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2화 아유, 우리 아니었으면 (2)
류마티스 관절염의 양상은 매우 다양하긴 했다.
하지만 대개의 경우 손가락에서 시작하기 마련이었다.
다른 곳에서 시작해서 손가락으로 번졌다?
이건 좀 이상한 일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수혁은 일단 질문을 이어 나갔다.
“그럼 여기까지만 아프고 마셨나요?”
두 눈은 환자의 다리에 가 있었다.
무릎이 부어 있었다.
통증이 없을까?
그럴 것 같진 않았다.
아플 게 분명해 보이는 소견이었다.
사실 무릎처럼 커다란 관절이 그렇게 쉽게 붓진 않는 법이거든.
“아, 아뇨. 이제는 무릎도 아픕니다. 아주, 죽겠어요. 사실 일도 못 나가게 된 지 몇 개월은 되었습니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던 처지는 아니지만…… 이대로면 진짜 다 길거리에 나앉게 생겼어요…….”
과연 환자는 무릎 통증도 호소하고 있었다.
거기에 더해 생계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는 듯했다.
몸으로 일을 해야 하는데 몸이 아프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수혁은 내과다 보니 이런 경우를 많이 보진 못했지만, 정형외과나 마취 통증의학과처럼 근골격계 질환을 보는 의사들은 악순환의 전형적인 예를 그들의 환자에게서 볼 수 있었다.
일을 해서 아픈 건데, 돈 벌려면 일을 해야 하니 치료를 받고 또 그 일을 하고, 그 일을 하니 또 아파서 치료를 받고…….
“발목은 괜찮으십니까?”
“아뇨. 발목도 아픕니다…….”
이 환자의 경우엔 상황이 아주 심각했다.
관절이란 관절은 죄다 부어 있는 듯했다.
그와 동시에 통증도 동반하고 있었고.
“일단 혈액 검사를 좀 해 볼까요?”
수혁은 머릿속으로 류마티스가 아닐 가능성에 점점 무게추를 두면서, 처방을 내렸다.
그의 말에 이현종의 지시로 인해 옆에 와 있던 고재현이 답했다.
“어떤……?”
사실 그도 교수지 않나.
아니, 그도 교수라는 말을 하는 게 어이가 없을 정도로 제법 연차가 쌓인 의사였다.
이현종의 제자가 아니라 후배라 불리는 게 옳은 상황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허나 류마티스 질환 비슷한 건 본 적이 없었다.
게다가 이런 상황도 처음이었다.
어떤 미친놈들이 남의 병원에서 진료 본다고 현수막을 붙여…….
“그냥 기본적인 검사를 해 보죠. 그사이에 몇 가지를 더 물어보겠습니다.”
“아…… 네.”
“헷갈리면 이걸로.”
수혁은 종이쪽지를 건넸다.
제갈공명이나 조조가 남겼다는 쪽지와 비슷한 느낌이었는데, 그걸 받아 들고 있자니 어쩐지 든든한 기분이 들었다.
이거면 뭔가 될 거 같은?
막상 적혀 있는 검사 목록은 딱히 특별할 게 없어 보였음에도 그랬다.
하여간 처방이 나가고, 곧 간호사가 와서 피를 뽑기 시작했다.
수혁은 예고한 것처럼 문진을 이어 나갔다.
“여기 손가락. 이건 자르신 지 반년가량 되셨다고 했죠?”
“네. 한 반년…… 되었습니다.”
“반년이라.”
류마티스 관절염으로 인해 절단술을 해야 하는 경우가…….
‘21세기 들어서 있나?’
[있다면 케이스 리포트 감이죠. 특히 대한민국에서는 극히 드뭅니다. 대한민국은 전 세계 최상위권은 아니더라도 상위권에 속하는 치료를 거의 대부분의 환자가 영유할 수 있는 나라입니다.]
‘그렇지…… 그런데 절단술이라?’
역시 일반적인 상황이 아니었다.
그런 생각을 하며 수혁은 조금 다른 질문을 했다.
“혹시 이거 왜 잘라야 했는지, 이유는 들으셨나요?”
“이유…… 아, 염증이 뼈에 뻗쳤다고.”
“뼈에?”
“네.”
“뼈에 염증이라면.”
뼈…….
골수염이 되었다는 얘기일 텐데.
류마티스 관절염에서 골수염이라……?
‘어쩐지 감염이 원인일 것 같은데.’
[저도 그렇게 판단하는 것이 더 온당해 보입니다.]
‘그렇지? 흐음…… 나는 저 상처가 마음에 좀 걸려.’
[손등의 상처 말입니까? 햇빛 때문에 그을려서 헷갈리긴 하지만…… 대략 2, 3년 된 상처로 보이긴 합니다.]
