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945화 (945/1,303)

945화 어, 미친놈이야 (1)

“어떡해, 어떡해. 우리 아빠 어떡해!”

수혁의 시선을 따라 이현종 또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비극의 현장이, 그러나 응급실에서만큼은 감히 흔하다 할 만한 현장이 눈에 들어왔다.

어떤 젊은 여자 보호자 하나가, 이제 갓 50이나 되었을까 싶은 중년 남성 근처에서 울부짖고 있었다.

“잠시.”

수혁은 이미 그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저기…… 이제 해결되셨으니까, 가시죠?”

“네, 제가 진짜 한번 사겠습니다, 교수님.”

유민관이야 뭐…….

그리 중요한 사람도 아니라 할 수 있었지만, 최원준까지 말하고 있는데도 별로 아랑곳하지 않았다.

원래 그런 인간이기는 하지 않나?

안대훈은 감히 인간들이 수혁에게 뭔가 하자는 게 불만이라 인상을 쓰고 있었지만, 김성진은 아직 그럴 수 없었다.

‘아니…… 최원준 선수잖아요, 교수님…….’

다른 누구도 아닌 최원준이지 않나?

이미 포스트 박세리, 포스트 박인비가 될 거란 얘기도 있었다.

허나 어쩌겠나.

“아니, 어딜 가시는 거야.”

“길을 잃었나?”

“여기서 잃을 길이 있습니까?”

“혹 모를 일 아닙니까?”

유민관과 최원준만 이러고 있는 게 아니었다.

이현종의 후배와 코치 또한 어리둥절한 얼굴이었다.

“선배. 무슨…… 선배……? 선배 거기 왜 가요?”

둘 중 그나마 말빨이 서는 후배가 나서려 했으나 이미 늦은 마당이었다.

이현종은 이미 휘영청 멀어져 있었다.

아니, 먼저 간 수혁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었다.

“설마…… 아니, 선배!”

딱 봐도 환자 보러 가는 길 같았다.

그럴 거면 가운이라도 챙겨 오지 그랬냐는 말이 입술에 걸려 한숨이 되어 새어 나왔다.

“하아…… 내가 왜 불렀을까. 내가 갈걸!”

골프복을 입은 놈 둘이 다른 곳도 아니고 응급실을 활보하고 있는데, 그게 또 내 책임이네?

후배는 눈앞이 샛노래지는 걸 느끼며 부리나케 달렸다.

그러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느낌을 받았다.

이현종과 이수혁 때문은 아니었다.

둘 앞에 있는 환자, 그러니까 둘의 목표가 된 환자 때문이었다.

‘어……?’

저 환자, 아까 분명 자신이 심혈관 중재 시술을 했던 사람이지 않나……?

“어떡해……!”

그 앞에 있는 보호자도 눈에 익었다.

어린 시절 엄마를 여읜 채, 아빠 손에 컸다는 고등학생이었다.

공부를 아주 잘해서 태화 법대를 간다고 들었는데…….

어찌나 기특했던지 따로 용돈도 줬다.

헌데 왜 여깄지?

“너, 너무 그러지 마라, 미주야.”

의식이 없나?

설마 심혈관 넓혀 주었던 것에 문제가 생겼나?

해서 보니까 환자가 입을 열고는 있었다.

다만 자세가 영 이상했다.

“환자분! 일단 바로 CT 찍고, 결과 따라서 MRI 찍겠습니다!”

이현종, 이수혁에 가려져 보이지도 않던 의사 하나가 외쳤다.

잘 보니 신경과 레지던트 같았다.

좋지 않았다.

신경과 의사가 머리 CT와 MRI를 논한다?

둘 중 하나란 뜻이었다.

출혈이거나 경색이거나.

뭐 종양일 수도 있는데, 그게 갑자기 막 생기는 건 아니니까…….

“으…… 네.”

“아직도 손 저리시고 힘이 안 들어오는 거죠?”

“네…….”

“이런.”

잘 보니 레지던트는 환자의 오른손을 쥐고 있었다.

말하는 거로 미루어 볼 때, 환자 또한 손을 쥐려고 하는 것 같은데 그러지 못하는 듯했다.

환자의 손은 그야말로 들려 있는 수준일 뿐이었다.

망할…….

정말로 경색이라도 온 모양이었다.

‘하필 오늘…….’

심혈관 중재 시술을 하면서 실수가 있었나?

후배는 저도 모르게 자신이 했던 시술을 검토하고 있었다.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당시엔 별문제 없다고 여겼지만, 일이 이렇게 된 이상 검토는 해 봐야 하지 않겠나.

