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3화 춘계 (4)
[미친놈이.]
바루다는 급기야 쌍욕을 하기 시작했지만 수혁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애초에 바루다의 말 자체를 무시할 수 있는 능력을 탑재하게 된 지 오래되지 않았나.
게다가 지금은 논문 얘기에 빠진 지 오래였다.
하윤과의 대화에도 그렇고.
“컨셉 자체는 간단해.”
“어떤…… 컨셉인데요?”
반면, 하윤은 잔뜩 긴장하고 있었다.
간단한 컨셉이라고는 하지만…….
간단할까?
상대가 그 수혁인데?
‘우리 교수님은…… 천재지. 아니, 천재도 아니야.’
괴물이잖아.
천재들로 그득한 태화에서조차 수혁은 별종이었다.
여태까지는 이현종 혼자만 그랬는데, 이제는 수혁이 한술 더 뜬다는 평을 듣고 있었다.
“감염병에 걸리면 어떤 증상이 생기지?”
그렇다 보니, 간단한 질문도 꼬아서 생각하게 되었다.
수혁은 진짜 별거 아닌 질문이라 생각하고 있었고, 실제로도 그런 질문이었음에도 그랬다.
‘음…… 뭐가 있지?’
게다가 하윤은 아는 게 많았다.
1등이 괜히 1등이겠나?
머리도 좋고, 열심히 하는 면도 있었다.
무엇보다 옆에 최고의 자극제라 할 수 있는 안대훈도 있었고.
“일단 상기도 감염이라면 기침과 목 통증, 가래 등이 있을 수 있습니다. 비염을 동반한다면 코 막힘, 비루(묽은 콧물), 후비루, 재채기 등등이 있을 수 있고요. 비루에 농이 섞인다면 부비동염이 의심될 테고…… 눈이라면 눈곱이나 충혈 등의 증상도 동반될 겁니다.”
“으음. 그보다 좀 공통적인 증상이 하나 있을 텐데?”
그렇다 보니 거의 모든 말을 쏟아 내고 있었다.
안타까운 건 그렇게 많은 말 중에 수혁이 원하던 말은 단 하나도 없었다는 점이었다.
해서, 수혁은 좀 더 간단하게 풀어내길 바라는 마음에 말을 보탰다.
결론적으로 보면 실수였다.
수혁 정도 되는 인간은 무슨 말을 해도 위협적으로 들리기 마련 아니겠나.
“어…….”
하윤은 드물게 머릿속이 하얘지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정말이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하나도 모르겠단 생각만 들었다.
“감염병의 공통적인 증상이요?”
“그래. 모든 감염병을 아우르는 증상이 있잖아?”
“어…….”
수혁도 좀 그랬다.
이쯤 되면 그냥 말을 해도 되는데 계속 물었다.
[이래서 인기가 없나.]
‘지랄.’
바루다의 말이 있음에도 그랬다.
하여간 하윤은 ‘어……’를 끝으로 더 말을 잇지 못하고 있었다.
[모르나 봅니다, 수혁. 그냥 말해요.]
‘이걸 몰라?’
[알 텐데, 말을 못 하는 거죠.]
‘말 못 하는 건 모른다는 거 아니야? 말이 안 되는데?’
[집착하지 말고…… 하윤이랑 잘해 보고 싶은 생각 여전히 있지? 이 새꺄. 그럼 그냥 말을 해.]
‘왜 갑자기 욕을…….’
[안 하게 생겼냐? 일단 나한테는 말 그만하고 하윤이한테 말해요.]
‘어어, 그래.’
보다 못한 바루다가 나서서 중재했다.
다행히 이럴 때 수혁은 말을 꽤 잘 듣는 편이었다.
애초에 딱히 답이 중요한 것도 아니었다.
너무 쉬워서 그랬다.
“열. 열이 나잖아.”
“아. 열. 그렇죠. 열이 나죠.”
발열.
병원균과 싸우는 과정에서 필수 불가결하게 발생하는 증상이지 않나.
모든 감염병에서 동반되는 증상이라고 해도 무방할 지경이었다.
물론 숙주의 상태에 따라 열이 나지 않는 경우도 있기야 하겠지만…….
그건 숙주의 차이 때문이지, 질환에 따른 차이는 아니라고 봐야 할 터였다.
“감염병에서는 열이 난다. 이 명제는 충분히 진리라 할 수 있겠지?”
“네, 그렇죠.”
“내가 생각하는 연구는…… 바로 이 명제를 이용해서 팬데믹 사태를 보다 빨리 캐치하는 걸 목적으로 해.”
“으음……?”
듣기는 했는데, 잘 이해가 되진 않았다.
감염병에서 열이 난다는 건 너무 당연한 일이긴 했다.
