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7화 레지던트 3년 차라고? (2)
“이상, 발표를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하윤은 그렇게 몇 분 더 강의를 이어 나가다, 딱 정해진 시간에 인사를 올렸다.
이현종은 이미 해당 강의에 대해 숙지하고 있었고, 또 몇 번인가 연습하는 것도 대강이나마 본 바 있었다.
“뭣들 하나. 박수 안 치고?”
허나 다시 봐도 잘한다는 느낌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게다가 이현종은 원래 점잖다가도 돌연 호들갑을 떨 수 있는 사람이지 않나.
이번에도 다르지 않았다.
그는 몸을 일으킨 채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짝짝짝!
절반 정도는 사실 ‘이게 기립박수를 칠 정도인가?’ 싶은 마음이었다.
수혁이 봐 주긴 했지만 직접 한 발표는 아니지 않나.
게다가 임상을 주로 보는 의사들에게 이런 식의 발표는 굉장히 생소한 느낌을 자아내고 있어서 더더욱 아리송했다.
하지만 괜찮았다.
이제 추종자들도 많게 된 지 오래인 데다가…….
“우윳빛깔 우하윤!”
여기 그 아버지가 하나 있어서 그랬다.
우창윤은 진짜 체면을 잊었는지, 아선병원 기조실장임에도 불구하고 두 손을 모아 외쳐 대고 있었다.
그 모습에 대학 병원에서 혹독하게 딸랑이는 법을 수련받은 지 오래인 아선병원 레지던트들 또한 몸을 일으켜 물개박수를 쳐 대기 시작했다.
‘미친놈들…….’
신현태는 점잖은 얼굴로, 그러나 일어서기는 한 채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럴 때마다 시선도 돌아갔는데, 자연히 대행사 직원들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다들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싶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럴 만했다.
콘서트장 같잖아?
보통의 학회장이라고 하면 바늘 하나 떨어뜨려도 웅웅 울릴 정도로 조용하다 보니, 어리둥절한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자자, 이제 질문받겠습니다.”
하여간, 이현종은 박수에 심취해 있지만은 않았다.
자기가 직접 받는 것도 아니고 제자가 받고 있는 거 아닌가.
물론 센터장에 회장까지 맡고 있으니 간접적으로 얼굴에 금칠하고 있는 마당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야 할 일을 잊을 정도는 아니었다.
게다가 아까부터 질문하고 싶어서 안달 난 애들이 꽤 보였다.
“어, 거기.”
좌장이자, 회장인 이현종은 그중에서도 나름 괜찮아 보이는 이들부터 꼽아 보았다.
“네, 안녕하십니까. 전남대학교 병원 감염내과 교수 이상철입니다.”
감염내과면 이 주제에 관심이 있을 수밖에 없을 터였다.
동시에 신현태가 불러온 놈일 터였다.
나이도 더 어려 보이고…….
‘그렇다면 현태 놈한테 은혜 입지 않은 놈이기도 어렵지.’
이현종도 제자 놈들에게 아주 잘하는 편이고, 또 의리도 있는 편이지만, 애초에 제자라고 생각하는 범위가 좁았다.
그에 비해 신현태는 너그러운 사람이다 보니 같은 영역에 속한 이들에게는 어지간하면 잘했다.
집도 부잣집인 데다가 처가도 부자인 신현태는 마음뿐만 아니라 돈도 잘 쓰는 편이었기에 더더욱 그랬다.
“방금 말씀을 팬데믹에 국한해서 해 주셨는데…… 제 생각에는 계절 독감을 비롯한 국내 엔데믹 질환에도 적용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이에 대해서는 고려해 보신 적이 없으신지요.”
당연하게도, 질문이긴 한데 굉장히 우호적인 내용이 툭 하고 튀어나왔다.
그러면서도 어느 정도 예상 가능했던 부분이기도 했다.
엔데믹 질환들이라고 만만한 건 아니지 않나.
특히 계절 독감은 익숙한 이름이라고 해서 경시할 수는 없는 질환이었다.
그나마 대한민국의 독감 백신 접종률이 세계 최고에 가깝고, 필수 접종 대상의 접종률은 비교 불가할 정도로 높아서 망정이지.