‘그래?’
[사실 그냥 해 본 소리입니다.]
‘미친놈이.’
[궁금하면 물어봐야죠. 환자가 눈앞에 있는데 무슨 문제입니까?]
수혁은 바루다의 말에 어이가 없어서 밖을 내다보고 있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
“환자분. 이거…… 언제 다치신 거예요?”
“아, 이거요…… 이건 한 2년 반……? 어이없게 묶어 둔 밧줄이 갑자기 풀려 가지고. 그거 배에 맞았으면 저 죽었을 겁니다. 간혹 있거든요, 그런 일이.”
“죽어요? 밧줄에 맞아서요?”
“아…… 잘 모르시겠구나. 이게 큰 배를 묶어 두는 밧줄은 말이 밧줄이지, 거의 뭐 쇳덩이입니다.”
“아하.”
쇳덩이라는 부연 설명을 들었다고 해서 뭐가 막 눈앞에 그려지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2년 반 전에 다쳤다는 걸 알아내지 않았나.
‘2년 반…… 만약 감염이라면 증상이 나타날 때까지, 인지할 만한 증상이 나타날 때까지 적어도 6개월은 걸렸다는 건데…….’
[느리군요. 하지만 바다에 있던 균이 감염을 일으켰다고 생각한다면…….]
‘일단 계절이 뭐였을까?’
[상처를 보아하니 여름인 것 같군요.]
‘너 그냥 해 보는 소리지?’
[네, 맞아요. 환자한테 물어보면 될 것을 왜 자꾸 나한테 묻습니까?]
‘이 새끼, 진짜.’
수혁은 휴 하다가 다시 환자에게 물었다.
“그때 혹시 계절이 어땠나요?”
“더웠습니다. 여름이었던 거 같아요.”
“여름.”
여름의 바다.
물놀이 하기 가장 좋을 시기이긴 하지만, 역설적으로 감염도 제일 많이 일어나는 계절이기도 했다,
특히 이수혁처럼 명의병 말기에 속하는 이에게는 물놀이보다는 그냥 감염만 생각나게 만드는 계절이었다.
‘여름이면 제주 바다는 수온이 대강 30도 이상으로 올라가지. 가능한 감염 질환이 꽤 있지.’
[제일 흔하고 무서운 건 비브리오입니다만. 그건 패혈증으로 발전하는 경우가 많지 이런 식의 발병은 적습니다.]
‘증상 발현까지 시간이 걸렸다는 건 그만큼 성장이 느리다는 거야. 그것만 봐도 비브리오는 맞질 않지.’
[그렇습니다. 그럼…… 흠. 마이코플라즈마(세균의 한 종류)가 더 합당하군요.]
‘마이코플라즈마라…… 확실히. 가능성이 있지.’
마이코플라즈마에서 제일 유명한 균은 아무래도 결핵일 터였다.
거의 무슨 인류의 역사와 함께했다던 병 아니던가.
“교수님, 결과 떴습니다.”
그렇게 추론을 이어 나가고 있으려니 간단한 검사들이 나왔는지, 고재현이 다가왔다.
무슨 노티 하는 일 년 차라도 된 것처럼 굽신거리고 있었다.
“여기요.”
“음. 볼까요?”
확인해 보니 백혈구 7,000/mm³, 혈색소 12.0g/dL, 혈소판 650,000/mm³에 급성 염증 지표라 할 수 있는 CRP는 무려 120이었다.
AST, ALT, 뇨질소, 크레아티닌, 요산은 정상 범위 안에 있었다.
“이건 전에 있던 병원에서 한 검사 결과고요.”
“흐음…… 류마티스 인자와 항CCP(Cyclic Citrullinated Peptide, 류마티스 관절염 확인 검사) 항체는 음성이네요.”
“네. 근데 류마티스 질환에서 무조건 양성으로 나오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그건 그렇죠.”
류마티스 질환들을 사람들이 괜히 괴질이라고 하는 게 아니긴 했다.
양상과 검사 소견들이 워낙에 다양하게 나타나서 그랬다.
하지만…….
‘류마티스가 아니라 다른 질환이라서 음성이 나왔다고 생각하는 게 더 자연스럽긴 하지?’
[이미 마음을 정했군.]
‘네 생각은 달라?’
[아뇨. 저도 그쪽일 가능성이 훨씬 커 보이긴 합니다. 확실히…… 마이코플라즈마일 가능성이 커요.]
마이코플라즈마.
결핵균이 아닌 놈들은 그냥 퉁쳐서 비결핵성 마이코플라즈마로 부르는 편이었다.