[수혁, 뭔가 이상합니다.]

‘응…… 그렇지? 물론 이렇게만 힘이 빠지는 경우가 없는 건 아니지만…… 일반적이진 않아.’

[그렇죠? 흐음…….]

그러한 뒷사정을 알 리 없는 수혁은 아직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물론 조용히 하고 있을 뿐, 속으로는 바루다와 끊임없이 토의를 하고 있었다.

입을 열지 않는 건 잘난 척을 할 수 없어서였다.

다시 말해 아직은 그저 이상하단 느낌만 받았을 뿐, 뭔가 이렇다 할 추론을 해내지 못하고 있었다.

‘사타구니 근처로 포비돈 자국이 있어. 이 새끼 중얼거리는 거 보니까 오늘 중재 시술을 한 모양인데?’

그에 비해 이현종은 맨날 하던 일이 관련되어 있는 만큼, 추론을 쭉쭉 뻗어 나가고 있었다.

‘진짜로 뇌 문제일 가능성이 크겠어…….’

좋은 방향은 아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심혈관에 문제가 있었다는 건, 결국, 뇌혈관에도 문제가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 아니겠나.

혈관은 특별한 사정이 있지 않은 이상 절대 혼자 망가지지 않으니까.

아니, 애초에 주요 혈관이 정도 이상으로 망가졌다는 건 다른 문제가 대단히 많다는 걸 의미했다.

‘근데 수혁이 눈치 보니까 그게 아니라고 생각해서 여기 온 거 같지……?’

허나 수혁의 얼굴을 보아하니 뭔가 있는 듯했다.

그래서 다시 보니, 확실히 뇌혈관 질환이라고 하기엔 살짝 범위나 증상이 애매했다.

물론 일과성 뇌허혈이라는 병도 있기는 했다.

콱 틀어막힌 게 아니라, 막혔다가 풀렸다 하는 경우엔 다양한 정도의 증상이 나타날 수 있었다.

아무튼, 그런 생각을 이어 나가고 있으려니 어느새 이송 요원이 와서 CT실로 가기 시작했다.

수혁과 이현종은 너무도 당연하다는 듯, 마치 피리 부는 사내를 따라나서는 아이들처럼 그의 뒤를 따랐다.

“아니, 교수님들! 저기, 교수님 뭐라고 좀…….”

“네네. 아니, 여기 병원 교수님도 아니시지 않습니까? 대체 이게 무슨.”

그러자 차마 환자 앞에서는 소란을 떨 수 없어 가만히 있던 유민관과 최원준이 후배를 향해 읍소했다.

사실 어떻게 봐도 타당한 일이긴 했다.

남의 병원에서 골프복 입고 대체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미안합니다. 제가 X되게 생겨서.’

허나 마지막 등불이었던 후배는 그들을 저버렸다.

자기 환자가 응급실에 심각해 보이는 증상으로 왔는데, 왜 그렇게 된 건지 알 수가 없지 않나.

게다가 이현종은, 적어도 그가 아는 의사 중 최고였다.

심지어 옆에 선 이수혁도 방금 자신이 천재라는 걸 증명했고.

이건…….

이건 정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저기, 선배…… 이거 뭐죠?”

“음…… 짚이는 구석이 하나 있는데, 일단 영상을 보자.”

“네? 정말요? 뇌경색이나 출혈 보고 짚이는 구석이 있다고 하는 건 아니죠?”

“뭐…… 너 심혈관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하냐? 내가 보여 줘? 왜 개기지?”

“아, 아닙니다. 선배. 제가…….”

“제주도에서 너무 오래 살았나, 이거. 어? 내가 말이 선배지 인마, 사실상 네 스승인 거 몰라?”

“아유, 그렇죠. 제가 밥 벌어 먹고사는 게 다 선배 덕인데요.”

“근데 그런 말을 해? 내가 당연한 질환 가지고 이러겠냐?”

“아닙니다. 선배는 태화가 나은 최고의 천…… 왜 노려보세요?”

후배는 늘 먹히던 말이 먹히지 않아서인지, 정말 당황스럽다는 얼굴로 이현종을 바라보았다.

천재라는 말에 불만인가?

‘옥황상제라고 불러 드려야 하나……?’

다른 사람 같으면 이런 생각까지는 안 했을 텐데, 이게 이현종이다 보니 영 헷갈렸다.

“최고의 천재는 수혁이야.”

“네? 아니, 선배가…… 선배가 이런 말을……?”

“뭐 인마.”

“아니, 아닙니다.”

“근데 이건 내가 맞출 것 같네.”

