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3화 미친놈들인가? (4)
후배가 낸 처방은 엑스레이만은 아니었다.
사람이 아프다는데, 응급실에서 그것만 낼 수가 있나?
‘VIP……? 아니…… VVIP……?’
후배는 누구도 환자에 대해 얘기해 주지 않은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오가는 대화만으로 환자의 신상을 대강 파악해 냈다.
다름 아닌 최원준의 코치였다.
꽤 유명한 사람이었다.
본인이 일단 투어 프로이기도 했거니와…….
‘인터뷰에서 최원준이 공공연히 자기 은인이라고 하잖아?’
운동선수치고 감독도 아닌 코치에게 감사를 표하는 경우가 많던가?
거의 없다고 봐도 과언은 아닐 터였다.
희귀한 일이다 보니, 거기에 더해 최원준이 나름 세계적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 보니 코치 또한 당연하다는 듯 스포트라이트의 일부를 받을 수 있었다.
‘시벌…… 내가 어쩌다가 이렇게…….’
그런 환자를 응급실에서, 그것도 아무리 봐도 등 쪽이 아프다는 환자를 심장내과 의사가 보고 있었다.
이래도 되나…….
“혈액 검사부터 나가죠. 기본 검사에 적혈구 침강 속도(Erythrocyte sedimentation rate), 전기영동 검사(Serum protein electrophoresis)에 엠밴드(M band, 중간가로막)도 확인하고, 칼슘 수치랑 부갑상선 호르몬(Para thyroid hormone) 수치도 보고요. 그럼 여러 질환을 배제할 수 있겠죠.”
하지만 이렇게까지 진행된 마당에, 그런 생각은 사실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이미 두 미친놈이 신나서 처방을 내고 있었으니까.
“과연 신묘하신 처방입니다.”
아니, 두 명이 아니었다.
어느새 끼어든 대머리도 있었다.
“저는 교수님을 믿습니다.”
생긴 건 멀쩡하지만 아까부터 하는 말을 들어 보니 딱히 정상은 아닌 것 같은 놈도 하나 있었다.
그렇게 넷만 있냐?
그렇지도 않았다.
“보호자 분은 나가세요!”
지금도 응급실 시큐리티 직원이 소리치고 있지 않나?
그러기엔 좀 이른 시간인데도 저러고 있는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딱 봐도 높은 사람 같아 보이는 인간들이 우글우글했다.
이 망할 놈들이…….
“처방하고 푸시 됐나? 잘 안 됐어? 왜 화를 내고 있어. 내가 갈까?”
그런 생각에 인상을 팍 쓰고 있으려니, 이현종이 불쑥 얼굴을 들이밀었다.
이 양반이 베풀어 준 은혜가 보통만 되었어도 큰 소리를 냈을 터였다.
하지만 그에게 받은 은혜는 스승의 은혜 그 자체였다.
말이 선배지, 실상 스승님이었던 것.
게다가 이현종은 뭘 가르쳤을 뿐만 아니라 우수한 사람이기도 했다.
이현종을 싫어하는 사람이 그의 성정 때문에 꽤나 많지만, 그럼에도 실력마저 까는 사람은 없지 않던가?
“아, 아뇨. 했습니다. 지금…… 네, 저기 지금 오라네요.”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외래가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더불어 제주대학교 병원이 도심지와 살짝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응급실이 붐비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대개 도심지 그 자체에 있는 병원으로 먼저 가고, 거기서 큰일 났다 싶으면 보내오는 그런 시스템이었다.
해서 일행은 굳이 환자가 VVIP임을 밝히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별 방해 없이 엑스레이를 찍을 수 있었다.
물론 방사선사가 좀 의문을 갖긴 했다.
“교수님, 근데 교수님 환자가 왜…… 상지(팔) 엑스레이를 찍죠?”
방사선사와 나름 친분이 있어서 그랬다.
아니, 나름 정도가 아니라 이따금 낚시도 같이 나가는 사이였다.
“그…… 그게 설명하려면 좀 복잡한데.”
“지인이신 거죠?”
“아, 네네. 그렇죠. 모르는 사람은 아니니까……?”
하여간 사진 찍는 건 금방이었다.
“그럼 CT도 미리 걸어 놓을까요? 처방은 아직 없지만요. 짬 날 때 걸어 두는 게 나을 것 같은데요?”
“아. 그래 주시면 너무 감사하죠.”
“감사는 무슨…… 제가 교수님한테 얻어먹은 자연산 다금바리가 몇 마리인데요.”
“하하하.”
