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7화 뭐가 되었건 (4)
김선형은 엉뚱한 기대에 완전히 사로잡힌 나머지, 시키지도 않았는데 다른 사진들을……. 아니, 영상까지 보내고 있었다.
‘안 돼……. 그러지 마라……. 그러지 마, 선형아…….’
먼발치에서 그 꼴을 보고 있던 우창윤은 이제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가기 위해 안간힘을 쓰기 시작했다.
‘나는……. 나는 이 촌극을 더는 못 보겠다…….’
선형이.
우리 김선형이.
장차 우리 내분비내과를 이끌고 나가 줄 동량이자, 지금껏 자신의 수족처럼…… 아니, 아니지.
개처럼.
아니!
정말 성심성의껏 따라 준 제자…….
‘이건 안 되겠다.’
우창윤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밖으로 빠져나왔다.
안으로 들어가는 건 앞에 럭비 선수들이 스크럼이라도 짜고 있는 건지 뭔지, 좀체 움직일 생각이 아예 없었지만…….
뒤로 빠져나오는 건 느슨하기 짝이 없었다.
그만큼 이 강의실에서 나오고 싶어 하는 사람이 없다는 얘기였다.
“흐음.”
하여간, 수혁은 이메일로 날아온 영상을 틀었다.
그러자 전에 본 적 있는 영상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내…… 착각일 가능성은?’
[절대 없습니다. 초음파 사진만 봤을 때조차 99% 동일 케이스였는데……. CT까지 완전히 같을 수는 없죠.]
‘허어……. 이럴 수가’
[완전히 같습니다. 그때 우창윤 교수가 꽤 당황했었죠.]
‘그럴 수밖에 없긴 하지…….’
내시경을 통해 들어가 시행한 초음파에서도 아무것도 나온 게 없었다.
ERCP.
난이도가 있는 검사이면서 동시에 숙련자만 할 수 있는 검사였다.
위험하기까지 했다.
하다가 심지이장이 터지는 경우도 왕왕 있었고.
그런데도 한다는 건, 보통 거기서 다 보여야 정상이라는 얘긴데…….
췌장암도 진단이 된다고.
다른 게 아니라 췌장 보는 데 있어서는 진짜 최고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래, 이건 굳이 데이터화한 거 아니더라도 기억이 나네.’
[구라 치네.]
‘아냐, 기억이 있어’
[하여간……. 데이터와 비교해 봐도 완전히 같습니다.]
인상적인 영상과 사진일 수밖에 없다는 뜻이었고, 이건 수혁의 머릿속에도 완전히 박혀 있었다.
‘여전히 아무것도 보이질 않네’
[없던 게 생길 리가 없죠.]
‘아니, 분명히 있긴 있었잖아’
[그렇죠. 있었죠. 있었는데, 없었습니다……. 죠.]
‘하여간, 안 보여’
[네. 안 보입니다.]
보이지 않는다…….
그 어떤 영상에서도 보이질 않는다.
초음파, 내시경하 초음파 이른바 ERCP, 전산화 단층 촬영 그러니까 CT에서도 보이질 않는다.
이렇게 되면 보통은 어떤 생각이 들겠나.
“영상 검사상에서는 정상 소견으로 보였습니다! 뇌하수체 쪽 질환 또는 기타 다른 희귀 질환이 의심되는 상황입니다!”
정상이란 생각이 드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우창윤조차 이 함정에 빠지지 않았나.
아니, 정작 이 자리에 서 있는 수혁 또한 같은 함정에 빠져 있었더랬다.
그걸 꺼내다 준 사람이 다름 아닌 이현종이었고.
이후로 수혁은 검사 결과마저 의심할 수 있는 최고의 의사로 거듭나 있었다.
“흐음……. 그쪽 검사는 했나요?”
그러거나 말거나, 수혁은 이미 이 케이스의 결말을 알고 있었다.
2년 전에 봤던 케이스지 않나.
신기해서 데이터화도 해 둔 참이다 보니, 아예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말해 줄 수도 있었다.
‘아뇨.’
“아, 아닙니다. 아직…….”
검사를 했을 리가 없었다.
그 전에 우창윤이 도움을 요청했고, 그걸 수혁과 이현종이 도와줬거든.
앉은 자리에서 다른 검사를 처방했고, 그 검사 결과에 따라 제대로 된 진단을 내릴 수 있었다.
‘그래, 안 했지. 내가 그래도 되게 만들었으니까……. 근데 저 사람은 이 케이스를 왜 들고 온 거야? 아빠랑 뭐 짜고 치기로 약속된 게 있나?’
