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968화 (968/1,303)

968화 레지던트 3년 차라고? (3)

‘또?’

수혁이도 이현종이 아빠 어쩌구 하면서 난리를 치더니만, 이 사람도?

몰려들었던 이들 중에는 순수하게 질문만 하러 온 이들도 있지만, 이수혁과 안대훈 이후로 태화 의료원 내과는 우수한 인재의 산실이라는 소문이 울려 퍼진 통에 스카우트하러 온 이들도 있었다.

사정을 이미 익히 잘 알고 있는 아선이나 칠성 측보다는 다른 병원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우창윤 교수가 이렇게 나오자 다소 황당하다는 얼굴이 되어 있었다.

“무슨 그런 눈으로 보고 있어! 나 아빠 맞다니까!”

우창윤은 그런 이들을 향해 한 차례 더 호통을 쳤다.

아닌 게 아니라, 우창윤과 우하윤은 머리숱을 제외하고 본다면 꽤나 닮아 있었기 때문에 이현종의 이수혁 아들 고백 사태 때에 비하면 수긍이 훨씬 빨랐다.

아니, 애초에 이 둘은 진짜 부모와 자식 관계였기에 수긍을 안 해도 문제긴 했다.

“에이…….”

“알겠습니다. 이따 따로 묻죠.”

“에헤이! 여지 남기지 말고 빨리 가!”

하여간에 우창윤은 그렇게 몰려든 이들을 몰아내고 나서야, 서기관을 발견할 수 있었다.

어찌나 기세가 살벌했는지, 서기관도 살짝 쫄아서 돌아가야 하나 싶던 참이었다.

하지만 우창윤은 그를 붙잡았다.

‘서기관! 국가권력!’

칠성의 오성흠과 비교하면 학자의 면모가 더 강한 사람이기는 하지만, 뭐가 되었건 권력에 대한 욕심도 있고 나름의 정치 센스도 있어서 그랬다.

“어…….”

“여기서 뵐 줄은 몰랐는데, 어쩐 일이세요?”

“아…… 하하. 학회 참석 부탁을 받아서요. 저도 일단은 의사기도 하고요……. 연수 강좌는 꾸준히 들으면서 면허 유지는 하고 있습니다.”

“아아…… 그러시구나.”

아까까지 화를 그렇게 내던 사람이 생글생글 웃으며 인사를 하니까 오히려 더 무서웠다.

그러거나 말거나, 우창윤은 말을 이었다.

“그럴 거면 더 편한 학회도 많지 않아요?”

속으로 이상하단 생각을 하면서였다.

말마따나. 학회라고 해서 이렇게 쉼 없이 몰아치는 학회만 있는 건 아니어서 그랬다.

좀 더 사람 수도 많고 편안한 분위기에서 강의를 들을 수 있는 곳도 많았다.

공무원 일을 하고 있으니, 예방의학 관련 학회가 실무적으로도 도움이 더 될 가능성이 있어 보이기도 했고.

“아…….”

그 말에, 서기관은 말끝을 흐리면서 이현종을 바라보았다.

‘이 사람 끗발이 진짜 개미쳤더라고…….’

시선은 이현종을 향하고 있었지만 머릿속에 떠올리고 있는 이는 정치계의 거물 하나와 재계의 거물 하나였다.

보통 둘 중 하나만 움직여도 천지가 진동할 텐데 둘 다 넌지시 뜻을 전해 왔더랬다.

그 학회가 앞으로 한국 의료계를 선도할 가능성이 크니 한번 가 보시라고.

그렇다 해도 요즘 세상에 함부로 강요할 수는 없다 보니 그냥 권유 정도였는데…….

‘보니까 후원사가 미쳤잖아?’

파이자에 두바이 왕자에 싱가포르투자청까지 나서다니.

그 외에 국내 제약사나 해외 제약사의 국내 법인들도 있긴 했지만, 보이지도 않을 지경이었다.

“제가 봤을 때 제일 도움이 될 것 같아서요.”

그런 생각을 하다가, 서기관은 대충 좋게 둘러댔다.

물론 별 소용은 없었다.

우창윤도 이현종에게 당한 바가 있어서 그랬다.

‘무서운 사람이네, 진짜…… 4급 서기관을 꿇려……?’

우창윤은 다시 한번, 역시 이현종에게는 거역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사이 서기관은 우하윤에게 한 발짝 다가가며 본론을 꺼냈다.

“아무튼, 오늘 정말 좋은 강의 들었습니다.”

“음?”

