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954화 (954/1,303)

954화 신현태 (1)

“와…… 진짜…….”

신현태는 주말임에도 불구하고 병원이었다.

뭐 대학 병원에서 일하는 의사이니만큼, 사실 주말에 나오는 것이 그렇게까지 우울하거나 한 일은 아니긴 했다.

하지만 지금은 늦은 저녁…….

아니, 밤이었다.

“와…… 내가 진짜…….”

신현태는 자기 방도 아닌 통합진료센터 당직실에서 등을 기대고 있었다.

이현종이 애들까지 다 데리고 주말에 제주도로 내려간 탓이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자기 이름을 남기고 가 버렸다.

망할 놈의 새끼들…….

‘수혁이한테 전화 안 왔으면 집어 던졌다, 진짜.’

그나마 마음에 위안이 되어 주는 것은 수혁의 전화였다.

삼촌 덕에 여기 내려와 있는데 골프 경기를 보니까 참 재미있다는 내용이었다.

‘에이…… 그 자식, 그거.’

골프 경기가 재밌으면 뭐 하나.

칠 수가 없는데.

역시 정형외과 김선웅 교수를 조져 놔야겠다는 생각을 이어 나가고 있다 보니, 전화가 울렸다.

“네, 감염내과 신현태입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 보직을 말하기도 했다.

기조실장이니, 진료 부원장이니, 연구 부원장이니 하는 직함을.

허나 신현태는 적어도 병원에 있는 사람이라면 자기 정체성이 직함이 되어선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심지어 지금은 당직이지 않나?

상대는 원장을 기대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감염내과를 기대하고 있을 터였다.

“네, 원장님…… 그것이, 그.”

“환자 왔어요?”

“네.”

“감염내과 환자 같아요?”

아니, 사실은 통합진료센터 사람을 기대하고 있었다.

응급실도 당연히 사람들이 자리를 비웠다는 것 정도는 아주 잘 알고 있지만…….

어찌 되었건 전화가 연결될 거라는 믿음은 있었다.

물론 여느 병원 일이 그러하듯 모든 콜을 싹 다 돌리는 일은 없었다.

한 번은 걸러 줘야 상도에 맞는 일이라서 그랬다.

“아…… 아뇨. 두통을 주소로 온 환자인데, 지금 원인이 불명확해서요. 환자분과 의뢰한 병원 모두 통합진료센터 진료를 원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아…… 두통.”

두통이라.

신경과가 보는 대표적인 증상이지.

물론 감염이 있을 때도 두통이 발생할 수는 있는데…….

그럴 수 있는데…….

“하아.”

신현태는 자기도 모르게 한숨을 쉬었다.

그러자 도둑이 제 발 저린다고, 응급실 의사가 부리나케 말을 이었다.

“저, 교수님. 그럼 외래로 오라고 할까요? 사실 지금 당장 막 급해 보이진 않습니다.”

“아니, 아니. 그래도…… 보긴 봐야지. 원하고 계신다며.”

합리적인 제안이었다.

급한 일이 아니라면 굳이 응급실에서 볼 이유가 없지 않겠나.

기실 주말 저녁에 이루어지는 진료보다는 당연히 병원의 모든 인프라가 딱딱 맞아 돌아가는 평일 정규 시간의 진료가 훨씬 효율적일 터였다.

하지만…….

‘내가 그래도 원장이고, 또 수혁이가 맡긴 일인데…….’

혹시 고객의 목소리라도 날아들면 어쩐단 말인가.

그런 꼴을 두고 볼 수는 없는 일이었다.

해서 신현태는 이미 자리에서 일어나 있었다.

“어…… 그럼 준비해 두겠습니다.”

“네에.”

물론 막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는 행동은 아니었기 때문에, 그리 즐겁지만은 못했다.

그렇게 터덜터덜 걸어서 도착한 응급실은 과연 불야성이 따로 없었다.

‘번창하고 있구만…….’

도대체 세상엔 왜 이렇게 아픈 사람이 많은 걸까.

신현태는 한창 응급실 당직을 도맡아 했던 시절을 떠올렸다.

그때와 비교하면 진짜 지금은 시절이 좋아진 셈이었다.

대한민국 최고 병원의 원장이니 당연한 일이긴 한데, 별개로 당직 서던 시절이 너무 힘들어서 그렇게 느껴지는 것도 있었다.

당시엔 앰뷸런스 사이렌 소리만 들으면 심장이 두근거리면서 기분이 급격히 나빠지곤 했으니, 그럴 만도 하지 않겠나.

