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972화 (972/1,303)

972화 감염 대가 신현태 (2)

잠시 머리 하얀 리치킹이 생각나는 순간도 있었지만…….

하여간, 학회장은 멍한 얼굴로 코앞에서 반란을 일으킨 동종헌 교수를 바라보고 있었다.

‘미래를…… 계승해?’

저 새끼가…….

저게 미쳤나.

뭐 이런 생각만 드는 건 아니었다.

‘그 미래에 나도 함께하면 안 되나?’

암만 봐도 뭔가 될 것 같지 않나.

이수혁 교수의 나이를 보면, 차차기라고 해 봐야 삼십 대 중반인데…….

원래 같으면 위원 정도로 박아서 일이나 잡일이나 시켜야 할 나이…….

허나 이사로 발탁한다고 해서 반발이 있을까?

지금 당장 한다고 해도 신현태, 이현종 등등의 미친 괴물들이 알아서 총탄을 막아 줄 텐데 4년 뒷면…….

‘4년 뒤에 저 양반들이 어디까지 가 있으려나……?’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실력이 딱히 늘지 않는다고 해도 마찬가지였다.

그렇지 않나?

지금 이 실력대로, 그대로 머무른다 해도 명성은 흘러가는 시간에 비례해서 어마어마하게 쌓이게 될 터였다.

“학회장님은 늦었죠.”

그렇게 눈알을 데구루루 굴리고 있으려니, 동종헌이 안쓰럽다는 얼굴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맞는 말이었다.

늦었지.

나이만 말하는 건 아니었다.

그렇게 치면 이현종은 뭐, 진즉에 의학의 미래가 아니라 과거의 망령이 되었겠지.

하지만 그가 지금껏 학회 내에서의 자리만을 위해 달려온 세월이, 그를 오래전부터 그렇게 만들어 버렸다.

“일단 좌장이나 잘 한번 해 보세요. 그럼 말씀이나 드려 볼게.”

“어…… 그래. 고맙네.”

“고맙긴요. 미우나 고우나 아직 집행부도 한 번 더 남았지 않습니까.”

“그, 그래.”

학회장.

되기 전까지만 해도 이게 내과 의사로서 쌓을 수 있는 커리어의 끝이라 여겼더랬다.

실제로 대부분의 내과 의사에게는 그게 맞기도 했다.

물론 개원한 의사들에게는 전혀 다른 길이 보이겠지만, 교수를 하기로 마음먹었다면…….

허나 되고 나서 보니, 사람 마음은 간사하기 그지없다는 게 바로 이해가 되었다.

되자마자 다음 길이 보였다.

‘학회장 임기라고 해 봐야 2년…… 이걸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고, 이 집행부를 기반으로 다음으로 넘어가야 하는데……,’

그 길이란, 다름 아닌 이현종이 걷고 있는 길이었다.

대표적인 유관학회인 심장내과 학회장은 물론이거니와 아시아태평양 학회장까지 하더니만, 종래에는 아예 통합진료의학회라는 새로운 학회를 만들어 초대 학회장을 하는 중이지 않나.

중간엔 원장도 했고.

그것도 우리나라에서 제일 크다는 병원의 원장.

‘저 양반이 저거…… 막무가내로 보여도 정치력이 어마어마하다니까?’

그렇지 않고서야 어디 실력 하나로 저렇게 되었겠나?

여기저기 긴 팔을 뻗어 놓은 게 틀림없었다.

그중엔 태화와 정치권도 있겠지.

그래, 일단 붙어먹자!

학회장은 그렇게 생각하며 자리에 앉았다.

애초에 메인 컨퍼런스 룸인 데다가, 학회 첫날 개회식 바로 다음 연제다 보니 사람은 우글우글했다.

신현태뿐만 아니라 대다수의 거물급 교수들의 발표를 여기에 몰아넣어서이기도 했다.

땡.

그래서, 종을 치며 생각했다.

여기에 경품도 끼얹게 되면 어떻게 될까?

일단 사전에 얘기를 못 들은 우리 집행부…….

열 명 넘는 이사진이 와서 난리를 치겠지?

원래 같았으면 이 때문에라도 주저했을 테지만, 동종헌에게 미래를 계승한다는 말을 들어서 그런지, 어쩐지 멀쩡히 현재를 잘살고 있는 그들이 모두 과거의 인물처럼 느껴지고 있었다.

“자, 모두 자리에 착석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번 세션 끝나기 전에 경품 추첨이 있을 예정이니, 꼭 참석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경품에는 아이패드 프로, 엑스박스 시리즈 X, RTX 3090ti…….”