보통 서기관쯤 되는 사람이 강의를 잘 들었다고 하면 좋은 일이란 생각만 들어야 할 터였다.

그러지 않는 게 진짜 이상한 일인데…….

우창윤은 일종의 팔불출이었다.

딸이 엮이면 사람이 조금 이상해진달까?

그중에서도 특히 신랑감 레이더에 뭐라도 잡히면 조금이 아니라 여러 바퀴 돌아 버렸던 전적이 있었다.

수혁을 어거지로 이어 주려 했던 일부터 시작해서, 일일이 열거하려고 들면 사람이 너무 없어 보일 테니 관두는 것이 좋았다.

‘나이는 대략 삼십 대 중반. 우리 하윤이가 이제 29살인데…… 생긴 건 소 도적놈처럼 생겼고…… 이건 감점. 키는…… 흠. 나보다 작네. 이것도 감점. 머리숱은 많네. 이것도 감점…… 아니, 아니지.”

혼자 이상한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는 사이, 이미 성인으로서 당당하게 홀로 선 지 오래인 하윤은 서기관 앞으로 나섰다.

“감사합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혼자 준비한 것은 아닙니다.”

“그럼…… 역시 이현종 교수님이나 신현태 교수님이 도움을 주셨을까요?”

서기관의 눈앞에는 수혁도 있었지만, 안 좋은 기억 때문에 무의식에서 지워 버렸는지 당장 보이진 않았다.

지금도 그때 생각을 하면 아찔할 지경이었다.

시험 문제를 쉽게 내도록 하라는 지시.

어렵기는커녕 단순명료한 지시였음에도 불구하고, 지문을 읽어 보다가 홀려서 하마터면 2년 연속 내과 의사 배출을 억제할 뻔하지 않았나.

올해도 지랄하면 보건복지부에 발붙일 생각도 하지 말라는 소리까지 들었다.

“아, 아뇨. 이수혁 교수님께서 도움을 주셨…… 어, 왜 그러세요. 어지러우세요?”

“으…… 아니, 아닙니다. 으음.”

그때, 이수혁 교수의 얘기가 나오자 머리가 핑 돌았다.

하지만 의대 나와서 행시 보고 서기관까지 올라간 양반이지 않나.

다시 말해 머리가 핑 돌다 말고 팽 하고 돌게 만들 수 있는 능력의 소유자였다.

그는 찰나의 순간에 일의 이해득실을 따져 본 후 말을 이었다.

“강의를 듣다 보니, 당장 국가사업 형식으로 같이 일을 해 보면 좋을 것 같아서요.”

“아…… 효용이 있을 거라 생각하시는 거군요?”

“그럼요. 게다가 팬데믹에 대한 인사이트도 인상 깊었습니다. 확실히 교류가 활발해지는 것 외에 육류 소비 증가나 그에 따른 사육 증가 또한 인수 공통 감염병의 변이 촉진을 일으킬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대단하십니다.”

“그 아이디어는 전적으로 교수님 거예요. 대단하시죠, 정말.”

하윤은 십분 동의한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이면서 수혁을 돌아보았다.

정작 수혁은 다른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이제 수혁도 나름 명사가 되어서 그랬다.

아직 해외 학회에서 인싸가 될 정도는 아니었지만, 적어도 이현종 사단으로 통하거나 이현종 사단에 반감이 없는 이들에게는 인싸 정도가 아니라 핵인싸 수준이 된 지 오래였다.

‘이렇게 보면 진짜 꽤 잘생긴 거 같기도 하단 말이지?’

카메라가 있었으면, 지금 찍으면 잘 나올 거 같단 생각이 들었다.

물론 하윤은 조금 떨어진 곳에서 빛을 반사하는 렌즈를 확인하지 못했다.

안대훈이 이 와중에 사진을 찍고 있을 거란 생각을 어찌한단 말인가.

“그렇군요. 어쨌든. 앱도 만들어 보실 생각이 있으신 거죠?”

하여간 대화는 이어졌다.

하윤도 아직까지는 수혁에 대한 생각을 깊이 이어 나갈 정도로 마음이 동한 것은 아니었기에 전혀 무리는 없었다.

“네, 물론이죠. 원내 예산을 따도 되고…… 사실 이수혁 교수님은 본인 돈으로 할 생각도 있으시더라고요. 아니면 태화전자랑 협업을 할 수도 있고요.”

“아하…… 그것도 국가사업으로 진행해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어차피 무료로 시행하실 거죠? 적어도 사용자에게는?”