당장 미국만 해도 매년 수만에서 수십만 이상이 독감으로 사망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우선적으로는 엔데믹 질환에 적용할 생각입니다. 말씀해 주신 계절 독감의 경우에는 이미 국가 감시망이 잘 잡혀있는 데다가, WHO에서도 유행 시기 및 유행 종류를 예측하고 있어서 더더욱 수월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 외에 노로 바이러스와 같은 경우도 설사 등의 주요 증상을 더해서 감시한다면…… 유의미한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의료진이 아닌 이들이라면 딱히 관심이 없을 터였다.
그 상태가 오히려 더 좋긴 했다.
전문가들이 잘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고, 그렇지 않더라도 일단은 문제가 발생하고 있지 않다는 뜻이었으니.
물론 팬데믹이 터지기 전에 캠페인 등을 통해 인식 개선을 하고, 보다 예민하게 반응할 수 있도록 한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네, 엔데믹 질환에서는 국내 의료기관의 협조만으로도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거 같습니다. 관건은 말씀해 주신 펜데믹 상황에서의 성과 여부인데…… 이를 위해서는 아무래도 모바일에서 사용 가능한 앱을 이용해 최대한 일반 이용자들을 모객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방안이 있으신지요?”
다음 질문을 던진 사람도 역시나 감염내과 교수였다.
관심이 있을 수밖에 없는 주제이지 않나.
팬데믹이라니.
일각에서는 다음 세대엔 감염내과의 존재가치가 없어질 거라고 떠들어 대는 상황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기생충은 이미 박멸되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에, 다른 감염 질환들도 큰 폭으로 줄고 있었다.
그 와중에 팬데믹은, 감염내과 입장에서는 어찌 보면 존재가치를 입증할 수 있을 만한 기회라고도 볼 수 있었다.
막상 일이 터지고 나면 그딴 생각보다는 일단 사태 진정하는 데 정신이 나가 버리겠지만.
“사실 지금 당장은 어렵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겁니다. 모바일 관련 스타트업 통계를 보면, 앱을 일단 한 번이라도 깔게 만드는 것도 어렵지만…… 지속적인 이용을 꾀하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일입니다. 소위 말하는 MAU 유지가 가능한 앱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사용자의 니즈를 충족시켜 줘야 할 텐데…… 현재의 감염병에 대한 인식 수준으로는 어렵다고 봐야 합니다.”
“그렇군요. 그렇더라도 생각이 있으실 것 같은데요?”
“네. 일단 병원 이용객 중 해외여행을 꾀하고 있는 이들을 중심으로, 해당 여행지에서 열이 날 경우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앱이라 소개하고 실제로 도움을 주어야 할 겁니다. 그렇게 천천히 경험을 쌓아 가다 보면, 언젠가 진짜 사태가 번질 때 도움이 될 것이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좋군요.”
문답은 그 후로도 꽤 이어졌다.
문답의 수준이나 들어 올리는 손의 숫자만 보면 이대로 영원히 이어지는 게 아닌가 싶었지만, 이현종이라는 노회한 좌장이 있는 이상 일이 그렇게 돌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자, 나머지 분들은 저기 적힌 이메일로 문의 주시고. 다음 발표로 이어 가겠습니다. 다음은 태화의료원 통합진료센터 펠로우 안대훈 선생이 맡아 주시겠습니다. 주제는 ‘류마티스 질환에서 진단의 단서가 될 수 있는 초기 증상들’입니다. 분과를 막론하고 놓쳤다가는 낭패를 볼 수 있는 질환이니만큼 주의 집중해서 들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게다가 이어지는 주제도 좋았다.
방금의 발표처럼 범위가 광범위하지는 않았지만, 그래서 오히려 더 관심을 끌고 있었다.
이런 식의 지엽적인 지식이야말로 사실 임상 진료를 볼 때 써먹기 좋은 면이 있어서 그랬다.
다 맞아떨어지진 않겠지만 고려할 수 있는 옵션이 한두 개 정도 늘어난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었다.
‘지루하네…….’
물론, 공무원에게 이러한 주제는 딱히 의미가 없었다.
자신이 가서 진료할 건 아니지 않나?
전체 진료비에 의미 있을 만큼의 영향을 줄 것 같지도 않았다.
열심히 배우고 가르쳐서 양질의 진료를 제공한다는 건 좋은 일이긴 한데…….
‘그건 모든 학회가 다 하고 있는 거지. 여기처럼 잘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안대훈의 강의야 언제나 그러하듯 훌륭했다.
머리카락을 희생해 지식을 추구하는, 일종의 구도자이지 않나.
