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947화 (947/1,303)

947화 오일장이에요? (1)

이현종의 예상은 빗나갔다.

수혁이 바란 게 하나가 아니었던 것.

결국, 유민관은 12시가 다 되어서야 나올 수 있었다.

그때까지 수혁과 이현종이 해결해 낸 것만 무려 8케이스가 넘었다.

그중에는 근처 한라 병원과 같은 2차 병원에서 해결하지 못했던 케이스도 뒤섞여 있었다.

“그…… 정말 감사합니다.”

얼떨결에 후배도 퇴근하지 못했는데, 그렇다고 불만이 생기진 않았다.

그럼 사람도 아닌 수준이었다.

이 인간들의 진단 능력은 그야말로 어머아마했다.

그야말로 죽을 사람 살리고 떠나는 둘이었다.

그 둘은 배웅하는 데 있어 정수리 한 번쯤은 보여 줄 수 있었다.

해서 허리를 깊숙이 숙이고 있는 그에게, 이현종이 말했다.

어깨를 두드리면서였다.

“감사하지?”

“어…… 네.”

고개를 들어 보니 묘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별로 좋은 느낌이 들진 않았다.

나쁜 사람은 아닌데, 지나치다 싶을 만큼 특이한 인간이지 않나.

오히려 나쁜 놈이면 뭔가 예상은 될 거 같은데, 이쪽은 그것조차 아니다 보니 더 힘들었다.

“그럼 연락 돌리자. 나랑 수혁이 월요일에 올라갈 거라 내일모레까지는 저녁 진료 되거든?”

“네에…… 그게 대체 무슨…… 무슨 말씀이신지?”

“아이, 얘가 참. 야, 대훈아.”

“네, 저 여기 있습니다.”

이제 보니 힘든 정도가 아니라 진짜로 뭔 소리인지 아예 알아먹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멍하니 서 있었더니, 뒤늦게 참가해서 나름의 두각을 나타냈던 대머리 의사가 나섰다.

생긴 것만 봐도 뭔가 심상치 않더라니, 행동도 특이했다.

“그래. 너…… 이런 거 잘하지?”

“맡겨 주십쇼. 신명을 다하겠습니다.”

“그래. 좋아. 방법은…….”

“제가 잘할 수 있습니다. 맡겨 주십쇼.”

“그래.”

그러더니 무슨…….

화웅의 목을 베러 나가는 관운장 같은 얼굴로, 아니 솔직히 노지심 같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불안해졌다.

“저기, 선배. 뭘…… 뭘 하시려고.”

“걱정 붙들어 매십시오. 제가 다 알아서 하겠습니다.”

“아니, 그러니까 자네가 뭘 알아서 하냐고. 여기 우리 병원이야!”

“맞는 말씀이십니다. 환자 보는데 다른 병원이라고 안 보는 게 어디 있습니까. 다 우리 환자죠.”

“이…… 선배, 이 새끼 미친놈이에요?”

“어. 우리 다 미친놈이야.”

“아니, 이게…… 뭔…… 어, 어디 가!”

“집에 가지.”

더없이 불안해졌다.

웃어른이 나서서 말려 줘야 할 것 같은데 죄다 한통속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말릴 수 있나?

그것도 아니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여기가 제주도라는 점이었다.

쟤네가 아무리 또라이라고 해도 뭘 할 수 있겠나, 이런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건 착각이었다.

“저게…… 저게 뭐야.”

안 그래도 좀 불안하기도 하고, 워낙 황당한 하루를 보내서 그런가 잠도 잘 안 오고 해서 새벽녘에 출근하는데 노형 오거리, 즉 신제주 최고의 번화가에 뭐가 걸려 있었다.

-단 이틀, 세계 최고 통합진료센터 센터장, 부센터장 동시 진료! 제주대학교병원 pm 6~12시!

현수막이었다.

“저게…….”

가까이 가 보니 연락처는 자기 것이 쓰여 있었다.

“에구머니나.”

놀라 자빠질 뻔했다.

아니, 그 정도가 아니라 사고가 날 뻔했다.

새벽이라 차가 없어서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뒤에서 박았을 거다.

갑자기 멈춰 섰으니까.

덜커덕.

하여간 그는 차를 갓길에 잠시 댄 다음 내려서 현수막을 살폈다.

“이 미친…… 이게…….”

일단 현수막이라는 것부터가 하루 만에, 아니 몇 시간 만에 만들 수 있는 건 아니지 않나.

일단 그 시간에 하는 현수막 제작 업체도 없었을…….

“미친놈이 이거 직접 쓴 거잖아?”

그러면 직접 제작을 하면 되는구나 싶었다.

