 팬 중에는 내로라할 만한 사람이 너무 많지 않나?

부아앙!

저 봐, 저저 저 미친놈들.

백미러를 통해 본 도로는 가관이었다.

마이바흐 벤츠, 제네시스는 차라리 길가의 깡통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롤스로이스와 벤틀리가 보였다.

각종 의전 차량들이 뒤따르고 있다는 얘기였다.

거기에 누가 타고 있을까?

누가 타고 있긴, 최원준 선수의 팬임을 자처하는, 심지어 후원도 마다하지 않는 국내 유수의 기업체 사장단이 타고 있겠지!

“지금 연습이 중합니까? 형이 아프다는데!”

“야, 너 연습하는 게 나 위하는 거야!”

“웃기지 마. 이전부터 아팠다며. 내 기량 향상시켜 준 거…… 그거 다 형인데. 나 그렇게 배은망덕한 새끼 아니야…….”

“아후…….”

그리고 지금 이 차량은 내일도 대회에 뛰어야 하는, 그것도 아마도 선수 전체 커리어 중 최고 또는 최고로 향하게 되는 디딤돌 정도 수준은 될 만한 대회에 나가야 하는 최원준을 데리고 병원으로 가고 있었다.

‘만약 내일 개판을 친다……?’

개판이라.

최원준이 개판……?

와…….

‘그게 아니더라도…… 코치에게서 아무것도 안 나오거나 딱히 진단이 안 된다……?’

와……!

정말이지 상상조차 하기 싫은 일들만 머릿속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이런 망할 놈의 새끼들 같으니라고.

살려 줘!

“그래, 수혁아. 뭐 의심되는 질환은 있어?”

“아, 아뇨. 단지 오래된 뼈와 관련된 질환이라는 것만 짐작됩니다.”

“오…… 그것만으로도 훌륭하지. 아까 만져 본 거, 그걸로 유추한 거지?”

“네.”

“하하. 역시 내 아들! 우리 태화의 보물. 아니지! 아냐! 인류의 보물!”

그 와중에 무려 최원준을 3열 좌석에 밀어 넣고 당당히 2열 좌석을 차지한 두 교수란 새끼들은 속 터지는 대화만 하고 있었다.

그래도 이현종이 처음 물을 때는 살짝 기대도 품었더랬다.

아닌 게 아니라 막말로 진짜 진단이라도 하게 되면, 그래서 치료를 하게 되면 다른 사람이 아니라 최원준에게 직접 빚을 뒤집어씌울 수 있지 않겠나?

-PGA 우승에 빛나는 최원준 선수, 피부 관리는 유민관 피부과에서.

캬…….

이런 광고를 때릴 수 있다면 여태 밀어 두었던 TV 광고나 영화관 광고까지 다 해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아니라면?

개뿔도 아니었고, 심지어 내일 경기도 망치게 된다면……?

“어, 저기 보이네. 여기 병원은 진짜 좋은 데 있다니까?”

“와…… 진짜네요?”

“어지간한 요양원보다 전망도 좋아. 국립대다 보니 월급이 지나치게 짜긴 한데…… 그래도 가겠다는 교수가 늘 있잖아?”

“그렇게 생겼네요, 진짜.”

걱정은 걱정이고, 유민관은 고작해야 심마로 인해 당장 해야 할 일을 못 하는 종류의 인간은 아니었기 때문에 어느새 일행은 병원에 도착하고 있었다.

아닌 게 아니라 누가 제주도에 있는 병원 아니랄까 봐 병원은 경치가 아주 좋은 곳에 위치해 있었다.

지방대학교 병원들은 과에 따라 교수 충원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있다고 했는데, 이곳만은 일단 예외라지 않던가?

물론 와서 오래 있는 사람들의 비율은 좀 적다고 하지만 어찌 되었건 제주도 생활에 환상을 품고 있는 사람이라면 와서 누구든 감탄이 나올 만한 경관을 가지고 있어 가능한 일이었다.

“와…… 대통령 온대?”

“몰라. 근데 진짜 뭐야?”

