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5화 신현태 (2)
“진찰도 해 보죠.”
“네…….”
신현태는 자신감을 다지면서 동시에, 환자에게 다가갔다.
그리곤 얼굴부터 시작해 면밀히 살피기 시작했다.
열 자체는 내렸지만 통증 때문인지 아니면 질환 때문이지, 혹은 그저 환자의 특성인지 모르겠지만 약간 얼굴에 붉은 기가 감돌고 있었다.
그 외에는 딱히 얼굴에서 특이점을 찾기 어려웠다.
“아- 해 보시겠습니까?”
“아.”
다음은 목이었다.
여긴 중요했다.
감염병이란 누누이 말했듯 어디선가 균이 침범해 오면서 발생하는 것이기에 그랬다.
그러한 시각에서 보면 역시 주된 감염원은 목 아니면 코였다.
피부는 우리 몸의 일차적인 방어선이지 않나.
상처가 나지 않는 이상에는 균이 뚫고 들어오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음…… 잇몸이……?’
때문에 주도면밀하게 살피던 중 신현태는 환자의 우측 송곳니 주변의 잇몸이 부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주변으로는 치과 치료를 받은 흔적도 있었다.
“혹시 치과 치료를 받으셨나요?”
“아…… 네.”
“언제 마지막으로 받았죠?”
“음…… 얼마 안 되었습니다. 한 3일 전?”
“3일이라…….”
기운이 없기 시작한 것이 1주라 했으니, 만약 그것이 증상 발현이라고 치면 치과 치료는 범인에서 제외해야만 했다.
다만 그것이 유일한 치료였는지는 확인이 필요했다.
전에도 치료를 받았다면, 그때는 얘기가 좀 달라질 테니까.
“그전에는요?”
“아…… 주기적으로 치료받아요. 제가 잇몸이 자주 부어서…… 근데 이번에는 꽤 오래가네요.”
“그럼…… 1주 전쯤에도 치료를 받으셨나요?”
“네? 아, 네. 한 열흘? 그때쯤이요.”
“그렇군요.”
열흘이라.
충분히 범인이 될 수 있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단정 짓기는 이르기도 했다.
‘환자는 당뇨도 없고…… 그 외에 달리 기저질환도 없어.’
당뇨가 있는 경우라면, 잇몸의 균이 혈액으로 섞여 들어가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가 생각보다 흔했다.
허나…….
면역이 정상이라면 대개는 괜찮았다.
더군다나 그렇게까지 심각한 붓기도 아니지 않나.
‘일단 문제 목록 1번 정도로 남겨 두는 것이 좋겠어.’
해서 신현태는 머릿속에 저장만 하고 다음으로 넘어갔다.
“청진 좀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네.”
호흡음은 정상이었다.
물론 엑스레이도 찍어 봐야겠지만, 일단은 괜찮다고 판단해도 좋을 터였다.
그 후로 확인한 복부도 괜찮았다.
대개의 경우 이쯤이면 검진은 끝이었다.
그 외에 더 볼 것도 없을 거라 여길 테니.
허나 신현태는 감염병의 대가고, 따라서 감염으로 인한 두통의 원인이 무척 다양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일단 신경학적 증상이 없는 것으로 미루어볼 때…… 또 2차 병원에서 시행해서 온 CT나 MRI로 미루어볼 때…… 뇌출혈이나 경색 또는 두개내염 등의 가능성은 없어.’
머리 자체의 원인은 이미 배제되었다.
그렇다면 전신 감염으로 인한 두통이라는 얘기인데, 이러한 감염을 야기할 수 있는 원인 중엔 진드기와 관련한 것들이 있었다.
야외 활동을 자주 한다고 했으니, 어딘가를 물렸을 가능성도 있지 않겠나?
해서 신현태는 환자의 사지, 특히 다리 쪽을 살폈다.
그렇게 보다 보니 발바닥에 구진(피부가 조금 덩어리진 듯 올라온 것)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여기 혹시 아픈 적이 있습니까?”
신현태가 그쪽을 가리키자, 환자는 영문을 모르겠단 얼굴이었다.
“어……? 거기가 왜 그러죠?”
사실 자기 발바닥을 열심히 들여다보고 사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나.
이 환자도 그러했다.
따라서, 언제부터 그랬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다만 어렴풋이 좀 불편하기는 했다는 말은 들을 수 있었는데, 워낙 많이 걸어서 그런 것이라 여기고 있었단 했다.
‘역시 자기 몸은 자기가 제일 잘 안다고 하는 거…… 그거 순 뻥이라니까.’
신현태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곤, 문제 목록 2에 발바닥의 구진 및 얕은 깊이의 상처를 더했다.
