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0화 뭐가 되었건 (7)
“내가……. 뭘 어떻게 하면 될까? 응?”
우창윤의 심정은 그야말로 복잡하기 이를 데 없는 상황이었다.
이건 거의…….
뭐라고 해야 하나.
그래! 얼마 전 친척 모임에서 4살 난 조카 녀석이 가발을, 그것도 하필이면 딱 뚜껑 부분을 움켜쥐고서는 이리저리 뒤흔들 때의 심정이었다.
‘와……. 지금 생각해도 심장이 쿵 떨어지는 느낌이네.’
정말로…….
응?
“무슨 생각 하세요?”
원래 애착이라는 건, 덧없이 사라질 것에 대한 것일수록 더더욱 강해지기 마련 아니던가.
이미 사라진 것에 대해서라면 애착이라기보다도 거의 뭐 집착이라고 해도 좋을 수준이었다.
해서 우창윤은 지금처럼 준엄한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머리 생각을 하고 있었다.
물론 잠시뿐이었다.
수혁의 샐쭉한 눈을 마주하자마자 현실로 돌아올 수 있었다.
“아니, 아니. 하하.”
“어떻게 이거. 말해요? 제가……. 실은 제가.”
“아니, 안 될 말이지!”
우창윤은 여전히 무릎 꿇고 강의실 중간에 널브러져 있는 제자를 곁눈질로 바라보다가, 이내 말을 이었다.
“제발……. 저 친구 저래 봬도 날 엄청 존경한다고.”
“이상한 짓 하는 놈인데……. 존경이 중요할까요?”
“그……. 인정하지. 이번 건 나도 왜 저랬는지 모르겠어……. 아니지, 아냐. 자네 때문이야.”
“네?”
수혁은 미쳤나 싶은 얼굴로 우창윤을 바라보았다.
‘여기서……. 내 탓?’
[원래 좀 남 탓하는 편이라고는 들었습니다.]
‘사람이 원래 그렇지 하고 넘겼는데…….’
[이건 좀 심하긴 하네요.]
그 속에 담긴 어이없음을 읽어 낸 우창윤은 재빨리 말을 이었다.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이번 말은 좀 어이없을 거 같아서 그랬다.
“그그, 내가 사실 말이야. 이수혁 교수님 없을 때 칭찬을 엄청 한다고……. 그럴 수밖에 없지 않나. 천재…… 아니, 천재도 아니지. 진짜 괴물이지.”
“흐음. 더 해 보세요.”
모두가 알고 있듯이 수혁은 칭찬에 약한 사람이었다.
아니, 사족을 못 쓴다 해도 좋았다.
지금처럼 살짝 뜬금없이 튀어나오는 칭찬이라고 해도 괜찮았다.
덕분이라고 해도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하여간 수혁은 이미 기분이 풀려서 고개를 주억거리고 있었다.
“그러니 내가 숨 쉬듯 칭찬이나 감탄을 할 수밖에 없지 않겠나! 근데 그걸 옆에서 제자 놈이 다 듣고 있었을 거라 생각하니까……. 흠. 이게 좀 그렇구만. 이제 알았네. 저 녀석……. 이수혁 교수를 질투하는 거야.”
“으음……. 질투라…….”
“급이 안 맞긴 하지. 급이 안 맞아. 맞는 말이야. 하지만……. 어쩌겠나. 마음이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닌 것을.”
“좀 추하긴 하지만……. 뭐, 이해는 해 두죠. 근데.”
물론 그렇다고 해서 다 잊고 새 출발 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수혁이 잊어도 바루다는 잊을 수 없지 않겠나?
게다가 바루다는 수혁에 대한 칭찬을 아무리 늘어놔 봐야 별 효험이 없었다.
왜냐?
[수혁은 기껏해야 천재죠. 그걸 괴물로 만들어 준 건 난데…… 왜 나는 쏙 빼놓지.]
‘너라는 존재를 말하는 순간 인마, 나 바로 잘려 나갈걸.’
[그건……. 그건 그렇지.]
‘그렇게 되면 네가 제대로 작동을 하게 될까, 못하게 될까?’
[미지수죠.]
‘그 미지수에 미래 걸 수 있어?’
[못 걸죠. 말이 됩니까?]
‘그렇지. 그러니까 조용히 해.’
이해는 하고 있었다.
어쩔 수 없다는 걸.
하지만 이해한다고 해서 기분도 따라갈 수 있는 건 아니지 않나?
해서 수혁은 방금 대화에서 배제된, 사실은 더 큰 잘못을 한 사람의 머리채를 끌고 나왔다.
