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969화 (969/1,303)

969화 이렇게 바로? (1)

김인수는, 그러니까 김인수 대위는 학회가 끝나자마자 일단 부대로 복귀했다.

집에 들를까 싶기도 했지만…….

-너 공부는 하고 눕는 거니?

모친의 잔소리가 떠오르는 통에 절로 몸서리가 쳐졌다.

아니, 이제 아들 나이가 34살이고, 심지어 전문의까지 딴 마당인데 공부라뇨?

공부 그거 다 알아서 해서 대학도 가고, 의사 면허도 따고, 전문의 자격증도 땄습니다만?

심지어 수능 보는 날짜를 착각해서 제주도에 계셨던 데다가, 여행 끝나고 와서 ‘얘, 세상엔 수시라는 것도 있다더라’ 했던 사람이 뉘시더라…….

‘뭐…… 그게 다 날 걱정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말이라는 건 알지만…….’

하여간 한번 지랄했더니 이제 공부 얘기는 좀 줄기는 했는데, 부모의 자식 걱정이라는 건 끊길 수 없는 모양이었다.

-얘, 너 만나는 사람은 있니?

환장 돌아가실 지경이었다.

있겠습니까?

상식적으로?

남들이 볼 땐 어떨지 모르겠지만, 김인수는 진짜 최선을 다해서 살고 있었다.

사실 3년 차 때는 슬슬 공부 좀 놓고 뒷방 노인네가 되어서 놀아 볼까도 싶었지만, 그때 하필이면 괴물 새끼 하나가 들어와서 마음에 불을 지펴 버렸다.

이수혁…….

그 자식 때문에 3년 차마저 공부하다가 날려 버렸다.

‘원래는…… 군의관 3년 중에 1년 정도는 놀려고 했었는데 말이지…….’

자리에 누웠던 김인수는 어느새 몸을 일으켜 BOQ(독신자 숙소)에 자리한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여느 군의관 책상이라면 일단 오색 찬란한 게이밍 컴퓨터가 돌아가고 있어야 할 테지만, 이곳에 있는 건 사무용 PC뿐이었다.

거기에 더해 책장에는 각종 교과서와 논문, 그리고 데이터를 끄적여 놓은 서류들만 그득했다.

개중 몇몇 종이는 나름 빳빳하게 코팅까지 해 두었는데, 태반은 군에서 받은 표창장이었다.

감사 편지들도 더러 있었다.

당연하게도 훈련병들이 보내 온 것들이었다.

-이게…… 이게 훈련병들 숙소라고요……?

김인수의 첫 부임지는 진주 공군교육사령부.

공군으로 입대하는 훈련병들은 죄다 그곳으로 몰리게 되어 있었는데, 첫날부터 환자가 너무 많았더랬다.

첫날이라 그런가 싶어서 약을 처방하고 또 처방해도 효과가 없는 통에 이상하다 싶어 방문했던 훈련병 숙소는, 말이 숙소지 인세의 지옥이었다.

방 하나에 수십 명을, 그것도 갑자기 사회에서 뚝 떼다가 함부로 굴리기 시작한 수십 명을 몰아 놨으니 아프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한 일 아니겠나?

심지어 제대로 된 냉난방 시설도 없었고, 화장실 근처에서 은은히 풍겨 오는 똥내로 미루어 짐작해 보면 막힌지도 꽤 된 듯했다.

-영창 아니고요?

김인수도 자원한 게 아니라 징집되어 온 마당이긴 했지만, 명색이 장교 아니던가.

더군다나 괴산 군사학교는 비교적 최근에 지어졌던 터라 시설이 굉장히 좋았다.

각오하고 들어갔다가 ‘어라?’ 했을 정도로.

‘그 자식들 그냥 두고 볼 수가 없어서…… 진료만 하느라 2년을 통으로…….’

뒤지게 일만 했더랬다.

진짜로.

그 결과 수도 병원으로 올 수는 있었는데, 오고 나서는 당장 전역이 코 앞이라 논문 쓰는 데 정신이 없었다.

애초에 수도 병원에는 환자가 많기도 많았고.

하여간 다른 군의관들에 비하면 지나치다 싶을 만큼이나 열심히 해 온 마당인데, 여전히 통합진료센터는 엄두가 안 날 정도로 대단하게만 보였다.

‘포기할 수는 없지.’

예전의 그였다면, 어쩌면 포기했을지도 몰랐다.

아무리 노력해도 닿을 수 없는 경지라는 게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지금이라고 해서 그 생각이 아주 변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번에는 안대훈이 그에게 불을 지폈다.

머리털과 실력을 바꾼 사나이.