그렇다면 대체 이 현수막 자체는 어디서 온 걸까?

설마 들고 다니나?

하면서 주변을 둘러보던 후배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잘 보니 저쪽 사거리에 또 다른 현수막이 걸려 있어서 그랬다.

‘설마…… 설마……?’

두근거리는 가슴을 애써 진정시키려 노력하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병원이었다.

“네, 고재현입니다.”

“아…… 네, 고 교수님. 그…… 무슨 짓을 하신 겁니까?”

봤구나, 싶었다.

부지런하기도 하지.

지금 새벽 6시인데…….

심지어 주말인데 이걸 대체 어떻게 본단 말인가.

자기야 회진 때문에 간다손 치더라도 직원은 그런 것도 아닌데.

이런 생각을 하고 있으려니 상대의 말이 이어졌다.

“지금 병원으로 전화가 오는데…… 환자 문의가 물밀 듯이 오고 있습니다. 심지어 부산에서도 와요.”

“네? 부산……이요?”

“네. 목포도 그렇고. 배 타고 가면 되냐고…… 아니, 태화의료원 통합진료센터 교수님들이 진짜 그 시간에 오는 게 맞습니까?”

“그…… 맞기는 합니다만…….”

“아, 그래요?”

“네? 어째 말투가.”

“저희 어머님도 괴질이라. 이참에 한번 보긴 하려고요.”

“네?”

고재현은 전화를 하다 말고 전화기를 들여다보았다.

혹시 웬 미친놈이 장난 전화를 하나 싶어서였다.

하지만 몇 번을 봐도 병원 번호는 맞았다.

“아무튼, 이거…… 이거 도청하고는 상의가 된 겁니까? 대부분은 환자 문의인데, 간혹 불법 현수막 같다는 의견이 있어요.”

“그…….”

도청하고 얘기가 되었을 리 있을까.

도청은커녕 공무원 한 명도 이 사실을 알고 있을 턱이 없었다.

그 말은 곧…….

“얘기가…… 설마 안 되신 건 아니겠죠?”

고재현은 억울해졌다.

내가 그런 것도 아닌데, 왜 나한테 이러나.

‘아니…… 생각해 보면 어제 일부터가 잘못됐지.’

누구 탓을 할까.

이현종이 이상한 게 하루 이틀 일도 아닌데 그걸 그냥 불렀으니…….

‘아니지. 그렇다고 해도 이건 너무 좀…….’

잠시 반성을 하려다가 다시 억울해졌다.

이런 건 상식을 뛰어넘었지 않나?

“아무튼, 문의 오신 분 중에 도지사분도 계시긴 해서 상관은 없을 거 같은데…… 일단 확실히 해 주셔야 합니다. 두 분 오시는 거 맞죠?”

“네? 도지사요?”

“네. 도지사.”

“아니…….”

그러다 돌연 또 불안해졌다.

이 새끼들 이거, 현수막 붙여 놓고 안 오면 어쩐단 말인가.

도지사까지 덜컥 미끼를 물었으니, 이제 와서 안 온다고 하면 진짜 큰일이었다.

“그, 제가 책임지고 잡아 오겠습니다.”

“네? 얘기가 된 게 아니에요?”

“얘기가 된 건 아닌데…… 그렇다고 안 된 것도 아닙니다.”

“그게 무슨 소리예요?”

“그런 게 있습니다…….”

현수막을 붙인단 얘기는커녕 오늘 진료도 정확한 시간은 말해 준 적이 없지 않나.

하지만 지들끼리는 얘기가 되었으니 이게 또 아주 거짓말은 아니었다.

하여간 고재현은 그렇게 전화를 끊고 일단 가던 길을 갔다.

즉 병원으로 갔다, 이 말이었다.

가는 길에 보니 현수막을 촘촘하게도 붙여 놨더랬다.

아무리 봐도 구 제주에도 있을 것 같았는데, 그렇게 생각해 보니 이것도 신통한 재주였다.

‘아니…… 그 안대훈이라고 했었나? 대체 정체가 뭐지?’

홍길동도 아니고.

‘손오공인가? 아닌데? 머리 없으면 손오공도 분신술 못 쓰는데?’

무슨 수를 써서 이걸 이렇게…….

사람이 맞나 싶었다.

이제 보니 통합진료센터라는 곳에는 순 괴물들만 모인 것 같기도 했다.

이현종은 원래 괴물이었고, 이수혁은 아들 괴물이고, 안대훈도…….

“하아.”

그렇게 수많은 현수막을 거쳐 병원에 도착한 고재현은 일단 회진부터 돌았다.

