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3화 아유, 우리 아니었으면 (3)
이게 대체 무슨 소리래……?
수혁을 둘러싸고 있던 이들 중 이현종, 안대훈, 김성진, 즉 통합진료센터 사람들을 제외한 모두는 어리둥절한 표정이 되었다.
특히 이 새끼들이 또 뭔가 한 건 올리려나 하는 생각에…….
불안한 얼굴로 주변을 얼쩡거리고 있던 원장과 응급의학과 교수, 그리고 주말에 불려 나오게 된 류마티스내과 교수가 그러했다.
“지금 세균 이름 말한 거 아닌가……?”
원장은 이비인후과 전문의였다.
사실 마이너 과 교수가 원장까지 다는 경우는 많지 않았는데, 유난한 정치력과 시기적절했던 운으로 말미암아 출세할 수 있던 몸이었다.
아무튼, 그의 물음에 응급의학과 교수와 류마티스내과 교수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마이크로 박테리움…… 종류를 얘기한 것 같습니다.”
“네, 근데 류마티스 질환의 경과를 밟고 있거든요……? 물론 저희 병원에서 보게 된 게 오래되지 않기는 했는데…….”
류마티스내과 교수는 대강 답을 하면서 동시에, 환자 얼굴을 힐끔거렸다.
‘낯이 익은가……?’ 수준의 친밀도였다.
아마 외래에서 보긴 한 것 같은데, 그렇다 해도 여러 번 본 건 결코 아니었을 터였다.
기껏해야 한두 번? 아니, 어쩌면 3번?
하여간…….
‘마이코박테리움 마리눔(Mycobacterium marinum)……?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건데……?’
류마티스 질환 중에는 괴질이라 불리는 것들이 꽤 많았다.
사실 류마티스 관절염이라고 통칭해서 부르고 있지만, 각 질환마다 양상이 꽤 다르기도 했고, 간혹 아예 다른 종류의 자가면역질환일 수도 있었다.
실제로 자가면역질환이 의심은 되는데 당최 뭔지 모르겠는 질환을 지닌 환자 역시, 류마티스내과 교수는 꽤나 많이 봐 왔던 참이었다.
“근데 듣다 보니 류마티스보다는 감염처럼 보이는데……?”
그가 당황하건 말건, 그런 건 원장의 고려 사항은 아니었다.
뭐가 되었건 간에 환자를 봤으면 고쳤어야지…….
아니면 진단을 하든가.
이비인후과 쪽은 외래만 가 봐도 알겠지만, 대개 보고 진단하는 질환이 많다 보니 내과 쪽에서 진단을 못 내려서 낑낑대는 것이 원래도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심지어 몇 년간 삽질만 하다가 끝나는 경우도 있다는 걸 들었을 땐, 어이가 없는 것을 넘어 얘들이 우리랑 같은 의사가 맞나 싶었다.
“그…… 그게, 얘기는 원래 그럴싸하게 할 수 있죠.”
물론 내과 의사 입장에서는 퍽 억울한 일이었다.
내과라는 건 말 그대로 몸의 안쪽을 들여다봐야 하는 과 아니던가.
근데 뭘 바로 진단을 하나.
비록 예전보다는 훨씬 안쪽을 유추해 볼 수 있는 도구가 많이 늘었다곤 하나, 그것도 결국 그림자를 보는 것뿐이었다.
뒤집어 까 볼 수는 없었다.
게다가 다뤄야 하는 범위도 거의 전신에 가깝다 보니, 기껏해야 귀·코·목이나 보는 이비인후과 의사의 이러한 시선으론 가당치도 않다고 여겼다
‘얘기를 한다고 해서, 이렇게까지 그럴싸하게 한다고……?’
지금은 가당치 않다기보다는 좀…….
무서웠다.
뭔가 실력이 까발려질까 봐?
‘졸라 그럴싸하긴 했지……?’
류마티스내과 교수만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건 아니었다.
누구라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
원장도 그랬다.
“들어 봐. 원인부터 기전, 그리고 결과까지 다 들어맞잖아. 내가 비록 저 질환명을 처음 들어 봤고, 류마티스 관절염에 대한 지식도 모자라긴 한데, 그래도 말이야. 이거…… 이거 좀…….”
“음. 일단 제가 허점을 찾아보겠습니다.”
“허점? 무슨 게임이라도 해? 환자 보는 거잖아, 지금. 이미 진단에 치료까지 처방했는데 허점을 왜 찾아.”
“만약 아니면 환자…… 큰일 납니다. 아시잖아요. 아, 이비인후과라서 모르나? 류마티스 질환 이거 만만히 볼 게 아니에요.”
