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3화 감염 대가 신현태 (3)
전반적인 얼개 자체는 하윤이 했던 말과 크게 다르진 않았다.
워낙에 발표를 잘했으니 당연한 말이었다.
하지만 때론 메시지보다 메신저가 더 중요할 때도 있는 법이지 않나.
평생에 걸쳐 아무것도 일궈 낸 것이 없는 사람이 노력하면 다 된다는 소리를 하는 건 개소리로 치부되겠지만, 맨손에서 일어나 업적이라 할 만한 것을 세운 사람이 한다면 그건 명언이 되는 것과 정확히 같은 이치였다.
“감염병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백신과 치료제가 있어야겠지요. 하지만 그게 뭐 하늘에서 뚝 떨어진답니까? 시간과 돈이 필요합니다. 돈이야 정치인들이 마련할 일이라고 해도…… 시간을 버는 건 우리 내과 의사들이 도와야 합니다.”
게다가 처음엔 쭈뼛대던 것과는 달리, 신현태는 한 사람의 선동가라도 된 것처럼 주먹을 이리저리 휘두르며 외쳐 대고 있었다.
“설마 아까…… 쟤 잘 때 귀에다 그거 들려준 탓일까……?”
“모르겠는데…… 어떻게 보면 닮지 않았어요? 콧수염을 이렇게 대입해 보면.”
“아. 소름.”
“저도.”
한 시대를 망가뜨려 놓은 데 더해 온 세상을 불태울 만한 전쟁을 일으켰던…….
그조차 악으로 향하는 길을 선의로 포장할 수 있었는데, 정말 빛으로 나아갈 길을 포장하는 건 아무래도 더 쉽지 않겠나?
신현태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게 된 것도 우연은 아니었다.
콧수염을 달아 주면 거기에 그치지 않고 손을 45도쯤 올려서 경례도 하게 될 것 같기는 한데…….
“대단한 것을 요청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이 앱을 깔고, 열 나는 환자가 왔을 때 표시만 해 주십시오. 의료 기기로 분류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기록의 주체는 누가 되었건 간에 상관없습니다. 그저 몇 줄 적어만 주시면 됩니다. 그것으로 우리 대한민국만큼은 팬데믹 사태가 발생할 때 그 사태가 번지는 것을 조금이나마 지연시킬 수 있을 겁니다.”
방역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
추적?
그것도 물론 필요하긴 했다.
하지만 추적을 하기 시작한다는 건, 이미 팬데믹을 일으키는 주체가 무엇인지 명확해진 후라는 거 아니겠나.
무엇보다 중요한 일은 역시나 정체 모를 적이 나타났다는 것을 인지하는 것, 그 자체였다.
“발열 환자가 어디서 어떤 속도로 번지고 있는지 알아내는 것. 이것만으로도 우리는 더 안전해집니다.”
이렇게만 해도 역학 조사마저 가능해지지 않나.
공통점을 찾기도 수월할 것이고.
그러다 보면 원인도 찾을 수 있을 터였다.
최소한 어디를 어떻게 틀어막아야 할 것인지도 알게 될 테지.
그 누구보다도 지금 말을 꺼내고 있는 신현태가 그렇게 믿고 있었기 때문에, 발표는 진정성 그 자체였다.
‘으음…… 후베이성…… 저거는 공갈이라고 쳐도…….’
‘확실히…… 별로 행정 소요가 있을 것 같진 않아.’
‘문제는 저거 수가가 없을 거라는 건데…….’
‘사실 저 정도면 그냥 발열 환자가 알아서 하는 게 제일 낫지 않나?’
벌써 여러 교수가 진심으로 해당 사안을 고민하기 시작하게 되었을 정도였다.
아무래도 통합진료의학회에서 같은 말을 했을 때와는 좀 느낌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
핫하긴 하다지만 아직까지는 잡지식 쌓으러 간다는 느낌이 더 강한 곳인 데 반해, 여기는 일단 온 김에 뭐라도 할까 싶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태반이었다.
그 ‘뭐라도’에 공부보다는 인맥 쌓기나 제자 일자리 청탁이 주를 이룬다는 게 문제긴 했지만…….
“이거 그냥 이렇게 깔면 됩니까?”
“응? 으응. 로컬에 있는 제자들한테 많이 좀 얘기해 줘. 아무래도 이게, 알잖아? 식별되기 전의 감염병은 대개 1차에서 묻히니까.”
“그렇죠, 아무래도. 근데 1차 진료 보는 친구들이 발 빠르게 나서 줄지가 의문인데…….”
