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9화 뭐가 되었건 (6)
‘하여간 눈치는 빨라.’
[계산도 빠릅니다.]
우창윤은 잠시 무릎을 꿇었다가 금세 몸을 일으켰다.
아마 근처에 있던 사람들이 볼 때는 그저 넘어졌나 싶을 만큼이나 찰나였지만, 제일 중요한 사람 그러니까 수혁에게는 뜻이 전달되었다.
해서 수혁은 파일 근처를 숨 막힐 듯 노닐던 마우스 커서를 저리 치운 후 말을 이었다.
“왜 말이 없으십니까. 검사 결과가 그렇게 나올 거 같은데. 아닌가요?”
상식적으로 암만 검사가 빠르다 해도 문답 시간 내에 결과가 나올 리는 없었다.
그건 너도 알고 나도 알고 모두가 아는, 심지어 학회 대행사 직원도 아는 일이었다.
허나 김선형은 정신이 후딱 나간 지 오래다 보니 그 간단한 일조차 깨닫지 못한 채 주절거리기 시작했다.
“그…….”
이미 마음이 꺾인 탓도 있었다.
대체 어떻게 위치까지 알았을까?
마치 검사 결과를 미리 알고 있었던 것처럼 읊어 대고 있는데 어찌 제정신일 수 있을까.
귀신에 홀려도 이것보다는 더 나을 거 같다는 생각마저 들 지경이었다.
“네……. 검사 결과는 교수님이 말씀하신 것과 똑같습니다.”
결론적으로, 이렇게 말한 게 김선형에게는 다행이었다.
안 그랬으면 수혁이 화면 밖으로 빼냈던 마우스 커서를 다시 돌려 방금 받은 파일을 틀었을 테니까.
-네, 저는 지금 아선병원 영상의학과 인터벤션실에 와 있는데요, 오늘따라 텅 비어 있네요!
일부러 시간이 나오게끔 같이 찍은 영상이었다.
그 말은 곧 지금의 김선형에게는 사형 선고가 되었을 것이란 얘긴데…….
‘잘했다. 잘했어, 이놈아!’
우창윤은 올해 들어 제일 잘된 일이라고 여기며 고개를 털었다.
그사이 수혁은 김선형 교수의 답에 첨언했다.
“네. 그렇군요. 검사 결과가 이렇게 빨리 나올 수 있을 줄은 몰랐는데……. 아선에서 독자적인 핵의학, 진검 키트를 개발한 모양입니다. 아무튼, 여러분. 지금 우리가 시행한 검사가 바로 동맥혈 칼슘 자극 검사입니다. 인슐린종을 진단하기 위해 쓰이기도 하지만……. 영상학적 검사가 고도로 발달한 현대 의학에서는 사실 그 쓰임새가 상당히 제한적이죠.”
당연하지만 청산유수였다.
지금 여기서 본 새로운 케이스라 해도 그럴 가능성이 큰데, 이 케이스는 전에 한번 보지 않았나.
그때만 해도 바루다가 지금보다는 더 지랄하던 때였다 보니, 케이스를 해결하고 나서도 관련 지식을 더 공부했던 탓에 더더욱 지식이 어마어마하게 쌓여 있었다.
수혁은 바루다 덕에 지식을 쌓기만 할 뿐 잊지는 않지 않나.
도리어 그때 쌓았던 지식에 경험까지 더 쌓여서 어마어마하게 두터운 힘을 발휘하게 된 마당이었다.
“그래서 아마 내과 레지던트들이나 심지어 펠로우 중에서도 이 검사가 그리 익숙지 못한 사람들이 있을 겁니다.”
수혁의 말에 몇몇이 고개를 끄덕였다.
큰 병원이면 몰라도 작은 병원에서 수련 중인 친구들은 아무래도 희귀한 케이스를 보기가 어려워서 그랬다.
더욱이 시대의 흐름에 따라 침습적인 검사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가고 있는 지금에는 그 정도가 더더욱 심했다.
동맥혈 칼슘 자극 검사는 수혁의 말마따나 거의 시행하지 않게 된 검사 중 하나였다.
“그러나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이 환자의 경우만 봐도 그렇죠. 여기서 진단이 안 되었으면 방법이 없었을 겁니다. 하지만 우리는 일단 동맥혈 칼슘 자극 검사를 했죠. 그 결과도 확인했습니다. 비장 동맥에 칼슘 자극을 했을 때, 좌측 간정맥에서 인슐린 농도가 현저하게 증가했죠. 이를 통해……. 인슐린 종 또는, 또 다른 질환을 의심해 볼 수 있게 되었죠.”
수혁의 눈길이 잠시 김선형에게 닿았다.
김선형도 당연히 답을 알고 있기는 했다.