뭣도 모르는 놈들은 조롱하듯 말하겠지만, 실제로 안대훈을 아는 사람이라면 마냥 웃음만 나올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녀석의 실력은 이제 그야말로 ‘진짜’였으니.

‘이번 발표도 거의 교수급…… 아니, 아니야. 완전 교수 그 자체였어. 병원에서도 날아다닌다던데…….’

외모 덕도 있기는 할 터였다.

어느 누가 그를 이제 갓 서른 줄에 들어선 사람이라 여기겠나.

마흔이라고 해도 노안이라는 얘기를 들을 수 있는 얼굴이었다.

허나 실력이 어디 외모에서 온다던가.

‘녀석이 했다면, 나도 한다.’

이수혁?

수혁이 정도를 꿈꾸는 건 언감생심,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허나 안대훈만큼 노력한다면…… 그렇게 한다면 절반은 따라갈 수 있지 않을까?

달칵.

물론 그렇다고 해서 머리카락을 잃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에, 김인수는 예방적으로 처방받아 온 약을 먹으며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또 치열한 일상을 보내기 시작했을 때, 회의가 열렸다.

나름 3년 차 군의관이고, 또 윗사람들이 볼 때 그만한 인물도 없다는 평을 듣고 있는 김인수였던 만큼 내과 대표로 회의에 들어갔다.

여느 회의가 다 그렇겠지만 군대 회의라는 건 정말 알맹이를 찾아보기 힘든 수준인데, 오늘은 좀 달랐다.

“일선 부대 군의관까지…… 이 앱을 필수로 깔고, 열 나는 환자를 보면 기록을 하도록 합니다. 기록 대상은 군번, 이름, 성별, 나이입니다. 모쪼록 우리 수도 병원에서 먼저 모범을 보이도록 합시다.”

우하윤의 발표를 현장에서 들었던 김인수였던 만큼, 저 앱의 취지는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군대라는 곳이 까라면 까야 하는 곳이라는 것도 잘 알았고.

하지만…….

장교도 그럴까?

말뚝 박은 사람들이야 그렇겠지만, 단기로 온 사람들에게는 씨알도 안 먹힐 소리일 수 있었다.

당장 김진용만 떠올려봐도 3년 내내 개판만 치고 있지 않던가.

“저…….”

이전의 김인수였다면 속으로만 생각하고 있었을 터였다.

하지만 그는 이제 곧 통합진료센터에 들어갈 몸이었다.

의학을 선도할, 그야말로 의학의 미래의 한 축을 책임질 사람이 된다 이 말인데, 침묵만 지키고 있어서야 되겠나?

‘군대에…… 특히 훈련병 있는 부대에 신종 전염병이 번진다면…….’

김인수는 저도 모르게 공군교육사령부에서 봤던 훈련병 숙소를 떠올리고 있었다.

밖에서는 전염병의 ‘ㅈ’ 자도 안 나오는 시기에도 그곳에서는 별 이상한 병이 다 번졌다.

심지어 연 단위로 보면, 바이러스성 폐렴으로 사망하는 케이스마저 심심치 않게 관찰될 지경이었다.

“아, 김 대위. 의견 있나?”

평소 개판 치던 놈이었다면 회의에서 손을 들건 말건 신경 쓰지 않았을 터였다.

허나 김인수는 장기 근무를 예정한 군의관들조차 리스펙트할 정도로 성실한 사람이었다.

그에 더해 똑똑한 사람이기도 했고.

“네. 그 앱에 기록하는 거…… 혹시 의무기록으로 분류됩니까?”

“응……? 생각 안 해 봤는데.”

김인수는 생각 없어 보이는 상관의 말에 남몰래 한숨을 쉬었다.

‘의무 기록은 의료인만 할 수 있고…… 그렇게 되면 군의관이 해야 한다는 건데…… 하겠나?’

당장 3년 차 군의관들, 그러니까 옷 벗고 나갈 애들은 바로 짬 때릴 게 뻔했다.

그렇다고 1년 차, 2년 차들이 말을 들을까?

당장 무슨 사태가 있는 것도 아니지 않나.

그냥 군대에서 또 무슨 수상한 잡일이나 만들었다고 여길 게 뻔했다.

평생 말 잘 듣는 모범생으로 살아온 사람들도 군복만 입혀 놓으면 반골 기질이 생기는 건지, 훌륭한 반항아들이 되어 버린 군의관들에게 이걸 기대하는 건 무리였다.

“아마 군의관이나 간호장교의 업무가 될 거 같은데…… 일단 간호장교가 있는 일선 부대가 거의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계속해 보게.”

