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7화 조태진 (1)
“어떻게 이럴 수가…….”
“그게 중요합니까, 원장님?”
신현태는 기사를 보고 바로 병원으로 향했다.
사실 병원으로 온다고 해서 뭔가 변하는 게 있는 건 아니었다.
그냥…….
이미 끝난 일 아닌가?
게다가 오늘도 진료가 있다고 했다.
심지어 어제 소문이 거하게 나서 그런가, 오늘은 더더욱 문전성시를 이룰 거란 말도 있었다.
“뭐가 중해, 그럼! 지금 도청에서도 정식으로 그 진료를…… 그 의료법 위반을 돕겠다고 나선 건데!”
“그럼 좋은 거 아닐까요? 그보다…… 어제 뭐라고요?”
“이놈이 미쳤나. 좋기는 뭐가 좋아.”
“미쳐요? 이제 원장님 쌍욕 하시는 거예요?”
“기분 나쁘냐?”
“아뇨. 원래 삼촌 조카 사이는 이래야 정상이죠.”
“무슨…… 아.”
신현태는 머리를 짚었다.
제아무리 다들 바쁘게만 굴러가는 대학 병원이라고 해도, 일요일 오전은 상대적으로 느슨한 시간이었다.
병동이야 뭐 입·퇴원이 좀 적을 뿐 비슷하게 돌아가겠지만, 그 입·퇴원이 적다는 것이 중요했다.
때문에 이른 시간에는 확실히 의료진도 적었다.
‘이 새끼가…… 오늘 통합진료센터 당직이구나.’
신현태는 반갑게 인사를 해 오던, 심지어 그 길로 커피도 사겠다고 붙임성 있게 나선 조태진을 도저히 거부하지 못했다.
일단 이놈이 여기 왜 왔지 싶어서 더 그랬다.
최근 연구에 좀 소홀한가 싶더니만 과연 일요일에도 연구를 진행하는구나 싶어서 살짝 대견하기까지 했다.
물론 다 개소리였지만…….
“내가 수혁이 삼촌 노릇은 해도 자네 삼촌 노릇을 하기엔 너무 나이가 적지 않나?”
“네? 저 40 좀 넘었는데요?”
“그러니까! 그런 식으로 따지면 난 아직 60도 안 됐어!”
“제 삼촌 이제 52살인데.”
“응?”
“아버지가 6형제 중에 맏이십니다.”
“개새꺄. 놀랬잖아.”
“와…… 이제 제법 친해졌네요, 진짜.”
“하.”
신현태는 한숨을 쉬었다.
그렇다고 딱히 카페에서 일어서거나 하진 않았다.
갈 데가 없었다.
연구실이 있기는 한데, 어차피 사람이 있지도 않을 거라 그랬다.
-네? 무슨 문제죠? 도청에서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면 뭐…… 그리고 보복부 쪽은 걱정 마십쇼. 여론은 우리 편이고, 여론 눈치 안 보는 국가 기관은 없어요.
김다현마저 저렇게 나온 이상…….
뭐라 할 말이 있을까?
게다가 최원준 선수가 한 인터뷰 또한 결정적이라 할 수 있었다.
그 양반은 왜 공치는 소리 대신 수혁과 이현종 칭찬을 그리했을까.
‘앞으로가 걱정이다. 지금까지는 그래도 남들 눈치는 좀 봤었는데…… 이제는 진짜 남의 병원 들어가면서 이리 오너라 하게 생겼어…….’
신현태는 머리가 아팠다.
어느 정도로 아팠냐면, 지금 눈앞에 있는 조태진을 잠시 잊을 정도로 아팠다.
물론 조태진은 수혁이 관련된 일이라면 잘못의 ‘ㅈ’ 자도 생각되지 않는 위인이다 보니 아예 딴생각만 하고 있었다.
해서 신현태의 고민과는 완전히 동떨어져 있는 말이 툭 하고 튀어나왔다.
“원장님. 근데 어제 진료 대박 쳤다면서요. 나 수혁이 인스타 봤어요.”
“뭔 스타……?”
“요새 수혁이 가끔 인스타 하는 거 몰라요? 거기 삼촌 대박이라고 올렸는데.”
“어…… 그래? 어디 봐 봐.”
물론 신현태도 완전 정상은 아니었다.
수혁의 입에서 삼촌 대박이라는 말이 나왔다고?
갑자기 세상 근심 걱정이 없어지는 기분이었다.
이현종의 개망나니 짓도 방금의 고민도 슥 사라졌다.
“여기 봐요.”
“오…… 이거 나 말하는 거 맞겠지?”