그렇게 마음 단단히 먹고, 아까 동종헌 교수가 전달해 준 경품 목록을 읽어 내려가는데…….

‘뭐야, 이거?’

우리 기껏해야 10만 원권 준비하지 않았나?

교수라 세상 물정에 통달하지는 못했다지만, 그래도 아이패드 프로가 얼마나 비싼지까지 아예 모르는 건 아니었다.

그 뒤에 읽은 건 대체 뭔지도 모르겠지만, 하나같이 장난이 아닌 듯했다.

어떻게 알았냐?

“와…….”

“미쳤다.”

“어디 후원받은 거래?”

“저거 딸랑 하나씩 아닐까?”

“야, 하나씩이어도! 그래픽 카드는 요새 돈 있다고 구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하긴.”

“야, 니들은 나가. 내가…….”

일단 레지던트들은 난리가 났다.

아까까지만 해도 어떻게 하면 이 지겨운 시간에 교수들한테 안 걸리고 제약회사 부스로 튈까 고민하던 놈들이었지만, 무려 다른 이들을 밀치면서까지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그중엔 학회장 병원 소속 놈들도 있었는데, 얼마 전 환자 개판으로 봐서 징계받았던 놈도 끼어 있었기에 더 느낌이 확 왔다.

“상기…… 세 품목은 각기 3명씩 추첨할 예정입니다. 에…… 또.”

3명씩?

밑에 더 읽어 보니까 각기 가격만 100만 원을 훌쩍 넘어가는데?

그럼 여기에만 천만 원 넘게 쑤셔 박았다는 말인데…….

그 말은 곧 학회 집행부 예산 절반이 경품에…….

“호텔 신라 뷔페 식사권 2인 쿠폰이 각 10매, 반얀트리 숙박권 5매…….”

아니, 전부인가……?

학회장이 황당하다는 얼굴로 동종헌 교수를 돌아보았다.

동종헌 교수는 그 시선을 받고선 그대로 이현종을 바라보았다.

‘아…… 미래에 돈도 포함이야?’

그럼 진짜 너무 좋잖아.

하긴 이현종, 이수혁 부자가 떼돈 만진다는 얘기는 여러 번 듣긴 했더랬다.

단순히 월급이 세다는 얘기가 아니라, 후원자들이 장난이 아니라지 않던가?

이것도 아마 교수 월급에서 한 건 아닐 터였다.

두바이 왕자 쌈짓돈이겠지?

그렇게 생각하니까 소소하게 느껴졌다.

“와아아아!”

“우아아아아!”

물론 학회장 생각이 그렇다는 거지, 듣는 사람 생각은 전혀 달랐다.

컨퍼런스 룸은 그야말로 미어터지는 수준에 이르렀다.

그렇게 꽉 찬 사람들을 둘러보며, 학회장은 말을 이었다.

“그럼…… 첫 번째 연자로 태화 의료원 감염내과 신현태 교수님을 모시겠습니다. 신현태 교수님은 감염내과 학회장을 역임하시고, 현재는 태화 의료원 원장으로…….”

제일 사람이 많이 몰렸을 때, 신현태의 이름이 불렸다.

“후우.”

신현태는 나지막이 한숨을 내쉬곤 몸을 일으켰다.

참, 살다 보니 별일이 다 있었다.

학회 발표 하나 한다고 돈 3천을 태우다니.

-그 3천으로 국민의 생명을 지킬 수 있다면, 싸게 먹히는 거 아닐까요?

김다현 회장의 말이었는데…….

나중에 정치라도 하고 싶은 건가 싶을 만큼이나 단호한 말투를 구사하고 있었다.

물론, 이제 세상이 많이 바뀌어서 성공한 기업인이 정치 따위를 하려나 싶긴 했지만, 하여간.

“안녕하십니까, 소개받은 신현태입니다. 오늘 제가 발표할 주제는…….”

신현태는 보무도 당당하게 단상에 올라 좌중을 바라보았다.

사람이 많긴 하지만, 절대다수는 강의보다 경품에 관심이 있어 보였다.

괜찮았다.

휩쓸려 온 교수들 중 감염내과 교수들이 꽤 보였으니까.

애초에 저들 중 신현태의 부탁을 저버릴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팬데믹 사태에 조기 대처하는 방안으로써의 앱 활용입니다.”

신현태는 그렇게 몇몇 사람들과 시선을 마주친 후, 말을 이었다.

발표를 잘하네 어쩌네 하기도 좀 민망할 정도로 짬밥이 쌓인 사람이지 않나.