아주 심한 상처는 아니었지만 이것도 문제가 되려면 얼마든지 될 수 있을 만한 상처였다.
일단 피부라는 방어선이 뚫렸다는 것이 중요했다.
“자, 그럼 검사를 좀 해 보죠. 피 검사는 아까 나갔으니까…… 엑스레이부터 찍어 보겠습니다.”
“네.”
신현태는 환자를 검사실로 보내곤 잠시 생각에 잠겼다.
문제 목록 1, 2에 대한 고찰을 이어 나갔다, 이 말이었다.
‘잇몸…… 발…… 단순 상처라 보기엔 발의 구진이 좀 심상치가 않아. 하지만 가피(피 등이 굳은 것) 형성도 없고, 딱히 진드기 감염 같지는 않고……. 가만있자…….’
그는 종종 수혁이 그러는 것처럼 눈을 감고, 환자를 떠올려 보았다.
단순한 흉내에 그친 것은 아니었다.
수혁은 바루다와 토의를 하지만, 그는 기억을 헤집고 있었다.
특히 아까 잠깐 행했던 청진이 좀 불안했다.
‘호흡음은 정상이었어. 호흡음은 정상인데…… 으음…….’
뭔가…… 익숙하면서도 낯선 소리가 섞여 있던 기분이었다.
그게 뭐였을까.
뭐였지?
‘근데 왜 이현종…… 그 인간 얼굴이 같이 떠오르지? 내가 그렇게 열 받은 상태인가?’
자기 입으로 이런 말을 하는 건 꽤 민망한 일이긴 한데…….
하여간에 신현태는 꽤나 좋은 사람이었다.
만만한 사람도 아니니만큼 화가 나는 게 마땅한 순간, 그러니까 이현종이 사고 치는 대부분의 순간에는 화를 내긴 하지만…….
눈앞에 있지도 않은데 분노로 계속 부들거리고 있을 사람은 결코 아니었다.
자신이 그런 사람이라는 걸 잘 알기에, 신현태는 조금 다른 쪽으로 사고를 이어 나가 보았다.
‘보자…… 이상하잖아. 그렇게까지 화낼…… 화낼 일은 맞는데…… 이 인간이 이러는 게 하루 이틀 일은 아니잖아. 근데 자꾸 얼굴이 떠오른다는 건…… 음.’
이현종은 신현태와 둘도 없는 친구지만, 그 전에 일단 심장내과의 달인이지 않나.
동시에 오지랖도 꽤 넓은 인간이었다.
특히 통합진료센터를 개소하고 수혁과 함께 안으로 들어간 뒤로는 진짜 가끔 지랄이라는 욕도 나올 정도로 심했다.
그런 이현종에게서 신현태는 심장에 관한 많은 것들을 배웠다.
그중에는 이제 심장 내과 의사들에게도 딱히 관심사가 아닌 심장 잡음 청진도 끼어 있었다.
-너…… 생각보다 귀가 되게 예민하네?
그때 이현종으로서는 진짜 극히 드물게도 신현태를 칭찬했었다.
귀가 예민하네 어쩌네 하면서였는데, 실제로 그날 테스트를 해 보니 꽤나 잘 듣긴 했더랬다.
수혁조차도 처음엔 신현태보다 못 듣다가 나중에 이르러서야 간신히 따라잡는 수준에 이르렀을 지경이었다.
물론 딱히 심장 잡음 청진을 쭉 이어서 해 볼 생각은 없었기에, 기억을 고이 접어 추억으로 남겨 두고 있었는데…….
‘그래. 아까 그거…… 잡음이었어. 아…… 이거 설마?’
신현태의 고개가 홱 하고 돌아갔다.
그러자 방금 엑스레이를 찍고 돌아오는 환자가 눈에 들어왔다.
“잠깐, 잠깐!”
초음파를 해 볼까도 싶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심장 초음파는 심장내과 전문의들이 하는 전문적인 술기였다.
이현종 때문에 몇 번인가 해 본 적은 있었지만, 말 그대로 그게 다였다.
그걸로 실제 환자에게 해 보겠다고 덤벼들 수 있는 건 수혁 같은 천재 아니, 괴물에게나 통하는 얘기였다.
해서 신현태는 일단 심장내과를 부르기로 했다.
그 외 다른 처방도 후다닥 냈다.
점점 안 좋아지는 느낌이 들다 보니 서두를 수밖에 없었다.
“심장내과 콜하세요. 초음파해 봐야 한다고 하면서요. 일단 안티(항생제)부터 주죠. 아, 그 전에 배양 검사도 나가고.”
원장이지 않나.
