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8화 조태진 (2)
“흐음…….”
조태진은 턱밑을 쓸어내리고 있었다.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고 있었기 때문에 시선에 닿는 것들은 꽤 있었지만, 그중에 눈에 들어오는 것은 그야말로 하나도 없었다.
그는 그저 내면으로 침잠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가 쌓아 올려온 경험과 지식, 그리고 이를 토대로 한 추론.
‘CRP…… 이게 이렇게까지 오르는 건 드물어. 적어도 류마티스 질환에서는 드물지. 하지만…….’
류마티스 질환은 류마티스내과 의사가 제일 잘 보는 것이 당연한 일일 터였다.
이러한 사실은 사실 딱히 설명할 이유도 없었다.
그러려고 류마티스 분과를 전공하는 것 아닌가?
하지만…….
그 질환처럼 보이는 다른 무언가는 오히려 다른 이들이 더 잘 볼 수도 있었다.
‘감염병이 류마티스 질환을 유발하는 경우도 있지.’
당장 어제 수혁이 제주대학 병원 응급실에서 진단한 환자처럼, 병원균이 직접 관절강을 침범해야만 류마티스 질환과 비슷한 증상이 나타나는 건 아니었다.
류마티스 질환이라는 건 사실상 자가면역질환이었고, 자가면역질환이라는 건 결국 면역이 망가지고 혼란해지면서 발생하는 질환이었다.
그리고 감염은 면역체계의 혼란을 야기하는 대표적인 원인 중 하나였다.
‘그리고 종양…… 그중에서도 악성 종양 역시 면역체계의 혼란을 야기하지. 뭐…… 애초에 망가진 면역체계가 악성 종양 발생의 원인이 되기도 하고.’
조태진은 일말의 가능성을 보았다.
이 환자의 해결되지 않는 류마티스 질환이라는 건, 어쩌면 아예 다른 질환일 수도 있을 가능성을.
‘이건 수혁이나 현종이 형이라 해도 비슷한 추론을 이어 나갔을 거야. 내가 그 정도 수준은 되지. 흐음.’
순간 완전히 혼자만의 추론을 이어 나가고 있던 조태진의 머릿속에 두 사람이 떠올랐다.
정확히 말하면 둘의 추론 방식이 떠올랐다.
그렇게 확신을 가진 조태진은 눈을 떴다.
‘이수혁 교수님 코스프레하시나.’
옆에서 그 꼴을 보고 있던 응급실 의사는 조금 혼란스러웠다.
따지고 보면, 통합진료센터는 기본적으로 내과 소속이지만 실제로 가장 가깝게 지내는 곳은 응급실이지 않나?
그만큼 응급실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은 수혁의 추론을 많이 보았다.
그리고 지금 조태진의 행동에선 어쩐지 수혁의 향기를 느낄 수 있었다.
“환자분.”
그러거나 말거나, 일단 조태진은 환자에게 말했다.
환자 또한 그런 조태진을 마주 바라보았다.
“네.”
“검사를 몇 개 더 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검사……요?”
검사라는 말에 환자는 신물이 난다는 얼굴이 되었다.
지긋지긋하지 않겠나?
현대의학에 있어 병이라는 건 검사를 수반할 수밖에 없었으니까.
그중에서도 류마티스는 더더욱 많은 검사를 수반하고 있었다.
게다가 이 환자는 지금까지의 여러 치료에 반응을 잘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더더욱 많은 검사를 해야만 했더랬다.
“네. 의심되는 질환이 있습니다.”
“네……? 류마티스 질환이 아닐 수 있다는 겁니까?”
“네. 그걸 확인받고 싶어서 오신 거 아닙니까?”
“그…… 네. 그건 맞는데…….”
환자는 ‘그걸 네가 할 거라고는 기대 안 했지……’ 뭐 이런 얼굴이었다.
당연히 수혁이나 이현종 교수가 그럴 거라 기대했을 터였다.
언론에서 둘을 워낙에 조명하고 있었으니까.
사실 조태진도 기대가 없었으니 뭐라 할 만한 일도 아니긴 했다.
“결과론적인 얘기긴 합니다만…… 몇 가지 근거가 있습니다. 일단 환자분에게 쓴 약들은 꽤 센 약들이에요. 이 정도로 약을 쓰면 반드시라곤 안 해도 좋아지긴 해야 합니다.”
“저도 그렇게 듣긴 했는데…….”
“그런데 호전이 거의 없었죠? 스테로이드를 썼을 때만 어느 정도 호전을 보였다는 것이 저는 좀 이상합니다.”