“결국, 팬데믹이 터지고 나면 의료기관 이용률 전체는 떨어질 거라는 분석이 있어.”
“네에……? 환자가 느는 게 아니라요?”
“대다수의 나라는 그럴 텐데, 우리나라는 의료 체계상 경증 환자들도 병·의원 이용률이 높잖아. 근데 팬데믹 터져 봐라. 누가 병원을 가? 특히 1차 병원은 갔다가 괜히 옮으면?”
“아…… 그렇네. 이 논리로 겁 좀 줘야겠다.”
세션이 끝나고 점심시간이 시작되었을 무렵에도, 신현태는 주변에 몰려든 사람들에게 에워싸인 채였다.
이런저런 문답이 오가고 있었는데 태반은 건설적인 것들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감염내과 사람들에게 이것보다 더한 떡밥이 있겠나.
세상에!
팬데믹이라니!
근현대 의류의 역사를 보면, 상하수도 설비를 포함해 비누, 항생제 그리고 현대화된 의료기관 등등 하나같이 감염병과의 전쟁을 치러 온 과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않나.
말 그대로 감염병은 작살이 나고 있었다.
옆 동네 기생충학보다야 사정이 좀 낫다고 하지만, 이쪽도 얼마 지나지 않아 그 꼴이 날 거란 전망도 있었다.
“그건 그렇고 후베이성…… 그건 얼마나 신빙성 있는 자료예요? 저는 검색해도 못 찾겠는데.”
“신빙성 있는 자료지. 태화는 벌써 출장 제한 들어갔어.”
“네? 후베이성?”
“응.”
“거기 뭐가 있어서 출장을 가요?”
“나라고 아나……. 하여간 그렇대. 교차 검증해 본 모양인데…… 당국에서 통제가 심해서 많은 건 알아내기가 어렵대. 하지만 원인 미상의 폐렴이 번지고 있는 건 맞아.”
“어……. 그건 좋지 않은데.”
팬데믹 사태가 터진다는 건 다시 말해 감염내과 떡상의 시기가 온다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그래서 다들 들뜬 것이긴 한데…….
그렇다고 마냥 들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역사가 그들에게 팬데믹이라는 질환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려 주었기에 그랬다.
심지어 이 자리에 모여든 감염내과 의사들은 한결같이 그에 대해 꽤 열심히 공부해 온 사람들이었다.
“홍콩은…… 사스를 정말 최선을 다해 막았어.”
“그래, 우리는 그에 대해 일정 부분 빚졌다고 봐도 무방하지.”
수백 명의 의료진이 죽었다.
단순히 그 때문이 아니라, 홍콩은 그들의 행정 능력을 거의 총동원하다시피 해서 그 위기를 막았다.
다시 말해 다른 나라에서 그에 대해 대비할 수 있는 시간도 벌어 주었다.
아차 하는 순간 스페인 독감 사태가 재현될 수도 있었다는 게 중론임을 감안하면…….
빚졌다는 말도 과언은 아니었다.
사스는 그 치명률과 전염력 모두 스페인 독감 그 아래가 아니지 않나.
세상을 불태웠던 1차 세계대전의 사망자보다 스페인 독감으로 인한 사망자가 더 많았다는 걸, 감염내과 의사들은 잊을 수 없었고 잊어서도 안 되었다.
“이 폐렴에 대해서는 그럼 아무 정보가 없어요?”
“네. 그냥 이런 게 돈다…… 심지어 그것도 현지에서나 도는 썰이지, 밖에서는 중국 사람도 몰라요.”
“아니…… 이러면 이거.”
“스페인 독감의 초기 대응과 딱히 다를 게 없죠.”
“그럼…… 이거 이럴 때가 아니라…… 학회 차원에서 뭐라도 더 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뭘 더 해요?”
신현태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 꺼낸 이를 돌아보았다.
이제 보니 감염내과 학회 학술이사였다.
그래 봐야 비난하는 투였으면 감히 아무 말도 못 하고 짜져야 할 만큼의 연배 차이가 있었으나, 신현태의 평소 인품도 그렇거니와 지금 말투도 진짜 의견을 묻는 것이었기에 대화는 끊김 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 뭐 학회에 얼마 안 되지만 예산이 있지 않습니까?”
“있긴 하겠죠?”
“네. 어차피 이거 앱이 공짜고 제가 지금 보니까 진짜 아무 광고도 안 붙고…… 누가 만든 겁니까, 이거?”