“그렇죠. 이런 걸 돈 내고 쓰라고 하면 누가 쓰겠어요.”

“아, 뭐. 그렇긴 하죠.”

서기관은 이어지는 대화에서 한 가지 이상한 점을 느꼈다.

‘돈은 진짜 관심 사항이 아닌 건가……?’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의사들이 이런 식의 일을 한다는 건 생소하기 짝이 없는 종류의 일이었다.

하지만 디지털 헬스케어라는 말이 점차 자리 잡게 되면서부터는 꽤 흔한 일이 되었다.

대학교수 중에 활발히 활동하는 사람치고 아예 아무것도 안 하는 사람이 없을 지경이었다.

자리가 자리다 보니 그런 사람들을 꽤 만나게 되는데, 말은 아니라고 해도 저변에 돈이 아예 안 깔려 있는 사람들은 없었다.

“이걸로 뭔가 예방할 수 있다거나 하면 진짜 의미 있고 재미있을 것 같다고, 그렇게만 말씀하셨어요.”

“그렇군요. 뭐, 그럴 수 있죠.”

지금도 그럴 거라 생각하고 있었다.

눈앞의 어린 의사야 순수할 수 있겠지만, 이수혁은 나이만 고려해서는 안 될 거물이었다.

여전히 정신 못 차리고 까부는 이들도 있는데, 시간이 지나면 거물이 될 사람이 아니라 이미 거물이었다.

그런 사람이 순수할까?

‘그럴 리가.’

그렇지 않다고 해도 괜찮았다.

뭐가 되었든 간에, 이건 될 것 같았으니까.

‘열만으로 감염병을 감시할 수 있단 생각을…… 그것도 지역별로 퍼지는 양상을 감시해서 새로운 질환의 등장을 잡아 낼 수 있단 생각을 감히 누가 할 수 있겠어.’

얼핏 보면 당연한 말일 수도 있지만, 그건 듣고 나서야 떠들 수 있는 말이기도 했다.

발상의 전환을 대체 얼마나, 또 어떤 방식으로 해야 이런 결론에 도달할 수 있을까.

나름 천재는 아니더라도 수재라 생각하던 그는 어쩌면 자신이 범재였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늘 큰 그림을 그리도록 훈련을 받아 온 몸이라 그런지, 오히려 이 발상의 대단함이 더 커다랗게 다가온 탓이었다.

“아무튼, 앱이 되었건 뭐가 되었건…… 실무적인 방향성 제시에 있어서는 제 도움이 필요할 겁니다. 의료기관 협조라는 것도 사실 쉬운 건 아니거든요.”

“아…… 네, 그렇죠.”

의료기관 협조라는 게 말이 좋아 협조지, 로컬 의원 입장에서만 생각하면 그냥 잡일이 느는 것 아닌가.

심지어 대가를 줄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대의를 위한다는 명분만 있을 뿐인데…….

하윤이나 수혁도 이걸 어찌 해결할 지에 대해서는 뾰족한 수를 찾지 못했다.

그런 기색을 단숨에 읽어 낸 서기관은 방금 떠올랐던 아이디어 중 하나 정도만 풀어 줄까 싶었다.

‘뭐…… 얘기해 준다고 해서 나 없이 뭘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서기관은 부담 없이 입을 열었다.

“까라면 까는 곳이 있죠. 군대라고…….”

“군대요?”

“네. 여기는 보험 체계도 달라요. 청구 체계가 다르다고 해야 하나……? 하여간, 지침을 바로 내릴 수 있습니다.”

“보복부 소관이 아니지…… 않아요? 저는 군대를 안 다녀와서 잘 모르겠지만요.”

“국방부 소관이지만, 뭐가 되었건 진료 지침에 있어서는 저희 말을 듣죠. 아시잖습니까? 공무원들은 책임지는 걸 제일 싫어한다는 거. 군인들은 그 정도가 더 심해요. 괜히 우리 말 안 들었다가 무슨 일이라도 나면 어쩌려고요. 게다가 윗사람들은 지시만 내리면 되는걸요?”

약간 사악해 보이기까지 하는 미소를 지어 가면서였다.

그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던 하윤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그럼 반발이 있지 않을까요?”

그 말에 서기관은 피식 웃었다.

“군대는 진짜 까라면 까야 합니다. 청진기 들고 고장 난 보일러의 어디가 고장 난 건지 찾으라고 해도 찾아야 해요.”

“네? 설마요.”

“설마가 사람 잡죠.”

서기관 본인이 했던 짓이다 보니, 미소는 더욱 생생해져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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