“앞에 카니발 좀 비켜야 되는 거 아니냐?”

경기 끝나고 인터뷰까지 다 마치고 오는 중이다 보니 병원 앞은 퇴근길이었다.

그 말은 곧 돌아가는 환자들이 꽤 있다는 얘기였는데, 그 사람들 거의 전원이 길가에 못이라도 박힌 듯 멍하니 서 있었다.

카니발 뒤로 줄줄이 들어서는 어마어마한 차량들 때문이었다.

평소라면 제주도 아니라 강남 한복판에서조차 보기 힘들 거 같은 차량들도 더러 있었다.

“저기, 선배? 선배 롤스로이스 타세요?”

하여간 이현종은 도착했으니 후배에게 왔다고 알렸다.

그걸 듣고 마중 나왔던 후배 또한 다른 구경꾼들과 마찬가지로 자리에 붙잡힌 채 이쪽을 보고 있었다.

“뭔 소리야. 난 카니발.”

“카니발. 아…… 아니, 근데 뒤로 난리 났는데…….”

후배는 그런 생각을 하다가, 문득 얼마 전 들었던 말을 떠올렸다.

-야, 현종이 형 미쳤대.

명색이 제주도에 있다 보니 제주도 놀러 오는 후배들이나 동기들 중 가까운 이는 다 그에게 연락을 돌렸다.

그 또한 연고 없는 곳에 내려와 있는 거다 보니 심심하기도 하고 해서 잘 응대를 하는 편이었고, 그때 들었다.

-뭔…… 그 형이…… 진짜야?

처음부터 농담일 거란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미쳤다는 말이 대개 농담으로 쓰이지만, 이현종에게 쓰였다면 예외여서 그랬다.

그는…….

그는 젊은 시절부터 사실상 광인이 아니고서는 할 수 없는 짓을 많이 하지 않았나.

솔직히 그가 세운 의학적인 업적 중 일부는 그의 번뜩이는 의학적 지식이 아니라 광기에 의한 것이리라.

-그게 아니라…… 말년에 갑자기 뭔 이상한 짓을 해. 학회장인데, 완전 유관학회도 아니고 분과학회도 아니고…… 거의 사이비? 근데 레지던트나 젊은 애들은 엄청 열광하고…….

듣고 보니 보통 걱정하는 종류의 광인이 된 것은 아니었고, 오히려 젊은 시절 광기의 이현종이 부활한 것에 가까웠다.

정통적인 의학이 부르짖는 가치를 완전히 이반하는…….

점점 세분화되는 분과 의학 대신 통합 진료를 지향한다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현종에게 사이비라는 말은 좀 너무한다 싶었는데, 뒤따르는 차량을 보니 교주가 됐나 싶었다.

실상 교주는 다른 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때는 그랬다.

“왜 말을 하다 말아, 이 새끼. 아, 저깄네. 앞에 세운다? 환자도 있으니까, 바로 들어가야 돼.”

“어…… 네네. 걸을 수…… 있죠? 혹시 몰라서 침대랑 이송 요원 분도 대기 중이긴 해요.”

“걸어. 뛰기도 해.”

“아, 네네. 다행…… 다행입니다.”

카니발은 후배의 답을 끝으로 곧 후배 앞에 툭 하고 섰다.

그 뒤로 다른 차량들도 줄줄이 섰다.

‘맞구나, 교주. 시발……! 형!’

그 광경을 본 후배는 미친 사람이 된 형을 어찌 대할까 걱정했다.

덜커덕.

물론 이현종은 그딴 생각 따위를 알아챌 능력도 없거니와, 설령 알아챘다고 한들 개무시할 사람이지 않나.

해서 문을 열고 내려섰다.

당장 후배한테 인사도 하지 않았다.

대신 뒤에 있던 환자와 최원준 선수를 내리도록 했다.

“형…… 어? 최원준…… 선수?”

“아는 사람이야?”

“아니, 안다고 하기엔 그렇고.”

“몰라? 최원준을?”

“아니…… 알죠.”

“뭐야. 인지 기능 떨어지나. 너 정도 나이만 돼도 인마 조심해야 해.”