“어제 응급실에서 수혁이 대신 당직 서다가 심내막염 진단한 삼촌은 원장님뿐이지 않을까요? 그전에, 천애고아인 애가 삼촌이 또 있겠어요?”
“하긴. 허허.”
“고아라는 말에 웃으시네.”
“그런 게 아니잖아!”
신현태는 조태진에게 발끈해 놓고선, 방금 소리친 게 무색할 만큼 빠르게 그래서 여기는 어떻게 들어갈 수 있냐고 물었다.
그러곤 부리나케 아이디를 만들어 수혁을 팔로우했다.
“근데…… 나는 걱정이네요.”
“뭐가 걱정이야, 인마.”
“저도 원장님처럼 임팩트를 좀 보여 줘야 하는데…….”
“맨날 보는 진료에서 무슨 임팩트를 보이냐.”
“원장님은 했잖아요. 자기는 했다고 이렇게 말씀하시네……?”
“어, 사실 좀 그랬지.”
“근데 여긴 어쩐 일로 오신 거예요?”
“어? 어…….”
이미 수혁의 인스타를 보고 기분이 좋아진 덕에 걱정은 다 잊어버린 신현태는 할 말이 궁색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뭐라고 할까.
이현종, 수혁이 사고 친 거 수습하러…… 아니, 그냥 그게 불안해서 나왔다고 하면 좀 이상하지 않겠나?
‘이 새끼는 분명 수혁이한테 가서 고자질할 놈이야.’
무엇보다 조태진인 게 마음에 걸렸다.
다행히 신현태는 원장 노릇을 무리 없이 하고 있을 만큼의 정치력은 있는 사람이었고, 그렇다 보니 적절한 핑계를 바로 떠올릴 수 있었다.
“환자 보러 왔지. 어제 본 환자.”
“와…… 역시 참 의사.”
“참의사는 무슨. 의사는 응당 그래야지.”
“역시. 수혁이 삼촌답습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환자 생각일랑 1도 안 했던 만큼 살짝 양심의 가책이 느껴졌지만, 일단 닥치고 있었다.
좋은 게 좋은 거 아니겠나?
게다가 보아하니, 조태진은 완전히 임팩트 있는 진료에 생각을 뺏긴 나머지 신현태에게 별 관심도 없었다.
“하여간…… 음. 오늘 어떤 환자들이…… 오.”
심지어 벌써 전화기가 울리기 시작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긴 했다.
이현종, 수혁이 이끄는 통합진료센터는 이제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유명한 센터가 되었으니까.
특히 진단이 안 되어 답답한 마음에 고통받는 환자들에게는 한 줄기 빛이라 할 수 있었다.
“네, 혈액종양내과 조태진입니다.”
“네, 교수님. 응급실에 류마티스 관절염으로 타 기관에서 치료받던 환자분 내원하셨습니다. 약을 써도 약이 잘 듣지 않아 다른 원인이 있는지 알아보고 싶으시다는데…….”
“아…….”
류마티스라.
‘이건 꽝이네.’
류마티스에 대해 아는 게 있나?
아예 없다고는 못 해도, 잘 안다고 하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왜냐?
류마티스내과가 아니잖아.
그럼 할 수 있는 게 없잖아.
“갈게요. 외래로 돌려야지 뭐.”
“네, 저희가 할까요?”
“아…… 아니, 그래도 제가 갈게요.”
하지만,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해도 그냥 두고 볼 생각은 없었다.
그는 나름의 신성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었기에 그랬다.
무려 수혁이 개인적으로 부탁한 일 아닌가.
수혁 본인이 직접 할 때만큼은 아니더라도, 절대 빈틈이 보이지 않게 일을 처리해야만 했다.
덜컥.
그런 책임감을 느끼며 조태진은 응급실 안에 들어섰다.
언제나 혼잡한 곳이었지만 지금은 일요일 이른 오전…… 거의 새벽이라도 해도 좋을 만한 시간이다 보니 빈자리가 여기저기 보였다.
“아, 교수님. 이쪽입니다.”
응급실 레지던트는 그런 곳에 들어선 조태진을 즉시 알아보곤 환자에게 끌었다.
환자는 60대 여성으로 보였다.
꽤 오랜 기간 투병을 해 왔는지, 아니면 쉽지 않은 인생을 살아왔는지, 얼굴이 그리 좋지만은 못했다.
“안녕하세요.”
“네에…….”
“조태진 교수라고 합니다.”
조태진은 자신도 알아차리지 못할 만큼 순간적으로 환자의 얼굴을 이리저리 살폈다.
