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6화 어, 미친놈이야 (2)
‘출혈이…… 아니야?’
[확실히 증상은 이상합니다만, 그 외에 다른 질환을 의심할 만한 단서가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 아빤데?’
[네, 그래서…… 귀를 기울여 집중하기를 요청합니다.]
다른 이들뿐만 아니라, 수혁과 바루다 또한 이현종의 말에 고개가 홱 돌아갔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현종은 천재니까.
말뿐인 천재는 결코 아니지 않나.
특히 수혁과 바루다는 둘조차 해결하지 못했던, 또는 해결하기 위한 시간이 어마어마하게 필요할 만한 케이스도 이현종이 뚝딱 해결해 왔던 것을 몇 번이나 목도해 온 바 있었다.
“자, 들어 봐.”
그러니 이현종의 방금 말은 불필요하다고 할 수 있었다.
어차피 다 들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가.
물론 꼭 그렇다고만 볼 수는 없었다.
이현종, 그 자신을 위해서는 의미가 있었으니까.
‘그래, 이 맛이지…… 이래서 내가 통합진료센터 하지.’
전문가들 앞에서 그들의 영역을 풀어나갈 때의 쾌감은,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은 상상할 수조차 없는 종류의 것이었다.
이현종은 여전히 턱을 치켜든 채로 말을 이었다.
“이 환자는 오늘 심혈관 중재 시술을 받았어. 아니, 뭐…… 경동맥이나 다른 걸 받았을 수도 있는데 그랬으면 이놈이 이렇게까지 호들갑을 떨진 않았겠지.”
시선을 후배에게 둔 채였다.
후배는 경황없어 보이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 네.”
수혁과 바루다도 그랬다.
사실 그제야 이 환자의 사타구니 부근에 묻어 있는 갈색 액체의 정체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아니, 베타딘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그게 왜 묻어 있는지는 이제야 알아차렸다.
‘근데…… 그렇다고 해도…….’
[중재 시술을 받았다는 건, 즉 출혈의 위험성이 올라갔다는 걸 의미합니다.]
‘응. 당장 떠오르는 건…… 그것뿐인데…… 그래도 아빠는 좀 다를 거야.’
[반평생을 심장과 함께 살아온 사람 아닙니까. 시술에 대한 이해도와 경험은 이 자리에 있는 사람 아니라 우리나라 전체를 통틀어서도 최고입니다.]
‘과연 아빠로구만.’
[따지고 보면 생물학적인…… 뭐, 의미는 없겠죠.]
허나 그 이상의 추론은 아직 불가했다.
시간을 두고 찬찬히 해 보면야 가능하겠지만, 그럴 이유가 없는 상황이었다.
이미 이현종이 해결했으니까.
‘아버지도 잘난 척할 기회 줘야지.’
[네, 환장하죠. 이게 인간들이 말하는 효도 아니겠습니까.]
‘그렇지.’
그리고 여기서 끼어드는 건 상도의에 어긋나는 일이었다.
해서 수혁은 지들끼리 떠드는 대신, 이현종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이현종은 그런 수혁의 반응에 더할 나위 없이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자, 중재 시술을 받게 되면 일단 헤파린을 쓰지. 헤파린이 뭐야.”
“혈전 제거제죠.”
“그래. 그 말은 곧 출혈 위험성을 올린다는 거야. 때문에 중재 시술 후에 신경학적인 증상이 나타났다면 반드시 의심해야 하는 것이 뇌출혈이야. 실제로 우리가 제일 경계하는 게 그것이기도 하고. 당연히 심장은 뺐을 때를 말하는 거야.”
“네네. 그렇죠. 게다가 이 영상이 이게…….”
이어지는 이현종의 말에 후배는 다시금 영상을 봤다.
출혈 운운하는 소리를 들어서 그런지, 역시 출혈이구나 싶었다.
이게…….
응?
출혈이잖아…….
그것도 미만성 출혈.
심지어 천재 이수혁 교수조차 지주막하 출혈이 의심된다고 했다고.
자꾸 이런 생각만 들다 보니 표정만 어두워져 가고 있었다.
“의심해야 하는 이유는 굉장히 많아. 애초에 심혈관 중재 시술을 해야만 하는 환자는 혈관 상태가 좋지 않아. 이유도 여러 가지가 있겠지? 이 환자만 해도 고혈압이 있잖아. 다행히 당뇨는 없지만…… 우리나라에서 출혈의 주된 원인이 되는 건 역시 고혈압이지.”
“네네. 아…… 이거 역시…….”
“역시 하지 말고. 빌드업 모르냐?”
“네?”