‘그래, 우리 의사들. 개미처럼 일해서 다 치료해 줘라.’

처지가 달라지면 시야도 달라진다고 했던가.

누군지는 몰라도 세상에 다시 없을 현자 같았다.

세상에 응급실에 내려와서도 이따위 생각이나 들 줄이야.

‘이제 뼛속까지 원장 마인드로 더렵혀졌구나’ 싶었던 순간, 전화를 걸었던 장본인으로 보이는 응급실 의사가 다가왔다.

“원장님. 저쪽입니다.”

“어, 그래요. 근데 진료를 하긴 한 거예요?”

“아…… 아뇨. 그냥 두통으로 통합진료센터 보고 싶다고 무작정 말씀하셔서요. 버발 세데이션만 하고 있었습니다.

버발 세데이션(Verbal sedation).

뭔가 있어 보이는 말이지만, 엄밀히 말하면 말로 대강 떼우고 있었다는 말이었다.

보아하니 아직 접수조차 제대로 되지 않은 모양이었다.

“이대로 접수 취소하고 보내려고?”

“아…… 사실 그러려고 생각 중이긴 했습니다.”

“두통 정도가 뭐 아주 심한 건 아닌가 보네?”

“네. 게다가 2차 병원에서 이미 응급 관련한 질환은 배제했습니다.”

“그럼 거기서도 사실…….”

“네, 우리 외래로 던지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환자분이 좀 과하게 불안해하는 느낌이긴 합니다.”

신현태는 상황을 완전히 파악했다.

접수 취소를 고려할 만큼 별거 아닌 환자를 말로 설득하기 위해 내려왔다는 얘기 아닌가.

그러니까 보통은 레지던트들이 하는 일인데, 자신이 하게 되었다는 뜻인데…….

‘이현종…… 돌아오면 죽었다. 나도 최원준 선수 팬인데 자기만 갔어? 미친놈이야?’

이현종에 대한 화가 막 치밀어 올랐다.

수혁이한테도 솔직히 약간 섭섭한 마음이 있었지만, 명색이 삼촌인데 조카한테 화를 낼 수는 없잖아?

정말이지 지금만 같으면 형이고 나발이고 죽빵도 날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쪽입니다.”

“아이고, 환자분. 안녕하세요. 태화의료원 원장 신현태하고 합니다.”

물론 신현태는 프로 원장이었다.

환자를 눈앞에 두게 된 즉시, 함박웃음을 지으며 다가갔다.

“아…… .네. 원장님이 왜…….”

“저도 통합진료의학회 회원입니다, 하하.”

보통은 원장이라고 하면 원하던 사람이 안 왔다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데.

‘만만한 사람 아니로구만.’

신현태는 여전히 미간에 주름이 잡혀 있는 환자를 보며 깨달았다.

쉬운 사람은 아니라는 걸.

당연하게도 그것만 깨닫게 된 것은 아니었다.

신현태는 제법 뛰어난 의사였고, 환자를 마주하자마자 뭔가 이상한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두통만 있는 건 아닌 거 같군그래.’

괜히 통합진료센터를 찾는 게 아니라는 얘기였다.

환자의 얼굴은 병색이 완연해 보였다.

원래 같았으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단 외래를 잡기 위해 달렸을 터였다.

그게 아니면 신경과를 콜했을 테고.

하지만 명의병은 전염력을 가진 병이었다.

그가 수혁, 이현종과 같이 어울린 것이 이미 하루 이틀 된 일은 아니지 않나.

옮아도 아주 중증으로 옮아 버린 지 오래였다.

“아…… 회원이요. 그럼……?”

“네네. 다 제 동료들입니다, 같이 일하고 있어요.”

하여간 신현태는 쎄한 느낌이 들자마자 임기응변으로 학회 회원을 시전했다.

의사라면 이 말이 얼마나 의미가 없는 일인지 바로 알아들었겠지만, 환자는 의사가 아니다 보니 그냥 납득했다.

“아무튼…… 머리가 아프시다고요?”

“네…… 머리가 너무…….”

“그렇군요. 좀 볼까요?”

신현태의 말에 빨리 환자 보내고 다른 환자를 보러 갈 생각에만 빠져 있던 응급실 의사가 신현태를 돌아보았다.

‘봐요? 본다고요?’

그리고 신현태는 그런 의사를 향해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느낌이 왔다.

이 환자…….

외래로 돌려서는 안 될 것 같았다.

수십 년을 대학 병원 의사로 살아온 신현태의 촉, 그리고 이현종의 친우로서 살아온 촉이 말해 주고 있었다.

