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1화 차세대 치료제 (1)
끼이익.
강의실, 그러니까 컨퍼런스 룸 문은 기본적으로 부드럽게 열리도록 설계가 되어 있기 마련이었다.
아마 여기도 원래는 그랬을 터였다.
하지만 오래돼서 그런가. 나이 든 경첩에서 질러 대는 비명은 어쩔 수 없었다.
“으음. 여긴 사람이 그렇게 많진 않네.”
“아까 거기가 이상한 거…….”
수혁의 말마따나 텅 비어 있다는 느낌까지는 없어도 반 정도는 비어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긴 했다.
원래 내과 학회란 곳이 동시에 열리는 강의가 워낙에 많다 보니 여기저기 사람들이 흩어질 수밖에 없어서 그랬다.
그나마 수혁의 강의실에 갇혀 있던 사람들이 밖으로 빠져나와서 망정이지, 아까까지는 더 적었을 터였다.
수혁도 비슷한 생각을 할 수 있을 만큼의 정신머리는 있어서 거기에 대해서는 딱히 더 의문이 생기진 않았다.
“근데 왜 갑자기 반말하세요?”
다만 우창윤에 대한 의문은 있었다.
예전과는 달리 말 놓으려면 쌍방 의견 교환이 있어야 하는 시대가 아니던가?
적어도 수혁은 기억이 없었다.
당연히 뚱한 얼굴이었는데…….
우창윤은 무척이나 억울해 보였다.
“전에……. 전에……! 전에!”
“전에?”
“와……. 나 진짜…….”
“진짜?”
이제는 억울한 것을 넘어 분통이 터지는지 가슴을 쾅쾅 치고 있었다.
그런 우창윤을 수혁은 가만히 바라보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
“강의실에서 너무 소란 피우시는 거 같은데……. 아무리 연자 바뀌는 타이밍이라지만요.”
“너……. 흐아.”
우창윤은 이러다 사람이 심장마비가 오는구나 싶었다.
이럴 때 보면 이현종하고 무척 비슷한데…….
그러면서도 살짝 다른 빡침 포인트가 있었다.
뭐라고 해야 할까, 이걸.
그래, 순수 악?
어린아이 같은 면 때문에 더 화가 났다.
일부러 이러는 게 아니라 그냥 그때그때 진심인 것이 느껴지니까…….
‘이런 놈한테 화내는 건……. 내 손해지.’
같은 이유로 화내는 건 아무짝에도 소용이 없다는 얘기였다.
해서 우창윤은 한숨을 푹 하고 내쉬곤 말을 이었다.
“통합진료학회 뒤풀이……. 기억 안 나?”
“네.”
“와……. 아니……아니지. 기억 안 날 만하긴 하네. 그날 막판에 왕자님 오셔서 달렸지.”
“아……. 네. 딱 거기까지는 기억이 나요. 근데 그 후로는…….”
수혁은 머리를 짚었다.
지금 아파서는 아닌데…….
그때 생각만 하면 자동으로 아픈 느낌이 들었다.
[아무리 좋은 술도……. 많이 먹으면 숙취가 생긴다는 걸 알았습니다.]
‘의학적으로 사실 그게 맞지. 어차피 알데하이드에 의해 발생하는 게 숙취인데…….’
[하여간, 그때 뭔가 얘기가 오갔던 모양이군요.]
‘구라 치는 건 아닐까? 이 양반 이제 보니까 구라쟁인데.’
[딱히 뭐……. 잘난 척할 만한 구석이 없는 구라니까, 아니지 않을까요?]
‘그건……. 그렇지.’
세상엔 왜 이렇게 잘난 척하기 좋아하는 놈들이 많을까.
수혁은 지가 제일 심한 주제에 우창윤은 흘겨보았다.
그동안 간신히 정신을 추스른 우창윤은 더듬더듬 말을 이었다.
“그때……. 우리 말 놓기로 했잖아. 기억이……기억이 안 날 수 있을 거 같긴 하네. 하긴.”
“네. 왕자님이 말술이시던데요.”
“어……. 아니, 그 양반 무슬림 아냐?”
“그렇긴 한데……. 그때 뭐라고 했더라?”
“한국에서 마시는 술은 눈감아 주신다고 했던가.”
“말이 되나……?”
“몰라. 그날 아마 돼지고기도 드셨을걸.”
“허.”
말 놓기로 했다는데 어쩌겠나.
게다가 그보단 왕자에 대한 의문이 더 컸다.
여러모로 그날의 충격은…….