그는 답지를 봤으니까.
우창윤이 작성한 완벽한 답지를.
게다가 지금은 그 답안을 떠올릴 수 있을 만큼 머리가 돌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여전히 대체 어떻게 비장 동맥에 칼슘 자극을 했을 때, 좌측 간정맥에서 인슐린 농도가 현저하게 증가했다는 걸 이것만 보고 알았을까, 그 고민에 빠져 있었다.
“췌도 세포 증식증이라는 병이 있어요. 인슐린종에 비하면 극히 드문 병입니다. 동시에 영상에서는 보이지 않는 질환이기도 합니다. 초음파는 물론이거니와 CT에서도 안 보여요. MRI조차도 잘 안 보이는 것이 현실입니다. 췌장암도 췌도에서 발생한 경우에 그렇죠.”
그리고 지금은 췌도 세포 증식증이라는 진단명에 한번 더 가슴이 크게 흔들렸다.
쿵 하고.
세상에 저걸 어떻게 알았지.
미친 건가…….
뭐 이런 생각이 들어서 눈알도 세차게 흔들리고 있었다.
허나 수혁은 이미 그가 아니라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를 에워싸고 있는 이들을 바라보고 있단 말이었다.
“치료는……. 좌측 간정맥에서 흘러나온 것으로 미루어 볼 때……. 미부와 체부를 포함하는 췌장 아전 절제술을 시행해야 할 겁니다. 아마 수술장에서도 육안으로는 종양 확인이 어려울 거예요. 말 그대로 췌도에 있는 세포가 증식했을 뿐일 테니까요.”
그와는 별개로 말이 이어지면 이어질수록 김선형의 마음은 무너지고 꺾여 나가고 있었다.
불가사의에 가까운 진단 능력이지 않나?
이 와중에도 자신의 스승인 우창윤에 대한 의심은 한 점도 품지 않고 있다는 건 대단한 일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상황이 호전되는 법은 없었다.
오히려 사태는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을 뿐이었다.
적어도 김선형에게는 그랬다.
“이를 진단하기 위해서는 면역 조직 화학 염색을 시행해야 할 것입니다. 환자에게서 관찰되었던 저혈당 수치 수준이나, 인슐린 농도를 보면 췌도 증식이라고 해 봐야 아주 국소적으로 관찰이 될 겁니다. 그리고 그 췌도 내에 베타세포의 분포, 즉 인슐린을 만들고 분비하는 세포의 분포는 정상과 큰 차이를 보이진 않겠죠.”
“미쳤……. 미쳤나?”
머릿속에 설마하니 이 환자의 조직이라도 보이는 걸까?
김선형은 이제 숫제 무릎을 꿇고 있었다.
두 손은 자기 스승을 진정으로 따라가기라도 하려는 건지 머리 쪽에 가 있었는데 자각하지 못한 사이에 한 움큼씩 쥐어뜯고 있었다.
그럴 만도 했다.
전말을 모르는 상태에서 그냥 이 사태만 보면 수혁은 사람이 아니라, 진짜 신이었으니.
“그 후로는 경과 관찰 정도만 하면 될 겁니다. 오히려 췌장의 전체 면적이 줄어든 만큼 당뇨를 주의해야겠죠. 그렇다고 해도……. 예후가 크게 나쁘진 않을 겁니다. 자, 이것으로 답변이 되었습니까?”
“네? 아……. 네…….”
그런 상태에서 ‘네’라고 했으니, 주변이 어떻게 되겠나.
“키에에에에!”
“이수혁! 그는 신이야!”
“당장 엎드리지 않고 무엇 하느냐!”
“무엄하도다!”
“세상에 검사도 진단도 다 처음 듣는데, 그걸 전화로 이렇게까지!”
거의 지랄발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몇몇 광신도들은 감히 일말의 의심을 품었다는 사실에 옷을 찢고 울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좌장이라는 죄로, 또 새 시대에 베팅했다는 죄로 처음부터 끝까지 봐야만 했던 동종헌의 심정이란 말 그대로 복잡하기 그지없었다.
‘이게……. 미래라면 차라리 없는 게 낫지 않나……?’
어디 부흥회를 온 건가 아니면 기도원을 온 건가.
아니, 아니지.
이걸 기존 종교와 비교하는 건 어쩐지 죄스러웠다.
그래, 사이비…….
사이비 느낌이 진하게 들었다.
‘그건 그렇고……. 저 인간……. 이 진단 능력은 대체 뭐야?’
대학교수라는 사람들이 다들 그렇겠지만 동종헌도 공부깨나 한 사람이었다.
허나 지금 이런 건 처음……. 처음이었다.
미쳤나 싶을 지경이었다.
놀랍다 이건데…….