얼핏 들으면 ‘지금 그렇게 갑자기 낸다고요?’ 싶은 처방이어도 어떻게든 해낼 수밖에 없었다.
온 병원이 알게 모르게 합심해서 검사하러 간 동안, 아까 나갔던 혈액 검사 결과들이 떴다.
‘CRP가 20(염증 지표, 평균 5~10)에…… PCT도 15(염증 지표, 5 이상일 경우 항생제 치료 필요)……? 패혈증으로 진행하고 있어. 역시 심장 문제일 가능성이 커. 그게 아니더라도, 심각한 감염이 있는 거고. 이거…… 좋지 않은데.’
검사 결과 또한 촉처럼 그리 좋지만은 못했다.
그래서 인상을 잔뜩 쓰고 있으려니, 응급실 의사가 물어왔다.
“저, 원장님. 근데 안티는 어떤 거로…….”
“아.”
그러고 보니 항생제로 어떤 걸 사용해야 할지 말을 안 해 준 참이었다.
게다가 아직 신현태가 이 환자에게서 뭐가 의심된다고도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무턱대고 경험적 항생제를 쓰기에도 무리가 있었다.
신현태는 응급실 의사를 보며 말했다.
“페니실린 G랑 젠타마이신. 용량은…… 아니다, 내가 낼게요.”
“네네. 원장님. 확인하겠습니다.”
구두 처방을 하려다 말고 키보드를 직접 두들겼다.
왜인지 모르게 황송한 마음이 든 응급실 의사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옆을 지켰다.
신현태는 이제 막 임기를 시작한 원장인 데다가, 끗발도 장난이 아니어서 그랬다.
연임도 확실시되고 있다 보니 눈치가 안 보이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었다.
“환자 어디…… 아, 원장님.”
심장내과 당직 펠로우도 부리나케 달려 내려왔다.
그는 오자마자 신현태에게 고개를 숙이곤, 환자를 찾았다.
신현태는 자초지종을 설명한 후 곧장 초음파를 지시했다.
‘음…… 맞나……?’
하지만 그의 생각과는 달리, 노상 심내막염을 비롯한 여러 심장 질환을 보는 펠로우는 좀 이상하단 생각을 하고 있었다.
‘잡음을 들었다는 게 진짜 이상한데…….’
왜냐?
심장 잡음이라는 건 정말 듣기 어려운 것이라 그랬다.
차라리 환자가 소아였다면 납득할 수 있었을 터였다.
어른에 비해 체격 대비 심장 크기가 크고, 또 근육층도 얇아서 소리가 잘 들리니까.
하지만 성인의 경우엔 진짜 제대로 듣기가 어려웠다.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물론 대학 병원 의사들이 다 그러하듯, 윗사람에게 납작 엎드리는 데는 선수다 보니 절대 티는 내지 않았다.
‘난…… 안 들리는데……?’
물론 몰래 청진은 해 봤다.
그 결과 잡음은 안 들린다는 결론을 내렸고, 처음부터 의심 가득한 얼굴로 초음파를 시행하게 되었다.
“음.”
“뭐가 안 보여요?”
“약간…… 새는 것 같긴 한데…… 이쪽 판막이요. 근데 딱히…… 베지테이션(균 덩어리)이 보이진 않습니다. 아직 심내막염이라고 진단하기엔…… 무리가 있어 보입니다.”
“샌다는 건, 판막 문제가 있다는 거 아니에요?”
“네? 아, 네. 근데 이 나이쯤 되면 이 정도는 샐 수 있습니다. 아직 심근 비대도 없고요.”
“갑자기 생긴 문제라면 심근 비대가 없는 게 당연하지 않나요?”
“그렇긴 한데…… 그렇게 볼 근거가…….”
신현태는 고개를 가로젓는 펠로우를 보며 살짝 어이가 없었다.
‘이 친구…… 어려서 그런가?’
딱히 원장 말에 반기를 드는 게 어이가 없는 건 아니었다.
‘이현종, 그 형이 NEJM 얘기를 해서 그렇지, 나 없을 때 내 칭찬은 엄청 하는 걸로 아는데…… 아, 얘는 작년에 들어왔구나. 현종이 형이 다른 센터에 있을 때…….’
자기 실력을 의심하는 게 이상해서 그랬다.
심장이 주된 문제로 보이긴 하지만, 그래도 뭐가 되었건 감염이지 않나?
한 다리라도 걸친 이상, 신현태의 역량은 어마어마하다고 봐야 정상이었다.
“미심쩍으면 전화해 보죠.”
물론 그렇다 해도 심장내과 전문의의 고견이 필요하긴 했다.
해서 신현태는 살짝 잘난 척도 할 겸, 이현종에게 전화해 보기로 결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