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975화 (975/1,303)

975화 뭐가 되었건 (2)

발열 하나로 한 시간을 쉬지 않고…….

그것도 꽉 찬 내용으로 강의할 수 있는 사람이 또 있을까?

이게 뭐 발열 하나만 주야장천……. 그 내용만 평생 판 사람이 있다면 가능할는지도 모르겠지만 동종헌이 눈앞에 보고 있는 건, 이제 갓 삼십 대에 접어든 젊디젊은 의사였다.

“음. 이만할까요?”

심지어 저놈 저거 더 얘기할 수 있는데 지금 멈추고 있잖아.

시간을 보니, 귀신같이 질문 답변할 시간이었다.

좌장이 해야 할 일인데, 정신이 팔려서 그것도 놓치고 있었다.

동종헌은 딱히 감염을 다루는 의사도 아니고, 남의 강의에 홀리기엔 나이도 먹을 만큼 먹은 사람임에도 이렇게 된 마당이니 다른 애들은 어떻겠나.

당장 나이 지긋이 먹은 교수, 그러니까 시작하기 전까지만 해도 튀려다가 분위기에 휩쓸려 잔류하게 된 교수만 봐도 넋이 나가 있었다.

“질문 받겠습니다. 꼭 강의 관련한 내용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의학에 관한 것이면 뭐든, 물어보세요.”

애들?

애들이야 뭐…….

“키에에에엑!”

“손 들고 마이크를 쥐세요. 키에에엑은 제가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겠어요.”

“저, 저저저저저요!”

“저요!”

“저……. 앗……. 눈 마주쳐 버렷!”

미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말 그대로…….

미쳤다.

이 분위기는 미쳤어.

동종헌은 진행자로서 여기서 더 진행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딱 들자마자 일단 마른세수부터 했다.

뭔가 ‘순서를 지켜라’라고 해야 할 텐데 차마 입이 떨어지질 않았다.

괜찮았다.

“자자, 순서대로 섭시다.”

안대훈과 그의 친위대가 나섰으니까.

“어허! 교수님께서 지금 인상 쓰시는 거 못 들으셨어요?”

“키에에엑!”

“사람 말을 하라고, 사람 말을.”

“죄, 죄송합니다!”

정신 나가 있기론 이 중에서 최고겠지만, 애초에 정신이 나가 버렸기에 급성기에는 오히려 제일 나았다.

덕분에 장내는 빠르게 질서를 되찾고 있었다.

겉으로 볼 땐 그랬다.

광란에 휩싸여 있던 학생들과 레지던트들이 일단 자리에 앉고 있지 않나.

허나 모두가 예상치 못했던 움직임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눈치 때문에 자리에 남게 된 교수였다.

“아아.”

일단 동종헌이 눈을 부릅떴다.

‘아니……. 저 양반이 여기서 뭐 하는 거야.’

아까는 하도 정신이 없어서 누군지도 몰라봤는데 이제 보니 꽤 유명한 사람이었다.

아니, 그게 아니라…….

‘저 사람…… 이 시간에 강의 있지 않았나……?’

아까 강의하러 들어왔다가 끌려 앉은 건가?

병신인가……?

라고 비난하기엔, 아까 분위기가 좀 그렇긴 했다.

마치 홍위병이라도 된 것처럼 두리번거리던 놈들이 태반 아니었다.

아마 나가려고 했었다면……. 영영 앉아 있게 되었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아선병원 내분비 내과 김선형이라고 합니다. 좋은 강의……. 정말 잘 들었습니다.”

그래, 김선형.

호르몬 척척박사 우창윤이 기조실장이 되면서 한발 뒤로 빠질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했다.

이제 갓 마흔이 된 저 젊은 교수는 생긴 것처럼 스마트한 인간이었다.

논문도 잘 써, 임상도 잘해, 심지어 가르치는 것도 잘해…….

자신이 우창윤이라도 분과 맡기고 딴 데로 갈 때 일말의 불안감이 없지 않았을까.

‘근데……. 저 양반이 이 강의에서 물어볼 게 뭐가 있지.’

동종헌은 내분비내과와 열을 연결 지어 보았다.

아예 사례가 없냐, 그건 아니었다.

발열이라는 게 참 원래 이런저런 병과 다 연결이 될 수 있지 않겠나.

“다름이 아니라……. 스피커폰 연결 가능할까요?”

“네?”

동종헌과는 달리, 수혁은 여유로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정말이지 사방에 미친놈들이 깔린 삶을 살고 있지 않던가.

그런 와중에 뭐…….