근데 그걸 이용해서 어떻게 팬데믹 사태를 캐치할 수 있단 말인가?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으려니 수혁이 말을 이었다.
다음부터는 간단하기는 하되 떠올리기는 쉽지 않은 일이라 그랬다.
‘나조차 네가 아니었으면 몰랐을 거야.’
[저도 수혁 아니었으면 떠올리지 못했을걸요?]
‘두 천재의 만남인가…….’
[지랄 말고 대화나 해요. 아니, 왜 잘되고 싶은 사람 앞에서 나랑 말을 해?]
‘긴장돼서.’
[넌…… 아마 평생 안 될 거야……. 이럴 거면 내가 아예 하윤이 얼굴로 바꿔 볼까? 그게 낫겠는데?]
‘그러지 마…….’
[나랑도 대화 잘 못 할까 봐 그러는구나…….]
‘응…….’
[이게 슬픔이라는 감정이로군. 이제 알겠네. 이럴 때 우네, 사람들이.]
수혁은 잠시 바루다와 잡담을 하고 나서야 말을 이을 수 있었다.
그마저도 제대로 얼굴을 보지 못 한 채였는데, 다행히 하윤도 수혁을 보고 있는 게 아니라 화면을 보고 있다 보니 눈치채는 일은 없었다.
“아직까지는 아이디어 단계에 있어. 하여간, 앱이 되었건…… 국내나 영국, 대만처럼 국가 보험이 있는 나라라면 의료기관 보고가 되었든 아니든 간에 열나는 걸 기록하는 거야.”
“기록이요? 어떤 걸요?”
“내가 열이 나면 열이 난다고 기록하는 거지. 앱이라면 열나는 걸 기록할 만한 동기를 제공하면 될 거야. 애초에 감염병에선 열 추이가 워낙에 중요하기도 하니까, 그걸 교육하면서 동시에 해열제 복용 지도를 해 준다거나 하는 정보를 주는 거지.”
“음…… 네.”
하윤은 그건 쉬운 일은 아니겠다 싶었다.
사람들이 귀찮은 걸 얼마나 싫어하는데 그런 걸 자발적으로 할까.
하지만 의료기관으로의 보고라면 좀 달랐다.
체크만 하면 되게끔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특히 대한민국은 IT 강국인 데다가 병원이 워낙에 많아서, 기록 자체는 더더욱 수월할 터였다.
“하여간 그렇게 모두가 기록을 한다고 치자. 아니, 이건 불가능한 일이니까 모두에 가까운 숫자가 기록한다고 치자.”
“네.”
가정법이니 ‘그게 될까요?’라는 말은 필요하지 않았다.
하여간, 여전히 뭘 하겠다는 건지 잘 이해가 되진 않았다.
이걸로 뭘 어떻게 감시를 하겠다는 건지…….
“그렇게 가정한 상황에서 어디로 할까…… 그래, 서울로 하지 뭐. 강남에 갑자기 열나는 환자들이 늘어난다고 치자고. 그걸 앱이 되었건 보건 당국이 되었건 확인을 하게 됐어.”
“네.”
“열나는 환자가 갑자기 늘어난다는 것은 곧 감염병 환자가 늘어났다는 얘기가 되겠지. 다양한 감염병이 발생했을 가능성도 있기야 하겠지만…… 그건 비정상적인 상황이야. 단일 감염병이 그 지역에 번지고 있다고 봐야겠지.”
“아……?”
하윤은 머릿속에 번개가 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열이 나는 개체 수를 지역별로 파악할 수 있다면…….
해당 지역에 뭔가 번지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을 터였다.
종류?
그거야 알 수 없는 게 당연했다.
하지만 뭔가 번지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는 것이 중요했다.
“팬데믹 사태 초기에도 필요한 정보가 되어 줄 거야. 어떤 지역에 갑자기 발열 환자가 늘어난다는 것, 그리고 그 환자의 분포도가 주변으로 확산된다는 것을 보건 당국에서 빨리 캐치하면 할수록 팬데믹으로 번져 나가는 걸 막거나, 최소한 늦출 수 있겠지.”
“아…….”
“막을 수 없어도 괜찮아. 늦추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어. 그사이에 전 세계 의료 기관에서 해당 질환에 관한 연구를 할 수 있으니까. 어쩌면 백신이 나올 수도 있지.”
“백신이요? 그게 그렇게 빨리 나올 수 있을까요?”
하윤의 말에 수혁은 파이자 연구소장 헨리가 보여 주었던 자료를 띄웠다.
이명이라는, 죽는 질환은 아니지만 불편함을 넘어 우울증까지 수반할 수 있는 질환을 고쳐 주지 않았나.