[그럴 리가요. 이현종이 이런 걸 숨길 사람입니까?]
‘숨길 사람이지.’
[남들에게는 그렇죠. 수혁에게는 아닙니다.]
‘하긴……. 비밀이 없지.’
제발 좀 이런 건 숨겨 줬으면 하는 것도 와서 미주알고주알 다 떠들어 대지 않나.
수혁은 대체 왜 내가 육십 넘은 할아버지 할머니 데이트 코스는 물론이거니와 연애 진도까지 다 알아야 하는 건지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을 품고 있었다.
[분석 결과…… 저 사람은 이걸 수혁이 모를 거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틀린 거 아닐까……?’
[상황 데이터를 기반해 판단해 보자면 역시 수혁이 안다는 걸 저 사람도 알아야 맞긴 합니다. 김선형……. 우창윤 교수가 아끼는 사람이니까요. 하지만 그 우창윤입니다.]
‘무슨 소리야?’
[우창윤 하면 뭐부터 떠오릅니까.]
‘대머리.’
[아.]
바루다조차 함부로 말을 이어 나가지 못했다.
최근 들어 더더욱 스트레스를 받아서 그런가. 이마 선이 하염없이 뒤로 밀린다 싶더니만 어느 틈엔가 가발을 쓰고 다니기 시작했다.
지금은 어떻게 됐을까.
이따가 조심스레 벗겨 볼까 싶기도 했지만…….
가발을 조심스레 벗긴다는 건 총을 살짝 쏴 보겠다는 말과 다를 게 없을 거 같았다.
[그……. 그거 말고.]
‘나르시시즘.’
[그래. 그런 사람이……. 진짜 어려운 케이스의 답을 남들 모르게 우리 도움을 받아서 알았어요. 그럼 그걸 자기가 했다고 할까 아니면 도움받았다고 할까.]
‘허……? 설마?’
[설마가 사람 잡는다는 말이 있죠.]
‘허어.’
수혁은 우창윤의 비리를 알아내느라, 또 바루다와 대화를 하느라 잠시 눈을 감았다.
예전에는 시간이 꽤 걸렸을 테지만…….
지금은 금세 할 수 있었다.
거의 찰나에 가까운 시간이 걸렸을 뿐이었다.
허나, 삐딱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던 김선형의 눈에는 그마저도 망설임의 사인으로 보였다.
‘저 새끼……. 옳거니! 월척이다!’
본인이 본인뿐 아니라 의도치 않게 스승마저 물귀신 작전으로 다 물고 들어갔다는 건 깨닫지 못한 채, 거들먹거리며 물었다.
“인슐린종을 의심하고 찍었는데……. 아무것도 나오질 않았습니다. 이걸 어찌해야 할까요?”
“아무것도 나오질 않았다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말과 같은 말은 아니죠.”
“네……?”
이제 당황해라.
찔찔 짜지는 않더라도 쩔쩔매라!
그럼 내가 여기서 방금 떠올린 것처럼 연기하면서 알려 줘야지!
뭐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 보니 자연스레 대화가 이어지는 것에 오히려 이쪽이 당황했다.
“다시 말씀드리죠. 여기 계신 분들도 다들 잘 들어 주세요. 임상 의사로 살아가면서……. 꽤 중요한 얘기가 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수혁은 슬며시 발걸음을 옮겨 가며 말을 이었다.
때론 단상 위에 바로 선 것보다도 이렇게 조금이라도 움직이는 것이 더 시선을 끌기에 유리하다는 걸 알아서 그랬다.
또각.
거기에 더해 수혁은 지팡이까지 있다 보니 자연적으로 상당히 요란한 소음마저 일으키고 있었다.
“방금 보셨듯이 이 환자에게서 시행한 검사……. 영상 검사죠? 초음파, 내시경하 초음파, CT까지 전부 이상 소견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걸 다른 말로 하면 정상 소견을 보였다가 되는데……. 저는 이 말을 그리 좋아하지 않습니다. 자칫하면 ‘정상이다’라는 말로 들릴 수 있거든요.”
그렇지 않아도 다들 집중하고 있는 마당이었기 때문에 수혁의 말에 모두가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그게 그거 아니냐?’
‘아니니까 저런 말씀을 하시겠지.’
‘하긴……. 수혁, 그는 신이니까!’
영상 검사에 대한 신뢰도는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을 정도였다.