거기에 더해 CT 예약까지 걸어 둘 수 있었다.
저 성질 급한 이현종도 깜짝 놀랄 만큼이나 빠르게 찍을 수 있으리라.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려니, 사진이 넘어오고 있었다.
엑스레이 정도는 이제 가히 순식간이라도 해도 좋을 만한 시간밖에 걸리지 않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역시.”
“오호. 이걸 그냥 보기만 해서 알았다니, 너는 역시 천재야.”
“선재, 선재로다.”
“아니,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거예요? 왜 안 놀라요?”
사진을 본 후배는 눈이 빠지게 놀랐다.
아까 대강 듣기는 했는데, 정말로 환자 우측 갈비뼈 4, 5, 6번이 확연히 얇아져 있어서 그랬다.
아니, 거의…… 이 정도면 사라졌다고 봐도 무방할 지경이었다.
더 놀라운 건 이걸 보면서 아무도 안 놀라고 있다는 점이었다.
미친놈들인가?
이러고 있으니까 왜인지 모르게 따라 들어온 유민관이 그의 어깨를 또 두드려 주었다.
넌 뭐냐고 하고 싶었지만 도저히 그럴 분위기가 아니기도 했고, 이 사람만큼은 자신을 이해해 주는 것 같기도 해서 가만히 있었다.
“혈액 검사 결과도 뜹니다.”
“적혈구 침강 속도…… 정상이죠?”
“네? 아…… 네. 어떻게……?”
담당 간호사도 놀란 얼굴이었다.
검사 결과를 하나도 아니고 자꾸 맞춰서 그랬다.
“전기영동 검사도…… 정상이고, 엠밴드는 없겠죠?”
“어…… 네.”
“호르몬도 정상이고요?”
“네. 이게 무슨…… 이 사람 누구……?”
담당 간호사는 이게 무슨 일이냐는 얼굴로 후배를 바라보았다.
후배는 달리 할 말이 없었다.
‘가짜 아들이라고는 알고 있는데…….’
가까운 사이였던 만큼, 이현종이 애가 없다는 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물론 뒤에서 호박씨 깠을 수도 있겠지만 글쎄.
젊은 날의 이현종을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할 터였다.
일단 이 사람을 좋다고 할 만한 여자가…….
‘있겠냐…….’
단순히 외모만 문제가 아니었다.
병원에서 산다는 말이 적어도 이현종에게 국한한다면 절대로 과장이 아니었다.
이 인간은 정말로…….
정말로 미친놈이었다.
엘리자베스 여왕이 나라와 결혼했다면, 이현종은 의학과 결혼했다는 말이 나왔다.
그때 태화 별명이 잠시 대태화제국이었으니 말 다 한 셈이었다.
“자, 그럼 정리를 해 보죠.”
그렇게 놀라고 있으려니, 이수혁이 말을 이어 나갔다.
어느새 담당 간호사도 무리에 끼어 있었다.
무리도 아니었다.
뭔 점쟁이도 아니고 검사 결과를 막 맞추잖아?
대강 표현해서 그렇지 수치도 얼마간 맞추고 있었다.
미친…….
“환자는 우측 갈비뼈 4, 5, 6번에 국한된, 그러나 현저하게 관찰되는 뼈 흡수가 관찰됩니다. 소실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꽤 심각합니다. 그렇다면 원인으로 국소 감염이나 염증 반응 또는 부갑상선 호르몬으로 인한 질환을 꼽을 수 있겠는데…… 혈액 검사에서는 모두 꽝이 나왔습니다.”
언제나 그러하듯, 수혁의 말은 유려하기 짝이 없었다.
[누가 보면 혼자 다 하는 줄?]
‘너의 노고는 내가 인정하고 있다.’
[하아…… 나도 잘난 척하고 싶다.]
‘왜?’
[잘난 척할 때 수혁의 엔돌핀 농도를 보면, 얼마나 기분 좋을지 예측이 불가할 지경입니다.]
‘후후.’
바루다의 도움까지 받았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자, 그렇다면. 어떤 질환이 남았습니까?”
그 와중에 질문도 던졌다.
“어, 나…….”
“아버지는 잠시만. 다른 애들부터요.”
그걸 알겠냐? 싶었는데, 아까부터 좀 심상치 않아 보였던 이현종이 손을 들었다.
‘안다고?’
후배의 눈이 휙 돌아간 상황에서, 수혁의 눈은 두 명에게 머물러 있었다.
안대훈과 김성진.
둘은 아쉽게도 아직 교수급은 아니다 보니 가만히 있었다.