“저도 단기 군의관이지만…… 병원 소속 군의관이 아닌 경우엔 본인 전공과와 관계없이 모든 진료를 감당해야 하는 경우가 많고, 이로 인한 피로도를 호소하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그건 해결 방안이 없지 않나.”

대부분이 간과하고 있는 사실이 있는데, 이비인후과 전문의의 내과적 지식은 이제 갓 의과 대학을 졸업한 일반의보다 못하다고 봐도 무방할 지경이었다.

이수혁 같은 괴물을 제외하면 사람의 머리 용량엔 한계가 있기 마련이고, 한쪽으로 방대하고도 깊은 지식을 쌓다 보면 다른 분야의 지식은 휘발될 수밖에 없어서 그랬다.

그러나 군대는 그 특성상 전문의의 과를 생각할 수가 없지 않겠나?

안과 전문의가 골절 환자를 봐야 하고, 성형외과 전문의가 탈구 환자를 봐야 하는 게 현실이었다.

“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단기 군의관들이 자체적으로 단톡방을 만들어 서로 문의하면서 진료를 보고 있습니다. 실제로 단톡방 만들어진 이후로 오진 사례가 줄었다고 알고 있습니다만…… 여하간에 부담이 되는 건 사실입니다.”

“그건…… 그건 뭐 그럴 수 있지. 그래서?”

이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방안을 구상했지만 정작 효과를 본 건 메신저가 활성화된 것, 그리고 무엇보다 단톡방이란 게 생긴 이후였다.

김인수는 이것도 참 웃기는 일이라면 웃기는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말을 이었다.

“이에 이…… 앱 이름이…….”

“열난다.”

“아, 네. 열난다…… 이거 공식 이름인 거죠?”

“어, 그렇네. 이수혁 교수? 그 사람이 지었다던데.”

그래, 수혁이도 하나 못 하는 게 있지.

작명.

‘거들다’를 지은 장본인이니, ‘열난다’를 지었다고 해도 이상하게 생각할 건 없었다.

“아, 네. 아무튼…… 이 앱 기록을 의무기록으로 규정한다면 군의관들은 잡일 하나 더 늘었다고 생각할 겁니다. 앱의 취지가 제대로 달성되려면 기록이 정확하게 되어야 할 텐데…… 잡일로 치부된다면 그럴 수가 없겠죠.”

“으음…… 그렇긴 하지.”

“팬데믹 사태나 그에 준하는 감염병 사태가 벌어지고 있는 마당이라면 얘기가 다르겠지만, 완전 예방적으로 도입하는 것이니만큼…… 협조를 기대하는 건 어려울 겁니다. 명령에 협조라는 말을 쓰는 게 군인정신에 위배되긴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렇다는 말씀입니다.”

“그렇지. 묘수라도 있나?”

전시라면 군의관 아니라 군의관 할애비가 와도 명령에 복종할 터였다.

하지만 지금은 전시가 아니지 않나.

무엇보다 자원해서 온 사람이 단 하나도 없었다.

군 면제에 해당하는 동기가 대학 병원에서 커리어를 쌓는 동안 군에 끌려와 썩어 간다고 생각하는 이가 태반인 것이 현실이었다.

기분 나쁜 일이겠지만, 어쩌겠나.

그게 현실인 것을.

“의무기록이 아니게 되면 의무병에게 짬 때릴 수도 있겠죠.”

“짬 때린다니. 무슨 말을 그렇게…….”

“그리고 관리 감독의 의무만 주게 된다면…… 그 정도는 하지 않겠습니까?”

“그럼 의무병은?”

“이건 앱이지 않습니까? 스마트 폰을 만지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는 협조를 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흐음…… 으으음…… 뭐, 의무기록은 아니긴 하지?”

그렇게 얼렁뚱땅 앱 기록의 주체가 모호해져 버렸다.

워낙 흐지부지 넘어가게 되었다 보니, 김인수도 상관도 이 일이 장차 어떤 일로 이어지게 될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적어도 나비 효과라는 단어는 이들의 머릿속에 아예 있지도 않았다.

“흐으음…….”

그 시각, 수혁은 당연하게도 병원에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센터장 연구실에 있었는데, 이현종이 아빠이니만큼 이곳에서 노닥거리는 것에 전혀 거리낌이 없어서 그랬다.

“왜?”

이현종은 아예 책상까지 들고 와서 앉아 있는 아들에게 물었다.

쟤가 저렇게 흐으음 할 때는 뭔 일이 있는 게 틀림없어서 그랬다.

“아니, 별건 아니에요.”

수혁은 그 말에 손을 저으며 답했다.

“두바이 병원에서 매달 메르스 보고가 되는 게 있는데…… 이번에 그 건수가 두 배가 되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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