어제 본 환자부터 봤는데, 확실히 이현종의 말대로 좋아져 있었다.

다 좋아진 건 아니었지만 어제보다는 나았다.

물만 줬는데 이렇게 되었으니 진짜 조영제 탓이 맞았던 모양이었다.

‘천재는 천재야…… 시발.’

하늘이 원망스러웠다.

그 정도로 똑똑하게 만들어 줄 거면 인성도 조금만 더 다듬어 주실 것이지…….

왜 또라이로 남겨 줘서 멀쩡한 사람들을 이토록 고생시킨단 말인가.

“감사합니다. 저는 진짜 놀랐습니다. 딸애도 걱정했는지 밤새다가 이제 막 잠들었어요.”

“아…… 아닙니다. 그…… 뭐. 네.”

하지만 감사 인사를 올리는 환자를 보고 있자니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하긴…… 환자 잘 보면 장땡이지. 막말로 자기 환자도 아닌데 이렇게까지 봐 주는 사람이 세상천지에 어딨어.’

그래.

명의다, 명의.

고재현은 그렇게 고개를 끄덕이면서 회진을 돌고, 골프장으로 향했다.

‘티켓이 없긴 한데…… 모르는 얼굴도 아닌데 들여보내 주지 않을까?’

그게 제일 확실한 방법일 듯했다.

일이 이렇게까지 커졌는데 직접 데려와야지, 안 그러면 불안해서 살 수가 없었다.

도지사라니.

도지사…….

제주도의 왕 아닌가?

세상이 많이 달라졌다고들 하지만, 막상 만나 보면 고개가 절로 숙여지는 것이 과연 제왕의 위엄이었다.

“네? 안 돼요?”

“당연하죠. 티켓이 없으시잖아요.”

“그건 그런데. 아니, 잠깐만 이럴 게 아니라.”

“이러시건 저러시건 안 된다니까요?”

입구에서 막혔다.

PGA 행사가 보통 큰 행사가 아니다 보니 경비가 삼엄해서 그랬다.

아니, 삼엄하지 않더라도 사실 티켓이 없으면 안 들어가는 게 맞기는 했다.

부우웅.

그때, 차량 하나가 그를 지나쳐 입구에서 멈췄고, 낯익은 인간이 앞에 앉은 게 보였다.

“VIP 티켓입니다.”

“아! 확인했습니다.”

“잠깐!”

이현종이었다.

고재현은 죽기 살기로 달려가서 그를 멈춰 세웠다.

그러자 이현종은 속 편한 얼굴로 그를 돌아보았다.

“오. 웬일? 여기로 출근하나? 팀 닥터, 뭐 그런 건가?”

미친 소리를 하면서였다.

세상에 어떤 의사가 나인브릿지로 출근을 하냐…….

“아니, 아니. 나도 좀 들여보내 주라고요.”

“으응……?”

후배의 말에 이현종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티켓 없어?”

“없으니까 부탁을 하죠.”

“재현아. 티켓이 없으면 못 들어가는 거야. 영화관도 그렇잖아. 넌 왜 그렇게 상식이 없니. 법은 지켜야지.”

“아니, 이 사람이 지금 누가 누구한테…….”

그런 이현종을 보고 있자니 진짜로 죽을 거 같았다.

다른 이유가 아니라 너무 화가 나서.

심장이 마구 뛰는데, 심상치가 않았다.

“어, 어억.”

“응? 얘가 왜 이래. 쇼를 하네, 이제.”

그래서 주저앉았는데, 이현종의 차 뒤로 또 다른 차가 섰다.

아직 대회가 시작하려면 2시간가량 남았는데도 차가 온다 싶어서 포기해야 하나 했는데 문이 열렸다.

“어…… 거기서 뭐 하세요?”

최원준 선수의 차량이었다.

코치가 나왔다.

“그, 그게. 저도 좀 들여보내 주실 수 있나 해서요.”

“아휴, 얘는 체통 없게. 내 얼굴이 다 화끈거리네.”

“서, 선배. 제가 괜히 이러는 게 아니라요.”

“아니긴 뭐가 아니야. 이 표 팔았었는데 돈 아까워서 그때는 안 샀다가 이제 와서 이러는 거 아냐?”

“어, 어억.”

“왜 자꾸 쇼를 해. 그런다고 보내줄 거 같냐. 세상은 법과 원칙대로 굴러가는 법이야.”

코치는 눈앞에서 떠들어대는 나이 지긋한 두 교수를 보다가, 이내 헛웃음을 흘렸다.

그러곤 경비에게 말을 건넸다.

“들여보내 주세요. 저희 일행입니다.”

“아……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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