수혁이 하던 짓을 흉내 낸 것인데 그 또한 나름의 지식과 경험을 쌓아 온, 그리고 쌓아 갈 훌륭한 의사다 보니 단지 흉내 내는 데서만 그치진 않았다.
‘류마티스 질환이 힘들긴 해. 근데 이렇게까지 칵켁식(Cachexia, 전신 쇠약 증세)해 보일 일인가……? 아닌 거 같은데……? 아닌가?’
염증성 장 질환 같은 경우에는 자가 면역 질환이라고 해도 말기 암 환자처럼 체중이 빠지는 경우가 더러 있긴 했다.
소화에 관련된 질환이다 보니 그랬다.
하지만…….
관절염에선 그보다 드물 수밖에 없었다.
“네…… 이수혁 교수님이나 이현종 교수님은 안 계신가 보죠?”
환자는 갈라진 목소리로 이렇게 물었다.
이제 둘은 빈말로도 유명도가 없다고는 말을 할 수 없는 상태다 보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김다현의 지시로 인해 뻔질나게 매스컴을 타고 있는 데다가 사람들로부터 입소문까지 타고 있기에 그럴 수밖에 없었다.
‘우리 수혁이…… 유명해졌다!’
조태진은 엉뚱한 부분에서 만족감을 느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래도 저희 센터는 순서의 차이가 있을 뿐, 해결이 안 되는 케이스는 무조건 두 분이 보시니 걱정 마세요.”
“아…… 오늘은…….”
“오늘은 어렵습니다. 두 분도 쉬셔야죠.”
쉰다기보다는 제주도까지 가서 진료를 보고 있긴 하지만.
심지어 그게 이미 지역 방송에서는 다 보도가 되었지만…….
조태진은 굳이 그렇게까지 자세한 얘기를 하진 않았다.
“아무튼, 초진을 보겠습니다.”
대신 진료를 보기 시작했다.
일단 환자가 급한 상태가 아니다 보니, 응급으로 뭘 해야 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거기에 더해, 수혁이라면 지금 여기서 어떻게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그렇기도 했다.
“아…… 네에.”
조태진은 그런 생각을 하며, 살짝 떨떠름해 보이는 환자에게 이것저것을 묻기 시작했다.
“지금 눈이 부어 있으신데…… 자주 이러시나요?”
“네. 자주 부어요.”
“기침도 하시고…….”
“네. 가끔은 숨쉬기도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흐음…… 팔이나 다리는 어떠세요?”
“다리요.”
“어디 볼까요?”
환자는 다리가 아프다고 했지만, 조태진은 팔도 꼼꼼히 살폈다.
딱히 홍반이나 부종이 있거나 하지는 않았다.
대신 우측 무릎에는 부종이 있었다.
홍반도 있었다.
‘이상하게 관절은 또…… 이렇게만 침범했네?’
조태진은 살짝 이상하단 생각을 하면서, 외부 병원에서 들고 온 검사 결과를 살폈다.
류마티스 질환을 의심하고 있던 만큼, 항핵항체(ANA)는 190이 넘는 수치를 보였다.
항SSA(Anti-SSA), 이중나선 DNA 항체(Anti double stranded DNA) 또한 양성이었다.
그 외에 류마티스 인자는 음성이었다.
‘아…… 팔에 홍반이 있었던 적이 있고…… 그래서 콜히친(류마티즘의 치료약 중 하나)이 포함된 약으로 치료를 받았는데, 스테로이드를 받고 나서야 나아졌어. 음…… 그러고 나서도 금방 재발했고. 스테로이드의 항염증 효과나 항부종 효과를 생각하면 이건 치료가 된 게 아닌데…….’
류마티스 질환인데 이렇게까지 약을 써도 좋아지지 않는 경우가 흔한가?
그럴 수는 없었다.
아무리 현대 의학에는 명확한 한계가 있다고 하지만, 어마어마한 발전을 이룩해 온 것도 사실이지 않나.
때문에 예전에 비하면, 비교하는 것조차 미안해질 만큼이나 높은 확률로 잘 조절되었다.
‘게다가 증상이 발생한 간격이 아주 짧아. 점점 더 짧아지고 있고…… 흠.’
조태진이 점점 이상하다는 생각을 키워 나가고 있는 동안, 눈에 들어온 수치 하나가 있었다.
CRP.
급성 염증 지표였다.
류마티스에서도 수치가 올라갈 수는 있지만, 그 정도가 아주 심한 경우는 드물었다.
‘왜 이렇게 높아? 그리고…… 점점 더 높아지네……?’
이건 확실히 이상했다.
어느새 조태진은 수혁에 대한 생각조차 잊은 채 케이스에 빠져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