교수 하나가 이상한 타이밍에 손 들고 나와서 마이크 잡은 것 정도는 얼마든지 납득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다짜고짜 스피커폰이라니?

‘내가 잘못 들은 거 아니지?’

[네, 오류는 없었습니다.]

‘그럼……. 스피커폰이라는 게……. 뭔 소린지도 알겠냐?’

[아뇨. 전혀 짐작조차 가지 않습니다.]

‘역시 그렇군. 내가 멍청해진 게 아니라…….’

[저 사람이 이상한 겁니다.]

황당했다.

‘네?’라는 얼빠진 소리를 저도 모르게 냈을 정도로.

하지만 수혁은 바루다를 탑재한 덕에 재빨리 결론도 내릴 수 있었고, 안정도 되찾을 수 있었다.

“아, 네. 그……. 네.”

“다행입니다. 어려운 환자가 있어서.”

“아……. 네.”

그에 반해 김선형은 속으로 전혀 엉뚱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내 우상……. 우창윤 교수님이……. 결국 인정한 사람이지.’

이제 갓 사십이 된 똑똑한 사람이 설마하니 강의실을 헷갈렸겠나.

그냥 얼굴이 궁금해서 한번 와 봤을 뿐이었다.

아니, 얼굴은 알고 있었다.

다만…….

-이수혁 교수……. 그 사람이 아선에 왔다면 미래가 달라질 텐데.

기조실장 우창윤이 최근 했던 말이 가슴에 비수처럼 남았다.

‘나 정도면 충분히 똑똑하지 않나?’

대학 병원 교수쯤 되면 에고가 강할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그 병원이라는 게 빅3 중 하나인 데다가, 그 안에서도 차세대 기대주로 대우받고 있다면 천재라 생각해도 좋지 않겠나?

아마 객관적인 기준으로 봐도 천재의 범주 안에 들어갈 터였다.

‘왜……. 제가 아니라……. 저 사람을 보십니까.’

김선형은 총명하기 그지없어 보이는 눈빛으로 안경을 위쪽으로 한번 밀어 올렸다가 내려놓았다.

일단 외모만 놓고 볼 때, 역시 자신이 더 똑똑해 보이는 느낌이었다.

그래.

미팅이건 어디건 간에 이미지 게임만 하면 여기서 제일 공부 잘했을 거 같은 사람에서 몰표를 받아 오지 않았나.

‘질 이유는 없다.’

그게 어째서 이런 결론으로 이어지는지는 의문이었지만 하여간…….

“어……. 저 이거 진짜 학회 발표 중에 스피커폰으로 해도 되는 겁니까?”

그는 들고 있던 스마트폰을 마이크에 가져다 놓았고, 동시에 살짝 황당해 보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순간까지도 수혁은 대체 이게 뭔 일인가 싶었더랬다.

[어차피……. 문답 시간은 10분입니다. 그 시간만 견딥시다.]

‘그래도……. 이 시간에 다른 의미 있는 질문을 들을 수 있었지 않았을까?’

[끼에에엑 하는 애들이 절반인데요?]

‘하긴.’

당황은 잠시뿐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장내가 혼돈의 도가니여서 그랬다.

그나마도 저 안대훈이 나서줘서 이 정도이지 아니었으면 더 난리 버거지가 벌어졌을 터였다.

“네, 맞습니다. 질문자의……. 질문자와 통화하는 분은 어떤 것이 궁금하신지요?”

“키에에에……. 정말로 이수혁 교수님?”

“음.”

“아, 실례가 많았습니다. 저는 아선병원 내과 3년 차 권혁진이라고 합니다!”

“네, 권혁진 선생님.”

“그……. 환자 노티드리겠습니다!”

노티라…….

강의하고 있는데 전화상으로 노티를 한다.

그래,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발표자에게 전혀 다른 병원 레지던트가……. 문답 시간에 환자 노티를 해?

‘이게……. 이게 맞나……?’

의학의 미래가 저쪽에 있다고 베팅한 동종헌은 이 대참사를 제지하기 위해 잠시 손을 들다가, 같이 들어온 김성진, 안대훈이 고개를 흔들어 대는 통에 마른세수로 전환했다.

그런다고 해서 출타한 정신이 돌아오는 일은 없었다.

차라리 그게 나을 거 같았다.

맨정신으로는 도저히 이걸 두고 볼 수 없을 것 같았으니.

“좋죠. 해 보시죠.”

물론 우리 명의병 환자 이수혁은 아무래도 좋다는 얼굴이었다.

아선이라면 양질의 진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이지 않나.