이현종은 출혈에 대한 설명을 이어가다 말고 후배에게 일갈했다.
일견 보기엔 지나칠 정도로 여유가 있어 보였다.
심지어 가운이 아니라 골프복을 입고 있어서 더더욱 그래 보였다.
병원에서 의사가 보이기에는 그리 적절하지 않은 태도 아닌가 싶을 지경이었다.
‘이거…… 아무것도 아니라고, 병신아! 후배란 놈이…… 사실상 제자라는 놈이……!’
물론 이현종이 이렇게 나오는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평소 까칠하기로 소문난 인간이지만, 내 환자에게만큼은 한없이 따뜻한 인간 아니던가.
그가 이렇게 나올 땐 뭔가 이상하단 생각을 해 봐야 정상이었다.
“아무튼, 중재 시술을 할 때 또 뭘 넣지?”
“네?”
“헤파린만 쏴? 다른 약도 쏘잖아.”
“다른 약이요……? 마취……? 아닌데, 그건 국소 마취만 하는데?”
후배이자 제자니까 알겠지 하는 생각으로, 이현종은 후배를 지긋이 바라보았다.
나름 따뜻한 표정도 지어 보였다.
하지만 후배가 느끼기에는 따뜻하긴커녕 추궁당하는 느낌이었다.
뭐라 답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더더욱 그랬다.
“야, 멍청아. 약 넣잖아.”
“아니…… 뭘 넣지……?”
그 얼굴을 보고 있자니 답답하기도 하고 또 옛날 생각도 나서, 이현종은 레지던트로 돌아간 듯한 기분에 그때 당시의 언동을 사용했다.
그게 꽤 자연스러워서, 수혁은 이현종에 대한 옛 소문을 확인받는 기분이 들었다.
‘때리는 건 철폐했지만 말로 때렸다더니. 멍청이라는 말을 저렇게 찰지게 하네.’
[그러니까요. 수혁조차도 저런 말은 참는데…….]
‘난 아예 떠올리지 않거든?’
[지랄……,]
‘응? 인공지능이 욕을 해?’
[인공지능조차 욕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이해해 주면 감사하겠습니다.]
둘이 이렇게 토의 아닌 토의를 이어 나가는 동안에도, 이현종은 기다렸다.
그로서는 놀라운 인내를 발휘한 셈인데…….
딱하게도 후배는 도무지 다른 약을 떠올리지 못했다.
해서 이현종은 쯔쯔 하고 혀를 차고는 자신이 말을 이었다.
“조영제 넣잖아. 조영제.”
“아…… 조영제…….”
“CT 조영제보다는 부작용이 적지. 하지만 겪어 본 적이 없지는 않을걸.”
“네, 있어요. 있기는 한데…… 이런 건…… 출혈까지 일으킨다는 보고는 없었는데.”
“야, 출혈 아니라니까 그러네? 이거 그냥 조영제로 인한 일시적인 뇌 병변이라고.”
“뇌 병변…….”
“왜 뇌 병변에만 반응하냐. 일시적이라는 데 반응하면 좀 좋아?”
“아.”
이현종이 말을 마친 후에야 후배의 얼굴이 펴졌다.
수혁과 바루다 또한 그랬는데, 이유는 좀 달랐다.
환자에 대한 걱정은 이현종이 저렇게 나왔을 때 이미 덜어 냈기에, 둘은 오로지 이게 대체 뭘까만 궁금해하고 있어서 그랬다.
듣고 보니 퍽 간단한 케이스였다.
물론, 미리 알지 못하면 절대로 알아낼 수 없는 종류의 케이스이기도 했지만.
“이거 조영제로 인한 부작용이고, 물 주면서 기다리면 좋아져.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입원시키고 한 3일만 봐 봐.”
“오…… 그럼 나아질까요?”
“그렇지.”
“아니, 근데 선배는 이런 걸 어떻게 알았어요?”
“어떻게 알긴. 너랑 나랑 짬밥이 같냐? 하루에 보는 환자 수만 해도 몇 배는 되었을 텐데, 당연히 겪어 본 적도 있지.”
천하의 이현종에게도 그랬더랬다.
처음에 환자가 좌측 손이 이상하다고 왔는데, CT를 찍어 보니 미만성 출혈 소견으로 보여서 어찌나 놀랐던지.
심지어 그때는 이것보다 훨씬 심하게 보여서 신경외과도 콜했더랬다.
성격 급하기로 소문난 최낙필 놈이 당장 머리 따자고 했을 때 만류하지 않았더라면…….
‘시벌. 지금 생각해도 오싹하네.’
