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4화 뭐가 되었건 (1)
미국 대통령이 행차하면 이럴까?
아마 이것보단 꼴이 나을 터였다.
일단 에워싸고 있는 이들의 면면이 훨씬 낫겠지…….
“컨퍼런스 룸 입구 확보했나?”
그러거나 말거나 옆에 선 대훈은 진지하기 짝이 없는 얼굴로, 셔츠에 매달아 둔 무전기에 대고 묻고 있었다.
-네, 확보했습니다.
“좋아.”
뭘 확보했다는 걸까?
여기가 애초에 사람이 막 몰리는…….
[수혁, 앞에.]
‘어우.’
예상과는 달리 사람이 많았다.
그것도 어마어마한 수준으로.
절대다수는 레지던트들이었다.
아니, 잘 보니까 얼굴이 지나치게 앳된 애들도 있었다.
다시 말해 학생 같아 보이는 친구들도 상당수였다.
“뭐야, 이거?”
대훈은 자신의 명에 따라 입구를 터 둔 레지던트들을 바라보다가, 이내 수혁의 물음에 답했다.
“교수님.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교수님 팬들입니다.”
“아니……. 뭔…….”
“벌써 여러 차례 강의에서 보여 주시지 않으셨습니까. 교수님 강의 한번 듣는 게 어지간한 책 한번 읽는 것보다 낫다는 평이 많습니다.”
“그렇다고 학생들까지 와……?”
“저것들 돈도 안 내고 온 애들이에요. 하지만 뭐……. 어쩌겠습니까. 옛말에 책 도둑놈은 벌도 안 준다는 말도 있는데……. 도강이라고 해도 봐줘야죠.”
돈도 안 냈어?
그 말에 다시 한번 살펴보니, 실제로 명찰도 안 차고 있는 놈들이 절반은 되었다.
도강이라니.
대체…….
이게 왜…….
수혁이 계속 어이가 없다는 얼굴로 있자, 안대훈이 말을 이었다.
“최근 내과 전문의 시험을 보십쇼. 나날이 난도가 올라가고 있지 않습니까? 학회 차원에서 전문의 산아 제한에 나섰다는 소문이, 적어도 레지던트들 사이에서는 파다합니다.”
“그랬으면 왜 3년제로 했겠어.”
“소인의 머리로는 모르겠습니다만……. 제가 분석을 해 본 결과, 확실히 작년, 재작년 시험 문제가 그 이전에 비해 몇 배는 어렵습니다.”
“그건…….”
그 원흉은 내가 아닌가?
수혁은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감히 입 밖에 내지 못했다.
뭔가 다른 생각을 해야 할 것 같아서 주변을 황급히 둘러보았는데, 하필 이쪽을 끈덕지게 바라보고 있던 이들 중 몇과 눈이 마주쳐 버렸다.
“끼에에에에엑!”
“이수혁 교수님이랑 눈 마주쳤어!”
“제게도 의학의 신의 세례를!”
끈덕지게 보는 눈깔이 좀 불안하더라니, 제정신이 아닌 모양이었다.
수혁은 안대훈에게 좀 치워 달라고 부탁하려고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흐뭇한 얼굴의 안대훈을 마주할 수 있었다.
“자식들.”
“뭘 그렇게 웃고 있어! 미친놈들이잖아!”
“네, 미쳤죠. 저도 미치겠습니다. 교수님 옆을 이렇게 당당히 걸을 수 있다니. 제정신이겠습니까?”
그래.
그렇지.
수혁은 자신이 아는 이 중 가장 미친놈이 안대훈이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상기했다.
‘와…….’
[꽉 들어찼네요.]
‘여긴 경품도 안 주는데…….’
[강의 제목이 약간 애들이 좋아할 만한 강의긴 하죠.]
‘좋은 주제는 우리 학회에 당겨 쓰느라 대충 케이스로 때우려고 한 건데…….’
[연구보다 임상 실력이 급한 사람들한테는 이게 짱이죠.]
그러한 상념조차 오래가진 못했다.
안에 들어선 이들을 보고 있자니 암만 강철 같은 멘탈의 소유자라 해도 잠시 넋을 놓을 수밖에 없었으니까.
사람이 진짜로 많았다.
진짜.
“흠…….”
당연하게도 좌장을 맡게 된 동종헌 교수도 살짝 얼이 나가 있었다.
안 좋은 쪽으로 사고 회로가 돌고 있진 않았다.
당연했다.
그는 의학의 미래라는 동아줄을 꽉 붙들어 맸으니까.
-제가 진짜 열심히 하겠습니다. 차차기 운영위에서 제가 진짜 이분들 싹 이사로 밀게요. 그게 아니더라도 부이사는 보장합니다.
-대신 너 우리 학회 일도 해야 해.