일단 아는 게 많으면 떠들 수 있는 얘기가 많아지기도 하거니와, 맨날 듣고 보는 것이 수혁의 논리정연한 강의다 보니, 발표력도 미친 듯이 향상되고 있었다.
“자, 다음 강의는 태화의료원 통합진료센터 임상강사 김성진 선생이 맡아 주시겠습니다. 주제는 혈액암 생존자에서의 희귀 감염 진료 사례 모음입니다. 말이 혈액암 생존자이지, 최근 들어 점점 면역이 억제된 환자들이 늘어나고 있으니, 이것 또한 좋은 강의가 될 겁니다. 특히 본인이 응급 진료를 볼 일이 있다거나 또는 1차 진료를 볼 일이 있다면 더더욱 그렇겠죠.”
김성진?
아직 안대훈에 비하면야 좀 미진한 감이 있기는 했다.
그러나 상대가 안대훈이지 않나?
그놈은 그냥 미친놈이었다.
수혁에게 미치고, 따라서 의학에도 미쳐 버린 인간.
그놈을 제외한다면 김성진도 최근 한두 달간 혹독한 수련을 거친 마당인 데다가, 그전에도 안국태 때문에 나 홀로 발표를 해 온 마당이라 발표력이 아주 좋았다.
‘하…… 지루해.’
물론 공무원에게는 그게 그거였다.
기다리는 일이 있다 보니 더더욱 그랬다.
개중에는 발표만 하고 쏙 빠져나오는 사람도 있던데, 이게 태화 의료원 주도라고 봐도 무방할 만한 학회라서 그런가, 우하윤은 맨 앞자리에서 남은 강의들을 모조리 경청하고 있었다.
그 후로도 김인수, 장종우, 이태원 그리고 몇몇 레지던트들의 발표가 이어졌다.
각각의 발표가 15분 내외로 끝나서 망정이지, 긴 강의였으면 아마 미쳐 버렸을지도 모를 지경이었다.
“자, 이것으로 오후 세션을 마치겠습니다. 내일 강의는 저를 포함해 이수혁 교수님 등 학회 핵심 멤버들이 할 예정이니 더 많은 성원 부탁드리겠습니다. 보다 지엽적인 강의를 원하시면 옆에 세션도 양질의 강의가 있으니 참고하시고요. 모든 강의는 학회 종료 후 일주일까지 온라인에서 영상으로 들을 수 있으니, 그것도 참고해 주세요. 아, 학회 회원으로 가입하면 회원 자격을 유지하는 동안에는 무제한으로 볼 수 있으니까 그것도 참고해 주시고.”
강의는 딱 시간 맞춰서 끝났다.
이현종이 뭐에 쫓기는 사람처럼 바쁘게 떠들었지만, 그럼에도 끝까지 들은 사람은 아마도 반도 안 될 것 같았다.
왜냐?
미리 공지된 대로, 저녁은 학회 차원에서 전액 부담하는 조건으로 이 호텔 내 어떤 식당이건 간에 15만 원까지 쓸 수 있었기에 그랬다.
교수들도 흥분했지만, 다수를 차지하는 레지던트들은 거의 환장한 상황이었다.
“우오오!”
“길 비켜라, 이놈들아!”
한 끼에 15만 원을 태워?
일부 기업 병원의 레지던트가 아닌 이상 3년 차라 해도 월급 300이 안 되는 경우가 많다 보니, 이만큼이나 호방한 식사비는 처음일 수밖에 없었다.
“어어.”
때문에, 정확히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던 서기관은 이리저리 치이다가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다.
“어어, 조심 좀!”
말을 해 봐도 전혀 소용이 없었다.
눈에 뵈는 게 없는 상태라서 그랬다.
사실 그 자신도 공무원만 아니었으면 슬그머니 바우처를 챙겨서 돌아다녔을 거라 이해는 갔다.
세상에, 한 끼에 15?
그걸 제약회사나 기구상 스폰도 없이 그냥 질러?
아까까지만 해도 그게 제일 놀라웠는데, 이젠 아니었다.
“저기, 우하윤 선생님?”
우여곡절 끝에 우하윤에게 닿을 수 있었다.
하윤은 그렇지 않아도 여러 명에게 둘러싸인 마당이었다.
중심에는 의외로 우창윤이 있었다.
“애 숨 좀 쉬자! 저리들 안 비켜?”
“무슨 아빠라도 돼요? 왜 지랄이야. 아선 사람이 태화한테.”
“아빠야!”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