“거 왜 나를 공격하고 그래. 그렇게 자신 있으면 지금이라도 나가 보든가.”
셋은 복도 귀퉁이에 서서 종알거리고 있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따지고 보면 이 셋이야말로 제주대학교 병원 교수고, 당당히 있어야 마땅한 상황인데 숨어 있었으니.
원래 같았으면 일단 이런 일부터 제대로 짚고 넘어가야 했을 테지만 지금은 그럴 정신도 없었다.
“엣, 엣헴.”
해서 류마티스 내과 교수는 실로 어색한 헛기침과 함께 앞으로 나섰다.
뒤에서 그걸 지켜보던 원장은 이마를 짚었다.
‘어휴, 저 병신…….’
너무 뒤에 있다가 나서는 게 티 나지 않나.
이수혁이라는 사람은 겁나지 않았지만, 이현종은 예외였다.
그의 위명은 과를 무론하고 자자했기에 그러했다.
괜히 월드스타라는 별명이 붙었겠나.
“응? 누구세요?”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수혁은 딱히 그따위 것을 염두에 두는 사람이 아니었다.
심지어 정신은 이미 이 환자는 해결했으니 다음 환자를 찾는 데 온전히 팔려 있었다.
거의 몇백 명이 몰려온 터라 다른 환자를 찾는 게 그리 어려울 것 같지도 않아서 내심 좋아하고 있던 참이기도 했다.
“아, 저 이 병원 류마티스내과 교수 정준이라고 합니다. 제가 외래에서 두 번가량 본 환자 같은데…… 무슨 근거로 세균 감염이라고 하시는 건지…….”
그 평소와 다름없는 태도에 당황한 것은 도리어 정준이었다.
하지만 그는 곧 환자와 뒤통수가 뜨뜻해질 정도로 열심히 이쪽을 바라보고 있을 원장을 떠올리며 질문을 던졌다.
수혁도 당황했다.
‘방금 다 말하지 않았나?’
[멀리 있어서 못 들은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 것치고는 세균 감염이라는 건 알잖아.’
[응…… 그렇네요? 뭐지?]
하지만 침착을 가장하는 데 있어서는 원래 천재지 않나.
그는 고개를 한번 털어 내는 것으로 치밀어 오르던 감정을 날려 버리곤 아까 했던 설명을 이어 나갔다.
물론 상대가 환자가 아니라 의사, 그것도 환자를 봤다고 하는 의사인 만큼 훨씬 상세한 설명이 곁들어졌다.
아니, 듣기에 따라서는 설명이 아니라 살짝 잘난 척처럼 느껴질 수도 있었다.
실제로도 그렇긴 했다.
“자, 들어 보시죠. 마이코박테리움 마리눔. 이게 생소할 수도 있지만, 따지고 보면 담수나 해수에 많이 분포하는 녀석입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이로 인한 궤양 등의 케이스는 꽤 보고가 되었죠. 알고 계실겁니다. 그렇죠?”
일부러 모를 만한 얘기를 꺼내 놓은 주제에 ‘아시죠?’ 하는 거.
안 좋은 영향은 서로 빠르게 주고받는 이현종, 이수혁 부자의 특기였다.
서로가 서로를 점점 더 강화시키고 있었는데, 이제 와서는 누가 누구에게 배웠는지 얘기하는 것도 딱히 의미가 없었다.
“어…….”
“어라고 하셨네. 역시 아시네요. 이게 궤양으로 남게 되는 것은…… 30도 내외의 온도에서 주로 생존하기 때문입니다. 그보다 온도가 너무 높아지게 되면 생존이 어려워져요. 즉 심부 감염을 일으키는 경우는 상대적으로 드물다는 얘기죠.”
“그럼…… 지금 이 환자처럼 관절염을 일으키는 건…….”
“끝까지 들어 보시죠. 의학이 수학은 아니지 않습니까? 절대라는 게 존재하지 않는 학문입니다.”
“그건…… 그렇죠.”
수혁은 예의 그 당당하면서도 적당히 낮은 톤의 목소리로, 한 치의 흔들림도 없는 눈빛을 쏘고 있었다.
이런 눈빛과 마주하면 뭘 알고 있던 사람도 순간 당황에서 할 말을 잊기 마련이었는데…….
지금처럼 잘 모르는 상황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수혁은 어버버하고 있는 류마티스내과 교수와 뒤에서 왜인지 모르게 탄식하고 있는 두 의사를 보며 추론 아닌 추론을 이어 나갔다.
[아까 왔던 응급실 의사가 있군요. 옆에 있는 건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쪽이 원장 같은데요?]