간혹 이현종조차 혀를 내두를 지경이었다.
“자……. 다음 연자는 아선병원 혈액종양내과 조형우 교수님이십니다. 카 티 세포(CAR T CELL) 치료 소개 및 증례 경험을 공유해 주신다고 합니다.”
하여간에 세션은 진행 중이었다.
이현종 때문에라도 좌장을 맡게 된 조태진이 마이크를 쥐고 있었는데, 얼굴에 부러움이 아주 그득했다.
‘그럴 만하긴 해…….’
[그렇죠. 우린 아직 공사 중이죠?]
‘응. 사실 있던 거 좀 고쳐서 했어도 될 거 같은데…….’
[김다현 회장이 대강 하는 거 보신 적 있습니까?]
‘없지…….’
[그렇죠.]
카 티 세포 치료제.
지금껏 여러 제약 회사나 의사들이 혁신에 대해 말해 왔고, 그중에서는 실제로 혁신이라고 해도 좋을 만한 것들이 있었겠지만…….
이번에 등장한 이 치료제 앞에서는 아무래도 그 빛이 바래는 감이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방금 소개받은 서울 아선 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 조형우입니다. 오늘 제가 말씀드릴 카 티 세포 치료제에 대해서는 사실 이미 많은 교수님들께서 알고 계실 겁니다. 다만 운 좋게 국내에서 해당 치료제를 가장 먼저 환자에게 사용할 수 있었고……. 그 덕분에 센터 또한 가장 먼저 운영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이에 대한 경험을 주로 공유하는 시간이 될 거 같습니다.”
조형우.
태화에 조태진이 있다면, 아선에는 조형우가 있다는 말이 있었다.
따지고 보면 먼 친척이라던데, 태화와 아선이다 보니 라이벌 구도가 살벌했다.
더 자세히 말하자면 카 티 세포 이전까지는 조태진의 논문 성과가 더 우세했는데 지금은 좀…….
‘아니, 그렇다고 좌장이 연자를 저렇게까지 째려봐도 되는 거야?’
[그건 좀 그렇죠. 째려보는 게 아니라 그냥 안경을 안 써서 그러는 거 아닐까요?]
‘아까 렌즈 끼던데.’
[네, 뭐. 저도 알면서 말해 봤습니다.]
그래서일까?
조태진은 뒤에서 조형우 교수를 노려보고 있었다.
보통 이러면 같은 태화 사람으로서 뭔가……그……. 동료 의식을 느껴야 할 테지만, 수혁은 개인적으로 조형우에 대해 호감이 있다 보니 그런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게다가 지금은 들을 시간이었다.
“후아암.”
물론 우창윤은 진짜 관심이 없어서 하품이나 하고 있었다.
그래도 양심은 있는지 수혁이 노려보자 자세는 고쳐 앉았다.
이렇게 약간은 어수선한 상황에서 본격적인 강의가 시작되고 있었다.
시작은 항암제의 역사였다.
“초기 항암제는 사실상 독가스에서 유래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죠. 사람을 죽이려고 만든 독가스의 효능 중……. 암세포를 죽이는 효능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모든 의학의 역사가 그러하듯, 항암제 또한 초창기에는 처참하기 이를 데 없었다.
의사들이야 그때나 지금이나 사람 살리려는 의지가 충만했겠지만, 선의로 포장된 길이 결과도 늘 선할 수 없다는 말의 증거, 그 자체라고 봐도 무방했다.
“다만 당시에는 합병증이 너무 심했죠. 당연한 얘기입니다. 당시 콘셉트는 사람 죽일 만큼의 용량에서 조금 줄여서 암만 죽여 보자, 이것이었으니까요. 사람마다 약에 대한 취약성이 다른데 그에 대한 개념 또한 부족했기도 하고……. 애초에 항암제로써의 효과도 떨어졌습니다.”
초기 치료의 공포스러운 결과는 후딱 언급만 하고 넘어갔다.
“굳이 따지자면 1세대라기보다는 0세대라고 하는 게 좋겠군요. 하여간, 1세대 항암제에 대해 본격적으로 말씀을 드리자면……. 이건 암세포가 다른 세포에 비해 훨씬 빨리 분열한다는 현상을 발견한 이후에 이를 타깃으로 한 항암제입니다. 당연하겠지만 치료 효과는 분명히 올라갔습니다. 다만……. 우리 몸에서 빨리 분열하는 세포가 암세포만은 아닌 것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생식세포, 골수세포, 머리카락 등등…….