모르겠어?

그래도 괜찮았다.

‘나한테는 두 괴물의 직통 번호가 있단 말이지.’

모르면 물어보면 되지.

알면?

알면 개꿀이었다.

모처럼, 정말이지 모처럼 둘에게 잘난 척을 할 수 있을 테니까.

무엇보다 이현종, 그 NEJM무새에게 한 방 먹일 수 있다면…….

“접수하고 오겠습니다.”

하여간 응급실 의사는 곧 원장의 지엄한 뜻을 받아들곤, 접수대로 달렸다.

그렇게 정식 진료가 시작되었다.

‘형…… 아니, 이현종 그놈이랑 수혁이가 어떻게 했더라.’

신현태는 명의병 말기에 해당하는 둘을 떠올리면서 병의 진행 정도를 확인하기 위해, 머리를 가속화시켰다.

“환자분, 머리는 언제부터 아프셨어요?”

“머리는…… 어제부터 아팠습니다.”

“어제…… 음. 열이…… 들어올 때 재신 게 37.2도네요?”

“아, 네.”

37.2도.

엄밀히 말하면 이건 열이 아니었다.

미열이 있다고 표현하기도 하는데, 의학적인 정의만 보면 열의 범주 안에도 들어가지 못했다.

그러니까 무시해도 될까?

그건 아니었다.

특히 대한민국에서는 그러면 안 되었다.

여긴 의료 접근성이 어마어마하게 높은 곳이고, 상대적으로 약제 사용 빈도도 꽤 높은 곳에 해당하거든.

“혹시 머리 아픈 것 때문에 약을 드셨나요?”

“네? 아, 네. 타이레놀이요.”

“마지막으로 드신 건 언제죠?”

“1시간 반……? 2시간? 잘 모르겠어요.”

“그 시각이면 다른 병원에 계실 때인데, 거기서도 인지하고 있었습니까?”

“아, 아뇨. 그냥 뭐…… 타이레놀이잖아요.”

“그렇군요. 두 알 드신 거예요?”

“네. 용법에 맞게.”

신현태는 환자를, 그러니까 이제 접수가 되어 49세 여자라는 표가 붙은 환자를 바라보았다.

몸무게도 그리 많이 나가 보이진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타이레놀 두 알을 먹었다면…….

확실히 열이 내렸을 터였다.

그 결과로 나타난 온도가 37.2도라면 그전에는 대략 38도 이상이었을 가능성이 아주 컸다.

“그렇군…… 흐음.”

이렇게 되면 얘기가 완전히 달라지게 된 셈이었다.

신경과가 아니라 감염내과 질환이 되었다는 얘기였다.

‘두통은 몰라도, 감염은 늘 감염된 시점이 있는 법이지…….’

감염이라는 용어 자체가 내 몸이 아닌 다른 무언가에 의해 침입을 당했다는 뜻 아닌가.

그 말은 곧 병원균이 침입한 시점이 있다는 얘기였다.

물론 그것이 늘 증상으로 나타나는 건 아니었다.

병원균에 따라 잠복기라는 게 있을 수 있었고, 당연하게도 그 기간 또한 천차만별이었다.

“머리 아프기 전에…… 열감이 있지는 않았습니까?”

어느새 신현태의 얼굴은 누군가를 흉내 내는 것을 넘어, 감염내과 전문의 본연의 얼굴로 돌아와 있었다.

충분하다 못 해 어마어마한 경험을 쌓은 이가 신현태이지 않은가.

자연스레 권위가 실렸다.

“아…… 그러고 보니. 약간?”

“얼마 동안 그랬죠?”

“한…… 1주……? 유독 힘들더라고요. 제가 원래 체력이 좋거든요.”

“체력이 좋다…… 운동을 좋아하시나 봅니다.”

“네, 등산도 가고, 골프도 치고. 제가 야외에서 걷는 걸 좋아해서요.”

“걷는 걸 좋아하시는 군요, 좋은 일입니다.”

신현태는 그리 길지 않은 문답을 통해 이런저런 정보를 습득하고 있었다.

환자는 의료진이 아니다 보니 아주 체계적인 정보를 얻어 내고 있는 건 아니었다.

그래도 괜찮았다.

아직 시간은 많으니까.

다행히 환자가 당장 어떻게 될 것 같지는 않았고.

무엇보다, 감염 질환이지 않나?

‘내가 아직 감염 질환은…… 수혁이한테 그렇게 밀리진 않을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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