“아, 우리 수혁이랑 그 제자.”
“아아, 그렇군요. 그럼 한동안은 적어도 아무것도 안 붙겠네요?”
“모르겠는데…… 그럴 거 같긴 해요.”
신현태는 조카 수혁을 떠올렸다.
녀석이 돈을 쓰던가?
쓰긴 썼다.
누구 사 줄 때.
가령 애들 밥이나……
아니면 자기 넥타이 정도?
그건 지금 버는 돈으로 충분할 정도가 아니라 차고 넘쳤다.
“그럼 이거 라디오 광고라도 돌리죠.”
“라디오……?”
“네. 제가 오전 라디오 나갈게요. 어차피 나와 달라는 데는 많아요. 원하는 말을 좀 해 줘야 하긴 하겠지만……?”
“그거 제일 싫어하는 일 아니었나?”
“근데 이건 해야죠. 아니, 당장 옆 나라에서……! 이거 만약 사스 같은 거라고 가정해 보세요. 하다못해 메르스라도.”
“큰일이지, 진짜.”
메르스는 치명률이 워낙에 높다 보니 널리 번지기 어렵다는 면에서는, 감염 관리하기에 아주 빡센 놈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특징적인 증상이 있고 또 아프면 어디 돌아다니기도 어려울 정도로 확 아프지 않던가.
그에 비해 사스는 증상이 상대적으로 가벼울 때도 전파력이 있어서 까다롭기 그지없었다.
만약……
지금 후베이성에서 번지고 있다는 그 폐렴이 이 중간 어딘가에 있다면 어찌 될까?
“아후, 그래, 나가 줘요.”
“네네. 제가 급하게 예산 편성해 보겠습니다. 어차피 여기 다 계시니까 바로 말해 보죠, 뭐.”
“혹시 삐딱하게 나온다 싶으면 말해요. 나도 가세해 줄게요.”
“감사합니다, 교수님.”
둘은 서로의 눈을 보면서 생각이 일치했다는 걸 확인했다.
사실 팔뚝만 봐도 알 수 있는 일이었다.
빼곡히 소름이 돋아나 있었다.
그런 병은……
번져서는 안 되었다.
감염내과가 떡상할 수는 있겠지만, 그 담보로 너무 많은 생명을 져야 할 테니.
차라리 과가 망하고 말지 어찌 그런 걸 바랄 수 있겠나.
“좋아. 대국민 캠페인도 얼떨결에 하게 됐네.”
“그러니까요. 근데 이러고 별일 없으면, 삼촌 좀 곤란해지는 거 아니에요?”
“없으면 좋지. 이거 때문에 없어진 거면 더할 나위 없이 좋고. 수혁아, 내가 현종이 형보다 어려서 그렇지 나도 곧 예순이야. 그런 거 겁날 거 같냐.”
“하긴…… 없으면 좋은 거긴 하죠.”
수혁은 그런 신현태를 보면서 넥타이나 하나 더 사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번에는 좀 더 많은 정장에 어울리는 색으로.
[그러니까…… 꽃무늬를 왜 사 주냐고.]
‘너도 이쁘다며.’
[나야 정장을 안 입으니까!]
‘그래, 이번에는 해달별 패턴으로 사야지.’
[음……]
‘왜.’
[아니, 그게 그거 아닌가…… 싶어서.]
그런 고민만 하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교수님.”
고개를 돌려 보니 진중한 얼굴을 한 안대훈이 있었다.
그러니까, 미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어…… 왜?”
“발표하실 시간입니다. 자 이쪽으로.”
“아니, 이런 거 하지 말라니까.”
옆에는 김성진도 있었는데, 둘이 인간 가마가 될 참인지 이상한 짓거리를 하고 있었다.
“거봐요. 싫어하신다니까?”
놀랍게도 이걸 먼저 제안한 놈은 김성진인 모양이었다.
안대훈은 그를 타박하더니, 진짜 가마를 가리켰다.
“근본 있는 탈것으로 가시죠.”
“지랄…… 지랄 마.”
“설마 걸으실 생각이십니까?”
“어, 그래. 걸어갈 거야!”
“알겠습니다. 얘들아.”
그것도 무위로 돌아갔으면 잠깐 멈추기라도 해야 할 텐데.
안대훈은 멘탈에 전혀 타격이 없는지, 무심한 얼굴로 무전을 때렸다.
그러자 레지던트들이 방진을 짜 수혁을 호위하기 시작했다.
[부럽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