젊은 의사들일수록 그러한 경향이 더 컸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의사로 활동하면서부터도 아니고, 학생 때부터 이미 현대 의학은 영상 의학에 완전히 경도되어 있었으니.
“하지만 영상에서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없는 건 아닙니다. 특히 해당 장기가 췌장처럼 흐물거리는 장기라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분명히 무언가 있는데도 보이지 않는 경우가 있죠. 바로 그 때문에 췌장암이 무서운 거 아니겠습니까? 조기 진단에 실패한 췌장암 환자들의 사례에서 이전 영상을 리뷰해도 이렇다 할 이상을 찾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건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지 않습니까.”
수혁은 아까 신현태가 그랬던 것처럼 팔을 이리저리 휘둘렀다.
[수혁……. 이거 살짝 누구랑 비슷한데.]
‘지금 그걸 떠올릴 사람이 있겠냐?’
[없겠죠. 하지만 안 그대로 분위기가 좀 집회 같은데…….]
그에 따라 군중들은, 그러니까 모여들었던 이들은 흥분하기 시작했다.
‘그, 그래!’
‘그렇지!’
‘그게 같은 말일 수가 없겠구나!’
그런 이들을 보면서 수혁은 기분이 점점 좋아졌다.
잘난 척하기 좋아하는 인간이지 않나.
누구나 이런 정도의 환호에 둘러싸이면 뽕이 차오를 텐데, 최적화되어 있는 인간이면 더하지 않겠나.
이미 김선형인지 나발인지는 보이지도 않았다.
“이 경우에도 같습니다. 이미 이전 검사에서 인슐린종을 의심할 수 있는 소견이 나왔잖아요? 영상에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그 소견까지 사라지는 건 아닙니다. 물론 다른 질환일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 할 겁니다! 하지만!”
더욱더 신이 나서 팔을 휘두르면서 말을 이었다.
‘다리 다친 게 이제야 아쉽네.’
[미쳤나…….]
다리만 멀쩡했으면 진짜 단상 위를 이쪽에서 저쪽으로 뛰어다니면서 외쳐 댔을 텐데.
그랬으면 이미 콘서트장을 방불케 하는 이곳을 더더욱 열광의 도가니 속으로 밀어 넣을 수 있었을 텐데!
“그 전에 미세 인슐린종일 가능성을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질환은 무조건 흔한 것부터 소거해 나가야 해요! 물론 영상에서조차 안 보이는 걸 어찌 확인하냐는 질문이 나올 수는 있습니다. 설마하니 곧장 배 열어서 확인해야 하냐, 뭐 이런 얘기가 나올 수도 있죠. 그런 거라면 저도 다른 질환을 의심했겠지만……. 여러분!”
“네에에에에!”
물론 뛰어다니는 게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수혁의 외침에 안에 있던 이들은 목청이 떠나가라고 외쳤다.
안대훈은 이미 목이 쉬어 있을 정도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에 모인 이들의 평균 정도에 그칠 정도였으니 안의 분위기가 어떠할지는 쉬이 짐작할 수 있으리라.
“선택적 동맥혈 칼슘 자극이라는 검사가 있습니다.”
“에에에…….”
그런 검사가 있나?
학생들은 물론이거니와 내과 레지던트들도 태반이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뭐야? 몰루? 뭐 이런 얼굴을 하고서였다.
“자, 선생님.”
“네, 네에.”
아무것도 모른 채, 김선형이 시키니까 가상의 환자에 대해 노티하던 레지던트가 답했다.
그는 정말로 김선형의 입원 환자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한 점 부끄럼은커녕 그저 신나 있을 뿐이었다.
‘아……. 설마…… 이걸 이렇게 금방 떠올릴 수 있다고……?’
그에 비해 김선형의 얼굴은 거무죽죽하게 죽어 가고 있었다.
“환자의 대퇴부 동맥에 카테터를 삽입하십쇼. 그리고 대퇴부 정맥 천자를 거쳐 우측 간정맥에 카테터를 위치하도록 하십쇼.”
“네? 그건……. 제가 할 수 있는 게…….”
“영상 의학과에 의뢰하시죠. 인터벤션 파트에서 가능할 겁니다. 아니면 복부영상 파트에서 할 수도 있고요.”
“아, 네!”
안 된다.
없는 환자를 의뢰하라고?
그럴 수는 없었다.
‘근데 뭐라고 하지……?’
김선형의 얼굴은 이제 거무죽죽하다는 표현조차 어울리지 않을 만큼 새카매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