“애초에 이걸 왜……. 본인이 진단했다고 하셔서 이런 사달을 만들었어요?”
“아, 그거. 하하하! 일단! 일단 나가서 얘기하지!”
우창윤은 그로서는 실로 드물게 잔뜩 당황한 얼굴로 뒤로 돌아 나갔다.
중간에 제자 어깨 두드려 주는 것은 잊지 않고서였는데, 수혁이 볼 때는 저게 과연 두드려 준 것인지 아니면 두들겨 팬 것인지 의문이 들 정도로 힘을 주었다.
하여간, 수혁은 딱히 불쌍한 대머리 망신 주는 데에는 별 관심이 없어서 순순히 따라 나갔다.
‘근데 진짜 저거 가발이야?’
[네. 제 분석 결과 못 믿으십니까? 머리카락이 어느 순간부터 1mm도 자라지 않고 있어요.]
‘허어…….’
[무엇보다 중간에 저 소갈머리가 채워졌다니까요? 아선에서 아무도 모르게 발모제 개발한 게 아니라면 가발밖에 남지 않죠.]
‘그게 합리적인 결론이겠군……. 그래, 내가 대훈이 봐서 봐준다…….’
안대훈을 생각하면 어쩐지…….
좀 마음이 뒤흔들리기 마련이었다.
게다가 수혁은 이현종과 똑 닮은 면이 있어서, 그냥 지금 이 순간을 즐기고 있었다.
“어디까지 가세요?”
“어어. 여기쯤이……. 여기쯤이 좋겠네.”
다시 말해서 그냥 사람 놀리는 게 좋았다.
상대가 우창윤처럼 타격감이 좋다면 더할 나위 없었다.
“복도네.”
“그렇지. 복도지.”
“다리 아픈데…….”
“아이쿠, 이런 결례가! 이리……. 이리 오게.”
우창윤은 수혁의 말 한마디에 허둥지둥하면서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있었다.
그 결과, 수혁은 어찌 되었건 간에 호텔 중간 어디쯤 놓인 소파에 앉을 수 있었다.
그 과정에 미리 자리 잡고 있던 펠로우들이 도깨비처럼 변한 우창윤 얼굴에 혼비백산한 채 도망가기도 했지만 여튼.
“그래그래……. 하하. 이게 참!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네.”
우창윤은 그렇게 수혁을 앉혀 놓고서, 귀 끝까지 얼굴이 벌게진 채 말을 늘어놓았다.
말이 말이지, 사실상 의미 있는 말이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무슨 할 말이 있겠나.
남이 진단한 걸 가지고 제자들에게 자기가 했다고 잘난 척을 했고 그걸 딱 걸린 상황인데.
“제가 이거 아빠한테는 말씀드리지 않을게요.”
“어! 어어……. 고맙네……. 고마워. 아휴. 이현종 교수님이 아시면…….”
“아마 임종 직전까지 이 얘기하실걸요.”
“어……. 제명에 못 죽을 거 같은데.”
“그러니까요. 돌아가실 때 귓가에 대고 속삭이실 분이죠.”
“어…….”
간담이 서늘해진다는 게 이런 기분인가 싶었다.
상식적으로 가족들에게 둘러싸인 사람에게, 가족들을 헤치고 들어와 고인의 귓가에 저따위 소리를 지껄일 수 있는 놈이 있겠나 싶지만…….
상대가 그 이현종이지 않나.
모르는 사람이 보면 그냥 멀쩡한 노신사 또는 노교수로 보이는 데다가, 세계적인 명성 탓에 눈가에 깃든 묘한 똘기조차 천재성으로 가릴 수 있는 놈이니 또 모를 일이었다.
-제가 우창윤 교수와 각별한 사이입니다…….
환장할 노릇인 것은, 겉으로 볼 때는 진짜 각별해 보일 거란 점이었다.
이제 학회도 같이 하고 있지 않나.
게다가 딸내미는 아주 높은 확률로 저기 갈 거고…….
만약 이 스트레스로 억 하고 쓰러졌다가는 진짜 딱 죽기 전에 저따위 소리나 듣고 갈 것 같았다.
“그, 그렇지. 와!”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내가 이 은혜는 어떻게든…….”
“네네. 제자분한테도 비밀 지켜 드릴게요.”
“어어…….”
“근데 제가 어떻게 위치까지 알아맞혔는지는 어떻게 설명하시려고요?”
“그냥 괴물 메타로 밀어야지. 안 그래도 레지던트들은 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서 괜찮을 거 같은데.”