-하하하! 제가 학회 일 하는 거에는 도가 텄습죠! 네! 행정 일은 제게 맡겨 주십쇼!
-그래, 그래. 좋아.
약간…….
약간 덤터기 쓰는 느낌이 들기도 했지만, 뭐 좋은 게 좋은 거 아니겠나.
이현종이 악랄하다는 소문이 있기는 해도 일단 자기 사람이라는 확신만 주면 입 닦을 위인은 아니니까.
게다가 저 사람이 밀어준다면 차차기, 그러니까 3년 뒤 회장도 꿈은 아니었다.
내과 학회 이사장…….
그것만 해도 묘비에 써야 할 업적 같은데 그 와중에 이 대단한 사람들을 부릴 수 있다면 뭐라도 하지 않겠나.
“자……. 다들 착석해 주시기 바랍니다. 발표 시간까지 3분 남았습니다.”
“네!”
“어우.”
하여간,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일단 지금 맡은 일을 허투루 할 수는 없어서 마이크를 잡았다.
그랬더니만 군대를 방불케 할 만한 함성이 따라왔다.
저 새끼들 저거 전부 이수혁 사단일 터였다.
아니…….
‘친위대…….’
이수혁이 따로 말을 하지 않아도 알아도 충성 경쟁하는 놈들.
설마하니 동종헌이 그냥 줄을 갈아탔겠나.
실력이 반드시 힘과 연결되지 않는다는 것 정도는 알아도 한참 전부터 알 만한 나이인데.
다 분위기 봐 가면서 한 일이었다.
‘아니, 어떻게 우리 병원에도 이수혁 친위대가 있지……?’
다음 시대는 누가 뭐래도 이수혁의 시대가 될 터였다.
그가 부르면 와 하고 달려갈 사람이 한 무더기는 넘을 테니.
심지어 로컬 나가는 게 꿈인 놈들조차 수혁에 대한 존경심은 무궁무진했다.
어떻게 그렇게 됐나 하고 봤더니만 유튜브도 있고, 방송도 하고…….
태화가 각 잡고 미는 느낌이었다.
물론 수혁이라는 사람 자체가 너무 대단해서 가능한 일이긴 했지만, 하여간에 저만한 기업이 미는데 당연히 뭐가 되겠지.
‘안대훈이라는 놈도 태화에서 붙여 준 충신이라는 말이 있어.’
지분이라도 받은 거 아닐까?
그렇지 않고서야…….
저 봐, 저 미친놈 저거.
지금도 이수혁 교수 앉을 자리 덥혀 놓고도 모자라 입으로 후후 불어서 먼지 털고 있잖아.
조선 시대도 아니고 요즘 같은 세상에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저만큼 하려면 년에 수억씩 줘도 안 될 거 같았다.
“음. 이제 세션 시작하겠습니다. 아시다시피……. 케이스에서 배우는, 몰라서는 안 될 임상 지식 세션입니다. 혹 헷갈리셔서 들어오신 분 계시면 다른 세션으로……. 어……. 왜들 그런 눈으로……?”
“교수님! 저희는 일치단결하여 이수혁 교수님 강의를 들을 요량입니다!”
“어……. 아니, 알죠. 아는데 그래도 한 명쯤은……?”
지금도 봐.
저기 하나…….
누가 봐도 나이 지긋하신 분이 일어나려다 말았다.
아무리 봐도 다른 강의 들으려다가 눈치 보여서 앉은 느낌이었다.
좌장도 오금이 지려서 못 일어나겠는데 다른 사람이야 오죽하겠나.
“한 명이요?”
“그런 불순분자가 있단 말씀이십니까?”
“지금도 밖에 서성이는 학생들이 한둘이 아닙니다!”
학생…….
학생은 돈도 안 냈잖아…….
아니, 애초에 내과 의사가 아니잖아.
근데 뭐 그리 당당한 거야?
“하하, 그렇지. 그렇지! 그렇죠! 없지, 없어. 네네. 자, 그럼 시작합시다. 1분 1초가 아까운데.”
당연하게도 동종헌은 대놓고 저따위 말을 이 앞에서 할 수 있을 만큼 정신없는 사람은 아니었다.
교수의 권위로 깔아 뭉갤 수도 있겠지만…….
그랬다가 미래가 날아가 버렸…….
“자, 그럼. 태화의료원의 이수혁 교수님 모시겠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소개를 했고, 그야말로 우레와 같은 박수와 함성이 뒤를 이었다.
귀청이 떨어져 나가는 줄 알았다.
그런 와중에도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던, 바루다의 도움까지 받은 수혁은 무심해 보이는 얼굴로 단상 위로 올랐다.
또각.
또각,
이제는 트레이드마크로 보이게 된, 나름 이현종이 김다현에게 샤바샤바해서 얻어 낸 탄소 섬유로 만든 지팡이로 땅을 짚어 가면서였다.