[데이터에 있는 이름이군요. 우창윤이 원래 틈만 나면 자랑하던 그 사람입니다.]

‘왜 나한테는 안 하지……?’

[알면서 묻는 거죠?]

‘응. 굳이 물었으니 답을 해 줘.’

[저 사람보다 수혁이 훨씬 똑똑하다고 생각하니까…… 요.]

이런 대화 덕에 기분이 좋아진 것과는 별개로, 우창윤이 주접떨었을 정도의 사람이 준비한 케이스라면 어렵지 않겠나?

알면서 묻는 것일 수도 있고 몰라서 묻는 것일 수도 있었다.

둘 다 괜찮았다.

뭐가 되었건 저 사람이 판단할 때 어려운 환자일 거라는 얘기가 될 테니.

“42세 여환입니다. 공복시에 나타나는 두근거림을 주소로 내원하였습니다.”

“공복 시에 발생한다라……. 네, 그렇군요. 계속해 보시죠.”

공복이라 함은 배가 비어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겠나.

비의학적인 시선에서 보면 배가 고플 것이란 생각 또는 힘이 없을 거란 생각이 들겠지만…….

이걸 의학적으로 해석해 보면 저혈당 또는 저혈류 상태에 빠졌다고 볼 수도 있었다.

공교롭게도 둘 다 심계항진, 즉 두근거림을 일으킬 수 있었다.

“내원해서 시행한 문진상 환자는 두근거림이 발생할 때 발한 증상을 같이 호소하고 있었습니다.”

‘흐음……. 발한이라……?’

[저혈당 증상이군요.]

“기저 질환은 없었고, 혈압은 120에 80으로 정상, 분당 호흡수 20에 심장 박동수 분당 70회에 체온 36.5도 정상 소견을 보였습니다.”

‘그렇게 심한 증상은 아니었던 모양인데…….’

[네. 기저에서 시행한 바이털이 정상이라면 그렇게 판단하는 게 합리적입니다.]

수혁은 말 그대로 상대의 말 한마디마다 주석을 달 만큼 여유 있는 얼굴로 듣고 있었다.

중간중간 의식적으로 고개를 끄덕여 주는 것 외에 응, 응 소리도 내 주었기 때문에 노티는 끊김 없이 이어질 수 있었다.

“무작위 혈당 검사에서 환자의 혈당은 110으로 체크되었습니다.”

“으음.”

“그 외 혈액 검사에서 이상은 없었으며 요검사 및 단순 방사선……. 그러니까 x-ray 검사에서는 모두 정상 소견을 보였습니다만 김선형 교수님 외래에서 특이적인 저혈당 증상에 대한 감별을 위해 입원 조치를 취했습니다.”

“합당한 판단이네요.”

그래.

수혁은 자신이라고 해도 저혈당 증상에 대한 확인을 위해 입원시켰을 거라고 생각하며 김선형을 바라보았다.

그랬더니 김선형은 자신의 의견에 동의했다는 것에 기분이 좋았는지 헤벌쭉 웃었다가 이내 무표정한 얼굴로 돌아갔다.

‘아니……. 저 사람은 우창윤 교수님이 아냐! 난 아직 인정할 수 없다……. 어디 감히 내분비 내과 전문의도 아닌 놈이…….’

이 쇼를 벌인 이유를 떠올리고 나서였다.

“아니……. 우리 선형이가……?”

“네네.”

“내가 들어가서 말려야지. 자네라도 들어가지 그랬어!”

“그게……. 안에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세상에 비밀이 있겠나.

더군다나 그렇게까지 치밀하지도 않은 쇼이지 않나.

이미 우창윤의 귀에 들어간 지도 한참 되었다.

그럼에도 중지되지 못하는 건 입구에서부터 컷 당해서 그랬다.

“이보게들! 비켜! 비켜! 지금 내 애제자가 개망신을…….”

“네? 뭐라고요?”

“비키라고…….”

“저도 비켜 드리고 싶지만……. 낑겨서요.”

강의실 입구는 그야말로 지옥 그 자체였다.

그나마 우창윤이 다른 이들을 갈아 안으로 진입을 시도하긴 했지만…….

그마저도 중간지점부터는 의미가 없어져서 말 그대로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되었다.

한 치 앞도 볼 수 없었는데…….

“인슐린종 가능성이 있어 검사를 시행했습니다.”

“좋네요. 결과를 들어 볼까요?”

목소리는 들려왔다.

그게 더 슬펐다.

‘내가 결국……. 이걸 직관하는……. 아니, 직청이라고 하나?’

제자가 공개 처형당하는 꼴을 듣게 되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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