면역 억제제에 대해서는 거의 반응이 없었다고 봐도 무방했다.
콜히친을 비롯한 약들은 꽤 강력한 약이고, 면역 계통의 질환이 있을 때 어느 정도의 반응을 기대할 수 있음에도 그랬다.
그에 비해 스테로이드, 특히 시스테믹 스테로이드 치료에 대해선 반응이 있었다.
스테로이드…… 이는 다른 약과 궤를 달리하는 것이었다.
이 약은 반드시 면역 질환만 호전시키는 것이 아니었다.
일시적인 효과만 말하자면, 말 그대로 만병통치에 가까운 약이었다.
“그게 제일 센 약이라고 하던데요……?”
“그렇죠. 제일 센 약이죠. 다만 궤를 달리하는 약이기도 합니다. 다른 질환에 대해서도 효과를 보이거든요. 면역 억제제에선 효과가 없는데, 스테로이드를 사용하니 효과가 있다…… 이렇게 되면 다른 질환이 있다는 걸 의심해 볼 수 있습니다.”
“어…….”
환자는 솔직히 이 사람이 무슨 소리 하는 건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근거가 될 수 있는 지식이 부족하기도 하거니와, 일단 조태진에 대한 기대가 아예 없어서 그랬다.
하지만…….
‘얼굴 봐……. 구라깔 얼굴이 아니야. 적어도 이 사람은 확신에 찼어.’
환자는 조태진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빈말로도 미남이라고는 못할 얼굴이긴 하지만, 서글서글하니 호감을 주기엔 충분한 인상을 지니고 있었다.
비슷한 계통의 얼굴이지만 자주 짓는 표정 때문에 살짝 심술 궂어 보이는 이현종과는 좀 달랐다.
“그…… 어떤 검사요?”
“아픈 검사는 아닙니다. CT나 MRI 정도? 제 예상에는 일단 CT 정도로 끝날 거 같습니다.”
“CT면…… 네, 뭐.”
CT는 이제 흔하게 시행하는 검사가 된 지 오래 아닌가.
작은 병원에서도 구비하고 있을 만큼 흔한 기기가 되었기도 했다.
그런 만큼, 꽤 오랜 기간 병을 앓아온 환자는 CT 검사 정도는 벌써 여러 번 해 본 바 있었다.
조영제인지 나발인지 하는 게 혈관을 통해 들어올 때의 화한 느낌을 제외하면 딱히 커다란 불편감을 수반하지도 않았다.
“그럼 시행해 보죠.”
그렇게 검사가 결정되었다.
그 전에 조태진은 CT 범위를 설정하기 위해 몇 가지 질문을 쏟아 냈고, 그 결과 두경부 부위는 제외되었다.
그래 봐야 남은 부위가 흉부와 복부다 보니 좁지만은 않았다.
위이잉.
환자가 자리에 눕자 곧 검사가 시작되었다.
오랫동안 고생을 하긴 했지만 어찌 되었건 거동이 어려울 정도는 아니다 보니, 협조를 구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아 가능한 일이었다.
“영상 곧 넘어올 겁니다. 아직 넌컨(Non-contrast, 조영제가 들어가지 않은 상태)이긴 한데요.”
“네. 제가 실시간으로 보죠.”
웅웅 돌아가는 소리와 함께 영상이 빠르게 넘어오고 있었다.
아직 조영제가 들어가기 전이다 보니 조영 증강 차이가 현저하게 보이진 않았다.
다만 무언가 확인은 할 수 있었는데…….
환자의 복부에 이상이 있었다.
‘이건…… 자궁경부 근처로 보이는데……. 덩이까지는 아니지만 뭔가…… 흠. 이건 조영 증강이 되어야 더 제대로 된 확인이 가능하겠어.’
조태진은 흐음 하고는, 턱을 한번 쓸었다.
굵직한 턱을 도톰한 손가락이 툭 하고 치고 지나가는 순간 방사선사가 말했다.
“교수님, 이제 곧 조영제 들어갑니다.”
“어, 네. 부탁해요. 뭔가 있어요.”
“아. 네, 교수님.”
방사선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했다.
‘하여간…… 통합진료센터 쪽이랑 관련 있는 사람들은 유별나다니까…….’
세상에 뭐 찍는데 의사가 내려와 있는 경우가 어디 흔한 일이던가.
중환자라서 따로 앰부를 쥐어짜야 한다거나, 아니면 의식이 온전치 않아 의도치 않은 움직임이 있어 제한해야 한다거나 할 때 인턴이 동반되는 경우는 흔하더라도 이렇게 영상을 빨리 보려고 내려와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해도 좋았다.