“하긴 설명이 안 되긴 하죠?”
“그렇지…….”
우창윤은 힘없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방금 전까지 있었던 강의실을 돌아보았다.
아까는 제자 걱정하느라 정신이 없었는데, 다시 생각해 보니 정말이지 이상한 광경이었더랬다.
‘설명이 안 되는 진단을 자꾸 하고 그러니까……. 종교가 생기고 그러는 거 아닌가……?’
예전엔 안대훈이 그냥 미친놈 같았는데.
이제 보니까 수혁이 자꾸 여지를 만들고 있는 느낌이었다.
생각해 보라.
이건…….
상식적으로 아예 말이 안 되는 일이 벌어진 마당이잖아?
수혁은 어떻게 생각할는지 몰라도, 세간에서는 이런 일을 기적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기적을 베푸는 이를 신 또는 성자로 불렀고.
‘아무튼, 지금은 이런 생각이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지…….’
수혁이 이현종보다는 훨씬 나은 상대라는 건 너무 당연한 사실이었다.
아까 그 자리에 있었던 것이 이현종이라고 생각하면…….
지금 매고 있는 넥타이 대신 밧줄 매는 게 나을 터였다.
하지만 그 말이 곧 수혁은 괜찮은 상대라는 걸 의미하는 건 아니었다.
이현종이 상대적으로 너무 미친놈이라 그럴 뿐이지…….
‘이놈도……. 만만한 놈이 아냐.’
수혁으로서는 억울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허나 수혁이 지금껏 걸어온 길을 보면 남들이 이런 생각하는 게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세상에 어떤 인간이 신현태나 이현종, 조태진, 심지어 김다현 같은 세파에 닳고 닳았을 인간들이 자기 일처럼 수혁의 계약을 다뤄 줬을 거라 생각이나 할 수 있겠나.
아무리 대학교수들이 세상일에 어둡다고 해도, 우창윤처럼 정치 감각이 남은 이에게는 정말이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니 지금껏 수혁이 맺어 온, 시각에 따라서는 불공정 계약으로까지 보이는 계약들을 전부 수혁이 주도적으로 했다고 믿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 근데 이제 내가 뭘 하면 되겠나?”
“네?”
“뭘 하면……. 되겠나…….”
불안에 떠는 우창윤을 보면서 수혁은 전혀 엉뚱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굳이 뭘 할 게 있나? 이미 골수까지 빨아 먹히고 있는 사람 아냐?’
[지금 후향적으로 살펴봤는데요.]
‘뭘?’
[머리요.]
‘머리……?’
[우창윤의 머리카락 상태 말입니다.]
수혁은 풉 하려다 간신히 참고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지금 직접 우창윤의 머리를 보면 참기 어려울 거 같아서 눈도 감았다.
‘저 봐……. 저거 고민하잖아. 안 돼……. 안 돼!’
우창윤의 오해가 깊어지는 가운데, 수혁은 여전히 대화 중이었다.
[확실히……. 우리와, 정확히는 이현종과 접점이 많아지면서 빠지는 속도가 빨라졌습니다.]
‘아이구……. 미안해라.’
[그렇게 말하면 한 대 맞을 거 같은데요?]
‘그래서 속으로만 말했잖아.’
[하여간, 사람이 저 지경이 됐는데 뭘 더 시킨다는 건 좀.]
‘가발 벗어 보라고 할까.’
[…….]
‘농담이지.’
수혁은 바루다의 싸늘해진 눈길을 느끼며 허허 웃었다.
이거까지는 굳이 숨길 필요가 없을 거 같아서 겉으로도 웃었다.
‘하아……. 주여.’
그 미소가 어찌나 살벌하게 느껴지는지, 우창윤은 평생 존재하지도 않을 거라 믿고 있던 신에게 기도하기 시작했다.
누구라도 있으면 제발 이 마수에서 구원해 달라고.
“당장 얘기할 건 없는 거 같고……. 이제 저희도 슬슬 움직여야죠.”
“응? 어디로 움직여……?”
“학회 왔잖아요. 공부해야죠. 안 그래도 요새 혈종 쪽에 뜨거운 감자 하나 있지 않습니까.”
“어……. 나 내분비…….”
“네? 가기 싫으세요?”
“아니, 아니. 가야지. 가야지!”
물론 구원 따위는 없었다.
우창윤은 하릴없이 수혁의 손에 이끌린 채 강의실로 가야만 했다.
생전 관심도 없는 혈액종양내과 강의실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