그 덕분이라고 하기엔 좀 뭐 해도, 헨리는 이런저런 연구 결과를 미리 알려 주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수혁에게 조언을 듣고 있으니 일방적으로 받기만 하는 사이는 아닌 셈이었다.
하여간 수혁이 보여 준 자료는 관련자가 아닌 이상에는 생소할 수밖에 없었다.
“이미 특허 출원된 기술이야.”
“어떤 거예요?”
“mRNA 전사 방식을 이용한 건데…… 안전성에 있어서는 사실 좀 미심쩍은 부분이 있긴 해. 내 생각에는 1% 내외에서 중증에서 경증을 오르내리는 부작용이 있긴 할 거야. 하지만 이 기술을 이용하면 어떤 바이러스건 간에 1년, 어쩌면 6개월 내에 백신을 만들 수 있어.”
“허어…… 정말요? 그럼 감기도……?”
“아니지. 실제 사람에게 쓸 때는, 해당 감염병의 중증도가 중요해. 기회비용이라고 하지? 백신 자체의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맞아야 하는지의 여부를 판단해야겠지.”
“아…… 그렇군요. 감기는 좀 그렇네요.”
“그래, 그건 이미 인류가 적응한 감염병이니까.”
다시 말해, 다음번 팬데믹은 이제까지의 팬데믹이 그랬던 것처럼 인류가 이제껏 경험해 보지 못한 병원균이 일으키게 될 거란 얘기였다.
“단지 기후 변화만 원인이 되는 건 아니야. 빈번한 교류…… 그리고 다양해진 식재료 등등도 원인이 될 수 있어. 게다가 바이러스는 애초에 변이가 빠를 수밖에 없지. 언제고 생길 거야. 이건 인류에 대한 저주가 아니라 그냥 정해진 미래야. 그렇다면 우리는 대비를 해야지. 특히 의료진이라면 더더욱.”
“그래서 이걸…… 음. 하지만 앱은…….”
“그래, 맞아. 홍콩처럼 직격탄을 한번 맞아 본 곳은 다르겠지만, 사용할 만한 곳이 너무 한정되어 있지. 다른 곳에서 일반인들이 적극적으로 협조할 거라 믿는 건 좀 어불성설이긴 해.”
일반인뿐만 아니라 의료진도 그럴 터였다.
국제학회만 가 봐도, 공공연히 떠드는 말이 있지 않나?
백기사, 즉 전염병의 시대는 끝났다는 걸 다른 사람도 아닌 감염내과 교수들이 떠들었다.
보다 다양한 분야의 지식인들이 모이는 국제 포럼에서는 아예 전염병의 백기사, 기근의 흑기사, 전쟁의 적기사의 정복은 끝났고, 남은 건 죽음의 청기사뿐이라고 얘기하는 경우도 흔했다.
‘어이가 없는 일이지. 과대망상이야.’
수혁은 전염병은 고사하고, 기근도 기후 위기로 인해 정복하기 어려울 거라고 생각했다.
전쟁이야 모르겠지만, 시대를 막론하고 미친놈은 나오기 마련 아닌가.
2차 세계 대전을 일으킨 히틀러처럼 광기에 사로잡힌 독재자는 이 세상 어디에라도 존재할 터였다.
“아마 호되게 당할 계기가 있을 수도 있어. 우리는 그 감염병이 치사율이 낮기를 바라야지. 아마 넓은 지역에 퍼지려면 그래야 하긴 할 거야. 다만 노약자들은 그거랑 관계없이 사망률이 치솟을 텐데…… 그 때문에 이런 종류의 연구나 예측은 꼭 해야 해. 의미 있는 일이야. 한번 해 볼래?”
“어…… 저야 너무 좋죠. 의미 있는 일이잖아요. 제가 준비했던 것보다 훨씬 좋을 것 같습니다.”
“그래, 그럼 1차 발표는 우리 학회에서 하고 다음 발표를 더 크게 내과 학회에서 하자. 이번에 국제 포럼도 같이 열리는 거 알지? 거기다가.”
“네에……?”
하윤은 혹 떼러 왔다가 혹 붙인 얼굴이 되었다.
그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던 바루다가 얼굴을 짚었다.
[잘한다. 잘하는 짓이다…….]
‘왜? 이 논문은 쓰게 되면 큰 데다 낼 거야.’
[그러니까…… 왜 도움 청하러 온 애한테 대뜸 큰일을 지르냐고…….]
‘뭔 소리지? 논문 쓰는 거 재밌잖아. 좋은 일인데?’
[넌…… 안 되겠다. 자, 봐.]
‘어엇.’
그러다가 잠시 하윤의 얼굴로 변했다.
대화는 자연스레 끊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