하지만 통합진료센터에서만큼은 그냥 루틴이었다.
‘가만…… 이 양반은 혈액종양내과 교수인데…….’
방사선사는 역시나 병원 내에는 두 개의 파벌이 있고, 수혁교 관련 파벌이 모든 것을 압도하고 있다는 것을 떠올리며 슛했다.
지이잉.
곧 조영제가 환자의 수액 라인을 통해 정맥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읍.”
불편감에 환자가 신음을 흘렸다.
환자에겐 미안하지만, 지금은 불편감 정도에 관심을 보일 때는 아니었다.
영상이 중요했다.
조태진은 일단 무언가를 보았기에 그랬다.
자궁경부 근처로 무언가가 있었다.
“흐음.”
곧 조영제가 들어간 상태의 영상 또한 넘어오기 시작했다.
염증임을 뜻하는 얼룩덜룩한 조영 증강이 눈에 들어온 것이다.
‘류마티스……라기보다는…….’
이전 병원에서는 그냥 전신 염증의 결과로 본 듯했다.
그래, 그러고 보니까 이 비슷한 내용이 의뢰서에 있었던 것 같았다.
하지만…….
조태진이 볼 때 저건 결과 따위가 아니었다.
원인이었다.
아니, 근원이라는 말이 더 어울릴 거 같았다.
‘자궁경부암 같은데……?’
환자의 나이를 고려했을 때, 암으로 인한 면역 체계의 교란은 상대적으로 빈번한 문제였다.
심지어 환자는 주변부로 실제 염증도 발생한 상황이었다.
아마 감염 질환이 동반되었겠지.
‘스테로이드에는…… 암도 반응을 보이지. 감염 질환이야 말할 것도 없고……?’
조태진의 머리가 팽팽 돌았다.
스테로이드라는 약을 쓰기 전에 충분히 고민하고 또 고민한 다음에 쓰라는 말을 왜 하겠나?
그 약이 단기적으로 그야말로 만병통치약에 가까운 위력을 보이기에 그러했다.
영구히 그런 효과를 보인다면야 고민이고 나발이고 일단 써 보고 말 텐데…….
장기적으로 사용하게 되면 효과보다는 아무래도 부작용 측면이 훨씬 두드러지는 약이었다.
무엇보다 지금 이 환자에서처럼 다른 질환을 가려 버리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그에 비해, 면역 억제제는 이 환자에게 있어선 오히려 질환을 더 가속화시켰어.’
그러다 보면 원인을 완전히 잘못 짚게 되고, 수렁에 빠지게 되는 경우가 있었다.
생각보다 사람은 첫 의견에 휘둘리게 되기 마련인데, 그것이 전문가의 의견이라면 두말할 것도 없지 않겠나?
뭔가 이상한데 하는 생각을 하지 않는 한, 첫 단추 외에 다른 것들은 모두 잘 꿰어진 복잡한 과정을 되짚어 보는 건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었다.
‘문제는…… 으음.’
수혁이었다면, 이현종이었다면 지금 당장 밖으로 뛰쳐나가 동네 사람들까지는 아니더라도 주변에 부를 수 있는 사람들은 다 불러서 자랑을 시전했을 터였다.
너무 없어 보이는 말이지만, 실제로 그러한 것을 뭐 어쩌겠나.
하지만…….
조태진은 아직 자신이 없었다.
충분히 내세워도 좋을 만한 추론을 해 놓고는, 이게 맞는 건지 아닌 건지 헷갈리는 참이었다.
‘틀리면 좀 그런데……?’
암이라면 앞으로 해야 할 검사가 한 가득이었다.
그 검사만으로도 환자는 완전히 지쳐 버리고 말 터였다.
MRI부터 PET CT에 조직 검사에…….
어우.
비용도 문제가 될 정도였다.
부우웅.
그런 고민을 하고 있다 보니 어느새 휴대폰을 집어 들고 있었다.
수신인은 당연하게도 수혁이었다.
그래도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수혁은 경기장에 있긴 하지만, 그러면서도 동시에 이리저리 시선이 분산되어 있는 상황이었다.
원래 골프를 치지도 않는 데다가 앞으로 칠 생각도 없어서 그랬다.
그냥 잘하네 싶은 정도?
“어…… 형?”
“어, 수혁아. 내가 지금 당직이잖아?”
“아…… 네네. 어제 삼촌이 홈런 쳤던데요.”
“나도 한 분 봤는데, 이게 홈런인지 안타인지 아니면 파울인지 모르겠어서.”
“아하, 말씀해 보세요.”
“어, 그래. 들어 봐, 리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