원래도 그랬는데 원장 노릇 하면서는 더더욱 그렇게 됐다.

남들 앞에서 얘기하는 게 직업이 된 사람이잖아?

심지어 김다현을 비롯한 모두가 말 안 듣던 이현종에게 쌓였던 한을 풀기 위함인지 뭔지, 자꾸 이런저런 회의에 끼워 넣어서 더 혹독한 훈련을 받은 몸이었다.

“팬데믹이 앞으로 늘어갈 거란 예측은 진부하죠. 원인에 대해서야 여전히 여러 논의가 있을 수 있겠지만, 늘어갈 거란 예측을 반박하긴 어렵습니다. 임상의에게 중요한 것은 여기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일 텐데…… 안타깝게도 우리에게는 별 시간이 없습니다.”

신현태는 후 하며 의도적인 한숨을 쉬고는 도표를 띄웠다.

하윤이 바로 지난주에 띄웠던 도표를 원형으로 만든, 아주 약간의 수정이 들어가 있는 도표였다.

동시에 여기에 있는 모두를 아니, 감염병과 연관이 있는 모두를 소름 돋게 할 만한 도표이기도 했다.

“저거…….”

“저거 날짜 저번 주 아니야?”

도표엔, 후베이성 얘기가 들어가 있었다.

백강혁이 보내 줬을 때도 신빙성이야 충분했지만, 지금은 김다현 회장의 지시로 후베이성, 그중에서도 우한시 근방으로 조사가 들어간 지 꽤 된 참이었다.

교차 검증은 되었다.

“과거의 팬데믹 사태와 준펜대믹 사태는 차치하고…… 바로 저번 주 중국에서 보고된 원인 미상의 폐렴에 대해 보죠. 아직 역학 조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1차 감염자가 누구인지는 확실치 않습니다.”

이미 이 폐렴은 2차 감염을 일으키고 있었다.

어떤 검사에서도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는데, 그 말은 곧 신종 감염병이란 얘기가 되었다.

“중국 당국에서 공식 발표를 하진 않았지만, 여러 자료를 취합해서 보면 2차 감염이 일어났다고 추정이 가능한 상황입니다. 보시면 근방 병원에서 시행한 검사 목록입니다만…… 어느 것 하나 걸리는 것이 없죠.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질환이 아니라는 겁니다.”

“어…….”

“이게 지금…….”

“이게 뭐야?”

발표가 아니라 섬뜩한 경고라도 하는 느낌이었다.

대다수는 이게 현실이 아니라 가상의 사건을 얘기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마저 받고 있었다.

왜냐?

사실 중국이라고 하면 지척인데 저 난리가 벌어지고 있다면, 알아야 정상 아닌가?

당국이 통제하고 있다는 식으로 말을 하는데…….

21세기에 언론 통제가 말이 되나……?

그게 가능하긴 하고?

‘그거야 나도 모르지.’

신현태가 알아야 할 일인가?

그냥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을 뿐이었다.

물론 2차 감염이 벌어졌다고 해서 반드시 3차 감염으로 이어지는 건 아니었다.

또 3차 감염으로 이어진다고 해서, 반드시 팬데믹 사태가 일어나는 것도 아니었고.

앞으로 팬데믹 사태가 늘어날 거란 예측을 하고 있다지만, 그건 그 가능성을 논하는 것일 뿐이지 않나.

개별 사건으로 파고들어 보면, 팬데믹 사태라는 게 그렇게 쉽게쉽게 막 일어나는 건 아니었다.

“아직까지는 공식 발표가 없긴 하지만…… 아무튼, 가까운 곳에서 팬데믹의 씨앗이 자라나고 있다는 것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을 겁니다. 이번엔 그냥 이렇게 넘어갈 가능성이 크겠죠? 하지만 앞으로도 운이 좋을 거라고 기대하면서 지켜보기엔…… 이제 이런 씨앗이 도처에서 자라기 시작할 겁니다.”

때문에, 신현태도 이제 막 뭐가 어떻게 될 거란 말을 하진 않았다.

조심해야 한다고 말할 뿐이었다.

“반드시 대비해야 합니다. 그냥 팬데믹이 이렇겠지, 저렇겠지 하는 탁상공론에 그칠 것이 아니라…… 보다 제대로 된 연구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아직 현재 경제 체제에 팬데믹 사태가 어떤 영향을 미칠지, 또 우리의 의료 체계가 어디까지 감당할 수 있을지 하나도 아는 게 없어요. 이걸 해내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지금부터 제가 말씀드리고자 하는 방안은 바로 그 시간을 조금이라도 벌기 위한 방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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