‘아…… 뭔가 자기네 병원 도장 깨는 걸로 착각하는 모양인데……?’
[아,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수 있죠. 사실 좀 맞기도 하고요.]
‘원해서 그러는 게 아닌데…… 너무 잘난 것도 탈이구만.’
[…….]
실로 드물게 바루다를 침묵시켜 버린 수혁은 그대로 말을 이었다.
“일단…… 이 균은 상처를 통해 감염되는 만큼 손이나 발에서 호발합니다. 우리나라 사례를 보면 손을 통한 감염이 압도적으로 많아요. 대개의 경우에는 그렇게 끝납니다. 하지만 면역이 떨어져 있거나 숙주의 상태가 좋지 못한 경우…… 그러니까 당뇨 등의 기저질환이 있거나 알코올 섭취 등이 과다한 경우라면 얼마든지 힘줄염, 관절염을 지나 골수염까지도 진행할 수 있는 질환입니다.”
“우……우리나라 사례가 있습니까? 이 환자분은 손만이 아니라 발목까지 번졌어요.”
“여러 관절을 침범하는 경우가…… 글쎄요. 제가 알기론 문헌으로 보고된 경우는 아직 없습니다.”
“그러니까요!”
“하지만 우리나라보다 상대적으로 수온이 따뜻한 일본에서는 꽤 많이 보고된 바 있습니다.”
“거긴 일본이고.”
류마티스내과 교수는 억하심정이 생겨 거칠게 반응하고 있었다.
뒤에 있던 원장과 응급실 교수는 이미 감을 잡았는지 이마를 짚었다가 이제는 숫제 얼굴을 쓸어내리고 있었지만, 눈앞의 교수는 그들과 별개로 그랬다.
비난 받을 만한 일은 아니었다.
원래 전문가 입장에선 모르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더 어려운 일이지 않겠나.
그걸 아무렇지도 않게 해내고, 거기서 오히려 배워서 한 걸음 나아가는 이들이 대단한 것이었다.
“제주도 평균 수온이 얼마나 올랐는지 아십니까?”
“어…….”
그리고 수혁은 그들보다 더 대단한 사람이었다.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이가 있다고 해도, 입을 강제로 벌려 지식을 주입할 수 있었다.
다소 폭력적인 강의가 가능하다는 건데, 이게 다 바루다와 수혁의 어마어마한 노력 덕분이라 할 수 있었다.
“이제 10년 전 일본 해역 평균 온도와 제주도 수역 온도는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 높다고도 볼 수 있죠. 그 말은 곧 앞으로 점점 이러한 감염 질환이 창궐할 거란 얘기입니다.”
제주도의 구상나무 숲이 황폐화되어 가고 있다는 건, 기후 변화에 딱히 관심이 없는 이라고 해도 알고 있을 터였다.
그만큼 지구 온난화는 이제 멀리 있는 얘기가 아니었다.
물론 수혁이 지구 온난화 자체에 관심이 많은 것은 아니었다.
그는 의사고, 그에 대해서는 개인의 실천 외에 달리 뭘 할 수 있는 게 없으니까.
다만 그로 인한 결과 중 의학적인 것에 대해서라면, 비상한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수혁아, 어쩌면 감염내과가 다시 떡상할 수도 있겠다. 동남아처럼 될 수도 있겠어.
신현태의 말 때문이기도 했다.
그는 진짜로 그렇게 믿고 있었다.
동남아 지역, 그러니까 아열대 지방의 풍토병은 점점 한국에도 생길 수 있는 일이라고.
실제로 최근 한국 여름 날씨 보면 좀 심상치 않지 않던가.
소나기라기보단 스콜이라고 불러야 할 것 같은 현상이 종종 벌어지기 시작한 것도 최근 일이 아니었다.
“당연히 같은 감염이라고 해도…… 그 양상은 더욱 다양해지겠죠. 더군다나 이 환자는 로컬 의원에서 스테로이드를 처방받았습니다. 2차 병원에서 면역 억제제도 처방받았고…… 들어 보니 제주대학교 병원에서도 같은 처방을 반복하고 있었더군요.”
“허어…… 이거…….”
“어떤가요? 아직도 류마티스 같습니까?”
“아…… 아뇨.”
“그래요. 넘어가죠. 아직 환자가 많아서요. 배우고 싶은 생각이 있으면 옆에 계셔도 좋습니다.”
“네에?”
“아, 혹시 기분 나쁘셨나요? 그럼 죄송합니다. 고재현 교수님은 옆에 계속 있으시길래.”
고재현은 그런 수혁을 보면서 고개를 흔들었다.
‘배우고 있는 건 사실인데…… 내가 배우려고 여기 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