이현종은 늘 그렇듯 일단 후배의 정신을 쏙 빼놓고는 안으로 들어갔다.

뒤늦게 내린 사람들, 그러니까 사장들은 그런 이현종 일행을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근데 이 환자가 내과보다는 정형외과 쪽 환자나…… 내과더라도 뼈 관련이니까 내분비일 거 같긴 하거든?”

그렇게 병원 안으로 들어와서야, 그러니까 후배 입장에서는 사실상 전원을 받고 나서야 상세한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후배 입장에서는 당연하지만 그리 좋은 소식은 아니었다.

“네……? 뭐라…… 뭐라고요?”

내과가 아닐 수도 있다고?

그럼 왜 나한테…….

“너는 문지기야. 너를 써서 모든 과를 활용한다. 영광으로 알아.”

“네……? 뭐라…… 뭐라고요?”

뭔가 다른 말을 하고 싶었지만, 애석하게도 계속 무슨 말인지 알아듣기 어려운 말들만 이어지고 있었다.

“일단, 수혁아. 환자 봐야지?”

“네.”

혼란에 빠진 후배와 왜인지 모르게 그의 어깨를 토닥이기 시작한 유민관을 뒤로하고, 이현종은 수혁과 함께 진단 추론을 시작했다.

“자…… 우선 제 생각엔 우측 이쪽…… 그러니까 갈비뼈의 기시(시작) 부분이 얇아져 있어요. 이렇게 되면 얇아지는 과정 때문에도 그럴 수 있지만, 얇아진 것 때문에 통증이 발생합니다. 근력도 떨어지고요. 뼈는 근육을 지탱시켜 주는 기둥이니까요.”

물론 시작은 문진이었다.

둘은 모든 검사가 용이한 응급실 쪽으로 이동하면서 환자에게 질문을 시작했다.

“처음엔 단순히 결리는 증상이었을 겁니다. 그때 대처를 어떻게 하셨죠?”

“아…….”

환자는 수혁의 말에 그걸 어떻게 알았냐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안대훈이 이 자리에 있었다면 광영이라느니 하는 이상한 단어를 쏟아 냈을 텐데, 아쉽게도 그는 아직 오는 중이었다.

이현종은 그에 비하면 훨씬 담백했다.

“천재니까, 다 알아요. 그냥 묻는 말에 답하시면 됩니다.”

이것도 딱히 정상스러운 말은 아니긴 했지만 하여간, 환자는 귀신에 홀린 듯한 얼굴로 답했다.

“그…… 마사지를 받았습니다. 도수도 받고요. 근데…….”

“딱히 소용은 없었겠죠. 근육의 문제가 아니라 뼈의 문제였으니까요.”

“네…….”

“그러다 이따금 엄청난 통증이 있으셨을 거 같은데…… 맞습니까?”

“네, 네! 맞습니다. 그건 또 어떻게…….”

“하하. 한쪽 뼈만 얇아지고 있다면…… 추론 가능한 질환들이 좀 있죠.”

이현종은 내분비 또는 감염을 떠올리고 있었지만, 수혁의 생각은 살짝 달랐다.

물론 아무 정보가 없기 때문에 전자 또한 일리가 없는 건 아니었다.

허나…….

내분비 질환으로 인한 파골 작용, 즉 뼈의 흡수가 진행되고 있다면 전신적인 골다공증이 나타날 터였다.

그게 아니더라도, 파골 작용으로 인한 부산물로 증상이 나타났을 가능성 또한 배제할 수 없었다.

허나 환자는 그래 보이지 않았다.

“다만, 정말 한쪽 뼈만 그런 건지는 확인이 필요합니다. 엑스레이 찍죠. 어디…… 옳지. 저깄네.”

“야, 처방 내고 푸시.”

“선, 선배?”

“아, 하라면 해. 너 나한테 배운 거로 먹고사는 거 아니야?”

“그…….”

“아니야? 아니면 아니라고 하고.”

“그건 맞습니다…….”

“그럼 처방 내고 푸시.”

“하아…….”

“하아?”

“지금 갑니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