사실상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항암제의 부작용은 바로 이 1세대 항암제와 주로 연관이 되어 있다고 보면 되었다.
“물론 암에 대한 치료 효과도 완전하지 못해서도 있지만……. 우리 몸의 다른 세포를 공격하는 특성 때문에도 환자들이 큰 고통을 받았습니다. 실제로 암이 아니라 항암제 부작용으로 사망에 이르는 경우도 있었고요. 아니……. 여전히 쓰이는 약제들이 있으니 현재형으로…… 써야겠죠.”
조형우 교수의 눈에 물기가 살짝 어리는 것이 보였다.
아예 모르는 사람이 보면 오버한다는 생각도 들겠지만…….
조형우 교수가 주로 보는 림프종은 발병 연령이 다른 고형암에 비해 현저히 낮았다.
아마……. 지금 조형우 교수 또래거나 혹은 수혁 나이 정도 되지 않을까?
그런 환자와 몇 년간 병마에 맞서 같이 싸우다 결국, 원하던 결과를 얻지 못하게 되었을 때…….
그러니까 그 환자를 떠나보내게 되었을 때…….
얼마나 마음이 아프겠나.
림프종이라는 병을 보고 있는 의사의 숙명이라고 하면 할 말이 없겠지만, 숙명이라고 해서 아프지 않은 건 아닐 터였다.
“2세대 항암제는, 바로 이 효과와 부작용을 조금이라도 더 덜어 보자는 의미에서 개발이 되었습니다. 바로 암세포의 표면에 존재하는 특이 항원을 타깃으로 하는 항암제죠. 표적 치료제라고 하는데, 당연히 이 표적 치료제를 쓸 수 있는 케이스라면 치료 효과 면에서나 부작용 면에서나 훨씬 우월한 결과를 보이고 있습니다.”
맞는 말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었다.
엄밀히 말해 2세대 항암제가 태동하기 시작한 것이 20세기 말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의사들의 평가는 이랬다.
-우리는 암과의 싸움에서 지고 있다.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앞으로 암은 점점 늘어날 텐데, 치료 효과나 부작용 컨트롤에 있어 충분치 않았던 것이 사실 아닌가?
아니, 지금도 그랬다.
여전히 암은 공포스러운 병이었다.
“하지만 조금 우월할 뿐, 여전히 우리에게 희망을 주기에는 부족함이 있었습니다. 더군다나 표적 치료제를 쓸 수 있는 케이스 자체가 한정되어 있고, 또 치료 과정에서 암이 변이를 일으키면서 해당 표적 추적을 회피하는 경우가 발생하면서……. 더더욱 암과의 싸움에 끝은 없어 보였습니다.”
그러나 앞으로도 그럴까?
그럴 수 있을 터였다.
세상은 계획한 대로만 돌아가는 것은 아니니까.
허나 적어도 희망을 보여 주는 약이 나왔다.
“다음……. 차세대 항암제. 즉 면역 항암제 얘기로 넘어가기 전에 살짝 원론적인 얘기로 돌아와 보죠.”
조형우 교수의 말과 함께 화면이 넘어갔다.
‘강의 잘하네.’
[똘똘하다니까요? 그냥 환자만 열심히 보는 게 아니에요.]
‘저 교수가 우리 사람이었어야 했는데.’
[그런 말 함부로 했다가는 아선 사람들한테 맞아 죽을걸요…….]
바루다의 말에 수혁은 옆을 돌아보았다.
확실히 우창윤은 기조실장이기 전에 한 사람의 학자였다.
하품 찍찍 해 대던 사람은 간곳없이 사라졌고, 어느새 눈을 초롱초롱 빛내는 학자만 있을 뿐이었다.
‘역시……. 암에 대한 관심은 다들 없을 수가 없다니까?’
아니, 어쩌면 학자가 아니라 일반인의 심정으로 있을 수도 있었다.
대한민국 국민 세 명 중 하나가 암 환자가 될 거라지 않나.
이건 그냥 기분 나쁘라고 하는 저주의 말이 아니라, 통계에 기반한 예측이었다.
적어도 21세기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암과 완전히 떨어져 살 수는 없는 법이었다.
“지금 여기 있는 저나 앉아 계시는 분이나……. 암세포는 발생하고 있습니다. 그게 암으로 발전하지 못하는 건, 우리의 면역 시스템 덕이죠.”
면역 얘기가 나오자 조태진이 한숨을 쉬었다.
마이크가 살짝 켜져 있었는지 장내에 바람이 부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도 괜찮았다.
이제 와 딴 생각할 사람은 없었으니.