이현종은 아들 자랑을 일단 시전한 후, 자기 자랑도 시전했다.

일련의 흐름이 너무 자연스러워서 후배는 물론이거니와 영문도 모르고 뒤를 따르게 된 유민관과 최원준 또한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렇게 자의로 가는 사람 반, 타의로 가는 사람 반까지 해서 모든 일행이 CT실에 도달했다.

“어, 자네가 여길 왜 오나. 나가 있게.”

“어…… 네.”

계속 따라가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골프복을 입은 이현종이 손을 휘휘 내저어서 그랬다.

그렇게 유민관과 최원준은 밖에 남았다.

“저 두 분은 왜…… 왜 들어간 거죠?”

“그……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유민관은 최원준의 질문에 고개만 절레절레 저어야만 했다.

사실 최원준과 대화하는 게 버킷 리스트 중 하나였는데 이런 식으로 이루어질 줄은 몰라서, 왜인지 모르게 서글퍼지고 있었다.

자신이 바랬던 방향성과 좀 너무 많이 동떨어져 있어서 그랬다.

“좋아, CT 넘어온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현종과 수혁 그리고 후배는 안에 들어가서 영상을 기다렸다.

CT는 워낙에 빨리 찍는 검사인 데다 뇌 병변이 의심될 때는 조영제도 없이 찍기 때문에 정말 금세 볼 수 있었다.

“아…… 이런.”

그걸 본 후배가 탄식을 터뜨렸다.

물론 심장내과 의사다 보니 머리 쪽이 전문은 아니었다.

솔직히 말해서 머리 쪽 CT를 주의 깊게 본 것은 퍽 오래된 일이었다.

허나 그런 사람조차 알아볼 수 있을 만한 명확한 변화가 환자의 좌측 뇌에 전반적으로 발생해 있었다.

“미만성 출혈(넓은 부위에서 이뤄진 출혈)인가?”

수혁 또한 동의했다.

출혈의 양이 많아 보이진 않았다.

아니, 혈액이 흘러나온 게 보이진 않았다.

하지만 뇌 전반적으로 변화가 있었다.

이런 식으로 보이는 건 미만성 출혈, 그중에서도 지주막하 출혈 정도가 있을 터였다.

‘아니…… 아니지.’

허나 이현종의 생각은 달랐다.

영상 자체만 뚝 떼어 놓고 보면 그렇게 보이긴 했다.

하지만 아직 수혁이 습득하지 못한 정보, 즉 오늘 심혈관 중재 시술을 했다는 사실을 이현종은 알고 있지 않나?

게다가 이만한 미만성 출혈이 있는 것에 반해 증상이 영 모호하지 않나?

‘미세하게…… 조금 좋아진 거 같아 보이기도 하고…… 이건 전혀 다른 질환이야. 어차피 지주막하 미만성 출혈에서 이상한 짓을 하지는 않겠지만……?’

뇌출혈이라고 해서 다 머리를 열고 쑤시고 하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기다리는 경우가 훨씬 많았다.

많은 양의 출혈이 아니라면 흡수가 되기에 그랬다.

그럼 피나는 건 어쩌냐는 의문이 들 수도 있는데, 알고 있다시피 피는 멎기 마련이었다.

그 사이에 보존적인 치료만 하면서 기다리는 경우도 많다는 얘기였다.

‘그래도…… 괜히 환자나 보호자가 불안에 떨게 할 수는 없지.’

이현종은 원래 애가 없는 사람이다 보니, 사실 부모의 정에 대해서도 별반 아는 게 없었더랬다.

그러다 아버지를 잃고 나서 좀 따뜻해졌는데, 그렇다 한들 일반인 수준도 못되었다.

그가 이렇게 다른 이를 배려할 수 있게 된 것은 모두 수혁 덕분이라 할 수 있었다.

물론 잘난척할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아서이기도 했다.

“환자에게 어떻게…….”

“제가 일단 설명드리겠습니다. 보존적 치료(원인 제거가 아닌 현 증상을 치료하는 것)를 할 거고, 결과에 따라 수술 여부가 결정된다고 하겠습니다.”

게다가 삽질하고 있잖아.

출혈이 아닌데, 수술 얘기라니?

‘수혁이 너는……?’

다만 수혁만은 눈을 감은 채로 입술만 달싹거리는 게, 뭔가 다른 가능성을 찾고 있는 것 같은데…….

‘미안하다, 이번엔 애비가 간다.’

이현종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수혁이 입을 열까 봐 미리 틀어막으면서 말했다.

“아니, 아냐. 출혈이 아니야.”

턱을 치켜 들고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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