기다리면 좋아질 병 가지고 머리를 열었으면 그 죄책감을 대체 어떻게 던단 말인가.
물론 기술이 좋아진 데다가, 최낙필이 인성에 좀 문제가 있을 뿐 수술은 잘하는 놈이니 큰 합병증을 동반하지는 않았겠지만…….
뭐가 되었건 간에 쓸데없는 수술을 한다는 건 반드시 피해야 할 일이었다.
수술은 언제나 그러하듯 비가역적인 치료였으니.
“그때 선배는 어떻게 했어요?”
“아, 물론 기다렸지.”
“어떻게…….”
“조영제 공부는 기본 아니냐? 의사가 말이야. 자기가 쓰는 약이 어떤 성질을 가지고 있는지는 하나부터 열까지 다 알고 있어야지.”
“와…… 역시 선배.”
물론 속으로만 식겁했을 뿐, 겉으로는 멀쩡한 얼굴로 서 있었다.
[역시 이현종.]
‘그러니까. 역시 아빠다.’
어느 정도로 멀쩡했냐면, 이미 이현종에 대한 데이터 수집이 옛날 옛적에 끝난 바루다조차 속아 넘어갈 지경이었다.
이쯤 되면 일반인으로서는 도리가 없었다.
“진짜 대단하십니다. 여전히 저는 선배한테 배우네요.”
“뭐…… 그렇지. 하하. 난 천재니까.”
“네네. 태화 최고…… 아니, 두 번째…… 천재……?”
“그래. 수혁이가 나보다 나아.”
“네네.”
이현종의 말을 들으며 후배는 놀라움을 느꼈다.
이 자아도취의 황제가 최고의 천재 자리를 양보하게 될 줄이야.
가짜 아들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이제 보니 아닌가 싶기도 했다.
하여간, 일행은 그렇게 결론을 내고 나서야 CT실에서 빠져나왔다.
그때까지도 최원준과 유민관은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오…… 나오셨어요?”
“어떻게…… 됐습니까?”
사실 이러한 질문보다는 ‘너희 대체 뭐하고 있는 거냐’를 묻고 싶었지만, 여기 의사도 별말 못 하고 있는데 뭐 어쩌겠나.
그런 말에 이현종은 너무나 당당하게 또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내가 나섰는데 해결됐지. 심장은 이현종. 이건 만고불변의 진리니까 늘 유념하고 있으면 돼. 아, 최원준 선수도 혹시 심장 망가진다 싶으면 와요. 아니, 이게…… 망가지라는 건 아니고. 그, 팬입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자연스레 무례를 범했다.
이제 한창때인 20대 선수한테 심장 질환 얘기를 운운하다니…….
유민관이 덜컥 불안해져서 최원준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그러자 최원준이 껄껄 웃었다.
“네네. 정말 감사합니다. 하하.”
무례고 나발이고 방금 그의 코치가 구원을 받지 않았나.
말을 들어 보니, 그런다고 투어 프로를 할 수는 없을 것 같았지만.
뭐가 되었건 지금껏 괴롭혀 온 통증이 사라질 수 있다는 건 좋은 일이었다.
‘저 봐. 저 무뚝뚝한 형이…… 저렇게도 웃을 수 있었구나. 나 원…….’
지금 당장은 코치 형 얼굴만 봐도 배가 부를 거 같았다.
그런데 이런 얘기에 뭐 화가 나겠나.
화가 나기는커녕 오히려 웃음만 나왔다.
어쩐지 내일 경기도 잘될 것만 같은 기분이랄까?
“아, 참. 교수님.”
“네?”
“내일도 오시는 거면…… 카트 같이 타실래요?”
“허…… 정말입니까?”
“네. 내일 일찍 끝나면 제가 샷도 봐 드리겠습니다. 아, 골프는 치시죠?”
“네네. 그럼요. 근데…….”
이현종은 날아갈 것만 같은 기분을 느끼다가, 수혁을 돌아보았다.
그에게는 물론 너무 좋은 일이 벌어진 셈이었지만…….
수혁은 아닐 수도 있지 않나?
“아, 저도 좋아요. 보니까 재밌던데요? 가까이서 볼 수 있으면 좋죠.”
“그럼 그렇게 하시죠. 저희는…… 그럼 내일 경기 때문에 먼저 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네네.”
“네, 그럼 저는 응급실로 가 보겠습니다.”
“응?”
최원준 선수와 작별 인사를 하고 있던 이현종은 수혁의 말에 고개를 돌렸다.
그제야 알았다.
‘이 자식…… 기어코 자기가 하나쯤 직접 해결하고 싶구나…….’
역시 우린 미친놈들이라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