“혹시 후배님은 아시나요? 저 말고 아버지 후배분…… 교수님?”
그러자 화살이 이쪽으로 돌았다.
어쩐지 아는 게 당연시되는 분위기였다.
정작 환자는 이런저런 병원에서, 그러니까 외국에서도 유명하다고 하는 병원에서도 삽질을 했기 때문에 딱히 그런 기대를 하고 있지 않았지만.
후배 입장에서는 제일 중요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 최원준이 기대감 어린 눈으로 보고 있었다.
‘아냐, 그러지 마세요. 어려워, 어렵다고 이거……!’
애초에 심장내과 전문의가 이런 걸 왜 알아야 하나.
뼈가 없잖아, 뼈가.
뼈는…….
뼈는 모른다고…….
이 당연한 얘기를 꺼낼 수 없는 분위기라는 것에 한이 막 치밀어 올랐다.
“유민관 선생님, 선생님은 몰라요?”
한을 넘어서 분노로 접어들 무렵, 화살이 진짜 이상한 데로 튀었다.
“응? 저요?”
“네.”
“저, 저는 교수님 피부과…….”
“학교 다녔잖아요.”
“아니…… 그…….”
“그때 내과도 배우고 다 하지 않나?”
“아니…….”
얘기를 듣다 보니까 되게 한심해진 기분이었다.
분명 졸업할 때 성적 좋았는데…….
김성진한테는 밀렸어도…….
억울했지만 주변을 돌아보니 모두가 그를 한심하단 얼굴로 보고 있다 보니, 항변하기도 좀 뭐 했다.
최원준뿐만 아니라 그의 팬들, 그러니까 국내 유수의 기업들 사장단들도 그를 향해 쯧쯧 혀를 차며 보고 있었다.
툭툭.
그때 위로가 된 것이 이현종의 후배였다.
‘이런 마음으로 두드렸구나.’
이심전심이랄까.
두 미친놈의 향연에 휘말린 둘은 서로의 위로가 되었다.
아니, 위로를 넘어 약간 흥겨웠다.
물론 흥겹단 생각이 들자마자 흥취가 사라지긴 했다.
못난 놈들은 얼굴만 봐도 흥겹단 말이 갑자기 떠올라서 그랬다.
망할.
“아빠만 아는구나. 흠…… 아직은 이 정도인가. 하여간 그럼 CT까지 찍고 말씀드리죠.”
수혁은 그런 이들을 향해 딱히 실망이라는 말도 하지 않고, CT를 처방했다.
다행히 미리 예약을 걸어 두었던 덕에 바로 찍을 수 있었다.
MRI가 아니다 보니 결과도 거의 바로 볼 수 있었다.
“보면…… 종괴의 흔적이 전혀 없죠. 아까 열거했던 질환 외에 한쪽에 국한된 뼈의 결손이 관찰되었을 때는 악성 종양을 의심할 수 있는데, 그것도 아니라는 겁니다. 그럼 뭐가 남죠?”
수혁은 영상을 가리키다가 돌연 기대감 어린 얼굴로 주변을 돌아보았다.
“수혁아 나 특…….”
이현종만 말을 했는데, 수혁이 그의 입을 가렸다.
‘죄송합니다. 잘난 척은 저의 몫이죠.’
[이건 못 참지.]
패륜이었으나 말려 줄 사람은 없었다.
보통 이럴 때 브레이크가 되어 주던 바루다마저 정신을 놓아서 그랬다.
하여간 그렇게 수혁의 말이 이어졌다.
“모르는구나. 특발성 골용해라는 병이 있습니다. 말 그대로 원인이 불명확하다는 건데, 총 5가지 유형이 있어요. 1형은 우성 유전형을 동반한 골용해, 2형은 열성 유전형, 3형은 신장의 증상을 동반하는 경우…… 4형은, 이건 들어 봤을 것 같은데. 골함(Gorham) 골용해. 주로 증상이 심각하죠? 5형은 윈체스터 증후군으로 불리는 질환이죠. 지금 환자에게선 이 중 1형과 2형이 의심이 됩니다. 보통은 어린 시절에 발생하지만, 2~30대에 발생하는 경우도 흔하거든요. 환자분은 이 분류에 더 잘 들어맞죠.”
수혁은 한껏 턱을 올리고, 그러니까 잘난 척하는 자세로 말하다가 환자를 돌아보았다.
그러곤 그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조금 늦게 찾긴 했지만, 진단명을 찾았으니 치료를 해 보죠.”
“어…… 치료가 됩니까?”
“진행은 막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