페라리 기술이 들어갔다더니 그냥 페라리에 따로 주문했던 모양이었다.
수혁은 관심도 없고 딱히 지팡이 들여다보는 사람도 아니라 몰랐지만.
단상 위로 쏟아져 내리는 빛에 비치는 지팡이 바닥엔 분명 달리는 말이 음각으로 새겨져 있었다.
“이것이야말로……. 사치…….”
“실로 어울리신다.”
“그렇지. 교수님이 아무거나 짚고 다니시면 안 되지.”
삐딱하게 보자면 얼마든지 그렇게 볼 수 있는 모습임에도 거대한 신전화 되어 버린 이곳에서는 그저 찬사만이 가득할 따름이었다.
“안녕하십니까, 태화의료원 이수혁입니다.”
“와아아아아!”
아이돌이라도 온 줄 알겠단 생각이 들었다.
아니, 나이가 좀 더 들어찬 동종헌은 그보다는 다른 모습을 떠올리고 있었다.
‘이상하네……. 나 이런 거 다큐멘터리에서 본 거 같아…….’
그…….
인류사에 있어 가장 어두웠던 순간을 조명하는 다큐멘터리 있잖아?
미친놈이 망상을 근거로 확신을 가져 버렸는데, 모든 대중이 그에게 환호함으로써 발생한…….
그 서막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고 하면 오버일까?
“케이스로 보는 임상 지식이라고 말씀드렸지만……. 그보다는 좀 더 쪼개 보겠습니다. 증상으로 들어가 보죠. 우선……. 발열을 볼까요. 간단하게 열이 나는 거죠. 이걸 모르는 사람은 없겠습니다만……. 자세히 보면 의외로 모르는 친구가 많더군요.”
물론 그런 느낌과는 별개로 강의는 언제나 그렇듯 훌륭했다.
수혁이 제일 좋아하는 게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이는 것에서 어마어마한 것을 캐내는 일 아니던가.
그런 면에서 볼 때 증상 하나를 파서 각각의 케이스와 연결하는 이번 강의는 어마어마한 파급력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우선 발열의 시기를 볼까요. 크게 두 개로 나눌 수 있습니다. 질환의 첫 번째 증상으로 발열이 나타나는 경우와 이미 다른 증상이 선행된 이후에 발열이 따라오는 경우죠.”
“아…….”
이게 그냥 동네 아저씨가 했으면 별것도 아닌 말이 되었을 텐데, 이수혁이 말하니까 뭔가 신의 계시 같은 느낌마저 주었다.
아니, 실제로 중요한 얘기이기도 했다.
어렴풋이 저 두 개가 다른 질환군을 가리킬 거란 건 알고 있지만, 체계적으로 배운 적은 없어서 그랬다.
“이것으로 나누는 것만으로도 꽤 많은 감별이 가능합니다. 물론 절대적인 것은 아니겠지만……. 의학이란 건 언제나 통계를 기반으로 하는 것이죠. 발열이 첫 번째 증상으로 나타날 경우, 감염보다는 종양이나 류머티즘 질환일 가능성이 좀 더 올라가겠죠. 물론 이에 대해서는 환자의 기저 질환 또는 상태에 대한 고려도 필요합니다. 가령 당뇨가 심하다거나, 고령이거나 하면 얘기가 달라지겠죠?”
배운 적이 없는 건 이수혁도 마찬가지일 터였다.
현재 의과 대학의 교육은 편의성과 여러 현실적인 이유로 인해 질병 중심의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지 않나.
다시 말해 의과 대학에서 이루어지는 교육은 어떤 병에서 시작해 그 병이 어떤 증상을 일으킬 수 있고, 검사 결과는 어떻게 나오고, 어떤 경과를 밟고, 어떤 치료를 받아야 하는지에 대해 배우는 과정이란 얘기였다.
하지만 우리가 만나는 환자가 머리에 질병 이름 달고 오나?
증상만 달랑 들고 올 뿐이었다.
임상 의사가 되는 순간부터 의사들은 배운 것을 머릿속에서 거꾸로 재조합해야 했는데, 이건 그냥 경험으로 배워야 했다.
“그에 반해 다른 증상이 선행되고 발열이 뒤따라왔다면……? 그 증상이 무엇이냐에 따라 부위의 차이가 있겠지만 일단은 감염병의 가능성이 올라간다고 봐야 할 겁니다. 자, 사례를 보시죠.”
시행착오를 겪어야 한다, 이 말인데…….
그 과정에서 의사도 고생하겠지만 환자는 무슨 죄란 말인가.
‘과연……. 이게……. 이수혁의 강의인가.’
이수혁의 강의는 그 시행착오를 크게 줄여 주는 데 일조하고 있었다.
동종헌은 왜 얘들이 이 난리 법석인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