그래도 이건 좀 너무…….
“아아. 좌장으로 한 말씀 드립니다! 지금 여러분 너무 흥분했어요!”
“흥분 안 하게 생겼습니까!”
“여러분들! 여러 선생님들! 이곳은 신성한 학회장입니다. 어어, 거기 의자 내려놔요! 누구야! 여기 술 줬어?”
“우아아아아!”
“아니, 제발 좀.”
동종헌을 구원해 준 것은 수혁이었다.
‘진짜로 다 돌아 버렸네.’
[이걸 즉석에서 진단했다고 생각하면 뭐 무리는 아니죠.]
‘아니, 아냐. 그래도 이건 좀.’
수혁은 천천히 걸어가 마이크를 집어 들고 옥음을 흘리시었다.
“여러 후배님들.”
그 순간 장내는 거짓말처럼 고요해졌다.
“진정하십쇼. 이곳은 학회고, 여전히 강의가 여러 개 남아 있습니다. 그 강의를 듣고 공부해서 언젠가 진단과 치료를 도맡아 하셔야 할 분들이……. 고작 이런 아무것도 아닌 케이스 해결한 것에 흥분하면 어쩝니까?”
이어지는 말에 사람들은 아까보다 더욱더 강한, 그러나 조용한 흥분이 찾아오는 것을 느꼈다.
그래.
이건 아무것도 아니지.
앞으로 배워서 저렇게까지는 아니더라도, 훌륭한 의사가 되어야지.
“여러분들은 아무 의사가 아니고, 내과 의사입니다. 내과 의사의 본분은 공부에 있어요. 쉬지 않고 공부를 하셔야 합니다. 자, 다들 뭐 하십니까? 여기서 소란 피우는 사이에 벌써 다른 세션은 시작했습니다. 당장 가서 듣고, 공부하십쇼.”
“네에에에에!”
“키에에에!”
“와아아아아!”
그런 와중에도 중간중간 이게 짐승 울음인지 사람 목소리인지 모르겠는 괴성이 들려오긴 했지만, 하여간 아까보다는 훨씬 나았다.
일단 장내가 비어지고 있잖아.
아니, 숫제 텅 비어 버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자, 여기 있습니다.”
“어……. 고맙습니다.”
“아뇨, 뭘 우리 사이에.”
동종헌은 그렇게 비어 버린 강의실 내부를 바라보고 있다가, 이내 수혁이 건네준 마이크를 받았다.
그러곤 그 마이크를 제자리에 꽂으면서 생각했다.
대체 저 사람은 왜 안 나가고 저기서 머리카락을 쥐어뜯고 있을까?
그리고 우창윤, 저 또 다른 거물은 다 끝난 강의실에 왜 들어올까.
“김 교수. 소갈머리 비는 거까지 날 따라 할 필요는 없네.”
왜 들어왔겠나.
그는, 그로서는 실로 드물게 죄책감을 그득 안은 채, 김선형 교수의 등을 두드려 주었다.
굳이 따지자면 이 사태에 책임은 오롯이 김선형에게 있기는 할 터였다.
대체 어쩌자고 이수혁에게 싸움을 건단 말인가.
차라리 물리적으로 패던가.
왜 머리를 쓴단 말인가.
그것도 의학 분야에서…….
“어……. 교수님.”
“괜찮나? 꼴이 말이 아닐세.”
“그……. 죄송합니다! 못난 꼴을……. 제가……. 제가 교수님께서 해결했던 어려운 케이스 욕심이 나서……. 그만!”
“하하……. 그만하게. 그만.”
“아닙니다! 제가 교수님께서 해결하신 케이스에 누를 끼쳤습니다!”
그런 생각도 잠시였다.
이 새끼가 기차 화통이라도 삶아 먹었는지 가뜩이나 사람 없어져서 울리기 시작한 강의실에서 버럭버럭 악을 쓰고 있었다.
‘설마 이제 깨닫고 나 X 돼 보라고 이러나?’
이런 생각까지 들었을 지경이었는데, 자세히 보니 그건 아닌 것 같았다.
김선형의 얼굴을 보면 그런 것 정도는 알아낼 수 있었다.
“조용히……. 조용히 하라니까?”
물론 그건 그거고 망신당하는 건 별개의 일이었다.
해서 우창윤은 최선을 다해 김선형을 조용히 시키려 애를 썼다.
“저기.”
그러다 누가 뒤를 치길래 뒤를 돌아보았더니만 수혁이 서 있었다.
아까 지었던 그 끔찍스러운 미소를 짓고서였다.
“어…….”
“다 들었으니까 시끄럽게 해도 됩니다. 그보다 중요한 건……. 하하. 이거 어쩌시려고 그런…… 하하.”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