워낙 유명한 스타 플레이어가 하나 있다 보니 다들 결핵과 비슷한 특성을 보였기에, 결핵이 아닌 놈들은 그렇게 불리게 된 셈이었다.
하여간 특징은 대개 비슷했다.
일단 느렸다.
자라는 것도, 감염이 진행되는 것도 다 느렸다.
하지만 일단 감염이 시작된 후로는 치료가 쉽지 않았다.
‘바다에서 자란다…… 고온의 바다에서 자란다…….’
[마이코박테리움 마리눔(Mycobacterium Marinum). 가능성이 있겠습니다.]
‘마이코박테리움 마리눔(Mycobacterium Marinum)? 아…… 나 들어 본 것 같아. 아니, 공부도 했지.’
[그렇죠? 맞아떨어지는 부분이 많습니다.]
수혁은 바루다의 닦달에 의해 공부해야만 했던 사례를 떠올렸다.
이런 사례는 사실 보지 못했다.
하지만 감염 경로 및 경과를 알고 있다 보니, 이 환자에게 대입하는 게 그리 어렵진 않았다.
“지금까지 치료에선 면역 억제제를 쓰셨다고 했죠?”
“네? 무슨 약인지는 모르겠는데…… 하여간 뭘 억제한다고는 했습니다.”
감염병에서 면역을 억제했다.
그렇게 되면 아무리 균이 천천히 자라는 놈들이라고 해도 급격히 자라게 될 수밖에 없었다.
즉 치료가 병을 악화시켰다는 얘기였다.
왜 균이 벌써 골수염을 일으키고, 무릎에 이어 발목까지 갔을까?
면역 억제제를 썼기에 그렇게 되었다는 거라고 봐도 좋았다.
“그렇군요. 으음.”
그럼에도 수혁은 말을 아끼기로 했다.
[불가항력입니다. 저나 수혁이 아닌 이상…… 이건 설령 태화에서 초진을 봤다고 해도 진단이 늦어졌을 겁니다. 공교롭게도 면역 억제제를 쓴 탓에 더더욱 감염이 류마티스 감염과 비슷하게 되어 버렸어요.]
‘내가 궁금한 건 골수염으로 인해 손가락 절단술을 했을 때, 거기에 대한 조직검사를 했는지의 여부야. 만약 했는데 뭐가 안 나왔다면…… 그거야 뭐 정말 불가항력이겠지만. 안 했다면 적어도 6개월 전에 진단할 수 있었던 기회를 놓치게 된 셈이니까.’
[그건…… 확인해 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그래. 근데 지금은 어렵겠지.’
수혁은 다른 말을 꺼냈다.
“환자분. 지금부터 제가 하는 말을 잘 들어 보세요.”
“아, 네.”
“이 손등에 생긴 상처. 바다에서 다친 거죠?”
“네? 아무래도 그렇죠.”
“바닷물이 들어갔겠죠?”
“네, 그렇습니다.”
“그렇군요.”
그러는 사이, 눈치 빠른 이현종이 안대훈과 김성진을 데리고 왔다.
그 외에 다른 제주대학교 병원 의료진들도 일부 데리고 왔다.
‘아들…… 마음껏 날뛰어라.’
잘난 척할 기회를 주기 위함이었다.
수혁은 그 광경을 보며 기분이 한창 좋아져 속으로 후후 웃고는 말했다.
“바닷물에는 많은 균이 삽니다. 대개는 인체에 무해하거나 감염을 시키지 못하죠. 다만 여름날의 바다는 뜨거워져 있기 때문에 감염이 더 잘 일어나게 됩니다. 그렇다 해도 정상 면역력을 지니고 있다면…… 크게 문제는 안 되는 편입니다. 혹 술을 좋아하십니까?”
“엄청 마셨는데, 이제는 끊었습니다.”
편견일 수도 있지만, 뱃사람들이 술을 좋아한다는 건 일종의 통계였다.
사람을 대할 땐 그러한 마음가짐을 버려야 하지만 환자를 대할 땐 일단 염두에 두는 것이 좋았다.
“네, 그렇군요. 면역이 좀 억제가 될 수 있겠습니다. 손등에서 시작된 감염은 주변부 궤양을 일으키다가…… 이내 림프절을 타고 감염을 일으키게 됩니다. 이걸 스포로트리쿰 전파라고 하고, 심부에 감염이 발생하면 힘줄윤활막염, 감염성 관절염의 발생 및 드물게 골수염까지 일으키게 됩니다. 환자분의 경과와 딱 맞아떨어지죠. 약을 바꾸겠습니다. 클라리트로마이신(Clarithromycine, 세균 감염을 치료하기 위한 항생물질)을 단독으로500mg, 하루 2번 투약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